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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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의 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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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則天文字
중국 당나라 때 측천무후(생몰 624~705)가 만든 문자.
문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나, 기존의 한자와 완전히 다른 문자가 아닌 한자의 제자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특수한 한자라 할 수 있으며, 새로운 한자를 여럿 추가시킨 개념에 가깝고 기존에 존재하던 한자와 섞어쓰는 경우도 많았다. 한자의 분류인 육서에서는 상형이나 회의로 분류된다. 한자가 추가되는 경우가 어느 시대를 들여다봐도 특이한 경우는 딱히 아니라서 이 문자들의 실질적인 특징은 오히려 잠깐 쓰이다가 사용이 금지된 쪽에 있다.
현재 17자 정도가 전해지며, 이 글자들은 모두 유니코드에 등록되어 있다.[1]
아래 표에서 유니코드 표가 4자리인 것은 BMP, 5자리인 것은 SIP이다.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매우 개방적인 왕조로 주변국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신라, 일본 등 주변국에서도 측천문자를 사용했다. 또한 상당수가 측천무후 시기에만 쓰이다가 이후 사용을 금지해 사멸했으므로 측천문자가 사용된 글은 연대 추정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가장 가까운 예가 바로 최초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2]
석가탑 중수기문과 관련하여 고려시대인 1024년 재인쇄설도 있기는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측천무후 시절에만 잠깐 사용됐다가 그 직후 중국에서 금지되고 한국에서도 잊혀졌던 측천문자를 측천무후 사후 3백 년이 지나 고려시대에 갑자기 다시 사용했다는 말이 되므로 지지율은 비교적 낮다.
서양에도 비슷한 게 있다. 바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만든 Claudian Letters.
705년 중종(中宗)이 다시 황위에 오른 뒤 모든 제도를 고종(高宗) 시대로 되돌린다고 명하여 당(唐)의 국호와 제도가 부활하였다. 하지만 측천무후의 통치기를 거치면서 귀족 가문이나 정부 안에서는 새 글자의 사용이 습관으로 자리잡아 측천문자의 영향이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837년 당 문종(文宗, 재위 826~840)이 측천문자를 폐지하고 원래의 글자로 돌아갈 것을 명하는 조서를 반포하여 측천문자의 사용은 금지되었다. 그 뒤에도 측천문자의 영향이 일부 나타나기도 했지만, 송(宋, 960∼1279) 시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두산백과
2. 글자[편집]
정자 | 신자 | 이미지[3] SIP 영역인 경우만 표시 | 유니코드 | 설명 |
照 | 曌 | U+66CC | 明과 空(또는 日, 月, 空 세 글자)의 합자. 일월당공(日月當空)이라고도 한다. 측천무후 본인의 이름으로 쓰였다. | |
瞾 | U+77BE | 위 글자를 잘못 쓴 경우. 쌍목당공(雙目當空)이라고도 한다. 위 글자가 측천무후의 이름으로 쓰여서 이를 피하기 위해 다른 형태로 쓰였다는 설도 있다. | ||
天 | 𠑺 | 파일:𠑺.svg | U+2047A | 天자의 전서체를 변형한 형태. |
𠀑 | 파일:𠀑.svg | U+20011 | 위 글자가 또 변형된 형태. 자세히 보면 병(丙)과 비슷하나 좀 다르다. | |
地 | 埊 | U+57CA | 山, 水, 土 세 글자의 합자. 산의 물이 땅에 도달하는 대지를 의미한다. | |
日 | 𡆠 | 파일:𡆠.svg | U+211A0 | 乙 부분은 삼족오를 형상화한 것. 원래 테두리가 둥근 모양이었는데, 활자를 만들면서 네모 테두리가 되었다고 한다. |
月 | 囝 | U+56DD | 口는 보름달의 윤곽을, 子는 중국 전설상의 달토끼 또는 두꺼비를 의미한다. 보름달의 형상이므로 𠥱보다 길한 글자라는 인상을 준다. 옛 민나라 방언으로 자식을 뜻하는 건(囝)과는 모양만 같은 별개의 글자다.[4] 이 한자는 의외로 한국사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데, 정약용이 애절양을 지을 때 이 민나라의 풍습을 인용한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 |
𠥱 | 파일:𠥱.svg | U+20971 | 匚는 3개월을, 出는 중국 전설상의 달에 사는 두꺼비를 의미한다. 生에 해당하는 측천문자 𠤵의 이체자라는 설도 있다. | |
星 | 〇 | U+3007 | 둥근 별의 모양을 나타낸 전형적인 상형자. 현대에는 0(=零)의 의미로, 西紀二〇一〇年과 같이 쓰인다. 독음도 같이 변하여 영(←령)으로 읽는다. | |
君 | 𠺞 | 파일:𠺞.svg | U+20E9E | 天, 大, 吉 세 글자의 합자. |
𠁈 | 파일:𠁈.svg | U+20048 | 위 글자가 활자를 만들기 쉽도록 변형된 형태. | |
𠱰 | 파일:𠱰.svg | U+20C70 | 위 글자가 활자를 만들기 쉽도록 변형된 형태. | |
臣 | 𢘑 | 파일:𢘑.svg | U+22611 | 一과 忠의 합자. '신하의 제1덕목은 충성'이라는 의미이다. |
除 | 𠀺 | 파일:𠀺.svg | U+2003A | 天과 興의 합자. 측천무후의 치세 동안 가정(苛政: 가혹한 정치)과 폐정(弊政: 폐해가 많은 정치)이 없는 신세계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
載 | 𡕀 | 파일:𡕀.svg | U+21540 | 載자 자체를 변형한 것. |
𠧋 | 파일:𠧋.svg | U+209CB | 위 글자의 이체자. | |
初 | 𡔈 | 파일:𡔈.svg | U+21508 | 天, 明, 人, 上 네 글자의 합자인데, 얼핏 보면 전혀 안 그래 보인다(…).[5] 위쪽이 天+明, 아래쪽이 人+上 |
年 | 𠡦 | 파일:𠡦.svg | U+20866 | 千, 万이 2개씩 들어간 합자. 왕조가 오랫동안 이어지리라는 의미. 千千力力으로 풀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力 부분은 卍의 변형인 卐가 변해서 된 것이라고도 한다. |
𠦚 | 파일:𠦚.svg | U+2099A | 위 글자에서 가로획 하나가 빠진 형태. | |
正 | 𠙺 | 파일:𠙺.svg | U+2067A | 王의 이체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
授 | 𥢓 | 파일:𥢓.svg | U+25893 | 授의 옛 형태의 변형. 아래 형태보다 많이 사용되었다. |
𥠢 | 파일:𥠢.svg | U+25822 | 위 글자가 활자를 만들기 쉽도록 변형된 형태. | |
證 | 𤪉 | 파일:𤪉.svg | U+24A89 | 永, 主, 久, 王의 합자. |
𨭻 | 파일:𨭻.svg | U+28B7B | 위 글자가 변형된 형태. 永은 求로, 主는 全으로 바뀌었으며 久와 王이 합쳐져 金이 되었다. | |
聖 | 𨲢 | 파일:𨲢.svg | U+28CA2 | 長, 正, 主의 합자. 정통성 있는 군주인 측천무후가 오랜 치세를 이어갈 것임을 뜻한다. |
國 | 圀 | U+5700 | 팔방토지(八方土地)라고도 한다. 원래 글자인 國이 或/惑 등과 통해 불길한 글자로 간주되어 바뀌었다. 원래 口 안에 무측천을 뜻하는 武자를 넣은 모양으로 '무측천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였으나 후에 '무측천이 옥에 갇힌 모양이라 불길하다'하여 이 형태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그 이후로도 계속 国자와 통용되어 오고 있다. 그 예 중 하나가 도쿠가와 미츠쿠니(德川 光圀). | |
人 | 𤯔 | 파일:𤯔.svg | U+24BD4 | 一과 生의 합자. 사람의 생은 하나 뿐임을 의미한다. |
幼 | 𢈗 | 파일:𢈗.svg | U+22217 | |
生 | 𠤵 | 파일:𠤵.svg | U+20935 | |
應 | 𠩍 | 파일:𠩍.svg | U+20A4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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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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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래 표에서 유니코드 표가 4자리인 것은 BMP, 5자리인 것은 SIP이다.[2] 석가탑 중수기문과 관련하여 고려시대인 1024년 재인쇄설도 있기는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측천무후 시절에만 잠깐 사용됐다가 그 직후 중국에서 금지되고 한국에서도 잊혀졌던 측천문자를 측천무후 사후 3백 년이 지나 고려시대에 갑자기 다시 사용했다는 말이 되므로 지지율은 비교적 낮다.[3] SIP 영역인 경우만 표시[4] 이 한자는 의외로 한국사에서도 구경할 수 있는데, 정약용이 애절양을 지을 때 이 민나라의 풍습을 인용한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5] 위쪽이 天+明, 아래쪽이 人+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