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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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천자문(千字文)은 4언고시에 속하는 한시(漢詩)이자 대표적인 한문 습자교본이다. 저자는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 시절 학자 주흥사(周興嗣, 470~521). 삼국시대 종요(鍾繇)가 이미 천자문을 지었다고 하나[1] , 현재 알려진 것은 주흥사의 천자문이다. 당장 죽림칠현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주흥사가 양무제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양무제가 그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무작위로 훼손된 고서(古書)를 하나 뽑아 이 책의 내용을 복원해보라고 했다는 설, 또 하나는 주흥사가 우연한 일로 양무제의 노여움을 사 주살당하게 됐는데, 이를 용서받는 조건인 '하룻밤 안에 4자씩 250구절 시를 짓되, 1글자도 같은 글자를 쓰면 안 된다'에 맞게 만들었다는 설이다. 이 때문에 주흥사는 하룻밤 새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훗날 사람들이 그를 더러 백두(白頭) 혹은 백수(白首)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문에 천자문을 다른 말로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부른다. 몇몇 야사에서는 996자까지 만들고 마지막 4자에서 막혔는데 귀신이 나타나서 '언재호야 (焉哉乎也)'로 끝내라고 알려줘서 간신히 1000자를 끝 마쳤다고도 한다.
그런데 하룻밤 만에 중복 글자 없이 250구절을 모두 만들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니와, 주흥사가 실제로 양무제에게 노여움을 샀다는 기록도 없다. 천자문은 양무제 이전에도 존재했는데 이를 주흥사가 집대성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주흥사가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며 천자문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매우 재밌어서 마치 진실인 양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한시의 대단한 점은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句), 총합 1000자로 이루어졌으면서 글자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옛부터 한문을 배우는 사람들의 입문서로 활용되었다. 장난으로야 "가마솥에 누룽지" 하지만, 제대로 정독하고 읽으면 내용도 참 운치있다. 물론 내용도 좋고 글자가 겹치지 않기에 교육용 교재로도 사용되었을 뿐, 처음부터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글은 아니다. 글자가 겹치지 않게 하면서 운율과 의미도 맞추면서 작성했으니 저자가 머리가 허옇게 셌다는 전설이 생길 법도 하다. 다만 기본은 한시이니만큼 의외로 초심자에겐 어려운 한자도 있다.
2. 한자교재로서 쓰인 천자문[편집]
겹치는 글자가 없는 1000자로 구성되고 적어도 당대에는 상용자가 많아 한자 교재로 애용되었다. 역사적으로는 당나라 시대부터 빠르게 보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법흥왕 8년(521)에 양나라 승려 원표가 사신으로 오면서 많은 불경과 천자문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285년 '백제의 왕인(王仁)이 논어 10권과 함께 천자문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일본서기의 오류이거나, 종요의 천자문을 전했다는 추측, 혹은 왕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도래인의 업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가공인물이라는 추측 등이 있다.
대대로 한국에서는 한자를 처음 배우는 입문자들, 특히 어린이들의 교재로 사랑받아왔다. 천 년도 한참 넘게 지난 지금도 한자 교재 하면 천자문을 떠올릴 정도이니, 근대 이전 천자문의 대중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한자 초심자가 꼭 배워야 할 필수요소로 대접받았다. 순조실록 순조 14년(1814) 2월 10일자 기사에는 영의정 김재찬이 당시 왕세자였던 효명세자를 두고 순조에게 '천자문이 경사나 의리에 관한 글은 아니지만 앞으로 공부할 것은 다 여기에 바탕하게 되는데 자주 학습을 빼먹어서는 곤란하니 (세자를) 아버지로서 지도해주십시오.' 하는 요지로 아뢰는 부분이 있을 정도이다. 왕실에서 지방의 서당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좀 배워보겠다 하는 사람은 한 번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었던 것.
이런 네임밸류 덕에 드라마 같은 여러 대중매체에서 서당같은 곳에서 한자 교육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 꼭 일단 천자문을 읽게 하고 못 외우면 회초리로 때리는 것으로만 묘사되곤 한다. 심지어 이걸 진짜로 한자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정교한 서체로 유명한 한석봉의 천자문이 유명한데, 선조 15년(1583)에 왕명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2.1. 비판[편집]
천자문은 오늘날 관점에서 좋은 한문, 한자 교재가 아니다. 우선 쓰인 글자들 중 현대에 거의 쓸 일이 없는 벽자나 그다지 상용 글자가 아닌 것이 상당히 많다. 천자문에 있는 글자 1천 자 중 한국 교육용 한자(1800자) 목록에 있는 글자는 약 750자인데, 거꾸로 말하면 네 글자 중에 한 글자는 현대 한국인이라면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글자라는 것이다. 한자검정시험에서 특급까지 올라가야 나오는 昃(기울 측)[2] 이 맨 앞 12번째로 나오며, 그 앞 글자인 盈(찰 영)도 2급짜리다.[3] 반대로, 8급 한자인 年(해 년)은 거의 끝자락인 맨 뒤에서 56번째에 나온다.
게다가 마지막 4글자인 언재호야(焉哉乎也)[4] 같은 어조사는 문장의 완성과 의미를 돕는 글자들로, 한문을 배울 때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글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조차도 고전적인 정격한문이 일상에서는 쓰이지 않는 현대에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언(於焉), 오호통재(嗚呼痛哉), 쾌재(快哉), 단호(斷乎) 등 용례가 손에 꼽을 정도.
문법학습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자수를 맞춰야 하는 시의 특성상 문장이 썩 부드럽지 않고, 의미를 알고 봐야 결과적으로 말이 되게끔 이어 놓았을 뿐이므로 초학자가 공부하기에는 상당히 산만하다. 한자 총 1천 자의 배열에도 체계가 부족하다. 획수에 따르거나 음의 순서나 뜻의 분류에 바탕하지도 않았고 상용자와 벽자가 섞였으며 부수별로 정리하지도 않았기에 글자 난이도가 널을 뛴다. 상용자 중에서는 숫자에 三, 六, 七, 十[5] 이, 방향은 北이, 계절은 春이, 자연은 冰(氷), 山, 䨮(雪)이, 비교는 小, 低가, 색상은 綠이 없다. 8급 한자 중에서도 한국 때문에 들어간 韓을 제외하더라도 앞의 글자들에 더해 校, 敎, 先, 室도 없다. 내용을 보면 있을 법한데 없는 글자들이 꽤 많다. 위의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에 포함되지 않은 글자가 넷 중 하나라는 점과 결합해보면, 기초교재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글자가 없고 없어도 될 글자는 또 잔뜩 실렸다.
그런데 천자문이 애당초 교육용 교재로 작문된 글이 아니니 '교육용 교재로서 불합리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현학적'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 그 남북조시대 귀족사회에서 나온 어려운 한시이니, 중국의 고사를 전혀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의미 없이 어려운 글자들의 단순한 나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고사를 충분히 알고 한시의 운율을 즐길 수 있을 만큼 한문 지식을 갖춘 사람에게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어려운 시이다.
규칙성도 없는 글자 1천 자를 좔좔 외워야 하는 천자문이 과연 초급 한자교재로 적절하느냐는 비판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중종 22년(1527) 최세진(崔世珍)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지은 것도 일상적인 한문 생활과 천자문 사이 괴리가 심각했기에 이를 보완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정약용도 천자문 교육이 비효율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아학편(兒學編)》이라는 아동용 교재를 집필하였다. 실학자 오달운 역시 뜻도 모르고 외우기만 하는 천자문 같은 어려운 것보다는 차라리 시경을 가르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물론 천자문이 예부터 한자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교재였음은 사실이지만, 본래 학습교재로 쓰인 글이 아니라서 배우기에 무척 까다롭다. 천자문 자체가 까이기에는 억울하다. 애당초 학습교재로 만들지 않은 글을 학습용으로 사용해놓고 문제가 있다고 타박하는 셈이니 말이다. 각 자구들이 다 이전의 경전이나 작품들에서 인용되거나 고사를 바탕으로 압축하고 운을 절묘하게 맞추어 표현한 것들이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사서삼경은 떼고 와야 할 수준이다.
그리고 한문교육 과정에서도 문법을 넘어가면 추구나 명심보감을 배우지 천자문은 스킵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언재호야 말고는 어조사가 전혀 안 나오기 때문.
만약 한문이 아닌 한자를 공부하고 싶다면 한국 교육용 한자(1800자) 또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일본의 상용한자(2136자), 중국의 통용규범한자표(8105자)를 공부하자. 앞서 1800자만 공부해도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크게 헤맬 일은 없을 것이다.
3. 천 자가 아니다?[편집]
겹치는 글자가 있어 1천 자가 아니라는 루머가 있다. '여러분이 몰랐던 상식'이라면서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결론부터 말해 겹치는 글자 없이 정확히 1천 자가 맞다. 판본의 오류이거나 통용자를 오해한 결과일 것이다.
- 국내 판본 가운데에는 禍因惡積이 禍因惡績으로 잘못 표기되어 妾御績紡의 績과 겹치는 경우가 있는데, 원문은 禍因惡積이 맞다. 積은 '쌓을 적'이고 績은 '길쌈할 적'으로 해석해보면 문맥상으로도 당연하다.
- 竝皆佳妙의 竝과 百郡秦幷의 幷이 같은 글자이므로 겹친다는 주장이 있다. 竝과 幷은 발음과 뜻이 같아 관습적으로 통용하고 해석상으로도 차이가 없으나 자원(字源)이 전혀 다른, 엄연히 별개의 글자이다. 중고음 성모로도 竝은 並母/b/이고, 幷은 幫母/p/이다. 표준중국어에서는 둘 다 bìng으로 읽지만, 광동어에서는 竝은 bing6으로, 幷은 bing3으로 성조가 다르다. 게다가 한나라 때의 병주는 幷州이지, 竝州가 아니다. 竝의 갑골문을 보면 두 사람이 나란히 정면으로 서 있는 모양의 상형이고, 幷은 두 사람이 나란히 옆으로 서 있는 모양의 상형이다. 竝의 약자는 並이고, 幷의 약자는 并으로 약자도 다르다.[6]
- 女慕貞烈의 烈이 판본에 따라서는 女慕貞絜로 되었는데, 여기서 絜이 '깨끗할 결'로 쓰여서 紈扇圓潔의 潔과 겹친다는 주장이 있다. 絜과 潔은 '깨끗할 결'이라는 훈음이 공통되기는 하지만 絜은 그런 훈음 외에도 '헤아릴 혈'로도 쓰이는 엄연히 다른 글자이다.
다만, 겹치는 한자가 있어 1천 자가 아니라는 말이 현대 중국어 기준으로는 사실이다. 髪과 發이 간체에서는 发으로 통합된 것처럼 천자문의 몇몇 한자가 통합됐기 때문이다.
4. 천자문 전문[편집]
5. 이야깃거리[편집]
천자문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현대 한국인들이라도 대부분은 상술한 초반부인 '천지현황' 까지는 순서대로 훈음까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천자문을 알려주는 노래가 따로 있기 때문에 첫 구절인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까지는 알고 있다. 이를 개사한 동요도 유명한데, 하늘 천과 땅 지까지는 같지만 그 다음부턴 검은 솥(또는 가마솥)의 누룽지를 찾는다.
워낙 유명하다보니 천자문=한자라는 식의 인식이 꽤나 널리 퍼져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마법천자문와 태극천자문의 인기 덕에 더욱더. 당연하지만 한자는 꼴랑 천 자만 있는 게 아니다.
2018년 1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천자문 실물이 발견되었다. # 기존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광주판 천자문>(1575년 인쇄, 일본 도쿄대 소장)이었는데 고려 시대에 제작된 석각이 발견되면서 순식간에 500년 이상 연대가 올라가게 된 것. 이 석각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연대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저술 당시 사용되었던 언어인 중고한어로 재구하여 낭독하면 이렇게 된다.
이걸 이용해서 원주율을 외운 어르신도 있다. 해당 어르신은 촬영 당시 66세였다.
한국에선 외울 때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처럼 뜻과 음을 번갈아서 소리내지만 중국에선 "톈, 디, 쉔, 황..."처럼 음만 소리낸다. 원어민에게는 음이 뜻이기 때문이다.
[1] 그의 것은 二儀日月로 시작한다.[2] 흔히 '기울 측'으로 쓰는 글자는 위의 日(날 일)이 빠진 형태(仄)이다. 仄은 특급까지는 아니지만 준특급까지 올라가야 나온다. 仄과 昃은 통자 관계에 있는 글자이다.[3] 이것도 盈德郡만 아니었으면 진작 준특급에 자리잡았을 것이다. 철도차량 구석에 쓰인 제원 중 "영"도 뜻은 이것이다.[4] 여러 뉘앙스로 쓰이기는 하지만, 대표적으로 각각 '여기에', '-는구나/-구나', '-는가/-(으)ㄴ가?', '~(이)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5] 一은 실려 있지 않으나 같은 한자로 壹이 대신 실려 있다.[6] 단 중국의 간체자에서는 并으로 통일시켜 버렸다.[7] 일부 판본에는 元으로 적혔는데 송나라 황실 시조의 이름인 조현랑의 이름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휘종 어필 천자문에서 볼 수 있다.[8] 元으로 적힌 판본에는 원.[9] 여기까지가 한자를 배우지 않거나 천자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자주 들었을 말 들이다. "하늘천 땅지 검을현 누를황…"[10] 낮 하늘이 아닌 밤 하늘.[11] 천자문 당시의 '우주'는 지구 밖 세계가 아닌 시간과 공간을 뜻한다.[12] 본래 천현지황으로 적어야 하나 도치되었다.[13] 辰의 독음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14] '잘 숙'이 아니라 '별자리 수'로 읽는 용법이다. 주의하자.[15] 첫글자가 아니므로 '려'라고 써야 맞겠지만, 麗水가 고유명사이므로 보통 두음 법칙을 씌워서 '여'라고 표기된다.[16] 당연히 대한민국 전라남도에 있는 여수시는 아니고 중국 운남성(雲南省) 영창부(永昌府) 여강납서족(麗江納西族) 자치현에 위치한 강을 말한다. 금사강(金沙江)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담으로 여강은 샹그릴라의 실제 모델인 지역이고 (샹그릴라시와는 별개) 금사강은 태평천국의 석달개와 대장정의 희비가 엇갈린 대도하의 노정교(瀘定橋)로 유명하다.[17] 곤강을 뜻하는 곤륜 산맥은 티베트 북부와 청해성 서부에 걸쳐 있다. 실제로 청해성은 옥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18] 버찌라는 의견도 있다.[19] 유우는 제순 유우씨를, 도당은 제요 도당씨를 말한다. 두 임금이 양위한 것을 의미하는 구절이다.[20] 서경의 구절. (〈무성(武成)〉편에 나오는 「신용을 두텁게 하고 의리를 밝히며, 덕을 높이고 공로를 갚는다면, 옷을 드리우고 손을 마주잡고도 천하가 다스려진다. 惇信明義 崇德報功 垂拱而天下治」)[21] '률'로 읽을 것 같지만 아니다.[22] 첫 구절은 시경(詩經) <권아(卷阿)>편에서 따왔고 두 번째 구절은 시경 <백구(白駒)>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23] 시경의 "은택이 초목에 미친다"라는 말에서 나온 구절.[24] 효경의 신체발부 수지부모와 그대로 이어지는 말이다.[25] 명나라의 문징명(文徵明) 쓴 사체천자문(四體天字文, 말 그대로 네 가지 서체로 쓰였다.)에는 '女慕貞絜(깨끗할 결자에서 삼수변이 빠진 한자, '헤아릴 혈'로도 읽으나 여기서는 '깨끗할 결'로 읽음)이요 男效才良이라'라고 나와있다. 潔과 뜻은 같다[26] '칙'이 아닌 '즉'으로 읽는 용법이다.[27] '정'으로 읽기도 하며, 윈도에서는 '청'으로 변환해야 한다. 대법원 인명용한자 지정 독음 역시 '청'이다.[28] 주 소공석이 섬서 지방에서 선정을 베풀 때 팥배나무 아래에서 직접 송사를 봤고, 그가 죽은 후 백성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그 팥배나무를 귀중히 여기며 그를 찬미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29] '낙'으로 읽지 않게 조심하자.[30] 동쪽 도읍은 낙양을 서쪽 도읍은 장안을 의미한다.[31] 낙양 밑으로 흐르는 강. 황하의 지류이기도 하다. 현재는 뤄허(洛河)라고 불린다.[32] 涇水. 중국 감숙성에서 발원하는 강.[33] 위수는 장안의 왼쪽, 경수는 장안의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이 두 강이 장안에서 합쳐져 황하로 합류한다. 이 때 위수는 맑고 경수는 탁해 두 강이 합쳐져도 강이 한동안 섞이지 않아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해서 경위(涇渭)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34] 삼황오제의 사적을 기재한 책. 현재는 전하지 않음.[35] 어떤 판본에는 '藁', '稾'.[36] 두조杜操, 자 백도伯度[37] 실속 있게 꽉 찬 상태에 있고 기운차다.[38] 반계는 강태공이 낚시를 하던 개울의 이름이며, 주문왕과 강태공이 처음 만난 장소이다.[39] 곡부(취푸)는 주공 단이 분봉받은 노(魯)나라의 수도이다.[40] 어떤 판본에는 '廻'.[41] '설'이라고 읽을 것 같지만 아니댜.[42] 한나라 초기 상산사호(商山四皓)라 불리던 4인의 저명한 학자들 중 하나.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태자 유영을 폐하고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태자로 봉하려 할 때 다른 3인과 함께 유방을 찾아가 간언하여 유방이 이를 그만두게 하였다.[43] 상 양왕(무정) 때의 어진 신하로, 무정이 꿈에 나타난 현인의 모습을 보고 생김새가 똑같은 부열을 초빙하여 재상으로 삼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44] '갱'이라고 읽을 것 같지만 아니다.[45] 사람의 됨됨이에서 느껴지는, 침착하고 점잖은 상태.[46] 어떤 판본에는 '鴈'.[47] 춘추시대 위영공의 신하로, 위영공이 충신 거백옥(遽伯玉) 대신 간신 미자하(彌子瑕)를 중용하자 자신의 시신을 관에 넣지 말고 북쪽 창 아래에 두도록 아들에게 명하여. 자신의 시신을 통해 간언을 한 인물이다.[48] 어떤 판본에서는 '監'으로, 鑑의 초문이다. 사람(臣)이 그릇(皿)에 있는 물을 보는 글자가 監(볼 감, 살필 감)이며, 다시 金(쇠 금) 부수를 붙여서 鑑(거울 감)을 만든 것이다.[49] 한나라(전한) 시기의 유학자이자 관료.[50] 삭이다 색이다 말이 많은데 일단 국립국어원에서는 '색거'와 '삭거'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다. 索을 '찾을 색', '끈 삭'처럼 의미에 따라 발음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미 중고음 당시부터 蘇各切(sɑk), 山戟切(ʂiɐk), 山責切(ʂæk)으로 여러 발음이 공존했고, 현재 표준중국어에서는 suǒ 한가지로 발음하므로 구분할 큰 의미는 없다. 참고로 광동어에서는 '찾다'일 때는 saak3(싹), 노끈·독거의 뜻일 때는 sok3(쏙)으로 읽는 쪽이 맞지만, 광동어 노래나 방송을 들어보면 sok3으로만 읽는 경우가 많다.[51] 장자(莊子)의 저서 장자(莊子)에 나오는 크기가 수천 리에 달했다는 상상 속의 물고기. 나중에 붕새(鵬)로 변해 하늘을 날아간다고 한다.#.[52] 어떤 판본에는 밥 찬 '餐'.[53] 어떤 판본에서는 '圜'으로, 둘 다 '둥글 원'으로 쓰인 글자이다.[54] 어떤 판본에는 '弦'.[55] 춘추시대 초나라 초혜왕 시기의 인물.[56] 주석에 따르면 탄환 세 개를 번갈아 던지며 놀았다고 한다. 즉 저글링을 잘한 것이다?!![57] 죽림칠현 관련 고사[58] 어떤 판본에는 '耀'.[59] 어떤 판본에는 '劭'.[60] 이 네 어조사는 문장의 끝에서 의문(哉, 乎)과 종결(焉, 也)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