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 0)
1. 개요[편집]
당신의 아침이 바뀝니다
동아일보 1990년대 슬로건
세상을 보는 맑은 창, 신뢰받는 신문 東亞日報
동아일보 비전
대한민국의 조간 종합 일간 신문. 1920년 4월 1일에 창간되었다. 창간호. 현재 발행되고 있는 중앙 일간지 중에서는 서울신문[1] 과 조선일보[2] 에 이어 세 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일간지다. 처음부터 민족지로 창간되었고 조선인들을 잘 대변해 주어서였는지 1928년 총독부 경무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아일보의 발행 부수는 40,868부로 매일신보(23,946부), 조선일보(18,320부)보다 많았다.
전라도 지역의 부호였던 김성수가 설립하였다.[3] 그래서인지 1980~1990년대에는 "전라도 사람은 껌은 해태 껌을 씹고 신문은 동아일보를 본다"라는 말도 있었다. "동아일보"라는 명칭은 창간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유근이 지었다.
사실 1980년대 이후 전두환 정부와 결탁한 조선일보가 급속한 성장세로 구독 부수 1위를 기록하며 신문 업계의 원톱이 되기 이전까지는 한국일보와 더불어[4] 구독 부수나 매체 영향력 면에 있어서 쌍두마차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 신문이었고, 사실상 신문 업계에서 2위 없는 압도적 1위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21세기 들어선 이전보다 위상이 많이 줄어들었다. 일례로 2019년 기준 신문 열독률이 2.6% 수준에 불과하다.[5] 그래도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함께 이른바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 우파 성향의 3대 신문사로 꼽힌다.[6]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종이신문 산업 자체가 하락세를 타면서 동아일보도 유료부수나 신문의 열독률이 급격하게 감소해 2019년 기준 발행부수는 92만 부, 유료부수 73만 부이다. 그러나 이 통계도 부수가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 중론이라 실제 유료부수는 더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부풀려진 것은 거의 대부분 신문사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순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노조는 미가맹이다. 원래는 언노련 소속이었지만 2000년 민주노총 산하로 산별노조화되면서 탈퇴했다.
2. 사시(社是)[편집]
1. 본보는
民族 의表現 機關 으로 자임함2. 본보는
民主主義 를 지지함3. 본보는
文化主義 를 제창함
동아일보 사시
주지를 밝히노라
主旨 를宣明 하노라(1) 조선 민족의 표현 기관을 자임한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소수 특권계급의 기관이 아니라 단일한전체로서의 2000만 민중의 기관으로 자임하니, 그 의사와 이상과 의도와 운동을 여실히 표현하며 보도하고자 한다.
(2)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이는
國體 니政體 의 형식적 표준이 아니다. 곧 인류 생활의 일대 원리요 정신이니 강력을 배척하고 인격의 고유한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것이다.이를 국내 정치에 적용하면 자유주의며, 국제정치에 적용하면 연맹주의요, 사회생활에 적용하면 평등주의요, 경제조직에 적용하면 노동 본위의 협조주의라.
특히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각 민족의 권리를 인정한 가운데 친목과 단결을 의미하며, 세계 전체에 있어서는 정의와
人道 를 승인한 가운데 평화와聯結 을 의미한다. (중략)(3) 문화주의를 제창한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의 생활 내용을 충실히 하며 풍부히 함이니, 곧 부의 증진과 정치의 완성과 도덕의 순수와 종교의 풍성과 과학의 발달과 철학 예술의 심원함과 오묘함이다.
다시 말하면 조선 민중으로 하여금 세계 문명에 공헌하게 하며 조선 강산으로 하여금 문화의 낙원이 되게 함을 높이 제창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조선 민족의 사명이며 생존의 가치라고 사유한 까닭이다.
3. 사가[편집]
3.1. 옛 버전[편집]
작사는 춘원 이광수, 작곡은 김영환이 맡았으며, 1926년부터 제정되어 1985년까지 사용했다.
1절
삼천만 가슴속에 졸던 자유혼
깨어라 소리치어 자유의 소리
나날이 새힘자라 새는 날마다
영원히 외치도다 자유의 소리
2절
이 붓대 보았는가 정의의 붓대
의 아닌 것 보고는 못 참는 붓대
차라리 의에 싸워 꺾일지언정
곧고 곧은 그 절개 꺾지 못하네
3절
횃불은 들렸도다 진리의 횃불
삼천만 우리 강산 두루 비치러
옛 역사 새 정신 타는 광명은
천만대 내리 전할 진리의 횃불
4절
원컨대 복이 되어 사랑의 꾸리[8]
끝없는 실을 끌고 동포의 가슴
낱낱이 들어나어 삼천만 혼을
짜리라 새 조선의 빛난 깃발로
후렴
동아일보 동아의 종소리 자유종 소리
삼천만 자유혼의 외치는 소리
만국에 울려라 만세에 울려라
3.2. 새 버전[편집]
1985년 창간 65주년을 맞이해 제정되었으며, 작사는 강인섭, 작곡은 김성태, 편곡은 장일남이 맡았다.
1절
동녘의 빛이어라 민족의 길 밝힌 등불
삼일정신 받들어 새벽을 헤쳐오다
밝히리라 온누리에 자유의 횃불
누구도 영원한 그 앞을 막지 못하리
2절
나라가 없을 때도 깨어있던 종소리
진리와 함께 가는 보람찬 길이로다
외치리라 온누리에 민주의 소리
누구도 의로운 그 붓은 꺾지 못하리
3절
아― 세계로 뻗어가는 겨레의 기상
시대에 앞장서서 문화의 발을 간다
알리리라 진실이 무엇인가를
천 년 뒤 만나도 살아있는 글자기를
후렴
동아일보 겨레의 얼 나날이 새로와라
나라 위한 바른 말 역사에 전하리라
4. 사옥[편집]
5. 오너 일가[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6. 지배 구조[편집]
7. 상징[편집]
왼쪽의 청록색 원형 로고는 1920년 창간 당시부터 사용해왔던 오래된 로고이고 타원 속에 한자 '東(동녘 동)'이 가로세로로 반복된 형태이며 45도로 기울여 보면 亞(버금 아)자 형태도 드러나는 그 당시엔 보기 드물게 꽤 복합적이고 모던한 형태의 로고다. 1920년 이후 단 한 번도 바뀌거나 폐기된 적이 없는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로고이다. 전혀 관계없는 동해상사고속의 상표도 이거랑 유사하지만, 색상이 다르다.
창간 당시 서화협회에 위촉해 협회 회원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東'자를 도형으로 도형화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이것을 본사가 채택함으로써 결정됐다. 처음에는 배달부의 배달용 덧저고리[14] 에 마크로 새겨 사용했다. 동아일보 지면에 로고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22년 10월 15일 자 3면으로, 동아일보 후원으로 열렸던 제3회 전선(全鮮) 야구 대회에 동아일보에서 제정한 우승기 사진이 실렸다.#
8. 역사[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9. 성향[편집]
21세기 기준 동아일보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신문 중 하나이다. 같은 보수언론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가 주로 북한 같은 안보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중앙일보가 경제 이슈를 좀 더 다루는 데 비해 동아일보는 문화 분야를 더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인식이 있다. 실제 창간 당시 사시(社是)도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였다.
보수주의 신문으로 분류되면서도, 모두까기 또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보수 정치계도 비판하는 칼럼이나 사설을 게재하는 경우도 꽤 잦다.[15] 이때는 홈페이지 기사 댓글에서 강성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기고자에 대한 비난이나 ‘똥아일보’, ‘사설을 쓴 기자는 누구냐’ 같은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민주당계 정당이나 진보정당에 호의적이지는 않다.[16]
그러나 사실 2001년 세무조사 사건 이전까지는 민주당계 지지 성향을 가지고 있던 때도 있었다.[17]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이 깊었는데, 애초에 동아일보가 호남과 연관이 있는 기업이다보니 김대중과 연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낙연이 기자 생활을 동아일보에서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고[18] , 서중석이 10여 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나중에 한겨레 신문을 창간하는 송건호도 원래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6개월 정도 했었다. 유시민이 정치 기고를, 진중권이 2000넌대 중반 문화면에 기고한 적도 있다.
동아일보는 언론탄압이 일상이던 시절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찍혀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을 겪기도 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5월 19일부터 5일간 전두환 정권의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설을 싣지 않았고, 언론통제 국면 속에서도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지면을 할애하여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비판한 바 있었다. 실제 6월 항쟁 당시에도 시위대들은 동아일보를 읽었고 당시 친군부 성향이던 경향신문은 발견 즉시 불 태우는 수준이었다.(...)[19]
이후에도 동아일보는 지역기반이 같은 김대중을 적극 지지해 줬으며, 김대중 정권 초기까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대중도 동아일보의 창업주였던 김성수를 적극적으로 감싸줬는데, 실제로 김대중은 1980년대 말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동아일보의 창업주이자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학교로 발전시킨 김성수를 친일파라며 규탄했을 때 김성수를 옹호해 주면서 그 고대생들이 너무 과격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3년 8월 15일 광복 48주년 특별기고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촌[20]
은 비록 감옥에 가고 독립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독립투쟁 못지않게 우리 민족에 공헌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인촌은 동아일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을 계몽하여 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큰 힘을 주었다. 그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인촌은 오늘의 중앙고와 고려대를 운영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일제 치하에서 이 나라를 이끌 고급 인력을 배출, 우리 민족의 내실 역량을 키웠다.
인촌은 또한 근대적 산업 규모의 경성방직을 만들어서 우리 민족도 능히 근대적 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했다.
2000년 3월 31일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는 "인촌 선생은 민족 민주 문화주의 3대 강령을 내건 동아일보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이끈 탁월한 스승이자 지도자였다", "동아일보의 3대 사시(社是)는 그때뿐만 아니라 21세기를 맞는 새천년에도 참으로 합당하다."라고 동아일보와 인촌 김성수를 칭찬했다.
김대중이 1987년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로 여러 차례 위기에 빠졌음에도 제1야당을 전두지휘하는 인물이자 차기 대권주자로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호남권에서의 압도적인 지지와 함께 유력 언론이던 동아일보가 김대중을 지지했기 때문도 있었다. 90년대 당시 조선일보 등 대형언론사나 방송사들의 논조를 보면 김대중에게 친화적이지 않던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동아일보와 친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김대중과 야권이 버틸 수 있었고, 그 덕에 정권교체도 이루었다는 것이 결코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이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는데, 동아일보는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잘못됐다 싶은건 비판을 이어나갔는데,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2001년 김대중 정권은 언론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선다.[21] 그리고 이 세무조사 때 동아일보 회장의 부인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동아일보의 관계가 확 틀어지게 된다.
21세기 들어 동아일보는 친재벌 성향도 드러내는데, 그 배경에는 삼성그룹이 있었다. 뭔 소린고 하면,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동아일보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삼성생명으로부터 500억 긴급대출을 받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대출의 배경에는 삼성 오너 이건희와 동아일보 오너 김병관의 사돈 관계가 있었던 것.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김재열이 1999년 이건희의 2녀인 이서현과 결혼한 것이다. 김재열은 이후 제일모직 사장,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을 거쳐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이 된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만큼이나 삼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으로 꼽힌다.[22] 그리고 외환위기로 인해서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개인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23]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몇몇 대기업 광고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비판 기사 한 번 썼다가 대기업에서 광고 빼버리면 회사가 흔들리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대기업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는 행태가 만연하게 되었다.[24]
이후에는 2000년대 뉴라이트 등장 때 특집기사로 스포트라이트를 주기도 했으며[25] ,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 보수 노선이 상당히 강조되면서 이시기에는 조선일보를 안좋은 의미로(...) 뛰어넘는다는 일각의 평까지 듣기도 했다. 이는 상대성은 있지만 어쨌든 박근혜 정권 때도 계속되었고, 19대 대선에서도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거드는듯한 기사가 제법 나왔다.
그러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초기에는 비판의 수위도 상당히 낮아져서[26] 과거 친민주당 성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으나[27] ,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이전보다 떨어진 2018년 말 정도부터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민주당 정권에 비판적인 보수 신문으로 돌아왔다.# 다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전두환에 매우 비판적이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조중동 중에서 제일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2022년 5월 9일부터 7월 8일까지 35건의 윤석열 대통령 비판 논조의 사설을 게시하였는데, 이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각각 10건의 비판 사설을 게시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이다.#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자주 언급되는 것들을 몇 개 꼽자면 친윤-검찰 출신의 대거 등용, 여야 합치 의지 부족, 대통령실의 지속적인 여당 간섭, 대국민 정책 홍보 부족, 정책 일관성 부족, 거친 발언, 도어스테핑 중단이나 전기요금 인상 유보 등이 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좌우 안 가리고 모두까기 중이다. 외교 분야에서는 한미동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섬세한 실리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대일 외교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의 결단에 발맞춰 일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 발언 재언급(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 마땅한 움직임을 보이라’는 논조의 글이 꾸준히 게재되었다. 한편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는 사설을 통해 일본 정부의 낮은 신뢰도도 문제였지만 우리 정부가 "그간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만 할 뿐 다른 의견에 대해선 괴담이나 선동이라고 일축하기에 바빴다"며 양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2017년 이후로 보수 언론으로서의 정체성을 많이 잃고 보다 중립적인 위치로 논조가 옮겨가다 보니, 좌파로부터는 여전히 조중동의 하나라고 비판을 받고 우파로부터는 한경오와 다를 바 없는 좌파 신문이라고 비판을 받는 웃픈 상황이다.
10.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11. 기획·특집기사[편집]
12. 자매지 및 정기간행물[편집]
- 신동아 : 시사 월간지
- 스포츠동아
- 주간동아: 시사 주간지
- 과학동아
- 수학동아
- 동아비즈니스리뷰(DBR)
-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코리아(HBR)
- 어린이동아: 구 소년동아일보
- 여성동아
- 어린이과학동아
- 시사원정대
- 한국의 창 동아연감: 구 동아연감
13. 주관 대회[편집]
13.1. 현존[편집]
- 동아신춘문예
-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 서울국제마라톤대회(구 동아마라톤)
- 공주국제마라톤대회
- 경주국제마라톤대회
- 서울달리기대회
- 동아국악콩쿠르
- 동아무용콩쿠르
- 동아뮤지컬콩쿠르
- 서울국제음악콩쿠르
- 여초서예대전
13.2. 폐지[편집]
- 국수전 (1956~2016)
- 동아사이클대회 (1958~1997)
13.3. 무산[편집]
14. 계열사[편집]
- 채널A : 동아방송을 계승했다고 하는 동아일보 계열의 종합편성채널
- 동아닷컴[31] : 동아미디어그룹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 주로 동아일보의 기사를 전달.
- 동아사이언스
- 아이티동아
- 동아프린테크
- 동아PDS
- 스포츠동아
- 동아 E&D
- 디유넷
- 동아이지에듀
- 동아애드넷
- 동아MD
- 미디어렙A
- 채널A미디어텍
- 스포엑스컴
- 동아마이스
15. 산하기관[편집]
- 미래전략연구소 : <동아비즈니스리뷰>를 발행하고 있다.
- 뉴센테니얼본부 : 동아일보 100주년 사업 기획 및 진행
- 청년드림센터 : 청년일자리지원 및 취업사이트 운영
16. 공익재단[편집]
- 인촌기념회
- 일민문화재단
- 화정평화재단
- 동아꿈나무재단
17. 제휴 신문사[편집]
18. 여담[편집]
- 조선일보와 함께 한자 사용에 적극적인 신문이다. 일단 제호부터 창간일 이래 줄곧 한자로 표기한 것을 쓰고 있으며 본사 건물에도 한자 로고를 붙여놨다. 현재도 한자 약어(略語)나 병기(竝記)가 자주 나타나며, 일본식이나 중국식 이름의 경우 기사 본문에서 꼬박꼬박 한자로 병기해준다. 이를테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시진핑(習近平)', '밍(明)보', '런민(人民)일보'같은 식. 가끔씩 아예 특정 단어는 한자만으로 써놓는 경우도 있다. #예시 1#예시 2 또한 지면에 주기적으로 한시를 소개하는 코너도 등장한다. 행사의 경우 조선일보가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한편 동아일보는 여초서예대전이라는 서예 대회의 주최, 주관을 맡고 있다.
-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동안 총 무기정간 4회, 판매금지 63회, 압수 489회, 기사 삭제 2,423회를 당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pdf
- 1926년 이완용 사망 직후 이완용의 매국 행위를 비꼬는 명대사를 연달아 날리기도 했다. 그 명대사는 이렇다.
‘구문공신(口文功臣) 이완용은 염라국에 입적하였으니, 염라국의 장래가, 가려(可慮)’
(구문[32] 을 받고 공신이 된 이완용이 지옥에 들어갔으니 장래에 지옥마저도 팔아먹을지 걱정된다.)
1926년 2월 13일 동아일보 1면 횡설수설 기사 중.#
그도 갔다. 그도 필경 붙들려 갔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책벌을 이제부터는 영원히 받아야지.
1926년 2월 13일[33]
동아일보 1면 사설 기사 중.[34]
- 1931년부터 매년 3월에 마라톤 대회를 열고 있는데, 이 대회가 국내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 중 하나인 동아마라톤대회다. 1982년부터는 국제마라톤대회로 확대돼 치러지고 있다. 1947년부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 신문 내에 '횡설수설'과 '휴지통'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무려 1920년부터 존재했던 유서깊은 코너이다. 2023년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데 횡설수설의 경우 항상 A30면 중앙에 고정 배치되고 있다. 휴지통은 가끔씩만 등장한다.
- 라디오 방송국이었던 동아방송(DBS)도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서울 지하철 1호선의 시청역~종각역 사이의 드리프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심사위원 조경란이 예심에서 떨어진 응모작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받은 희대의 막장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는 동아일보의 문제라기보다는 문단의 문제인데, 문단에서 특유의 친목질과 쉴드를 가동해서 결국 표절이 의심되는 조경란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고, 이문열, 신경숙 등 빵빵한 작가들이 심사하는 동인 문학상까지 받았다. 사실 표절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작품의 아이디어 자체도 워낙 흔한데다가 조경란이 저 아이디어로 이미 등단 직후에 출판사와 책을 계약하기도 한 것이 밝혀져 쉽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 1990년대 특종 기사 중 하나를 꼽자면 1997년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날려버린 여자화장실 몰카 설치 보도가 있다.# 몰카에 대한 인식을 확립시켜 준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다. 잘나가던 백화점 하나를 그렇게 순식간에 날려버렸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매우 컸다. 이후 외환위기와 겹쳐 운영사였던 양정물산이 1998년에 망했고, 점포는 금강개발산업이 세운 신규법인 현대쇼핑으로 넘어가 현대백화점 신촌점이 되었다.
- 2010년 11월 18일에는 위키백과를 디스했는데, 위키백과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 자체는 합당했으나 위키백과에 북한군들이 주민번호를 도용해서 가입한 뒤 편집하는 것 같다는 해괴한[35] 내용을 싣는 병크를 저질렀다.# 2011년 7월 16일에 또 위키백과를 디스했다.#
- 동아일보에서는 전국 경영학도를 대상으로 DBR(Donga Business Review)을 무료배포하고 있다. 한 권에 12,000원이나 하는 책이니 많이 이용하자(...). 경영학 실제 케이스와 연구분석 사례들이 나와있다. 대학에 있는 경영학과 건물에서 배포하는 듯하다.[36]
- 대한민국 최초의 바둑기전인 국수전을 1956년부터 주최해 왔다.(2016년을 끝으로 폐지)
- 1925년 대한민국 최초의 신춘문예를 연 이래 수많은 문인들을 발굴해 냈다. 김동리, 이문열, 이창동 등이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현재도 매년 신춘문예를 개최하고 있으며 새해가 되면 지면을 할애해 당선작들을 싣는다.
- 일제강점기인 1920 ~ 30년대에는 '응접실'이란 코너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이를 기자들이 대답하는 코너를 연재했다. 문답 내용들을 보면 시대를 초월한 개드립들이 여럿 있다.#
- 허영만의 식객이 원래 동아일보에서 2002년 9월 2일 처음 연재되어 2008년 12월 18일까지 연재되었다. 꼴도 2008년 1월 1일부터 2010년 3월 31일까지 연재되었다.#
- 2018년 1월 26일 지령 30,000호를 달성했다.3만호 특집 홈페이지
-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창간 이후 모든 기사와 지면을 볼 수 있는 동아 디지털 아카이브를 개설했다.동아 디지털 아카이브
19. 관련 인물[편집]
가나다순
- 경영진 일가[37]
- 인촌 김성수 : 동아일보 창립자, 대한민국 부통령, 친일반민족행위자,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경방 사장, 고려중앙학원 주무이사
- 김상만 : 인촌 김성수의 장남, 동아일보 회장,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국제언론인협회 종신회원, 아시아신문재단 회장
- 김상기 : 인촌 김성수의 차남, 동아일보 회장
- 김상흠 : 인촌 김성수의 4남, 동아일보 편집국장, 독립운동가, 제5•6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김수경 : 동아일보 기자, 국가안보실 통일비서관
- 김병관 : 일민 김상만의 장남, 동아일보 회장,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한국신문협회장
- 김재호 : 화정 김병관의 장남, 동아일보•채널A 대표이사 사장, 고려중앙학원 이사장
- 고재욱 : 동아일보 회장, 한국신문연구소 이사장
- 김준연 : 동아일보 편집국장•주필, 독립운동가, 한국민주당 상무집행위원,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제1•3•4•5•6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 김진현 : 동아일보 상무이사, 과학기술처 장관, 한국경제신문 회장,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 김형오 : 동아일보 기자, 14•15•16•17•18대 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 박권상 : 동아일보 편집국장, KBS 사장
- 박영효 : 동아일보 초대 사장, 친일반민족행위자, 조선총독부 중추원 의장, 일본제국 귀족원 의원
- 백관수 :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국민주당 총무,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 서정주 : 동아일보 문화부 부장, 친일반민족행위자, 시인(대표작 <자화상>, <귀촉도>)
- 송건호 : 동아일보 편집국장, <해방 전후사의 인식> 공동저자, 한겨레 초대 사장,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의장
- 송진우 : 동아일보 제3•6•8대 사장, 동아일보 주필, 독립운동가,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중앙학교 교장
- 신낙균 : 동아일보 사진과장, 독립운동가
- 심훈 : 동아일보 기자, 독립운동가, 소설가(대표작 <상록수>, <탈춤>)[38]
- 양기탁 : 동아일보 편집감독, 독립운동가, 대한매일신보 창간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 염상섭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소설가(대표작 <삼대>, <표본실의 청개구리>)
- 유근 : 동아일보 편집감독, 독립운동가, 황성신문 사장
- 유진오 : 동아일보 객원기자, 보성전문학교 교수, 고려대학교 총장,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신민당 총재
- 윤양중 : 동아일보 논설위원, 초대 예술의 전당 이사장
- 윤영찬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동아일보 노조위원장, 네이버 부사장,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비서관
- 이광수 : 동아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부사장, 친일반민족행위자, 소설가(대표작 <무정>)
- 이길용 : 동아일보 기자•사업부장, 독립운동가, 한국민주당 조직부 차장
- 이낙연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표, 제45대 국무총리, 제37대 전라남도지사,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역임
- 이동관 :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現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 청와대 대변인,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 이만섭 : 동아일보 기자, 대한민국 제14•16대 전반기 국회의장, 새천년민주당•신한국당 총재 권한대행
- 이승훈 : 동아일보 제4대 사장, 독립운동가, 오산학교 설립자,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 이웅희 : 동아일보 편집국장, 경향신문 기자, MBC 사장,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대변인
- 이희승 : 동아일보 제11대 사장, 독립운동가, 국어학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참여
- 임채정 : 동아일보 기자, 대한민국 제17대 후반기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장덕수 : 동아일보 주필•취체역(이사), 한국민주당 외무부장, 친일반민족행위자, 보성전문학교 교수
- 장덕준 : 동아일보 기자, 독립운동가
- 정연주 : 동아일보 기자, KBS 사장, 한겨레 논설주간, 건양대학교 총장
- 정인보 : 동아일보 논설위원, 독립운동가, 역사학자, 대한민국 초대 감찰위원장
- 채만식 : 동아일보 기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소설가(대표작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 최두선 : 동아일보 제10대 사장,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국무총리,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 경방 사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 최시중 :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새누리당 상임고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한국갤럽 회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
- 천관우 : 동아일보 주필, 한국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편집국장, 민주회복국민회의 공동대표, 국토통일원 고문, 국정자문위원
- 한기악 : 동아일보 편집국장, 독립운동가,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신간회 발기인
- 허정숙 :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 대한민국 여기자 1호, 독립운동가, 북한 최고재판소 소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 허헌 : 동아일보 사장 직무대리, 독립운동가, 변호사,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인민공화국 국무총리,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 현진건 : 동아일보 사회부장, 독립운동가, 조선일보 기자, 소설가(대표작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 홍명희 : 동아일보 편집국장•주필, 시대일보 사장, 오산학교 교장,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북한 내각 부총리
- 황선필 : 동아일보 기자, 청와대 공보수석비서관, MBC 사장
20. 관련 문서[편집]
- 일장기 말소사건
- 신탁통치 오보사건
-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 동아방송
- 채널A
- 신동아
- 주간동아
- 한겨레[39]
- 동아일보 사절 개새끼야 : 유료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가구에 유료 신문을 강제 투입하는 보급소와 배달부들에게 팩폭을 시전하는 행위이다.
- 언론 관련 정보
21. 관련 문헌[편집]
- 동아일보사사 (전 6권, 1975 ~ 2005): 이중 1, 3권은 국가기록원에서 열람 가능하다.
- 민족과 더불어: 동아일보 80년사 (2000)
- 동아일보 대해부(전 5권) - 문영희, 강기석, 김종철, 김광원 공저. 안중근평화연구원. 2014.
- 동아일보 80년사 홈페이지 # #
22. 역대 임원[편집]
22.1. 상임고문[편집]
- 김상기, 김성열 (1989.3 ~ 1993.3)
- 이채주, 이종석 (1997.2 ~ 1998)
- 송수항 (2000.2 ~ 2003)
- 어경택 (2003 ~ 2006.1)
22.2. 명예회장[편집]
22.3. 회장[편집]
- 고재욱 (1971.2 ~ 1971.12/편집인, 1971.12 ~ 1975.2)
- 김상만 (대표이사 • 발행인, 1977.2 ~ 1977.3/대표이사, 1977.3 ~ 1981.2)
- 이동욱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1981.2 ~ 1981.3/대표이사, 1981.3 ~ 1983)
- 김상기 (대표이사 • 발행인, 1983.2 ~ 1983.3/대표이사, 1983.3 ~ 1989.3)
- 김병관 (대표이사 • 발행인, 1993.3 ~ 1995.2/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1995.2 ~ 1995.12, 1997.2 ~ 1999.2/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95.12 ~ 1996.3/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1996.3 ~ 1997.2/대표이사, 1999.2 ~ 2001.2)
- 오명 (대표이사, 2001.2 ~ 2001.7)
- 김학준 (2008.3 ~ 2010.3)
- 김재호 (2023. 3 ~ )
22.4. 부회장[편집]
- 김상기 (이사회부회장, 1977.2 ~ 1981.2)
22.5. 사장[편집]
- 박영효 (대표이사, 1920)
- 김성수 (대표이사, 1920/1924~1927/1945~1947)
- 송진우 (대표이사, 1920~1924/1927~1936/1945.12)
- 이승훈 (대표이사, 1924)
- 사장대리 양원모 (대표이사, 1936~1937)
- 백관수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편집국장, 1937.6 ~ 1939.10/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1939.11 ~ 1940.7)
- 임정엽 (대표이사, 1940)
- 최두선 (대표이사, 1947.2 ~ 1963.7)
- 이희승 (대표이사, 1963.7 ~ 1965.7)
- 고재욱 (대표이사, 1965.7 ~ 1968.12/대표이사 • 발행인, 1968.12 ~ 1971.2)
- 김상만 (대표이사 • 발행인, 1971.2 ~ 1977)
- 이동욱 (대표이사 • 편집인, 1977.2 ~ 1977.3/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1977.3 ~ 1981.2)
- 김상기 (대표이사, 1981.2 ~ 1981.3/대표이사 • 발행인, 1981.3 ~ 1983.2)
- 오재경 (대표이사, 1983.2 ~ 1983.3/대표이사 • 발행인, 1983.3 ~ 1985.2)
- 김성열 (대표이사, 1985.2, 1987.4 ~ 1989/대표이사 • 발행인 1985.3 ~ 1987.3)
- 김병관 (대표이사 • 발행인, 1989.3 ~ 1993)
- 권오기 (대표이사 • 편집인, 1993.3 ~ 1995.12)
- 오명 (대표이사 • 인쇄인, 1996.6 ~ 1997.2/대표이사 • 편집인, 1997.2 ~ 1999/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1999.2 ~ 2001)
- 김학준 (대표이사 • 발행인 • 인쇄인, 2001.2 ~ 2002.5/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2002.5 ~ 2006.3/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2006.3 ~ 2008.3)
- 김재호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2008.3 ~ 2016/대표이사, 2016.12 ~ 현재)
22.6. 부사장[편집]
- 장덕수 (1921.9 ~ 1937)
- 고재욱 (주필, 1961.7 ~ 1965.7)
- 김상만 (발행인, 1965.12 ~ 1968.12/1968.12 ~ 1971.2)
- 김두일 (1973.2 ~ ?)
- 김상기 (1973.2 ~ 1974.2)
- 이언진 (1973.2 ~ 1975.2)
- 이동욱 (주필, 1975.7 ~ 1977.2)
- 김성열 (1983.2 ~ 1985.2)
- 김병관 (대표이사 • 인쇄인, 1985.2/대표이사, 1985.3 ~ 1987.3/대표이사 • 발행인, 1987.4 ~ 1989.3)
- 권오기 (대표이사 • 편집인, 1989.3 ~ 1993.3)
- 송수항 (신문담당, 1999.2 ~ 2000.2)
- 김병건 (출판담당, 1999.2 ~ 2001.7)
- 김재호 (대표이사 • 인쇄인, 2006.3 ~ 2008.3)
- 최맹호 (대표이사 • 인쇄인, 2010.3 ~ 2015.3)
- 이희준 (2016.12 ~ 현재)
- 임채청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인쇄인, 2016.12 ~ 현재)
23. 역대 법정등록인[편집]
23.1. 발행인[편집]
- 이상협 (1920.4 ~ 1921.11)
- 한기악 (1921.11 ~ 1924.4)
- 설의식 (1924.4 ~ 1924.10)
- 김철중 (1924.10 ~ 1927.1)
- 양원모 (1927.1 ~ 1927.11)
- 김석중 (1927.11 ~ 1930.9)
- 송진우 (1930.9 ~ 1936.8)
- 백관수 (1937.6 ~ 1940.7)
- 임정엽 (1940.7 ~ 1940.8)
- 김승문 (1945.12 ~ 1947.3)
- 국태일 (1947.3 ~ 1961.7)
- 김상만 (1961.7 ~ 1968.12/1971.2 ~ 1977.3)
- 고재욱 (1968.12 ~1971.2)
- 이동욱 (1977.3 ~ 1981.3)
- 김상기 (1981.3 ~ 1983.3)
- 오재경 (1983.3 ~ 1985.2)
- 김성열 (1985.3 ~ 1987.3)
- 김병관 (1987.4 ~ 1999.2)
- 오명 (1999.2 ~ 2001.2)
- 김학준 (2001.2 ~ 2008.3)
- 김재호 (2008.3 ~ 2016)
- 임채청 (2016.12 ~ 현재)
23.2. 편집인[편집]
- 이상협 (1920.4 ~ 1921.11)
- 한기악 (1921.11 ~ 1924.4)
- 설의식 (1924.4 ~ 1924.10/1945.12 ~ 1947.3)
- 김철중 (1924.10 ~ 1927.1)
- 국기열 (1927.1 ~ 1930.9)
- 송진우 (1930.9 ~ 1936.8)
- 백관수 (1937.6 ~ 1940.7)
- 임정엽 (1940.7 ~ 1940.8)
- 고재욱 (1947.3 ~ 1966.1/1971.12 ~ 1975.3)
- 우승규 (1966.1 ~ 1966.8)
- 천관우 (1966.8 ~ 1968.12)
- 이동욱 (1968.12 ~ 1971.12/1975.3 ~ 1981.3)
- 권오기 (1981.3 ~ 1995.12)
- 김병관 (1995.12 ~ 1997.2)
- 오명 (1997.2 ~ 2001.2)
- 이현락 (2001.2 ~ 2002.5)
- 김학준 (2002.5 ~ 2008.3)
- 김재호 (2008.3 ~ 2016)
- 임채청 (2016.12 ~ 현재)
23.3. 인쇄인[편집]
- 이용문 (1920.4 ~ 1921.11)
- 최익진 (1921.11 ~ 1924.10)
- 조의순 (1924.10 ~ 1933.2)
- 김병석 (1933.2 ~ 1935.7)
- 황영모 (1935.7 ~ 1936.8/1937.6 ~ 1938.3)
- 장석태 (1938.3 ~ 1940.8)
- 이언진 (1945.12 ~ 1975.3)
- 김성칠 (1975.3 ~ 1983.3)
- 김병관 (1983.3 ~ 1985.2/1995.2 ~ 1996.6/1997.2 ~ 1999.2)
- 최준철 (1985.3 ~ 1987.9)
- 한갑수 (1987.9 ~ 1988.2)
- 신용순 (1988.2 ~ 1989.3)
- 김광희 (1989.3 ~ 1995.2)
- 오명 (1996.6 ~ 1997.2/1999.2 ~ 2001.2)
- 김학준 (2001.2 ~ 2006.3)
- 김재호 (2006.3 ~ 2008.3)
- 최맹호 (2008.3 ~ ?)
- 임채청 (2016.12 ~ 현재)
23.4. 출판편집인[편집]
- 이재호 (2009.3 ~ 2012.7)[40]
- 김정훈 (2020.12 ~ 현재)
24. 역대 주요 간부[편집]
24.1. 편집감독[편집]
24.2. 주간[편집]
24.3. 주필[편집]
- 장덕수 (1921 ~ 1923)
- 홍명희 (1924.5 ~ 1925)
- 송진우 (1925.4 ~ 1927)
- 김준연 (1935.2 ~ 1936)
- 고재욱 (1946.4 ~ 1949.5/1952.10 ~ 1955.4/1955.10 ~ 1965/1971~1974.9)
- 김삼규 (1949.5 ~ 1952.10)
- 천관우 (1965.12 ~ 1968)
- 이동욱 (1968.12 ~ 1971.12/1975.2 ~ 1977.2)
- 권오기 (1981.2 ~ 1989.3)
- 이채주 (1994.3 ~ 1997.2)
- 이현락 (1999.2 ~ 2000.5/2000.10 ~ 2001.2)
- 배인준 (2010.3 ~ 2015.3)
24.4. 편집/논설상임고문[편집]
- 김학준 (2000.10 ~ 2001.2)
24.5. 논설고문[편집]
- 이종석 (1994.11 ~ 1997.2)
- 김학준 (1999.1 ~ 2000.10)
- 황호택 (2016.12 ~ 현재)
24.6. 논설주간[편집]
- 홍승면 (1974.9 ~ 1977.2)
- 김성한 (1977.2 ~ 1979.12)
- 박권상 (1980.1 ~ 1980.7)
- 권오기 (1980.8 ~ 1981.2)
- 김진현 (1989.3 ~ 1990.11)
- 이채주 (1990.11 ~ 1993)
- 남중구 (1998.1 ~ 1999.2)
- 최규철 (2002.5 ~ 2005.2)
- 배인준 (2006.12 ~ 2010.3)
- 황호택 (2013.1 ~ 2016.12)
- 김순덕 (2016.12 ~ 2018.12)
- 박제균 (2018.12 ~ 현재)
24.7. 논설위원실장[편집]
- 우승규 (1964 ~ 1965.12)
- 김진현 (1985.3 ~ 1989.3)
- 남시욱 (1989.3 ~1991)
- 이종석 (1991.8 ~ 1994.10)
- 정종문 (1994.11 ~ 1995.9)
- 민병문 (1995.9 ~ 1997.2)
- 남중구 (1997.2 ~ 1997.12)
- 김종심 (1998.1 ~ 1999.2)
- 어경택 (1999.2 ~ 2001.7)
- 최규철 (2001.7 ~ 2002.5)
- 이규민 (2002.5 ~ 2003.7)
- 전진우 (2003.7 ~ 2005.2)
- 배인준 (2005.2 ~ 2006.12)
- 이재호 (2006.12 ~ 2009.3)
- 황호택 (2009.3 ~ 2013.1)
- 심규선 (2013.1 ~ 2013.12)
- 김순덕 (2013.12 ~ 2016.12)
- 박제균 (2016.12 ~ 2018.12)
- 이기홍 (2018.12 ~ 현재)
24.8. 수석논설위원[편집]
- 홍승면 (1972.4 ~ 1973.8)
- 송건호 (1973.8 ~ 1974.9)
- 권오기 (1980.1 ~ 1980.8)
- 정종문 (1991.8 ~ 1994.3)
- 민병문 (1994.3 ~ 1995.9)
- 남중구 (1995.9 ~ 1997.2)
- 김종심 (1997.4 ~ 1997.12)
- 배인준 (2003.7 ~ 2005.2)
- 이재호 (2005.3 ~ 2016.12)
- 최영훈 (2015.9 ~ 2016)
24.9. 수석해설위원[편집]
- 이동수 (1971 ~ 1974.9)
- 권오기 (1974.9 ~ 1977.7)
24.10. 편집고문[편집]
- 이광수 (1927 ~ 1929)
- 고재욱 (1949 ~ 1951/1955)
- 우승규 (1965.12 ~ ?)
24.11. 편집국장[편집]
- 이상협 (1920 ~ 1924)
- 홍명희 (1924.5 ~ 1925)
- 이광수 (1926.11 ~ 1927.10/1929.12 ~ 1933)
- 김준연 (1927.10 ~ 1928.5)
- 주요한 (1929.11 ~ 1929.12)
- 설의식 (1935.2 ~1936)
- 백관수 (1937.6 ~1939)
- 고재욱 (1939.11 ~ 1940.8/1945.12 ~ 1946.4/1947.7 ~ 1947.9/1952.10 ~ 1953.2/1954~1955.4/1958.11 ~ 1960.7)
- 임병철 (1946.4 ~ 1947.6)
- 김삼규 (1947.9 ~ 1949.5/1950.10 ~ 1952.3)
- 장인갑 (1949.12 ~ 1950.6)
- 곽복산 (1952.3 ~ 1952.10)
- 민재정 (1953.2 ~ 1954)
- 우승규 (1956.4 ~ 1958)
- 김영상 (1960.7 ~ 1962.1)
- 천관우 (1963.1 ~ 1965.12)
- 변영권 (1965.12 ~ 1969.2)
- 홍승면 (1969.2 ~ 1971.3)
- 박권상 (1971.4 ~ 1973.8)
- 김성한 (1973.8 ~ 1974.9)
- 송건호 (1974.9 ~ 1975.3)
- 최호 (1975.4 ~ 1977.7)
- 권오기 (1977.7 ~ 1979.12)
- 이웅희 (1980.1 ~ 1980.8)
- 신용순[41] (1980.8 ~ 1983.5)
- 이채주 (1983.5 ~ 1987.1)
- 남시욱[42] (1987.1 ~ 1989.3)
- 장행훈 (1989.3 ~1990.6)
- 김중배 (1990.6 ~ 1991.7)
- 홍인근 (1991.8 ~ 1994.10)
- 이현락 (1994.11~1997.12)
- 정구종 (1998.1 ~ 1999.2)
- 박기정 (1999.2 ~ 2000.5)
- 최규철 (2000.5 ~ 2001.7)
- 김용정 (2001.7 ~ 2002.7)
- 어경택 (2002.7 ~ 2003.7)
- 이규민 (2003.7 ~ 2005.4)
- 임채청 (2005.4 ~ 2008.11)
- 심규선 (2008.11 ~ 2012.6)
- 최영훈 (2012.6 ~ 2013.12)
- 김차수 (2013.12 ~ 2016.12)
- 김정훈 (2016.12 ~ 2018.12)
- 천광암 (2018.12 ~ 2020.12)
- 이명건 (2020.12 ~ 현재)
24.12. 출판국장[편집]
- 김상기 (1965 ~ 1966)
- 조병륜 (1966 ~ 1970)
- 김성한 (1970 ~ 1973.8)
- 홍승면 (1973.8 ~ 1975)
- 김성한 (1974.9 ~ ?)
- 임순묵 (1975.4 ~ 1980)
- 안재준 (1980.10 ~ 1981)
- 이채주 (1981 ~ 1983.5)
- 남시욱 (1983.5 ~ 1987.1)
- 장행훈 (1987.1 ~ 1989.3)
- 김중배 (1989.3 ~ 1990)
- 이준우 (1990 ~ 1991.1)
- 이정윤 (1991.2 ~ 1994)
- 이대훈 (1994 ~ 1995)
- 정구종 (1995 ~ 1997)
- 어경택 (1997 ~ 1999.2)
- 김종심 (1999.2 ~ 2001)
- 민병욱 (2001 ~ 2005.2)
- 최맹호 (2005.2 ~ 2006)
- 고승철 (2006.12 ~ 2008.1)
- 황의봉 (2008.3 ~ 2009)
- 이재호 (2009.3 ~ 2012)
- 권순택 (2012.6 ~ 2014)
- 박태서 (2014.6 ~ 2016.12)
- 박성원 (2016.12 ~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