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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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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철학자, 교육자.
2. 일생[편집]
전라북도 임피군 남일면 상갈리(현 군산시 임피면 월하리 상갈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 1930년 법문학부로 진학하여 1933년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38년에 연희전문학교에 부임, 1944년까지 연희전문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8.15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51년부터 학술원 회원으로 있으면서 도미경험 등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철학계에 서양철학을 소개하였다. 1958년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59년에 전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학술활동에 힘썼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선거구에서 국회의원(민정당-민중당-신민당)을 역임하였다.
98세까지 장수했다.[3]
그의 아들이 고건 전 국무총리다. 고 총리도 젊은 시절에는 서울대를 다녔는데, 그렇다보니 한 수업에 부자가 같이 있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했기 때문인지 수업 중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2002년 불교신문 인터뷰. 아들 고건의 부친 회고. 회고가 아주 상세하다.
3. 기타[편집]
고형곤 박사에 대한 일화들. 출처. 금강삼매경론 번역 일화.
- 모르는 영어 단어가 있으면,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물어봤다. "나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너희가 가르쳐 달라"고.
- 당시 서울대 문리대는 동숭동 캠퍼스에 있었다. 어느 날 김진규 씨와 김지미 씨가 동숭동 대학로에서 영화촬영을 했는데, 고형곤 박사는 수업에 들어와서 "자! 모두들 영화촬영 보러가자. 아주 멋진 러브 스토리라는데 그게 수업보다 더 중요한 거야!"
- 하루는 야외수업한다는 핑계로 철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갔다. 그런데 막 비가 그친 참이었는데, 물에 젖은 땅위로 지렁이들이 한 뭉탱이 기어나와 꿈틀거리고 있더란다. 고 박사 왈, "와! 저 지렁이들의 기쁨에 넘친 환희의 몸짓을 봐라!" 그 때 한 학생이 고 박사의 말에 초를 쳤단다. "저게 어떻게 환희의 몸부림입니까? 악착같이 살아 남기 위한 고통의 몸부림이지요." 그때, 고 박사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게 바로 관점의 차이란다. 오늘 철학 수업 끝!" 하였다고.
-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은사라고 한다.
- 이순재의 은사였다. 이순재가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공연 준비 때문에 강의에 못 들어갈 것 같을 땐, 고형곤 교수를 찾아뵙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는 "그래, 연극도 잘하면 철학이야."라면서 흔쾌히 사정을 봐주었다고 한다.
- 14대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박병권 중장의 은사였다. 박병권 중장이 육군훈련소장 재임 시 중졸 이하 장병들의 교육여건 제공을 위해 훈련소 인근에 전북대 황화분교를 유치한 것 역시 고형곤 박사가 당시 전북대 총장이었을 시절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4. 선거 이력[편집]
5. 소속 정당[편집]
6. 둘러보기[편집]
[1] 제주 고씨 집성촌이다.[2] 1936년생으로 젊어서 요절.[3] 아들 고건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것까지 보고 사망했다![4] 군산시, 옥구군[5] 민주당(1963년)과 신설 합당[6] 신한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