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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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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기관(機關)·직위(職位) 및 이를 수행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은 제20대 윤석열로, 임기는 2022년 5월 10일부터 2027년 5월 9일까지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 제66조에서 정의하는 헌법기관으로, 국가원수[원] 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며(제1항),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며(제2항),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제3항). 또 삼권(三權) 가운데 행정부의 수장을 맡는 정부수반으로서 모든 행정권은 대통령에 속해 있다(제4항).
헌법 제73조가 정하는 바에 따라 조약의 체결·비준권, 외교사절의 신임·접수·파견권, 선전포고권과 강화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제74조에 따라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을 가진다.[원] 이는 대통령의 핵심적인 권한[2] 으로서, 대통령은 모든 군인[3] 의 최고 직속상관이 된다. 이 밖에 대통령은 행정상 대통령령을 발령할 수 있으며, 유사시 긴급명령과 계엄령을 선포할 권한을 가진다.
한편, 대통령은 헌법 제67조 제1항에 따라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다. 임기는 헌법 제70조에 따라 5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중임(重任; 현직자의 차기 재임)할 수 없다. 따라서 연임(連任) 또한 할 수 없으며 단임(單任; 한 사람이 한 번만 역임)만이 가능하다. 또한 제128조 2항에 따라 개헌을 통해 임기를 늘리거나 중임 가능여부를 변경하더라도 이것이 개헌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차기 대통령부터 적용되므로, 개헌을 통해 스스로의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역사[편집]
한국사에서 근대적인 대통령에 해당하는 직위는 임시정부 시절에 이미 존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의원내각제(의회제)를 채택하였는데, 초대 국무총리로 추대된 이승만이 이미 해외 서신에 '대통령'으로 번역될 수 있는 'President'란 칭호를 사용하여 안창호의 이의제기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일각에서 당시의 사건을 '대통령 참칭 사건'이라고 규정하려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 당시의 상황은 3·1 독립선언 직후로서 수많은 임시정부가 난립하였고, 굵직한 임시정부였던 한성정부에서도 국가원수인 집정관총재(執政官總裁)직에 이미 이승만을 추대한 상태로서 이승만은 이 '집정관총재'의 번역어로 'President'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사용하였을 뿐, 국문으로 '대통령'이란 어휘를 쓴 것은 아니었다.
이후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성정부, 대한국민의회 등 3대 임시정부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의 통합임정을 구성하면서 임시대통령(臨時大統領)을 국가원수 겸 행정수반으로 하는 대통령제로 임시헌법을 개정하였고, 이와 동시에 비로소 이승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임시대통령에 정식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던 중 이승만이 위임통치 청원 사건으로 인해 탄핵되자 보궐선거를 실시, 한국통사의 저자로 유명한 박은식이 선출되어 제2대 임시대통령이 되었다. 박은식은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무령제'로 개헌하고 사임하였고, 얼마 안 되어 노환으로 서거하였다. '국무령제'→'주석제'를 거쳐가며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통령직이 사라지나 싶었지만 광복을 맞이하면서 되살아났다.
8.15 광복 이후 제헌국회에서는 제헌헌법을 제정할 때, 대통령제를 도입할 것인지 아니면 내각제를 도입할 것인지 설왕설래가 있었다. 본디 유진오 박사 등이 주도한 헌법 초안은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국무총리를 행정수반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로 기초되어 있었는데, 1948년 6월 15일 이승만이 헌법 기초위원회에서 의원내각제로 된 헌법 초안을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 급히 대통령제 헌법으로 변경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헌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있는 전통적인 대통령제적 정치체제를 규정하면서도, 내각제적 요소인 국무총리까지 함께 존재하는 헌법이 된 것이다. 제헌국회는 7월 12일 이런 내용으로 제헌헌법을 제정, 7월 17일에 공포하였으며 7월 20일 이승만 후보(제헌국회 의장)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러한 특이한 국가조직은 제2공화국에서 내각제를 채택하면서 잠시 중단되었다가, 제3공화국 헌법에서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도 부통령은 없고 국무총리가 행정부 2인자로서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대한민국 특유의 형태로 되살아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승계할 부통령을 함께 선출하는 것이 보통이나 부통령은 대통령과 동일한 방법으로 선출되므로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이 인정되며, 대통령제에서는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행정수반까지 겸하므로 총리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특이하게 부통령은 없고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1순위자가 되는데, 대한민국이 이런 특이한 체제를 유지한 데에는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총리라는 직함을 가지는 타국 내각수반과 달리 행정부 수반이 아니며, 대통령권한대행자로서의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 현행 헌법에서는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여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고 있으나, 간혹 국회의 동의가 지체되는 상황에서 '국무총리서리'라는 직함으로 사실상의 총리직이 수행되는 경우가 있어 그때마다 현행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처럼 대통령 자리를 4번씩 연임해도 대수가 넘어가지 않고 '제32대 대통령'으로 기록되지만, 대한민국은 이와 달리 집권을 할 때마다 대수를 붙이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연임할 경우 대수가 넘어가서 '제5-9대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후 5년 단임제 체제의 제6공화국 시대가 열리면서 이러한 경우는 사라졌다.
제4공화국 및 제5공화국 시절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쿠데타 또는 국회(또는 유사기구)의 힘을 통해 대통령이 되어 정통성이 결여된 경우였다.[4]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수립되고도 한국 대통령은 여타 정치 선진국과 비교할 때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견제가 미진하여 대통령이 본인의 결단에 따라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가 있다. 그렇기에 야당을 무시한 독선적인 정치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말미암아 퇴임 이후 말년을 좋게 보낸 사례가 없다. 설사 대통령 본인에게 피해가 오지 않아도 대통령을 보좌했던 측근이나 가족이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만화가인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우리나라편에서는 한국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제대로 얻고 명예롭게 은퇴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출판 당시 이원복은 한국에 대통령 이름을 딴 거리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는데 현재는 충청남도 아산시에 윤보선로가 존재하며 경상북도 구미시에는 박정희체육관, 광주광역시 서구에는 김대중컨벤션센터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윤보선은 내각제의 특성상 국가원수로서의 입지가 좁았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불호가 매우 심하게 갈리는 인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원복이 전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 즉 "만인의 존경을 받은 대통령이 없다"는 명제는 변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든 국민의 존경은 아니지만 많은 존경을 받는 권력자나 대통령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산업화의 상징적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정치권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박정희와 김대중의 상징적 이미지는 무시하기 어렵기에 두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설령 과오에 대한 비판을 하더라도 치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정을 하고 있다.
결국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새나라의 어린이들의 올바르고 씩씩한 장래희망 중 하나였던 대통령은 점점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긍정적 이미지가 실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현재 대통령들보다 더 잘 나서가 아니라, 국가원수 모독법으로 처벌하던 시절에 비해 대통령의 실책이나 부당한 점들도 공개적으로 공론화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발전해온 점, 또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국민들이 시급히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국정 과제 및 그 해결 방향이 크게 달라져 나타난 현상이니 나쁘다고 만 볼 것은 아니다. 현실적 이유도 있는데,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다른 곳에서 경력을 쌓다가 오는 종착역이라는 인식이 강해졌기도 하다.[5]
대통령의 상징으로 무궁화를 둘러싼 봉황 2마리 문양이 사용된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1967년에 있던 대통령공고 7호가 최초이지만, 실제로는 그 전부터 대통령 관련 상징으로 여기저기 쓰였다. 1960년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의 전용 차량 번호판에 봉황 문양을 썼고, 1963년 제5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장식에도 사용되었다. 때문에 정확히 언제부터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쓰게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2.1.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명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대통령 권한[편집]
3.1. 헌법기관 구성에 관한 권한[편집]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정식 임명하며,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국무위원을 임명한다. 따라서 법대로 말하자면 각 부 장관의 임명은 국무총리의 제청만 얻으면 되며 국회의 동의는 필요 없다. 법률에 의해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리긴 하나 대통령이 청문회의 의견에 법적으로 구속되지는 않는다.
-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는 직접 임명하는 자리만 절차상 따져도 3~4,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3.2. 입법, 행정, 사법에 관한 권한[편집]
- 국군 통수권 - 물론 대통령의 신분이 군인인 것은 아니다. 현대의 민주국가에서 국가원수는 반드시 '일반인(문민)'이어야 하며, 모든 군사조직과 소속 군인들은 문민 국가원수의 명령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제복군인 최선임이 '총사령관'이 아니라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인 것은 이 때문. 전 군에 대한 군령권(軍令權)과 군정권(軍政權)은 어디까지나 문민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귀속되며, 제복군인들은 대통령의 참모인 것이다.
- 공무원 임면권[14] - 직책에 따라서는 지명권이나 제청권 없이 임명권만을 행사하는 경우(ex: 각 부 장관이나 대법관)도 있고, 임명은 대통령 권한으로 하되 해임(면직)할 권한은 없는 경우도 있다.
- 사면, 감형, 복권의 권한 - '사법권 침해 아닌가?', '사법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 권한은 '행정부의 수장'으로서가 아닌 '국가원수'로서 가지는 권한이며, 사법부가 이러한 권한을 자체 행사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 법률안 제출권 - 대통령 중심제이면서도 의원내각제의 요소(국무총리의 존재)를 일부 채택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행정부 역시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을 통과시킬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국회에 달렸다.
- 법률안 거부권 -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공포를 앞둔 법률안을 대통령만이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해당 법률안에 대하여 지체없이 다시 의결하거나 폐기하여야 한다. 재의결을 위해서는 과반수 출석 및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의결된 법률안은 다시 행정부로 넘어가는데, 이때에도 대통령이 거부하면 국회의장 직권으로 공포되며, 대통령이 공포한 것과 동일한 법 효력을 가진다. 법률안 거부권은 전부 거부만 가능한데, 일부 거부를 허용하면 대통령에게 입법권을 주는 형식이 되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 행정입법권 -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행령이 대통령령이다. 법률과 달리 국회의 통과를 필요치 않으며 국무회의에서 처리한다.
- 행정부 구성권 -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부의 각 부서와 기관을 조직할 수 있다. 즉, 새로운 부서나 기관을 만들 수 있고 또는 폐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각 부서와 기관을 책임질 장인 장관이나 기관장을 임명 할 수 있다. 또한, 청와대 내부의 인사나 조직들도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의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3.3. 국가 긴급권(긴급조치권)[편집]
흔히 말하는 계엄령과 같이 국가에 중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의 판단으로 일시적으로 법률의 지위를 가진 명령을 내리거나 사법부의 활동을 일부 제한할 수 있는 권한.
- 긴급명령권: 신속한 대처를 요하는 국가적인 위기사태에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임시로 법률의 지위를 가진 특별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 쉽게 말해 위기 사태가 터졌는데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법률이 미비할 때, 대통령이 임시로 법률을 만드는[15]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후에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명령은 폐기된다.
- 계엄령: 국가 비상사태 시, 행정권과 사법권을 군대의 지휘하로 이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부 제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내릴 수 있는 명령. 국회의원 과반수의 요구 시 이를 취소하여야 한다. 1987년 국민투표로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성립된 이후로는 발동된 적이 없다.
3.4.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통령이 모종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더는 수행하기 어려울 때에는 제1순위로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신 대행하며, 국무총리 역시 공석일 때는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대로 권한을 대행한다. 이때의 제1순위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고 제2순위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다.
- 궐위(闕位)[16] : 대통령이 임기 중에 사망[17] , 사임[18] ,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에 의해 파면된 경우[19]
- 사고(事故): 대통령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거나,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된 경우[20] 등 직위에 있으나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21]
4. 예우와 특권[편집]
과거에는 술자리에서 대통령을 욕했다가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고, 국가원수모독죄(國家元首冒涜罪)라는 죄도 있었다.[22] 지금은 그런 경우가 사라져서, 도를 넘은 비방은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로만 고발할 수 있다. 모욕죄는 친고죄, 명예훼손죄는 친고죄, 혹은 반의사불벌죄라서 대통령을 심심할 때마다 껌 씹듯 씹어도 그 대통령이 고소하지 않는 이상은 별 상관없지만, 명예훼손은 반의사 불벌죄로 제3자가 고발할 수 있어서 단체나 정당의 고발로 명예훼손 처벌을 받은 사례도 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국민의 권리이며 인격에 대한 심한 폄훼와 인신공격과 같은 비방, 욕설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은 모든 대한민국 군인의 직속상관이기 때문에, 군인이 대통령을 어떠한 경우에도 모욕하는 경우(비방, 욕설, 험담)에는 군형법상의 상관모독죄로 처벌 받을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징역형만 선고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 전제군주제의 역사가 길었던 데다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군부독재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전제군주처럼 여기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하지만 제6공화국 헌법이 시작되고 나서는 대통령을 장관이나 총리와 같은 나라를 운영하는 고위직 공무원의 한 종류로 바라보는 인식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점 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종료 직전인 2008년 2월 21일과 2월 23일에 방영했던 MBC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은 겉보기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위치인 것 같지만 막상 올라보면 결국 권력의 톱니바퀴들 중 하나'라고 했다. 권력의 톱니바퀴라는 표현은 좀 어두컴컴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정치 기구 하나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상호 간의 견제와 조율을 이루어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당연한 역할과 위치를 표현한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지금까지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대가 확립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는 대한민국의 최고 훈장 등급인 무궁화대훈장을 수여 받을 수 있다.[23]
행정부 수반 및[24] 국군통수권자로써 모든 공무원 및 군인들의 최상위 상급자이다.
4.1. 호칭[편집]
정식 외교 의전상으로는 '각하'(閣下, His/Her/Your Excellency)라고 경칭된다. '각하'란 정부수립 초기에는 대통령은 물론 부통령, 군 장성과 각료들에게도 쓰이던 경칭이었으나, 해군 손원일 제독이 “각하는 한 사람으로 족하다”며 각하 경칭을 사양한 일화가 유명하며, 김성수 전 부통령도 '각하' 경칭을 사양하는 등의 사례가 겹치면서, 국내에서는 자연스럽게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경칭으로 굳어져갔다. (다만, 외교 무대에서는 현재까지도 각국 외교장관 등 각료나 특명전권대사 등 외교사절 또한 '각하'(H.E.)로 경칭하는 것이 예절이다.)
민주화 이후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는 '각하' 표현이 권위적이라고 보아 대통령을 그냥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도록 지시하여 언론에서는 '대통령 각하' 표현이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다만, 청와대 내부와 측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각하'라고 불리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청와대 내부에서도 쓰지 말 것을 지시하여 정식으로 사라지게 되었다.[25] 그렇게 한동안 '각하'라는 말이 사라지는 듯 싶었으나, 이명박 정권기에 (비공식적이지만) 일부 여당 의원들이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탈권위주의적인 시대 풍조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으며, 이를 비꼬는 가카라는 표현이 세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국내에서는 이처럼 '각하' 표현이 사라지기에 이르렀으나, 의전을 중시하는 외교 현장에서는 당연히 각하라는 경칭이 사용되며, 오히려 누락하면 결례가 된다. 대중 일반에 알례진 예로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영어 트윗에서 'H.E.(His Excellency) Mr. Moon Jae-in' 이라고 호칭한 경우가 있다.# 다만, 한국어 트윗에서는 그냥 문재인 후보라고 호칭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또한 각국 정부 수반에게 축전이나 조전을 보내면서 'H.E.'라는 접두어를 반드시 붙이고 있으나,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서는 외국 정상으로부터 받거나 외국 정상에게 발송한 서신의 국어 번역본을 공개할 때에는 '각하'의 어감 때문인지 '대통령 각하'가 아닌 '대통령 귀하'라고 번역해 공개하고 있다.[26] 그 밖에도 2017년 12월 1일 이국종 교수가 청와대 초청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각하'라고 호칭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군이나 정부 내부적으로 보고서 등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을 VIP로 지칭한다. 과거에는 코드원, 각하 등으로 표현되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VIP로 쓰이는 것으로 추측된다. 내부에서 실명이 아닌 은어를 사용하는 것은 박정희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꺼리던 제3공화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경직스러운 분위기에서 대안으로 PP(President Park)라는 은어가 자연스럽게 내부 문건 등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이후 변형되면서 VIP 표기를 한다는 것.[27] 이에 대해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보도자료에서까지 VIP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밖에 上 또는 어른, 어르신, BH(Blue House)로도 불리는 것으로 보인다.
4.2. 불소추 특권[편집]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84조
완전히 면책(免責)되는 것이 아니라 재직 중에 한하여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 뿐이며, 재직 중에는 대통령 기소가 법률상 불가능하므로 재직기간 동안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28] .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지에 대하여 기소할 수 없다면 수사도 당연히 못 한다는 견해와, 기소가 불가능하더라도 수사는 필요할 수 있으므로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을 뿐인 헌법 84조를 수사도 못 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가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오는 순간 임기 중에 제기되었던 모든 피의 사실이 한꺼번에 수사망에 오르게 된다. 물론 대통령 본인이나 주변 인물들이 잘 처신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불행히도 아직까지 그런 대통령은 여태 없었다.
5. 역대 취임식장[편집]
6. 생활[편집]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과 퇴임 후 예우는?[31]
6.1. 거처[편집]
자세한 내용은 청와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대통령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역대 대통령은 6.25 전쟁 시기에 부산 임시수도기념관[32] 을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전원 재임 기간 동안 청와대에서 기거했다.[33] 청와대 내부에서 관저와 집무실을 오가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MBC에서 MBC 스페셜로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직전에 방영한 <대한민국 대통령>을 보면, 대통령의 일상과 청와대에서 자세히 나온다. 유튜브 링크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할 계획이다. 집무실과 관저를 분리,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 국방부 신청사, 대통령 관저는 한남동 공관촌의 외교부장관 공관을 사용하기로 확정되었다. 또한 세종특별자치시를 행정수도로 사용하는 대비를 위해 세종 국회의사당과 함께 대한민국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대한민국 대통령 세종관저도 2027년까지 신축하기로 확정되었다.
6.2. 급여[편집]
대통령은 다른 공무원처럼 연봉을 받는다. 공무원의 수장이므로 모든 공무원 중 가장 많은 급여를 받으며, 2017년에 문재인 대통령은 2억 1,979만 9,000원을 수령했다(세전). 그 외에도 직급보조비 월 3,200,000원이 추가로 지급되며, 다른 공무원들처럼 가족수당, 자녀학비보조수당, 정액급식비 등을 별도로 수령한다.
대통령은 공무원 중 최상위에 있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월급이 곧 대한민국 전체 공무원 월급의 기준이 된다. 대통령이 자신의 월급을 올렸다면서 취지를 왜곡하는 기사들이 가끔씩 올라올 때가 있는데 이는 공무원의 월급이 물가 및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오르면서 같이 (밀려) 올라간 것이다.[34]
출처
6.3. 식사[편집]
청와대 내부에 역대 대통령의 식단이 정렬 전시되어 있다. #[35]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식단
각 대통령마다 식사 습관도 제각각이었다.
- 이승만은 오랜 미국 생활로 인하여 식사가 타락죽을 제외하고 모두 서양식이었다. 주요 식단이 샌드위치, 햄버거, 와인, 카스텔라다. 따로 즐겨먹던 음식은 현미떡국이었다고 한다.
- 윤보선은 명문가 집안답게 귀족적인 성격이라 비교적 화려하고 양도 푸짐하게 먹었다. 더덕구이, 갈비찜, 잣죽, 해물전골, 너비아니 같은 고급 요리들을 주로 즐겨 먹었다. 다만 술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고, 부유한 유력 양반 가문 출신치고는 이례적으로 백미밥이 아닌 잡곡밥만 먹었다고 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청빈해야 한다는 양반가다운 집안 가르침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이 금주와 잡곡밥이라는 건강한 식단을 그의 장수의 비결로 꼽는 사람이 많다.
- 박정희는 윤보선과는 반대로 식사량이 그리 많지 않았고, 가난한 농민 집안 출신이라서인지 식단도 간단했다. 쇠고기 편육 몇 조각, 멸치볶음, 순두부, 막걸리, 빈대떡, 소량의 열무김치 정도에 불과했다. 좋아했던 것도 비름나물 비빔밥이었다. 대체로 군인 출신들은 활동량이 많아서 식욕이 왕성한데, 박정희는 신기하게도 식욕이 별로 없었다. 차녀 박근혜도 식욕이 별로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유전적으로 식욕이 적은 체질인 듯하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 민감했던 성향이 식단으로도 드러났는데 반찬 3가지 이상이 나오면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대신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소문난 애주가이자 주당답게 술을 좋아했는데 양주부터 막걸리, 폭탄주 등 대부분의 술을 가리지않고 즐겼으며 특히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막사"는 영화나 드라마 등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박정희가 즐겨마시는 대표적인 칵테일로 자주 묘사됐다.
- 최규하도 박정희처럼 간단하게 먹었다. 식탐이 별로 없었다고 하며, 갈비탕, 나물, 생선구이, 전골, 과일주 정도가 주요 식단이었다. 사실 최규하의 성격과 그의 집안이 소싯적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다. 그 외에 평소 즐기던 음식도 국수, 콩자반, 냉면 정도였다고 한다.
- 전두환은 육식주의자에 칼칼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즐겼다. 조개구이, 불고기, 돼지고기 편육, 생선회, 떡갈비, 청주 등 고기 위주의 식단이었다. 밥도 잘 먹는 편이었다.
- 노태우는 전두환과 식단은 비슷하지만, 전두환보다는 스케일이 작았다. 두부조림, 소갈비구이, 생선튀김, 복분자주, 맥주 정도가 주요 식단이었다. 그 외에 경상도 내륙 일부 지역의 토속 음식인 갱시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 김영삼은 전두환 못지 않게 잘 먹었다. 그 유명한 칼국수를 비롯하여 랍스타, 야채 샐러드, 전복죽, 양갈비구이, 포도주, 설렁탕 등이 포진되어 있다. 섬마을 출신이라서인지 해물을 좋아해서 대구나 도미를 이용한 생선미역국도 즐겼다고 한다.
- 김대중은 김영삼과 전두환을 절충한 형식이었는데, 역시 전라남도 해안가 출신답게 홍어삼합을 매우 좋아했으며, 그 밖에도 우거지 갈비탕, 된장찌개, 해물전골, 매운탕 등을 즐겨 먹었으며 대식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야식으로 라면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 노무현은 같은 경상도 농촌 서민 출신인 박정희와 대체로 비슷했다. 막걸리, 삼계탕, 모듬전, 강냉이, 군고구마 정도. 좋아하던 음식도 소고기국밥과 삼계탕 정도였고, 또 1주일에 두세번 정도 콩나물과 계란을 넣고 후추를 뿌린 옛날식 라면을 자주 즐겨 먹었다. 라면은 주로 무파마를 선호했다. 다만 박정희와 달리 식사량은 적지 않았다고 한다.
- 이명박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절충형이다. 김영삼이 칼국수를 좋아하는 것처럼 이명박은 냉면을 좋아했다. 샌드위치, 나물, 냉면, 배추김치 등이 주요 식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각종 군것질거리도 좋아했고, 피자나 스파게티 같은 노년층은 잘 즐기지 않는 음식들도 잘 먹는 등 뭐든지 잘 먹었던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그나마 가리는 게 있었다면 잡곡밥 정도인데, 어렸을 적 가난했던 시절에 쌀밥을 먹어보는 게 소원이어서 그랬다고 한다.[36]
-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와 식성이 비슷했고 식사량 자체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당시 관저에 거주하며 식사 및 세탁, 방청소, 심부름를 담당했던 요리연구가 김막업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는 평상시 식사를 된장찌개, 나물, 멸치조림, 계란후라이 같은 반찬 몇개로 해결했으며 혼자 식사하기를 좋아해서 거실에 식사를 준비해놓고 물러나면 방에서 나와 혼자 식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 문재인은 평상시에는 청와대 참모진 및 직원들과 구내식당 밥을 먹으나, 외교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 때에는 외교 관례에 따라 적당히 화려한 음식을 먹었다. 공식 만찬들에서 메뉴가 해산물을 메인으로 둔 경우가 많았었다는 점을 볼 때 생선회와 해산물 종류를 선호했다고 여겨진다. 해외 순방 때에는 외교 관례 혹은 일정에 따라 조달할 수 있는 음식들을 주는 대로 먹었다.
- 윤석열은 상당한 대식가이자 미식가다. 검사 시절에도 검찰청 내부에서 손수 밥을 해서 먹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전국 곳곳의 유명 식당을 꿰고 있으며, 본인이 직접 요리를 즐겨 하고 실력 또한 출중하다.[37] 당선인 시절부터 메뉴를 가리지 않고 맛집들을 편하게 다녔으며, 취임 후 대통령실 인근의 국수집을 찾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38]
안전상 이유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신이 음식을 손수 혼자 요리할 수 없다. 식중독 및 음독자살 문제는 물론, 설령 자살이 아니더라도 음식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독약이나 식중독균 등 독성 물질이 투여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뭔가 먹고 싶으면 운영관에게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해야 하며, 이들이 경호처 담당자의 검수 하에 조리해 내 온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가 잘 알려져 있는데, 본인이 라면 하나도 직접 편하게 끓여먹을 수 없어서 운영관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조리법대로 라면을 끓이게 하고 반개씩 나눠서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다만, 2018년 퇴직한 천상현 셰프[39] 의 발언에 의하면 주말에는 청와대 직원들 방해하면 안 된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이 직접 끓였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아 재료 준비를 직접 하는 건 안 되더라도 재료의 안전이 제대로 확인되었다면 그것을 가지고 조리하는 정도까지는 대통령 내외도 가능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 현직 대통령인 윤석열 역시 대식가이자 미식가로 유명한 동시에 본인이 손수 직접 요리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이러한 조리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듯 하다.
그리고 요리사 개인에게는, 청와대 요리사를 그만두고 음식점을 차려서 영업할 경우 청와대 요리사 출신이라는 이력이 붙어서 그가 만드는 요리는 그 값이 월등하게 상승한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식사를 준비했던 신충진 운영관이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 연 치킨집은 사장이 바뀌기 전까지 그야말로 날개를 돋혔다고 한다[40] . 다만, 현재 그의 근황은 알려진 바가 없다.
6.4. 교통수단[편집]
7. 출신[편집]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편향) 현상이 심각하여 서울 공화국이란 말까지 나도는 상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대통령 중 수도권 출신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인 윤석열 밖에 없다. 이러한 원인으로 현재는 대한민국의 인구 분포를 봤을 때 인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지만, 이는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이촌향도 현상에 의한 것으로, 이전 세대들 중에서 서울특별시나 경기권 본토 출신은 인구수가 적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까지 가장 늦은 시기에 태어난 대통령은 제20대 윤석열(1960년 생)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출신이다.
수도권 출신 대통령도 2022년이 되어서야 처음 탄생하였으며[41] , 서울특별시 출신만 나왔고 아직 경기도나 인천광역시 출신 대통령은 없다. 대한민국 인구 분포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이촌향도 시기에 정착한 상경민들이 결혼하고 낳은 자식들은 보통 7~80년대생 이후인데, 실제로 서울시 출신 인구가 급증한 시기가 이 세대이다. 심지어 경기도 지역은 서울이 인구 과포화가 되어 외곽으로 사람들이 밀려나는 시기인 21세기가 되어야 인구가 폭증하기 시작하며, 그 이전엔 오히려 경상남도 등 타 도에 비해서도 시가 적고 군이 많았다. 따라서 세월이 지나 이 세대가 대통령에 오를 법한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외에도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지역 대도시 출신이 아직 한 명도 없고 거제시, 신안군 등 주변 소도시 출신만 있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이촌향도 이전의 인구 분포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황해도 출신의 이승만과 전라남도 출신의 김대중, 오사카 출신의 이명박,[42] 그리고 실권이 없었던 충청도 출신의 윤보선과 강원도 출신의 최규하를 제외하면 12명 중 7명이 경상도 출신이다.[43] 국가원수를 특정 지역에서 많이 배출하는 현상은 미국의 버지니아 주나 일본의 야마구치현 등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유독 그 쏠림의 폭이 더욱 큰 편으로, 1950년대까지만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인구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상도 쏠림이 유독 심한 것이 특이점이다. 이는 보수정당은 자연히 영남 출신이 많았지만, 민주당에서도 호남이 아닌 영남 후보를 내세워야 승리할 수 있다는 영남후보론 공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영남후보론 문서 참조.
아직 대통령을 전혀, 혹은 거의 배출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지역 출신 대통령 대망론이 화두에 오르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대망론으로는 충청 대망론이 있다. 그 외에 강원 대망론의 이광재, 제주특별자치도의 원희룡, 울산광역시의 김기현 등이 종종 언급된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최초의 서울특별시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재밌는 점은 대통령 관련 인물들은 서울 출신이 이미 많다는 점. '대통령'이 아닌, '행정부 수반'으로 따진다면 제2공화국 의원 내각제 하에서의 장면 총리가 서울 태생이다. 또한 6공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과 황교안 2명 모두 공교롭게도 서울 출신이다. 영부인도 이희호와 김정숙, 김건희 3명이 서울 출신이다.[44]
북한 지역 출신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45] 20세기만 해도 실향민 출신 정치인들이 많았고, 이 중에 유력 대권 주자로 성장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46] 2020년대 들어서 이들은 대부분 고령으로 인해 사망했거나 정계를 은퇴하였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선 실향민 대신 탈북민의 정치 참여가 늘고 있고 최초의 지역구 국회의원도 배출하였지만 현실적으로 대선에서 지역 기반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북한 출신 대통령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8. 경력[편집]
역대 대통령의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이승만: 독립운동가, 외교관, 국회의원(초선), 국회의장
- 윤보선: 독립운동가, 지식인, 서울특별시장, 상공부장관, 국회의원(4선)
- 박정희: 초등교사, 만주국 육군 장교, 대한민국 육군 장교
- 최규하: 경성사범대학 교수, 외교관, 외무부차관,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 전두환: 대한민국 육군 장교, 중앙정보부장
- 노태우: 대한민국 육군 장교, 내무부장관, 국회의원(초선)
- 김영삼: 정치인 보좌관[47] , 국회의원(9선)
- 김대중: 동양해운[48] 사장, 국회의원(6선)
- 노무현: 대전지법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재선), 해수부장관
- 이명박: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국회의원(재선), 서울특별시장
- 박근혜: 영남대학교 이사장, 국회의원(5선)[49]
- 문재인: 변호사, 민정수석비서관, 대통령비서실장, 국회의원(초선)
- 윤석열: 검사, 변호사,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검찰총장
9. 선출[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임기만료 60일 전 이후 최초의 수요일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2항의 선거에 관해서는 궐위로 인한 선거 문서 참조.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 당선인(과 그 배우자, 직계존속)은 당선 시점부터 대통령과 동일한 예우를 받는다.
또한 전임 대통령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만들 수 있다. 이때 취임 준비와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검증 및 후보자 지명 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궐위에 의한 선거로 당선된 자[50] 는 당선된 즉시 대통령에 취임하기 때문에 인수위 자체를 꾸릴 수 없고 바로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부여받아 직무수행을 한다.
9.1. 당선인[편집]
9.1.1. 당선인의 결정·통지[편집]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고, 이를 국회의장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다만, 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에 달해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공직선거법 제187조 제1항)[51]대한민국헌법 제67조
②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③대통령 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개표를 모두 마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개표를 마치지 못한 지역의 투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우선 당선인을 결정할 수 있다(같은 조 제4항).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일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지에 의하여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 회의에서 다수 표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같은 조 제2항)[52]
9.1.2. 당선인의 공고[편집]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국회에서 결선투표를 하여 당선인이 결정된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고하고, 지체없이 당선인에게 당선증을 교부하여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187조 제3항)
9.1.3. 당선인의 지위 및 예우[편집]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제3조(대통령당선인의 지위와 권한)
① 대통령당선인은 대통령당선인으로 결정된 때부터 대통령 임기 시작일 전날까지 그 지위를 갖는다.
② 대통령당선인은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대통령직 인수를 위하여 필요한 권한을 갖는다.
제4조(예우)
대통령당선인과 그 배우자에 대하여는 다음 각 호에 따른 예우를 할 수 있다.
1. 대통령당선인에 대한 교통ㆍ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
2. 대통령당선인과 그 배우자에 대한 진료
3. 그 밖에 대통령당선인에 대하여 필요한 예우
대통령당선인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선인으로 결정된다. 이때부터 임기 시작일 전날까지 당선인 신분을 갖는다. 또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대통령당선인은 교통ㆍ통신 및 사무실 제공 등의 지원 및 당선인과 배우자에 대한 진료의 예우를 받을 수 있다.
9.1.4. 대통령직인수위원회[편집]
대통령당선인이 결정되면 국정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약칭 인수위)를 둔다. 인수위는 위원장 1명, 부위원장 1명 및 위원 24명 이내로 구성되며, 대통령 임기 개시 30일 후까지 존속할 수 있다.
또한 대통령당선인은 임기 개시 전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를 임명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며,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국회에 요청할 수 있다.
제19대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파면으로 인한 궐위로 인한 선거로 당선되었으므로 당선과 동시에 취임해 임기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수위 부재의 공백을 채우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설치하였다.
9.1.4.1. 역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편집]
- 제13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4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 국정기획자문위원회
-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10. 임기[편집]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임기는 5년이며 중임할 수 없다. 대통령제 국가들 중에 중임제[53] 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한국 대통령의 경우 중임이 불가능하다. <5년 단임제>
현행 헌법 제128조는 ②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므로, 대통령 임기가 바뀌는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기존 대통령은 기존 헌법에 따른 5년 단임제가 적용된다. 개헌 논의가 뉴스로 보도될 때마다 우리 주변에서 현직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더 해먹으려고 탐욕을 부린다"며 비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현행 헌법에 규정된 개헌 조건을 모르는 데에서 빚어진 촌극이다. 이런 제한은 사사오입 개헌이나 3선 개헌과 같이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을 하지 않도록 막으려는 이유에서 나타난 산물이다.
그러나 이 헌법 규정은 한 가지 맹점이 있다. 현재 대통령인 윤석열 대통령이 중임제를 채택하여 국민투표를 통하여 개헌이 되었다고 해보자. 이에 따라 윤석열은 출마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며 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이명박[54] , 박근혜는 제외된다.[55] 대통령 예우가 박탈되지 않았다면 전임인 대통령(ex. 문재인)은 누구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출마 자격이 주어진다.[56]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하거나 탄핵되어 직위를 잃거나 사망할 때 60일 이내에 궐위로 인한 선거가 실시된다. 이때 당선되는 대통령은 다른 선출직의 재·보궐선거와 달리 전임자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아예 임기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즉 어떤 대통령이 임기 중 3년만 채우고 사임해서 새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면 신임 대통령은 전임자의 잔여 임기인 2년 동안 대통령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 5년의 임기가 새로 주어진다. 이 때문에 전임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날 경우 복직이 된다면 그 전임 대통령이 물러남으로 인해서 새로 뽑은 신임 대통령의 임기가 꼬이게 된다. 전임 대통령이 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경우 그 후임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헌법 또는 공직선거법상 관련규정이나 판례는 없다. 공직선거법은 전임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운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에 대하여 특별한 구별을 두지 않고 있고, 두 경우의 임기를 달리 볼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재임기간은 동일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5년의 임기 중에서 윤년이 없으면 1,825일[57] , 윤년이 1번 있으면 1,826일[58] , 윤년이 2번 있으면 1,827일[59] 이다.
5년인 대통령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까지 총 6명이며, 5년이 아닌 대통령들은 다음과 같다.
- 박정희: 5,793일 (15년 10개월 10일)[60]
- 이승만: 4,295일 (11년 9개월 3일)[61]
- 전두환: 2,491일 (6년 9개월 28일)[62]
- 박근혜: 1,536일 (4년 2개월 16일)[63]
- 윤보선: 587일 (1년 7개월 10일)[64]
- 최규하: 255일 (8개월 11일)[65]
10차 개헌에서 4년 중임제나 6년 단임제, 의원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다양한 정치 구조가 제안되고 있다.
11. 직속기관[편집]
12. 해외 순방[편집]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대통령/해외 순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퇴임 후[편집]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전직 대통령 내지 그 유족이 받는 예우가 규정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 사저 주변에 2채 혹은 3채의 경호동을 건설한다. 이는 오로지 청와대 예산으로 만든다.
- 1조 8명씩 3개조 24명이 약 7년 동안 전직 대통령을 경호한다.
- 전직 대통령이 유고 시에는 그 배우자가 1년 동안 경호를 받을 수 있다.
- 그 이후는 경찰에 경호 업무가 이관된다. 물론 이 경호는 대통령 의사에 따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 연금은 대통령은 현 대통령의 월급의 90%를 받고 배우자는 75%를 받는다.(종신 연금)[66]
- 비서 3명(1명은 배우자 몫)을 둘 수 있고 이 비서의 월급은 국가에서 제공한다.
- 그 외 필요 시에는 청와대에서 헬기나 버스 등을 제공한다.
-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경호만을 제외한 모든 특전은 제외된다.[67]
13.1. 퇴임 후의 정치 활동[편집]
한국에서는 대통령 퇴임 후에는 보통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는 관례가 자리잡혀 있다. 대통령직 수행은 대부분 정치인들의 최종 목적인 만큼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68] 사실 대통령 재선만 불가능할 뿐 그 외의 선거들에 출마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따로 없다. 당장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는 퇴임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될 시 임기기간 동안에는 전직대통령 연금이 지급되지 않는 규정이 있다. 즉 대통령 이후에 국회의원을 다시 하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 퇴임 이후 다시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례로 1960년부터 1962년까지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윤보선이 있다.
13.2.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편집]
2022년 기준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총 3명이다.
- 이명박 (2008년 2월 25일 ~ 2013년 2월 24일 재임, 1941년 12월 19일 출생, 82세)
- 박근혜 (2013년 2월 25일 ~ 2017년 3월 10일 재임, 1952년 2월 2일 출생, 72세)
- 문재인 (2017년 5월 10일 ~ 2022년 5월 9일 재임, 1953년 1월 24일 출생, 71세)
13.3. 자택[편집]
예전에 살았던 집으로 돌아가거나 신축하여 살고, 집이 위치한 지명을 따서 불리기도 한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각각 상도동과 동교동으로 유명했고, 그를 따르는 무리를 상도동계, 동교동계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일부 대통령의 경우 자택과 별개로 본인이 태어나서 정계 진출 전까지 생활한 고향 생가도 남아 있다. 생가의 경우 보존 처리해서 대통령 기념 시설로 사용하기도 한다. 생가의 정보는 아래의 기념관 항목에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비자발적인 경우인 이승만 등을 제외하면 퇴임 후에도 계속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지만, 노무현이 처음으로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로 귀향하였고, 문재인도 퇴임 후 본인의 제2의 고향이 된 양산시에서 거주할 것을 사실상 확정하였다.
다만 경호 문제로 인해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들은 거주의 자유를 일부 제한당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 제한을 받아 퇴임 이후 덕계 사저로 돌아가지 못하고 통도사 근처로 가게 되었다.
광복 이후 매입하여 정부수립 직전까지 살았다. 1982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양자 이인수의 아들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사적 제497호로 지정되어 있다.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윤보선 가옥'이라고도 알려진 곳으로, 근대 한옥의 건축미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건물이다. 대통령 재직 시에도 청와대에서 기거하지 않고 이 곳에서 집무를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민주당 구파의 중심지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1870년대 민영익의 아들 민규식이 지은 집으로, 고종이 사들여 박영효에게 준 집이다. 현재 소유권은 주식회사 영안이 가지고 있으며 사적 제438호로 지정되었다.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약 5~7분 정도 걸으면 된다.
인접 철도역은 없으며, 방문하고자 할 경우 110번, 153번, 567번, 7017번, 7612번, 7720번, 7734번, 7738번, 7739번, 서대문03번을 이용하여 연희삼거리에서 내리면 된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한 장소이기도 하다.
전두환과 이웃사촌으로 5분 거리에 집이 있다고 한다. 버스로 갈 경우에는 7612번, 7734번, 7738번, 7739번을 이용하여 연희A지구아파트에서 내리면 된다. 서울 서대문구청에 의하여 압류되었다가 현재는 풀렸다.
김영삼 민주센터가 상도동 사저 인근에 있으며, 이 센터는 김 전 대통령의 사후(死後)에 문을 열었다. 7호선 상도역 4번 출구에서 약 3~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손자 김성민이 법적 소유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이 사저와 바로 붙어 있다. 대통령 당선 전에 잠시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에 거주한 적이 있으나 퇴임 후 다시 동교동으로 돌아갔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인천국제공항철도 홍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약 3분 정도 걸으면 된다.
최초로 퇴임 후 서울이 아닌 지방(김해 봉하마을)에 내려가 산 대통령이 되었다. 2018년 5월부터는 완전한 기념관이 되어 상시 개방하여 공개하고 있으며, 권양숙 여사는 진영읍 어딘가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 전에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현대하이츠빌라에 거주했다.
윤석열/자택 문서 참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따라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관저를 옮기기 전까지는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출퇴근할 예정이다. 공동주택 특성상 경호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임기 후에는 다른 곳으로 자택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13.4. 장례와 안장[편집]
대통령은 국가장법(國家葬法)에 따라 사망한 경우에는 유족 등의 의견을 고려하여 행정안전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마친 후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장(國家葬)으로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국장과 국민장이 구분되었으나 현재는 국가장으로 통합되어 운영한다. 2000년대 이후로는 최규하 10대 대통령이 국민장, 노무현 16대 대통령이 국민장, 김대중 15대 대통령이 국장으로 장례가 치루어졌으며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국가장으로 통합되면서 김영삼 14대 대통령과 노태우 13대 대통령이 국가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었으므로 앞으로는 국가장으로만 치러질 것이다.
더불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대상자 1순위가 된다. 또한,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더라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존묘지로 지정될 수 있다. 아직까지 국가원수들이 화장된 전례가 16대 노무현 대통령, 13대 노태우 대통령, 11-12대 전두환 대통령 외에는 없었고 화장 후 바다에 뿌려지는 등 산골된 전력이 없어서 이후 국가 원수들의 유언에 따라 이렇게 될 경우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묘지가 없기 때문에 보존묘지 같은 건 없을 가능성이 크고, 다만 그 지역 또는 그 해역에 암묵적으로 명소화될 수는 있다.
원래 김대중 대통령은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의 공간부족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야 했지만 국민들이 더 자주 찾을 수 있도록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으로 공간을 내어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고 김영삼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의 사유로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전직 대통령은 최규하 대통령 1명뿐이다.
현재에는 예외적인 묘소를 만들만한 물리적 공간마저 더 이상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대통령과 같은 예외적인 서울현충원 안장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으로는 전직대통령이 사망 후에 현충원에 안장된다면, 화장되어 충혼당에 안치되지 않는 이상 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될 것이다.
다음은 고인이 된 대통령의 장례 절차 및 안장지다. 세상을 떠난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 이승만 (1965년 7월 19일 사망, 같은 해 7월 27일 가족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83-18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소)
- 박정희 (1979년 10월 26일 사망, 같은 해 11월 3일 국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90-7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대통령 묘소)
- 윤보선 (1990년 7월 18일 사망, 같은 해 7월 23일 가족장)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산34-2 (사설묘지, 국가보존묘지)[69]
- 최규하 (2006년 10월 22일 사망, 같은 해 10월 26일 국민장)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111-27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 1호)[70]
- 노무현 (2009년 5월 23일 사망, 같은 해 5월 29일 국민장), 경기도 수원시 연화장 화장,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21-7 (사설묘지, 국가보존묘지)
- 김대중 (2009년 8월 18일 사망, 같은 해 8월 23일 국장[71]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99-13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소)
- 김영삼 (2015년 11월 22일 사망, 같은 해 11월 26일 국가장)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222-4 (국립서울현충원 김영삼 대통령 묘소)
- 노태우 (2021년 10월 26일 사망, 같은 해 10월 30일 국가장) 서울추모공원 화장,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 98 동화경모공원 (L_6지구 1열 1호, 국가보존묘지)
- 전두환 (2021년 11월 23일 사망, 같은 해 11월 27일 가족장) 서울추모공원 화장,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27나길 11-14 (임시 안치)
원칙적으로 국가원수가 서거하여 화장될 경우 면제 대상이 되지 않지만, 비공식적으로 화장터의 결정에 의해 공통면제대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원래대로라면 서거 직전 주소지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이라서 김해 추모의 공원에서 화장해야 비용이 절감되지만 공통면제대상이 되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었다. 물론 화장터에서 공통면제대상이 될 자격이 국립현충원 안장 자격과 같아서 탄핵 혹은 사법처리된 사람의 경우 적용되지 않는다.
13.5. 기념관[편집]
박근혜 탄핵 정국 와중에 불이 나 전소되었다가 이후 그 자리에 다시 지어졌다.
- 박정희가옥: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소재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소재
- 최규하
- 최규하대통령생가: 강원도 원주시 봉산동 원주역사박물관 소재
- 최규하가옥: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소재
- 원주초등학교 최규하대통령관: 강원도 원주시 봉산2동 소재
- 전두환
- 전두환대통령생가: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소재
- 노태우
- 노태우대통령생가: 대구광역시 동구 신용동 소재
- 김영삼
- 김영삼대통령생가: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소재
- 김영삼대통령기록전시관: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소재
-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미개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소재
자금난을 겪고 있어서 2015년에 완공했지만, 지금까지 개관을 못하고 있다. 거제시에서 인수하여 기숙사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였으나, 불발되었다. 2018년 8월, 동작구청이 기부채납받아 공공도서관으로 개관하겠다고 밝혔다.
주인집의 아들이 계속해서 살고 있는 주택.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집주인은 불편을 겪고 있다고. 그러나 거제시는 현수막과 표지판을 통해 길을 안내하고 있어 충돌된다는 지적이 있다.
13.6. 기념재단[편집]
- 이승만: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1975년 설립)
- 윤보선: 해위윤보선대통령기념사업회 (2010년 설립)
- 박정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1999년 설립)
- 최규하: 최규하대통령기념사업회 (2013년 설립)
- 김영삼: 김영삼민주센터 (2010년 설립)
- 김대중: 김대중평화센터 (2003년 설립) / 김대중기념사업회 (2010년 설립)
- 노무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2009년 5월 설립)
- 이명박: 청계재단 (2009년 설립) /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 (2014년 설립)
14. 관련 기록[편집]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출생 순서는 아래와 같다.
역대 대통령들의 출생 시기를 분류해보면 이승만은 조선시대, 윤보선은 구한말,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은 일제강점기, 노무현은 미군정기,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출생이다. 그리고 해방 이전 출생자들도 이젠 많이 줄었기에 이변이 없다면 이후 대통령은 대부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출생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출생자들을 다시 분류한다면 박근혜, 문재인은 대한민국 제1공화국시기, 윤석열은 대한민국 제2공화국시기 출생자가 된다.
태어난 달은 12월이[73][74] 4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로 1월[75] 이 3명이 있고 2월[76] , 3월[77] , 7월[78] , 8월[79] , 9월[80] , 11월[81] 이 각 1명이다. 계절별로는 겨울[82] 이 8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고, 그 다음은 여름[83] 과 가을[84] 이 각 2명, 그 뒤로는 봄[85] 이 1명이다.
태어난 달은 12월이[73][74] 4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로 1월[75] 이 3명이 있고 2월[76] , 3월[77] , 7월[78] , 8월[79] , 9월[80] , 11월[81] 이 각 1명이다. 계절별로는 겨울[82] 이 8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고, 그 다음은 여름[83] 과 가을[84] 이 각 2명, 그 뒤로는 봄[85] 이 1명이다.
- 최초로 시신이 국립묘지 이외 장소에 안장된 대통령은 윤보선이다.
- 최장기 재임한 대통령은 박정희로, 1963년 12월 17일 취임해서 1979년 10월 26일 피살당할 때까지 16년간 집권했다.[86] 최단기 임기는 최규하로, 1979년 12월 6일 취임해서 1980년 8월 16일 사퇴하여 8개월간 집권했다.
- 공식 취임 당시 기준으로 최연소 대통령은 박정희로, 1963년 취임 당시 46세(1917년)였다. 최고령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74세(1924년생)였다.[87]
- 사망일 기준으로 가장 장수한 대통령은 윤보선(1990년 92세 사망)이며, 가장 단명한 대통령은 박정희(1979년 61세 사망)이다.
- 퇴직 과정의 경우 다음과 같다.
- 만기퇴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
- 사임: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 파면(탄핵): 박근혜
- 사망: 박정희
- 정계에 입문하기 전의 출신 직업으로는 사업가(김대중, 이명박)[88] , 법조인(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언론인/교육자(이승만), 외교관(최규하, 이승만), 군 장교(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있다. 윤보선[89] , 김영삼[90] , 박근혜[91] 는 정치인이 첫 번째 직업인 경우이다.
- 미혼인 대통령도 박근혜가 유일하며, 나머지는 모두 기혼자이다. 영부인 목록은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문서를 참고할 것.
- 대통령 중 자살로 사망한 대통령은 노무현이 유일하다. 더불어 대통령 중 질병이나 노환 외의 사유로 서거한 대통령은 박정희와 노무현 단 둘 뿐이다. 다만 박정희는 임기 중에 사망했으나, 노무현은 임기 중 사망은 아니다.
- 병역 사항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 장교로 복무한 직업군인 출신 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있으며, 노무현과 문재인은 일반 사병 출신이다. 김영삼도 병사로 복무 경험이 있지만,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육군 정훈병)으로 간 것이므로 엄밀히 따지면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원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이승만, 윤보선, 김대중, 최규하는 징병제가 아닌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박근혜는 여성이라 병역 의무가 없었고, 이명박은 질병으로 병역면제 되었으며, 윤석열은 부동시로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았다.
- 대통령 탄핵 소추를 경험한 대통령은 노무현(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과 박근혜(박근혜 대통령 탄핵)가 있다. 노무현은 탄핵이 기각되었으며, 박근혜는 탄핵이 인용되어서 공식 파면되었다.
- 정계에 진출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장 오래 걸린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1954년에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된 지 43년 후인 1997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반면 정계에 진출해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장 짧게 걸린 대통령은 전두환으로 같은 1980년 5월 18일에 정계에 진출해서 고작 3개월 후인 8월 27일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제6공화국 이후 대통령들 중에는 정계 진출 1년도 안 되어 당선된 윤석열이 가장 짧다.
- 대통령 선거에 출마 경험이 가장 많은 대통령은 5번의 박정희(5-9대 대통령 선거)이고 그 다음은 4번의 이승만(1-4대), 김대중(7대, 13-15대)이다. 단, 박정희의 경우 8대와 9대는 10월 유신으로 인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선거'였고 이승만의 제4대 대통령 선거는 3.15 부정선거로 공식 무효 처리되었으므로, '정상적인' 선거 출마로 한정하면 김대중이 최다이다. 출마 경험이 가장 적은 상태로 당선된 대통령은 1번의 윤석열(20대)이다.
- 최규하는 재임기간 내내 계속해서 소속 정당이 없었던 유일한 대통령이다. 단, 최규하는 국무총리였다가 10.26 사건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가 민주세력에게 정권 이양을 하기 위해 대통령에 당선 된 것이므로 예외 사항에 가깝다. 그리고 소속 정당은 없었어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정치 성향은 보수였고,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에서 요직을 지낸 관료였다. 그 외의 모든 대통령들은 소속 정당이 있었다. 다만, 윤보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임기 말 즈음에 탈당했다. 대부분 본인과 관련된 여러 논란 때문에 차기 대선에서 소속 정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의 반 타의 반 탈당해왔다. 제6공화국 들어서 그런 경향이 심해졌다가, 이명박이 끝까지 소속 정당을 나가지 않으면서 이는 깨졌다.[92]
- 재임 기간 동안 소속 정당이 바뀐 대통령은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3당 합당)의 노태우,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신당 창당 후 합당, 즉 재창당 수준의 개편)의 김대중, 새천년민주당 → 열린우리당의 노무현이 있다. 이 중 아예 별개의 정당으로 소속 여당을 바꾼[93] 인물은 사실상 노무현이 유일하다. 그 외에는 단순히 임기 중 여당의 명칭이 바뀐 형태이다.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신장 순위는 아래와 같다.
전반적으로 대통령들의 신장이 동시대의 일반인들 평균 신장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다.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이라는 박정희조차도 당대의 일반인 평균 정도는 되었으며 다른 대통령들은 모두 평균 키 이상이다.[94] 이는 미국 같은 다른 나라에서도 해당되는 사항인데, 사람들이 대체로 은연 중에 체격이 큰 사람들을 리더로서 선호하는 심리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최규하는 키 182cm로 대한민국 역대 최장신 대통령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180cm를 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한국 대통령들은 최규하를 제외하면 모두 180cm 이하이다.[95] 오늘날로 따지면 190cm가 넘는 수준이다. 퇴임 후에는 키가 줄었지만, 역대 대통령 회동 영상을 보면 고령임에도 불구 다른 대통령들을 압살하는 장신의 키를 자랑한다.
박정희의 경우 신장이 164cm로 역대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의 키였다. 하지만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키 170cm로, 당시에 웬만한 여자 배구선수와 견줄만한 큰 키를 가진 장신이었다. 허나 박정희 본인은 이 신체적 특징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 연설이나 모임 때 육영수 여사와 동석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직원 중 한 명이 두툼한 방석을 박정희의 의자에 놓자, 방석을 곧바로 치워버렸다고 한다.
노태우의 경우 178cm로 30년대생치고는 꽤나 큰 키지만, 노태우의 아버지 노병수는 키가 189cm인 엄청난 장신이었다.
최규하는 키 182cm로 대한민국 역대 최장신 대통령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180cm를 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한국 대통령들은 최규하를 제외하면 모두 180cm 이하이다.[95] 오늘날로 따지면 190cm가 넘는 수준이다. 퇴임 후에는 키가 줄었지만, 역대 대통령 회동 영상을 보면 고령임에도 불구 다른 대통령들을 압살하는 장신의 키를 자랑한다.
박정희의 경우 신장이 164cm로 역대 남성 대통령 중 최단신의 키였다. 하지만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키 170cm로, 당시에 웬만한 여자 배구선수와 견줄만한 큰 키를 가진 장신이었다. 허나 박정희 본인은 이 신체적 특징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지, 연설이나 모임 때 육영수 여사와 동석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직원 중 한 명이 두툼한 방석을 박정희의 의자에 놓자, 방석을 곧바로 치워버렸다고 한다.
노태우의 경우 178cm로 30년대생치고는 꽤나 큰 키지만, 노태우의 아버지 노병수는 키가 189cm인 엄청난 장신이었다.
- 김대중, 노무현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의 학력이 전부 대졸이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소학교 졸업(초졸)이 보편적이던 일제강점기~대한민국 정부수립 초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걸 감안한다면 학력이 초엘리트 수준이다. 또한 김대중, 노무현은 고졸 출신이지만 김대중은 목포상업고등학교 수석입학, 노무현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사법시험 합격 등으로 준엘리트 대우를 받았다.[96] 고졸 이상을 기본 학력으로 보는 현 청년세대가 기득권이 될 즈음에는 고졸보다 저학력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더욱 희박해질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취임 직전 우연히 큰 화재 사고가 발생한다는 징크스가 이어지고 있다. 2003년 노무현 취임 직전의 대구 지하철 참사, 2008년 이명박 취임 직전의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숭례문 방화 사건, 2013년 박근혜 취임 직전의 인사동 식당밀집지역 화재, 2017년 문재인 취임 직전의 강릉-삼척-상주 산불, 2022년 윤석열 취임 2개월 전의 울진 산불과 강릉 산불이 그것이다.
- 대한민국 대통령을 2명 이상 배출한 기관은 아래와 같다.
- 역대 대통령들의 출생지는 아래와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는 대통령을 배출시키지 못한 지역이었으나, 2022년 서울특별시 출신인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106] 그 외에 대구를 제외한 나머지 광역시들, 충청북도, 전라북도,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아직 대통령을 배출시키지 못했다. 이 중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의 대권 주자급 인물로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있다.
-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명박이며, 가장 남쪽에서 태어난 대통령 역시 이명박이다.[107] 가장 북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북한까지 포함하면 황해도 평산군 출신의 이승만, 대한민국 영토로만 따지면 서울특별시 출신의 윤석열이다. 가장 서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출신의 김대중이다.
- 대통령을 3명 이상 배출시킨 정당은 아래와 같다.
- 전두환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순서는 취임 순서의 역순이다.[109] 공교롭게도 영부인의 나이도 대통령 취임 순서의 역순이다.
- 징크스로, 역대 대통령들은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었고[110] , 직전 대통령의 유고로 인해 치러진 선거에서는 안경을 쓴 사람이 당선되었다[111] . 이 징크스가 계속 이어지고 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예정대로 임기를 모두 수행한다면 차기 대통령은 여권에서는 오세훈, 원희룡, 이준석 등이, 야권에서는 이낙연, 박영선, 김두관 등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학계에서는 심리학적 분석과 여론조사를 근거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향이 평소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이는 안경을 쓰지 않은 사람에게서 더 두드러진다는 점을 이유로 본다. 반면 직전 대통령의 유고 등 정치 혼란기에는 국민들이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지혜롭고 차분해 보이는 지도자를 원하며, 이는 안경을 쓴 사람에게서 두드러지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112]
15. 인기 순위[편집]
- 2017년 이후 문재인이라는 강력한 상위권 후보가 나타나면서 2017년 여론조사에서는 그 동안 1위를 차지했던 박정희와 노무현을 누르고 1위를 달성했으며 그 이후론 1위까진 아니더라도 3위권 내에 드는 경우가 많다.
- 김대중의 경우 중위권 멤버라고 할 수 있으며, 박정희와 노무현 틈 사이에서 10%이상 득표하며 3위를 차지했었다. 문재인의 등장 이후로는 응답률이 많이 내려간 상태지만 그래도 꾸준히 중위권을 유지하는중.
- 이명박의 경우 초기에는 중위권에 있었다가 점점 하위권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다시 상승세를 보여 중위권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16. 분류[편집]
16.1. 출생 지역[편집]
16.2. 직업[편집]
16.3. 종교[114][편집]
16.4. 자녀[편집]
- 이승만: 3남[120]
- 윤보선: 2남 2녀[121]
- 박정희: 1남 3녀[122]
- 최규하: 2남 1녀
- 전두환: 3남 1녀
- 노태우: 1남 1녀
- 김영삼: 3남 3녀[123]
- 김대중: 3남 1녀[124]
- 노무현: 1남 1녀
- 이명박: 1남 3녀
- 박근혜: 미혼
- 문재인: 1남 1녀
- 윤석열: 무자녀
자녀 여부들을 보면 이승만처럼 아들만 있고 딸은 전혀 없는 대통령은 있지만, 아들 없이 딸만 있는 대통령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아울러서 한 자녀 대통령도 지금껏 한 번도 탄생한 적이 없다. 또한 결혼은 했으나 자녀가 없는 대통령은 윤석열이 최초이자 유일하다.
16.5. 국회의원 선수[편집]
16.6. 대수와 성향[편집]
17. 관련 문서[편집]
- 대통령제
- 이동수단
-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
- 대한민국 대통령 특별 열차 - 경복호
- 대한민국 대통령 헬기 - S-92
- 대한민국 대통령 의전차
- 대한민국 대통령 초상화
- 대한민국 대통령/시계
- 대한민국 부통령
- 대한민국 국무총리
- 대통령 주치의
- 충청 대망론
- 대한민국/역사
- 대한민국/정치
- 헌법기관
- 대통령실
-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 대통령령
- 대통령과학장학금
18. 창작물에서의 등장[편집]
18.1. 영화[편집]
- 감기: 차인표가 연기.
- 판도라: 김명민이 연기.
- 강철비: 강철비에서는 김의성, 이경영이 연기. 강철비2에서는 정우성이 연기.
- 한반도: 안성기가 연기.
- 굿모닝 프레지던트: 이순재, 장동건, 고두심이 연기.
- 남산의 부장들: 이성민이 연기.
18.2. 만화&애니&웹툰[편집]
취사병 전설이 되다 - 장성우, 역대 최연소(51세)이자 최초의 무소속[125] 대통령으로 설정되었다. 작중 시점(웹툰 기준)에서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사람은 문재인이다.
슈퍼스트링/ 테러맨 - 최현옥: 테러맨 시점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특이하게도 여성 대통령이며 재난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다.
어느날 갑자기 서울은 - 박 대통령: 서울에 변이된 괴물들이 창궐하기 시작하자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심연의 하늘 - 직접적인 등장은 없으나 서울에 재난이 일어나기 직전 군 주요 지휘관들은 청와대로 소집시킨다.
스위트 홈(드라마)/ 스위트 홈(웹툰) - 두 작품 모두에 등장한다. 드라마 버전에 등장하는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진행하던 도중 변이가 진행되어 날뛰다 707특임대의 지휘관 한유진에게 사살당한다. 원작 웹툰의 대통령은 재난이 벌어지자 국민들에게 긴급 대국민 행동 요령을 설명하던 중 괴물화가 진행되어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이후 등장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괴물화가 진행된 걸로 보여진다.
제0시: 대통령을 죽여라 - 박정희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