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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홍렬(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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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교수.
2. 상세[편집]
1911년 4월 19일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 정자리 와둔지마을에서 류인희(柳寅曦)와 박윤병(朴閏秉)[3] 사이의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후 장단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을 거쳐,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 B조에 입학했다. 예과를 마치고 법문학부 사학과로 진학하여 1935년 졸업한 후 동 대학 종교학 사회연구실 조수(조교)로 채용되어 3년간 연구생활을 했다.
1938년 동성상업학교 역사지리 교사로 부임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0월 경성대학 사범대학 교수로 취임하였고, 1947년 국립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문교부 중고등학교검인정교과서 심사위원, 외무부 외교사연구회 위원, 문교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6.25 전쟁 중에는 공군 정훈감으로 복무하여 중령으로 예편했다.
1960년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피선되었고 196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6년 대구대학[A] 학장으로 취임하였고, 1968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전임하여 1970년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1995년 6월 14일 사망했다.
3. 논란[편집]
일본이 영문 국호 Corea를 Korea로 조작했다는 설을 적극 주장했다. 1948년 8월 1일 평화일보에 "국호 영역(英譯) COREA의 정당성"이란 글을 기고한 바 있으며(#), 1962년 12월 19일 경향신문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4] 내용을 보면 역사학자라서 Corea라는 국호가 쓰인 많은 역사적 사료를 인용하고 있으나 정작 "우리나라의 정치에 깊이 관여하던 일본인에 의하여 무고(無故)로 선전(宣傳)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또 그 이유에 대해서는 "K자는 일본을 표기하는 J자의 차석(次席)을 국제회의에서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여 요즘에 언급되는 '올림픽 입장 순서'와 같은 맥락의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최초 주창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학자로서의 권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이러한 조작설을 퍼뜨리는 데 일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