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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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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李恒寧
일본식 이름: 延原光太郞
1915년 7월 25일 ~ 2008년 9월 17일
대한민국의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교육자이다. 본관은 연안(延安)[2]#, 호는 소고(小皐)이다.
2. 생애[편집]
1915년 충청남도 아산군 둔포면 둔포리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 4학년을 수료한 1934년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제11회, 문과을류)에 입학하여 1937년 수료 후 법문학부로 진학, 194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경성제대 학부 3학년 졸업반이던 1939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경상남도 하동군수, 창녕군수를 지냈다.
8.15 광복 후 문교부 차관, 동래군 청룡초등학교 교장, 양산중학교의 교장 등을 지냈다. 한편 자신의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해 반성하는 글을 꾸준히 작성하였다. 이후 동아대학교 법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 등을 지내며 민법과 법철학을 강의하였다. 1972년부터 1980년까지는 홍익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2008년에 사망했으며, 김앤장 공동 경영자이자 대표변호사인 이재후 변호사는 그의 아들이다.
후에 책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행적을 사죄한 친일반민족행위자 3명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