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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과: 정치학, 행정학,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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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基璧, Cha, Ki Pyok
1924년 11월 28일 ~ 2018년 6월 23일

1. 개요
2. 생애
3. 연구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학자. 민족주의, 정치변동론 등을 연구하였다. 경북대학교 정치학과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1924년 11월 28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신의주동중학교를 거쳐 경성경제전문학교 재학 중 학병에 징집되었다. 해방 후 상하이경상남도 부산부를 거쳐 고향 용천군에 귀향하였으나 급격히 사회주의화 되는 이북의 현실에 질려 월남, 1946년 6월 경성대학 정치학과 편입 시험에 응시하여 1학년에 편입하였다.[1] 경성대학이 서울대학교로 통폐합되면서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로 졸업하였다. [2]

학부 졸업 직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학업을 일시 중단한 그는 1950년 6월부터 1950년 10월까지 배재고등학교,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대구 계성고등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1953년부터 1954년까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강사로 출강하기도 했다.

1954년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정치학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해 이후 조교수, 부교수로 승진했다. 교수 재직 중이던 1957년 미국 국무성의 초청으로 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유학을 갔고, 이듬해인 1958년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1년에는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로 이직하여 이후 1990년 퇴임 시까지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 사이 1962년부터 1973년까지는 모교인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문리과대학, 대학원에 강사로 출강하기도 했다.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성균관대학교 부설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1969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3]를 취득했다. 1973년에는 일본 국제교류기금의 초청으로 도쿄대학 법학부에 방문교수로 1년간 머무르기도 했다.

그는 정치학자로 활동하며 추상적인 민족의식 차원에서 벗어나 서구에서 논의되는 이론으로서의 민족주의를 본격적으로 국내 학계에 소개하였다. 1960년대에는 사상계 등에 권위주의화 되는 제3공화국 정권을 비판하는 논객으로도 활동하였으며, 1965년 한일협정 반대투쟁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민족주의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면서, 민족주의가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하는 어용 이념으로 악용될 위험성을 경계하였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 한국정치학회 회장,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고 1981년 9월 독일 학술교류처(DAAD)의 초청으로 당시 서독 킬 대학에 방문교수로 3개월간 다녀오기도 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재직하고, 1984년부터 1985년까지 1년간 도쿄대학 교양학부에 비상근강사로 출강하기도 했다. 1989년 3월 28일에는 대한민국 학술원 인문사회과학부 제5분과 회원(비교정치 전공)으로 임명되는 등, 정관계로의 외도가 잦은 초기 정치학자들과 달리 학계의 원로로 꾸준히 남아 연구를 계속하였다. 1990년 정년퇴임한 뒤 노태우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2018년 6월 23일 별세했다.


3. 연구[편집]


전술하였듯이 민족주의를 이론으로서 본격적으로 소개, 전개한 대표적인 정치학자이다. 아울러 근대화와 정치발전, 민주화 이론 등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초기에는 저서 『차근대화 정치론』(1969) 등에서 드러나듯 선근대화 후민주화라는 전통적인 근대화론의 입장에 서있었다면, 1970년대 말부터는 근대화와 민주화의 동시 진행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창하였다. 2007년에는 전집『차기벽 저작집』이 완간되었다.



[1] 이때 같이 옮긴 동기 중 김운태가 있는데, 그는 차기벽과 달리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2] 학번으로는 46학번이다. 정치학과 동기로는 구태회 전 국회 부의장, 유정회 국회의원을 역임한 박준규 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김용성 국회의원, 고등고시 양과 합격자인 의사 출신 변호사 전용성 등이 있다.[3] 박사 학위 논문 : 近代化의 理論과 方向 : 政治的 리더쉽을 中心으로(근대화의 이론과 방향 : 정치적 리더쉽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