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 0)
분류
1. 개요[편집]
미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 POTUS)은 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다. 미국 헌법 제2조 2절에 의해서 미군의 총사령관이자 통수권자로서 미군을 통솔 및 통수한다.I[2] do solemnly swear (또는 affirm)[3] that I will faithfully execute the Office of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and will to the best of my ability, preserve, protect and defend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4][5]
"나는 최선을 다해 미합중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보전하며, 수호하여,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진심으로 엄숙히 선서합니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취임 선서문[6]
현직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제46대 조 바이든으로, 미합중국 헌법에 따라 2021년 1월 20일 정오에 공식 취임하였다.
2. 유래[편집]
독립전쟁 끝에 1783년의 파리 강화 조약으로 미국은 당시 대영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제대로 된 정부 조직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어떠한 권력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원했고, 사실상 유일한 연방조직이었던 의회는 아직 충분한 권력과 재무적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논의 끝에 당시 미국인들은 다양한 요구를 바탕으로 미국의 구심점이 되는 대통령직과 중앙연방정부제도를 모색했고 1788년 미국 헌법을 제정하면서 현재의 대통령직을 만들게 되었다. 원래는 영국처럼 의원내각제와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력했으나, 만약 도입할 경우 군주의 지위가 애매해져서, 그것을 대신할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새로 만들기로 결정해서 이른바 대통령제가 탄생했다. 대통령(The President)이라는 직책을 제안한 것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연방당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처음에는 로마의 영향을 받아 대통령이라는 직책명을 집정관(Consul)으로 하려고도 했지만 해밀턴의 강력한 건의로 대통령이 최종적인 직책명이 되었다.[7]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여러 제도와 관습들이 생겨났다.
3. 권위[편집]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의 수장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가장 막강한 영향력과 존재감을 행사한다.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세계 질서가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는 미국 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주요 관심사이자 이슈이고, 특히 미국 대선 시즌이 되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항상 예의 주시 하기 마련이다.[8]
또한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양당을 상징하는 면도 크므로 양당이 가진 대외정책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국제사회에서 민주당이 '비교적' 우호적인 대외정책들을 많이 내놓는 까닭이라 민주당 출신 대통령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반대로 공화당은 보수적이고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표방하는 성향이 강해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다.
4. 권한[편집]
미국 대통령은 미국 헌법과 미국 상원과 하원으로부터 부여받은 직책과 권한을 헌법에 맞게 행사한다.
이 권한에는 국가원수로 미국 상원의 동의 하에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외교권, 마찬가지로 상원의 동의로 내각의 장관, 부장관, 차관을 임명할 권한, 상원의 동의를 받아 연방의 주요직, 대사, 연방 대법원 · 고등 법원 · 지방 법원 판사를 임명할 인사권, 미국 상원, 미국 하원을 통과한 법률을 승인하거나 거부하고[9] , 헌법이 보장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 외에도 비상조치, 의회에 연두교서를 보내 입법을 권고할 수 있는 권한,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한국의 대통령령은 법률보다 하위에 있는 법으로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세부사항에 대해 정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법률에서 '자세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되어있는데 대통령은 의회가 정해준 법률의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을 통해 행정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행정명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기 때문에 법률과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링컨의 노예해방령도 행정명령으로 이루어진 사안이며, 오바마의 대표적인 정책인 이민개혁법 역시 행정명령으로 통과된 사안이다.[10] 단, 연방 대법원 판결에 따라서 행정명령은 연방헌법과 연방의회에서 통과시킨 연방법 내에서만 가능하다.
행정명령은 해당 행정명령에 유효기간이 적혀있지 않는 이상 계속 효력을 발휘한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이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자동으로 무력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야당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몇 주간 기존 행정명령을 검토한다. 즉, 재선에 실패해 야당의 후보에게 백악관을 내준다면, 후임 대통령은 임기 첫날에도 전임자의 행정명령을 무력화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들이 이렇게 8년 집권에 목매는 이유다. 또한 대통령이 파기하지 않더라도 의회가 여소야대 구도가 되면 행정명령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할 수 있고[11] , 연방법원도 법률심사(Judicial Review)를 통해서 행정명령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12]
미국 대통령의 가장 핵심적인 권한은 바로 미군의 통수권이다. 미국 헌법 2조 2절에 따라 미국의 대통령은 모든 미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인 미군을 통솔할 권한을 가진다.[13] 미국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하는 헌법 조항에 가장 먼저 나와있는 권한이 바로 이 군 통수권이다. 다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사전 또는 포고하기 전에 상·하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통수권을 행사해서 군에 명령을 내린 다음 국회에 동의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건 해리 S. 트루먼이 6.25 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처음 쓴 꼼수이다. 6.25 전쟁 이전까지는 미국 하원과 상원 양원에서 선전포고문을 작성해서 통과시키고, 미국 대통령이 선전포고문에 서명해야 법적으로 전쟁을 할 수 있었다. 조지 H. W. 부시때의 걸프 전쟁 때에는 정식 선전포고까지는 아니지만 원래 법도대로 미국 하원에서 전쟁 선포 결의문을 작성하고 하원과 상원의 과반수 통과를 받은 이후, 부시 대통령이 여기에 서명하는 식으로 미국 의회의 동의를 받고 시작했다.
미국이 강대국을 넘어 초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 시간이 드는 입법부의 승인 이전에 대통령이 단독으로 군사작전을 결정할 권한이 있었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초강대국인 미국이 1975년에 조그만한 북베트남 베트콩들에게 패배하자, 이러한 대통령의 군사작전 결정권한을 제한하는 전쟁 권한법을 1973년 의회가 통과시킨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60일간의 군사작전을 인가할 수 있고 30일을 추가할 수 있어 최장 90일간의 군사활동을 대통령이 승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01년, 미국 본토에서 9.11 테러가 발생함에 따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는 의회에 테러세력에 대한 효과적이고 기민 대응을 위해 전쟁권한을 요청했고 의회는 무력사용권(AUMF)을 9.11 발생 3일만에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전쟁 권한법이 무력화되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전포고를 한 경우가 없다는 점에서 걸프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과 같은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행해왔고 의회의 선전포고 승인 절차가 신속함과 고도의 보안과 판단을 요구하는 현대 국제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의회의 전쟁선포권을 무력화하여 현대 민주주의의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삼권분립을 약화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통수권과는 별도로 대통령 비상 권한(Presidential Drawdown Authorit, PDA)이라 하여 비상 시 의회의 승인 없이 제3국에 무기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권한이 있다. 이 권한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35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했고, 대만에도 무기 지원을 할 예정이다.
단, 미국 대통령에게는 법률안 제출권과 개헌 발의권이 없고, 의회해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정해져 있다.[14] 의회해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하원의 임기가 2년밖에 안 되는 탓도 있지만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가 모두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같은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날려 버릴 권한이 없다. 법률안과 개헌 발의를 못 내도록 한 것도 "권력의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사면권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삼권분립과 연방을 구성하는 주들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미국답게 미국 대통령은 연방법을 어긴 경우에 대해서면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법을 어긴 경우는 주지사나 주 정부 특별위원회가 사면권을 행사한다.
의외로 생각보다는 권력이 약하다. 미국 자체가 강력한 중앙정부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권력이 많이 분산되어 있다. 많은 권한이 주정부에 위임되어 있고, 대통령이 어찌할 수 없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고유 권한 역시 명확하고 강력하며, 또 민간 영역에 대한 지도력은 약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 의회의 협조가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제한된다. 대외적 위상과 대내적 위상이 차이가 나는 편으로, 국제관계에서는 초국가적인 규제가 적으니 초강대국의 지도자로서 위상이 높지만 막상 국내에서는 이리저리 두들겨 맞는다.
5. 자격[편집]
35세 이상의 '태생적 미국 시민'(natural born citizen)으로 최소 14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15] 이는 선거군주제를 채택한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외국 출신의 군주에 의해 나라를 말아먹다가 아예 증발해 버린 것을 멀리서 목격한 미국 건국 초기의 정치인들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태생적 미국 시민"[16] 에게만 대통령 출마 자격을 부여하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미국 수정헌법에 이런 요건이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신호범, 제니퍼 그랜홈, 멜라니아 트럼프같이 타국에서 귀화해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데,[17] 문제는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하되 속인주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미국 국적법에서 '태생적 미국 시민'이라는 단어가 미국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에만 한정되는지, 미국 50개 주나 워싱턴 D.C. 외에서 태어났어도 해외 미국인 자녀에게 적용되는 법령에 따라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지에 대해서는 법학계나 정치권에서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그로 인해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가 주둔하고 있던 파나마 운하의 미군기지에서 태어난 존 매케인이나, 캐나다에서 쿠바계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를 따라 미국 국적을 선택한 테드 크루즈의 대선 출마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하와이 주에서 태어났지만 "오바마가 하와이 태생이라는 것은 조작이고 사실 부친의 고향인 케냐에서 태어났으며 따라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18] 사람이다"라고 우기는 음모론자[19] 들한테 임기 내내 시달렸다.
법적으로 보자면 원정출산 자녀들도 대통령 출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물론 14년 이상 미국에 살아야 하므로 태어나기만 미국에서 하고 국적만 미국인 상태로 대부분의 일생을 한국에서 보내 미국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는 못한다. 법적으로만 미국인인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미국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목상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이 독립하기 전에 정착했으면 선천적인 미국 시민이겠지만 그런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았고, 독립 이전에 출생한 대통령은 모두 미국 땅에서 태어났다. 반면 캐나다 총리, 호주 총리, 뉴질랜드 총리는 독립 이전이건 이후건 영국에서 태어난 이주자가 많았다.
6. 임기[편집]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4년이며, 수정헌법 제12조에 따라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는 분리해서 선발한다. 대통령은 최대 한 번까지만 중임할 수 있다. 대통령직의 중임은 관습상 현임자가 차기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연임의 형태로 실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번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났다가 다시 출마한 인물은 마틴 밴 뷰런, 밀러드 필모어,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드물게 있었으나 당선까지 된 인물은 그로버 클리블랜드(제22, 24대)가 유일하다.
수정헌법 제22조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하였다. 대통령이 궐위가 되어 그 남은 임기 동안 2년 이상 대통령직에 있었거나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한 사람도 1회만 중임할 수 있다. 가령 전임 대통령이 1년 만에 면직, 사망, 사임해서 부통령이 나머지 3년 임기를 채웠을 경우, 이는 첫 번째 임기를 마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1회만 중임할 수 있다.[20] 반대로 말하면, 이론상으로는 전임 대통령이 딱 2년만 임기를 남기고 물러난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승계했을 경우 1회 중임을 통해서 최대 10년에 가까운 임기(전임 대통령 임기 2년+본인 초선 4년+중임 4년)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사례가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22차 수정헌법 이후 시기에 이와 가장 비슷한 사례로는 존 F. 케네디가 사망한 후 승계한 린든 B. 존슨이 있었는데(전임 대통령 임기 1년+본인 초선 4년) 재선 출마를 포기하였다.[21]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3선 이상을 재임한 대통령인데[22] , 그는 '미국발 전세계 경제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크나큰 위기 상황 속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4선(1932년, 1936년, 1940년, 1944년 대선에 잇따라 당선됨으로써 1933년 3월 4일부터 1945년 4월 12일까지 재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이래 미국 대통령은 1회만 중임해 온 불문율을 깨뜨린 것으로 그의 사망 뒤 22차 헌법 수정으로 대통령의 3선 금지가 성문화되었다.
수정헌법 22조 제정 이후 2022년 현재까지 재선에 성공해 8년간 재임했던 대통령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5명이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임기 도중 사임하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대통령은 제9대 대통령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으로 취임 1달 만에 급사하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 연방법에서 선거가 있는 해(1972년부터 4년마다 실시)의 11월 첫 번째 일요일 다음의 화요일에 실시하도록 정해져 있고, 대통령의 임기는 다음 해 1월 20일에 시작된다. 시간은 워싱턴 DC의 시간대인 미국동부표준시(EDT) 정오 낮 12:00시, 한국 시간으로는 1월 21일 새벽 2시부터 임기가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한국은 취임식에 관계없이 임기 시작일의 새벽 0시부터 시작하지만[23] (궐위에 의한 선거는 당선이 확정된 시각부터 임기 시작) 미국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정오부터 시작된다.[24]
7. 역대 미국 대통령[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8. 선거[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참고하십시오.
미국은 50개의 크고 작은 주가 하나로 연합한 형태의 '합중국'이며, 미국 대통령은 이 합중국의 최고 지도자이다. 따라서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주의 대표인 선거인단들이 4년마다 각각 선출한다.
보통 전국적으로 투표를 실시해 가장 많은 수의 표를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 국민이 선출한 538명의 선거인단이 투표를 실시해 뽑는다. 그런데 보통 '비밀선거' 원칙에 따라 투표자가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밝히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선거인단은 대개 '나는 이 후보를 뽑겠다'는 의사가 알려져 있는 상태에서 투표를 실시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미국 대통령 선거'라고 부르는 선거는 '미국의 대통령을 직접 뽑는 선거'가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을 직접 뽑을 선거인단을 뽑는 간선제 방식의 선거'를 말한다.
선거 방법은 50개 주에 할당된 숫자의 선거인단과 워싱턴 D.C의 선출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각 주 출신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합친 수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수가 되며, 여기에 수도 워싱턴 D.C에 배정된 수를 합해 총 538명의 선거인단이 이 선거에서 선출된다.
통상 대통령 선거일은 '슈퍼 화요일'이라고 부르는 11월 첫 번째 월요일이 지난 다음의 화요일이다. 이를 날짜로 바꾸면 11월 2일부터 11월 8일 사이가 된다.
각 주 별로 선거를 치르며, 통상 2개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는 득표를 가장 많이 한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한다. 쉽게 말해 어느 주에서 공화당 선거인단 득표율이 51%, 민주당 선거인단 득표율이 49%가 나왔다면 그 주의 선거인단은 공화당 51%, 민주당 49% 이렇게 배분되는 게 아니라 공화당 선거인단만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주의 99%에서 패배했다 하더라도 이 나머지 99%보다 인구가 많아 이들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1개의 주에서 이겨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래서 이러한 간선제 방식 때문에 총 득표수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확보에 져서 낙선된 대통령 후보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패배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앨 고어와 힐러리 클린턴이다.
만약 선거인단 중 과반수를 확보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에는 하원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각 주별로 1표씩 행사한다. 만약 이 때도 동점이 발생하면 대통령이 결정될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9. 승계[편집]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임기 중에 면직, 사망 또는 사임하게 될 경우에는 부통령이 그 자리를 승계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그도 없으면 연방 의회가 법률로 정한 순서에 따라 하원의장 - 상원임시의장 순으로 승계한다. 단, 수정헌법에 따라 대통령 출마 자격(35세 이상의 태생적 미국 시민으로 최소 14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25] )을 만족하지 못할 시 순위에서 제외되며 차순위 승계자로 넘어가게 된다. 1947년에 제정된 대통령직 계승법에 의하면 순위는 다음과 같다. 2023년 현재까지는 아직 대통령 유고시 미국 부통령이 승계한 사례만 있으며, 그 아래의 계승 서열로 순서가 내려가서 승계한 적은 없다.
- 미국 대통령 승계 서열(United States presidential line of succession)
- 유고 후 승계의 경우 유고 즉시 부통령 등 계승권자가 취임선서를 하며 승계를 선언해야 하므로, 상황에 따라선 대통령 취임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시간과 장소에서 행하기도 한다. 한 예로 30대 캘빈 쿨리지는 부통령 시절 고향의 아버지 집에서 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워런 G. 하딩 대통령의 유고 소식을 듣고, 공증인 자격을 가진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 계산대 앞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고, 36대 린든 B. 존슨은 전임자 존 F. 케네디의 시신을 운구해가는 에어 포스 원 기내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 1974년 8월 9일,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을 때에는 38대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그런데 포드는 1973년에 사임한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의 후임으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어 연방의회 양원의 인준으로 취임한 부통령으로서 미국 역사상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유일한 사례이다.[29]
-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 시 하원 의사당에 대통령, 부통령, 상하원의 모든 의원, 대법관, 각료 등의 미국 연방 정부의 최고위층이 모이게 된다. 이 때문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대통령 승계 순위에 포함되는 한 명의 각료를 지명하고 백악관 혹은 모처에 비밀리 대기시키는데, 이를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라고 부른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 드라마인 웨스트윙에서도 지정생존자에 관해 묘사된 적이 있으며, 2016년 9월에는 미국의 ABC 방송국에서 아예 지정생존자[30] 라는 이름의 드라마도 방송되었다.
- 혹시라도 지정생존자마저 동시에 사망했다면 생존한 연방 하원의원들이 모여 새로운 하원의장을 선출한 뒤 그 하원의장이 대통령직을 승계받는다(만약 하원의원 생존자가 1명 뿐이라면 혼자서 하원의장이 될 수 있으므로 바로 하원의장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하원의원조차 전원 사망했다면, 생존한 연방 상원의원들끼리 상원 임시의장을 선출하고, 선출된 상원 임시의장이 대통령직을 승계받는다. 혹시라도 상원의원들마저 모두 사망했다면 생존한 주지사 또는 주지사 권한대행들(합쳐서 전체의 절반 이상인 26명 이상의 주지사가 생존해있어야 한다)이 자기 주 몫의 상원의원들을 임명하고[31] 그 상원의원들이 상원 임시의장을 선출하여 그 상원임시의장이 대통령이 된다. 다만, 현실적으로 따로 떨어져 경호를 받는 지정생존자까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면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멸망하기 직전인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10. 특권[편집]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인 백악관을 주거공간 및 사무실로 쓸 수 있으며 이에 따라 필요한 전체 보좌관, 보좌 비용, 의료 지원, 취사, 가계 등의 지원 등을 국비로 받는다. 공식 만찬이 아니라 가족 식비와 같이 사적인 목적이 명백해 보이는 항목의 지출에 대해서는 대통령 사비를 지출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참석하는 삼시세끼는 대부분 국내외 인사들과 업무의 일환으로 함께 하므로 전액 국비로 지급된다. 식비로 지급되지 않는 간식 등도 재료는 사비로 사되, 정부 급여를 받는 주방 근무자들에게 대신 사와서 만들어 오게 하는 등은 가능하므로, 이런 식으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혜택도 받는다. 또한 현직 대통령과 그 가족들은 미합중국의 국토안보부 산하 시크릿 서비스 경호요원들에 의해 철저히 경호를 받는다.
해외 순방이나 여행을 할 경우 에어 포스 원이라는 대통령 전용기가 제공된다. 에어 포스 원은 날아다니는 백악관이라고 불릴 만큼 업무를 보기 편하도록 개조되어 있으며 안에서 군사명령이나 업무를 볼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 공군이 특별 관리한다.
또, 마린 원이라는 미 해병대 소속의 헬리콥터를 에어 포스 원 처럼 사용할 수 있고 미국 시크릿 서비스에서 관리하는 대통령 공식 의전차량인 캐딜락 프레지덴셜 리무진[32] 이라고 불리는 방탄 차량을 이용 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의 경우 1997년까지는 모든 전직 대통령과 그들의 배우자를 전직 대통령의 사망 시까지 보호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는 평생 동안 경호가 지원됐었다. 하지만 이후의 대통령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부터는 현직에서 물러난 후 최대 10년까지만 보호받게 되어 있는데, 최근 테러에 대한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어서 이 결정은 재고되고 있었으며, 이후 2013년에 전직 대통령은 평생 경호로 전환되었다.
미국 대통령은 모든 미국 연방 공무원의 최선임이기에 봉급도 가장 많이 받고 있다. 2001년까지는 연 $200,000을 받았으나, 봉급 인상이 이루어져 버락 오바마는 연 $400,000(2016년 5월 기준 약 4억 7천만 원)을 수령했다.[33] 미국 대통령에 대한 처우는 법률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 월급을 올리려면 의회가 법을 개정해야 한다. 부동산 재벌 출신으로 2016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연봉 중 1달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진 반납한다는 공약을 내세운 것은 물론, 당선 후 그 공약을 지켜내면서 주목을 받았다. 재임 중 한 아이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세금을 못 낼 것 같다면서 트럼프에게 돈을 약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곧 바로 트럼프가 아이에게 돌려줬고 그 돈은 그 아이가 기부했다는 듯하다. 단, 트럼프 본인의 재산이 워낙 많은 데다, 그가 자신의 사유지에서 휴가를 보내며 국비 지출토록 하며 자기 계좌에 들어가도록 한 비용이 대통령 연봉을 압도해서 말이 많았다.
11. 대선으로 보는 정당사[편집]
11.1. 미 건국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편집]
미 건국 초기에는 정당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았던 조지 워싱턴도 정당을 갖지 않았고, 건국 지도자들 대부분이 "정당 제도가 국가를 분열시킨다"는 생각에는 대부분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이 퇴임하자마자, 연방의 권력을 늘려 강대한 국가를 이루고 싶어했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각 주들에게 최종권력을 주지 않으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말소될 것을 우려한 토머스 제퍼슨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결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해밀턴의 추종자들이 만든 연방당, 그리고 3대 대통령 제퍼슨은 자신의 민주공화당에서 승리하여 당선되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현대적 정당의 체제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두 당 모두 실질적인 권력은 별로 없었고, 유권자들도 대체적으로 당보다는 후보의 자질을 보는 편이었다. 제퍼슨 대통령 아래 나라가 좀 잘 돌아가자, 애초부터 굳건한 기반이 없었던 연방당은 선거에서 계속 패배하다가 결국 와해되고, 매디슨, 먼로 등 민주공화당 계열 인사들이 연속으로 집권하는 '화합의 시대(Era of Good Feelings)'가 도래한다.
마땅한 야당이 없던 민주-공화당 28년(1801~1829) 이후 존 퀸시 애덤스에 반대한 앤드루 잭슨 지지세력이 탈당하여 민주당을 세우면서 잔당세력은 휘그당이 되었다. 휘그당은 이따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승리한 대통령이 죄다 병으로 급서하며 점차 몰락의 기미를 보인다.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할 무렵, 휘그당이 몰락하고 새로 생긴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당선되어 지금의 양당제가 시작된다. 참고로 이때 승리한 공화당은 아직도 미 역사상 유일하게 신생당이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링컨으로 시작되는 공화당의 24년간의 장기집권(1861~1885)이 있었다.[34] 개혁적인 이미지로 민주당의 클리블랜드가 잠시 집권하여 이를 깨뜨렸으나(그나마도 이어진 임기가 아니었다) 이후 공화당이 다시 16년간(1897~1913) 장기 집권했다. 다만 링컨 이후 한동안 공화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관세 정책 빼고는 정책차가 거의 없었으며, 공화당이 선거인단 덕에 당선된 케이스도 두번이나 된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 예로 수차례나 대통령에 출마한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는 1912년 선거에서 6%나 득표한다.[35] 또한 부패한 관료들과 자비없는 대기업들에 반발한 중서부 농부와 서민층이 주축이 된 인민당(people's party, 혹은 populist)을 결성했는데[36] , 1892년 선거에서 이 당의 후보로 나온 제임스 위버 후보는 8.5%, 약 백만 명의 지지를 받고 중서부 4개 주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권 연장을 꾀한 민주당이 윌리엄 J. 브라이언이라는 걸출한 웅변가를 대선후보로 내세운 다음 인민당과 손을 잡아 1896년도 대권에 도전했으나, 쇼미더머니 수준의 선거자금을 모은 공화당의 윌리엄 매킨리 후보에게 대패하고 만다. 중서부에서는 대승했으나 북부를 털려서 패배. 브라이언은 인민당과 연대를 해제한 1900년과 1908년에도 다시 도전하지만 역시 패배하게 된다.
이런 정치적 변혁은 현실 정치적인 변화도 이끌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반트러스트와 개혁을 옹호하는 혁신주의(progressivism) 경향이 두드러진 것. 공화당 역시 혁신주의를 주창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나왔다. 이런 경향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이하 테디), 윌리엄 태프트, 정권을 교체한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테디는 1912년 공화당을 탈당해 혁신당(progress party, 혹은 진보당)을 차리기까지 했다.[37] 이러한 공화당의 분열로 윌슨의 민주당이 8년을 집권했으나 외교정책 문제와 1차대전 참전 문제로 신임을 잃고, 대공황까지 다시 공화당이 12년(1921~1933) 집권한다. 다만 이시기의 공화당은 혁신주의 사조를 완전히 뺀 자유방임주의 보수정당이었다.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이하 'FDR')이 나타나 4선까지 하고 해리 트루먼까지 이어가면서 민주당이 20년(1933~1953)을 집권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레이건과 부시의 12년이 있긴 했지만, 대략적으로 8년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번갈아서 집권하는 구도가 되었다.
11.2. 전후 미국 대선사: "뉴딜동맹" 대 "남부전략"[편집]
다만 실제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1933년 이후 정국은 민주당의 기존 남부 지지 + 북부의 서민 중산층 + 흑인 등 소수민족을 바탕으로 하는 "뉴딜 동맹"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다(아이젠하워 역시 뉴딜정책 자체는 거의 계승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인종문제가 불거진 1960년대 이후 민주당 텃밭이던 남부(딕시크랫)는 점차 이탈하여 독자출마나 팀킬행위를 벌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전체적으로 백인 우월주의 성향 표심을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 남방 전략)"을 펼치게 된다.[38] 이후 닉슨을 거치면서 공화당은 남부에서 상당한 지지를 뽑아내게 되며, 1980년대 이후 남부는 명실 상부한 공화당의 텃밭이 되었다. 닉슨 이래로 레이건, 부시 부자는 남부 + 서부 + 기독교 근본주의 + 백인 중심 + 신자유주의로 연달아 대승을 거두는 등, 공화당은 이 전략으로 2000년대까지 미국정치를 좌지우지했다.
민주당이 이 시대에 대선에서 승리를 간간이 거두긴 했지만, 케네디 이후로 남부 출신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린든 B. 존슨은 텍사스 출신으로 '텍사스의 대통령' 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며, 지미 카터 역시 남부의 조지아 출신 독실한 개신교도였으며(개인의 깨끗한 이미지와 워터게이트 어드밴티지도 있었다), 빌 클린턴 역시 남부(아칸소) 출신이었다. 반면 낙선한 마이클 두카키스는 매사추세츠 출신 동방정교도였고, 앨 고어의 경우 2000년 대선에서 자신의 선거구인 테네시(남부)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주당은 캘리포니아 등 서부 해안지대의 지지를 얻어냈으며, 결국 부시의 실정크리와 함께 오바마는 케네디 이후 최초의 북부(일리노이)에 지역구를 둔 대통령이 되며 남방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또한 인구 3위의 플로리다에서도 두번 모두 승리하면서 고어 vs 부시 때의 설욕을 확실히 했다. 재선에도 인디애나와 노스캐롤라이나만을 내주며 비교적 여유롭게 성공.
하지만 민주당도 3연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위세는 오바마 재임기간 내내 압도적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득표에서는 2.1% 패배했음에도 오하이오를 비롯해 민주당의 오랜 텃밭인 "러스트 벨트"(미시간과 위스콘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와 아이오와에 메인주 일부 선거인단까지 승리하면서 충격적인 선거인단 승리를 거두게 된다.
12. 기타 정보[편집]
- 미국 대통령의 공식 예우곡의 제목은 헤일 투 더 치프(Hail to the Chief)로 이 노래의 기원은 1810년 영국의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월터 스콧이 쓴 호숫가의 여인이란 작품속에서 나온 개선행진을 하는 족장을 위한 찬가에 작곡가인 제임스 샌더슨이 곡을 붙인데서 유래했다. 급속도로 인기를 얻은 호숫가의 여인은 1812년 5월 8일 뉴욕에서 첫 데뷔를 했고 미국 대통령의 찬가로 쓰인 것은 1815년 미영전쟁이 끝난 것을 기념하면서 처음으로 연주되었으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첫번째로 이 찬가를 받은 대통령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Hail to the Chief 문서로.
- 역대 미국 대통령은 전원 남성이다. 남북전쟁 기간 일시 분리 독립했던 남부연맹의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까지 포함해도 성립한다. 다만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최초의 (양대 정당 소속)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된 적은 있다.[40]
- 조 바이든을 포함, 현재까지 총 45명의 미국 대통령 중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19명, 민주당 출신 대통령은 16명으로, 대통령 배출에 있어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다소 우위에 있다.[42]
- 1946년 생만 3명이나 나왔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그것도 버락 오바마가 중간에 낀 걸 제외하면 셋이 연속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 결과 전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굉장히 젊은 나이인 46살에, 부시 Jr.는 그럭저럭 적당한 나이인 54살에, 트럼프는 늦은 나이인 70살에 각각 대통령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인 노무현도 이들과 동갑내기인 1946년 생이다.[43]
- 미국 매체에서는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의 두문자어로 POTUS라고 줄여 부른다. 공식 트위터의 아이디 역시 POTUS. 영부인의 경우 FLOTUS(First Lady Of The United States)라고 줄인다.
- WASP(백인, 앵글로색슨(잉글랜드계), 개신교도)들만 선출된다고 오해를 받는데, 비앵글로색슨 혈통의 조상을 가진 대통령도 많았다. 대표적인 차별 받는 혈통이었던 아일랜드계 대통령이 적지 않은 것도 포인트. 앤드루 잭슨(양친), 제임스 K. 포크(양친), 제임스 뷰캐넌(부계 직계), 체스터 A. 아서, 그로버 클리블랜드, 벤저민 해리슨[44] , 윌리엄 매킨리(스코티시 아일랜드계 혈통), 우드로 윌슨(양친 모두), 존 F. 케네디[45] , 조 바이든[46] 이 그들이다. 특히 민주당 출신이 많다는 것이 흥미롭다. 빌 클린턴은 물론 심지어 버락 오바마도 아일랜드 혈통이 섞여있다[47] . 현대의 대통령이 유독 많아 보이는 것은 물론 차별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피가 하도 섞이고 섞인 탓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는 물론 21세기 초까지도 인구 통계에서 백인 조상의 출신마저 따지던 미국으로서는 눈에 띄는 것은 사실.
- 독일계 이민자의 직계 후손으로 대통령이 된 케이스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 마틴 밴 뷰런(판뷔런, Van Buren)은 전형적인 네덜란드계 출신으로, 그의 제1언어 역시 네덜란드어였다.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 명가 루스벨트(Roosevelt) 역시 판로저벨트(Van Rosevelt)이라는 네덜란드 성씨였다. 제임스 먼로의 먼로(Monroe)는 스코트계 성씨(그의 혈통에는 웨일스계도 섞여있다). 반면 프랑스계 미국인이나 이탈리아계 미국인, 러시아계 미국인 등 아일랜드나 서게르만(잉글랜드, 네덜란드, 독일)을 제외한 유럽 내 다른 민족을 직계 조상으로 둔 경우는 없다. 드물게 그리스계 후보가 유력 후보가 된 적이 있으나, 그가 바로 현대 미국의 대표적 역전패 후보인 마이클 두카키스.
- 사실 미국 최초의 President는 조지 워싱턴이 아니었다. 워싱턴 앞에도 독립(1781) 이후 연합규약이 비준되면서 탄생한 대륙의회는 만장일치로 메릴랜드 주의 존 핸슨을 "대륙의회 연방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핸슨은 '미국 의회의 총의를 모은 연방 의장'이라는 직함을 받았고, 정부기관을 만들고 조약에도 서명하였다. 임기는 1년이었다.(핸슨 등 2회 역임 포함) 그렇게 7대가 지나고 1789년 연방 헌법이 비준됨과 동시에 미합중국 정부가 정식으로 출범했고 그 수장으로 신설된 국가원수 겸 행정부 수장 직책의 이름으로 President를 채택했고 반면에 기존에 President를 쓰던 대륙의회 의장은 대륙의회가 미국 의회로 대체되어 사라지면서 소멸했기 때문에 President는 대통령으로서의 President만 남고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대륙의회 의장으로서의 President의 흔적은 미국 부통령이 겸임하는 상원의장의 명칭(President of the Senate of the United States)으로 남아있다.
- 미국 대통령은 임기수를 세지 않고,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댓수를 높인다. 대한민국이 2022년 기준 20대인 윤석열 정부까지 13명의 대통령이 있었던 것[48] 과 다르다. 다만 그로버 클리블랜드의 경우 원래는 한 대로 치다가 두 대로 나누어 세게 된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최근의 일이다.
- 제7대 앤드루 잭슨 이후로 제16대 링컨까지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49] 그나마도 링컨은 재선 후 암살당했으며., 8년 임기를 연속으로 제대로 마친 인물은 우드로 윌슨이 나올 때까지 율리시스 S. 그랜트가 유일하다(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경우에는 윌리엄 매킨리의 암살로 승계했다). 이후 공화당에서 8년 임기를 제대로 마친 대통령은 거의 90년 후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현재는 위와 반대로 로널드 레이건 이후 조지 H. W. 부시와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실패를 제외하고 계속 재선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늘어났다.
- 제15대 대통령인 제임스 뷰캐넌은 유일한 독신 대통령이다.[50] 제22대·24대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도 취임식 때까지는 독신이었으나 대통령 재임시에 결혼했고, 체스터 A. 아서는 기혼자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에 배우자가 죽어 대통령 재임 시에는 독신이었다.
-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 각 종파, 비삼위일체 기독교의 차이는 있었지만. 개중에는 개신교라고 분류했어도 몇몇은 조지 워싱턴이나 제임스 먼로와 같이 이신론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다. 토머스 제퍼슨의 경우에는 아예 삼위일체, 원죄, 예수의 신성, 기적, 예수의 죄사함 등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저 예수의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인간으로써의 인생의 교훈만 인정하는 이신론 신자였다.[51] 정교회 신자였던 사람이 대통령은 아니지만 유력후보가 된 적이 있기는 한데 바로 위에서 언급한 마이클 두카키스. 모르몬 신도인 밋 롬니도 유력 후보가 된 적 있으니 종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개신교:
- 성공회 - 조지 워싱턴(초대), 제임스 매디슨(4대),[52] 제임스 먼로(5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9대), 존 타일러(10대), 재커리 테일러(12대), 프랭클린 피어스(14대), 체스터 아서(21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제럴드 포드(38대), 조지 H. W. 부시(41대). 11명.[53]
- 장로회 - 앤드루 잭슨(7대), 제임스 뷰캐넌(15대), 그로버 클리블랜드(22, 24대), 벤저민 해리슨(23대), 우드로 윌슨(28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34대), 로널드 레이건(40대)[54] , 도널드 트럼프(45대). 8명.
- 침례회 - 에이브러햄 링컨(16대), 워런 G. 하딩(29대), 캘빈 쿨리지(30대), 해리 S. 트루먼(33대), 지미 카터(39대), 빌 클린턴(42대), 버락 오바마(44대). 7명.[55]
- 감리회 - 제임스 포크(11대), 율리시스 그랜트(18대), 러더퍼드 헤이스(19대), 윌리엄 매킨리(25대), 조지 W. 부시(43대).[56] 5명.[57]
- 네덜란드 개혁교회 - 마틴 밴 뷰런(8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2명.[58]
- 그리스도의 교회 - 제임스 가필드(20대), 린든 B. 존슨(36대). 2명.[59]
- 퀘이커교 - 허버트 후버(31대), 리처드 닉슨(37대). 2명.[60]
- 초교파 - 앤드루 존슨(17대)
가톨릭:
비삼위일체 기독교:
-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의 여러 출판사에서 쓸데없이 ~리더십이라는 책을 앞다투어 낸다. 클린턴 리더십, 부시 리더십 오바마 리더십, 트럼프 리더십등이다. 사실 몇몇 대통령을 제외하면 전부 불쏘시개가 되는데, 미국 대통령 정도의 권력이면 아무리 리더십이 개차반이어도 자기가 하는 말에 전 세계의 지도자나 독재자는 물론 세계 재벌들과 심지어는 유엔과 IMF, WB조차 따르게 된다. 굳이 리더십 따위는 하등 쓸모가 없는 셈.[65]
- 미국 대통령 중 독립기념일(7월 4일)에 사망한 대통령은 모두 셋으로,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2대 존 애덤스와 3대 토머스 제퍼슨이 1826년에(제퍼슨이 몇시간 먼저 사망), 또 5대 제임스 먼로가 1831년 같은 날에 사망했다. 독립기념일에 태어난 대통령으로는 캘빈 쿨리지(1872년)가 있다.
- 미국 대통령의 별명과 애칭은 여기(#)로 이동할 것.
- 매년 2월 셋째 주 월요일은 바로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날에는 '역대 대통령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이때 제정된 이유는 원래 이 날이 미국의 국부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워싱턴의 생일인 2월 22일을 공휴일로 정한 워싱턴 탄신일(Washington's Birthday)이었는데 이 날을 역대 대통령들을 모두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바꾸면서 워싱턴에 버금가는 업적을 세운 또다른 위대한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일이 2월 12일인걸 감안해 날짜를 바꾼 것이다.
- 대통령 취임선서를 할 때 보통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성경에 올려놓고 선서하며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은 선서할 때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사용한 성서를 사용하지만 42대 대통령인 클린턴은 자신의 할머니가 사용한 성경을 사용하여 선서했으며, 44대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의 성경을 사용하여 선서를 했고, 46대 바이든 대통령은 집안 가보인 128년 된 성경을 사용하여 선서하는 등 집안에 깊은 의미가 있는 성경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혼동하면 안되는것이 성경을 쓰는건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서부터 이어진 관행이지 법적으로는 그냥 선서를 하라고 적혀있을 뿐이고 사실 이것도 조지 워싱턴이 선서하기 직전 뉴욕주 대법원장의 주장으로 급조된 상황으로 당시 취임장소인 연방홀을 다 털어도 성경이 안나와서 수블럭 떨어진 곳까지 가서 간신히 구한게 위에서 언급한 조지 워싱턴의 성경이다. 36대 린든 존슨은 케네디 암살사건 직후 에어포스 원 기내에서 취임선서를 하느라 정식 성경이 아니라 기내에 있던 가톨릭 기도서를 사용했고[66]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1년 첫 취임식때 어떤 책도 사용하지 않았다.
-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전임 대통령이 참석해서 축하해주는 것이 관례다. 이것을 깬 경우는 이제껏 단 두번이다. 제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이 후임인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취임식에 불참한 경우와 제45대 도널드 트럼프가 후임인 제46대 조 바이든의 취임식에 불참한 경우다.
- 왼손잡이였던 대통령은 제20대 제임스 A. 가필드, 제31대 허버트 후버, 제33대 해리 S. 트루먼, 제38대 제럴드 포드, 제40대 로널드 레이건, 제41대 조지 H. W. 부시, 제42대 빌 클린턴, 제44대 버락 오바마로 총 8명이다. 재미있게도 20세기 후반기의 대통령들은 연달아 왼손잡이 대통령이 나왔다. 가필드와 트루먼, 레이건은 양손잡이이다.
- 사진은 미 대륙에서 1840년대부터 즐겨 찍기 시작했기 때문에, 최초로 사진에 담겨진 대통령은 존 퀸시 애덤스이다. 다르게 말하면 '건국의 아버지들' 세대인 조지 워싱턴부터 제임스 먼로까지는 모두 초상화만 남겼다. 한편, 최초로 재임 중에 사진을 찍고 남긴 대통령은 1845년에 취임한 제임스 K. 포크 대통령이다.뿐만 아니라 최초의 내각 일원 사진을 찍은 대통령 역시 제임스 포크이다. 최초로 사진을 찍은 영부인은 제임스 메디슨의 부인인 돌리 매디슨이다.[67]
- 이미지 정치를 즐겨 활용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로, 백악관 사진 보좌관(Chief Official White House Photographer)이란 직위가 신설되었다. 대통령의 임기 내내 1명의 보좌관을 두는 것이 관례였는데, 지미 카터만 예외적으로 사진 보좌관을 두지 않았다. 또 빌 클린턴은 임기 중 2명의 사진 보좌관을 두었는데, 1998년까지 재직 중이던 밥 맥닐리 보좌관이 르윈스키 스캔들의 충격으로 사직하면서 첫 흑인 여성인 사진 보좌관으로 샤론 파머가 지명되어 클린턴의 남은 임기를 재직했다.[68]
- 컬러 사진의 경우 기술은 20세기 초부터 있었지만, 신문지면 등에 풀컬러 인쇄가 시작된 것은 1980년부터이다. 그래서 풀칼라 사진을 대통령 이미지로 즐겨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로널드 레이건을 기점으로 본다. 이는 레이건의 전속 사진사이자 백악관 사진 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에반스[69] 가 처음으로 공식 사진에서도 흑백 사진 대신 컬러 사진을 즐겨 사용했던 까닭도 있다. 이를테면 마이클 에반스의 대표작이 카우보이 모자를 쓴 레이건의 공식 컬러 사진이다.[70] 물론 컬러 사진은 19세기 말부터 단계적으로 꾸준히 발전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컬러 사진으로 찍힌 대통령'을 정하는 건 의외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초대 백악관 사진 보좌관으로 케네디를 촬영했던 세실 W. 스토우톤도 당연히 종종 컬러 인화를 했다.
- 빌 클린턴 이후의 모든 미국 대통령은 병원에서 태어났다.
-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암살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시작으로 하여 제임스 가필드, 윌리엄 매킨리, 존 케네디가 암살로 유명을 달리했고, 앤드루 잭슨,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S. 트루먼,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도 암살될 뻔하다가 살아남았다. 심지어 제럴드 포드는 17일 간격으로 두 번이나 암살 시도가 있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아직 취임하지도 않았는데 암살당할뻔 했다. 이 암살 사건들을 풍자하는 어쌔신이라는 제목의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리처드 닉슨을 빼고는[72] 암살에 모두 총을 흉기로 썼기 때문에 미국의 총기규제 논란을 까는 용도로 언급되기도 한다.
12.1. 미국 대통령의 체격[편집]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뚱뚱한 순위 1위는 175kg(332lb)의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73] , 2위는 22대, 24대의 125kg(275lb)의 그로버 클리블랜드, 3위는 112kg(사망시, 238lb)의 21대 체스터 A. 아서이다. (4번째는 26대 말년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로 108kg(237lb)이다.) # 기록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뚱뚱한 몸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는지 최근의 대통령들은 뚱뚱한 사람이 거의 없다. 거구의 도널드 트럼프 조차도 236파운드(107kg) 정도다.# 그의 몸무게가 사실은 267파운드(121kg)라는 설도 있었고, 본인도 정치 활동 이후 살을 15파운드(7kg)가량 감량했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공식 몸무게는 여하간 236파운드이다.[74] 또한 빌 클린턴도 101kg로 100kg가 약간 넘는다.
- 키와 체중으로 계산한 BMI 비만 지수로도 1위는 42.3의 태프트, 2위는 34.6의 그로버 클리블랜드이다. 다만 체스터 A. 아서,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는 키가 커서 그런지 순위권밖이며 3위와 4위는 233파운드(105kg)의 25대 윌리엄 매킨리와 230파운드(104kg)의 12대 재커리 테일러이다.
- 키
-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키는 188cm였다.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키가 큰 대통령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6' 4" = 193cm)[75][76] , 두 번째는 36대 린든 B. 존슨 대통령(6' 3.5" = 192cm)과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6' 3.5" = 192cm), 가장 키가 작은 대통령은 4대 제임스 메디슨(5' 4" = 163cm)이고 그 다음으로 작은 대통령은 8대 마틴 밴 뷰런과 23대 벤저민 해리슨(5' 6" =168cm). "작은 거인(Little Big man)"이라는 칭호를 받은 해리 S. 트루먼은 172cm이다. 창작물에서 작게 묘사되는 170cm의 존 애덤스도 당시 미국인 남성 평균 키보다 컸다.
- 33대 해리 S. 트루먼의 2기 대선 상대인 공화당의 토머스 E. 듀이는 172cm로 트루먼과 키가 똑같았다. 이 선거는 트루먼이 항상 열세였고, 민주당 탈당 세력(월리스, 서몬드)이 두 명이나 출마했으며, 심지어 트루먼 본인도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으나 트루먼이 이겼다.(최후의 순간에도 듀이의 승리를 알리는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지의 역사적인 오보가 나올 정도였다)[77]
- 39대 지미 카터 이래 미국 대통령은 40대 로널드 레이건(6' 1" = 185cm)과 41대 조지 H. W. 부시(6' 2" = 188cm), 42대 빌 클린턴(6' 2" = 188cm), 43대 조지 W. 부시(5' 11.5" = 182cm), 44대 버락 오바마(6' 1.5" = 187cm), 45대 도널드 트럼프(6' 3.5" = 192cm), 46대 조 바이든(6' = 183cm) 등 미국 백인 남성 평균 키보다 훨씬 크다. 모두 여러모로 "위너". 키는 정말로 권력인 모양이다.[78]
- 실제로도 1900년대 이전까지는 상대보다 키가 작은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경우가 더 많지만(예외가 링컨 정도), 1900년 이후로는 상대보다 키가 큰 후보의 승리가 압도적이다. 참고로 1900년 이후 이런 핸디캡(?)을 두 번 연속으로 극복한 유일한 인물이 조지 W. 부시. 그 역시 180cm을 넘는 182cm다. 그리고 오바마도 재선에선 자신과 같은 밋 롬니(6' 1.5" = 187cm)[79] 에게 승리하였다. 역대 후보 간 세 번째로 키가 차이나는 트럼프[80][81] 역시 득표에선 패배했지만 선거인단에서 승리. 2020년 대선의 맞상대 바이든도 6피트(183cm)의 키로 트럼프보다 3인치 작다.
- 대표적으로 6대 존 퀸시 애덤스는 1824년 대선에서 171cm의 키로 191cm의 윌리엄 H. 크로퍼드, 185cm의 앤드루 잭슨, 185cm의 헨리 클레이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하지만 재선에 나섰을 때는 7대 앤드루 잭슨에게 패했다.
- 가장 극적인 승리는 1812년 4대 제임스 매디슨이 차지했는데, 163cm의 키로 191cm의 드윗 클린턴을 상대로 승리했다.
- 지금까지 대통령 45명의 평균 키는 5' 11"(180cm)이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영어 위키백과의 여기로.(#)
- 그 외의 외모 특징으론 수염이 있다. 초대 조지 워싱턴부터 15대 제임스 뷰캐넌까진 면도를 했으나[82] , 17대 앤드루 존슨과 25대 윌리엄 매킨리를 제외하고 16대 에이브러햄 링컨[83] 부터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까지는 연속으로 수염을 길렀다. 특히 19대 러더퍼드 B. 헤이스, 20대 제임스 A. 가필드, 21대 체스터 A. 아서, 23대 벤저민 해리슨은 제법 돋보였다. 22, 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콧수염으로 길렀으며, 아서도 같은 콧수염이지만 특이하게 구레나룻도 기른 터라 두 부분이 이어진 모양새. 이후로 말끔하게 면도한 우드로 윌슨이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태프트 모두를 꺾으면서 이후로는 모두 면도한 대통령만이 당선되고 있다.[84]
- 역대 미국 대통령은 모두 안경을 착용한 적이 있지만, 대중들에게 안경을 낀 대표 이미지로 남은 인물은 단 4명 뿐이다. 바로 28대 우드로 윌슨과 33대 해리 트루먼, 그리고 안경을 낀 이미지와 벗은 이미지가 공존하는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이다. 엄밀히 말하면 FDR의 백악관 공식 초상화는 안경을 벗고 있으니 3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12.2. 승리의 신 오하이오[편집]
오하이오 주는 당시 동부, 서부, 남부, 북부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으며 인구가 상당하여 지금도 미국의 인구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경합주(swing state)로 "오하이오 주를 제압하는 자가 대선을 제압한다"는 거의 정설화 되어있다. 1896년부터 빗나간 적은 단 세 번.[85] 사실 오하이오는 애초에 22, 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를 빼면 1860년 링컨 선거 이후 항상 대선의 승부처였다.[86] 44대 버락 오바마도 두 번 모두 오하이오 주에서 이겼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생각해 볼 때, 오랜 역사나 득표 비율과 실제 대선결과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점, 무엇보다 인구가 많다는 점(50개 주 중 7위, 선거인단 21→20명)에서 오하이오 주가 제일 낫다.
12.3. 대통령의 출신 주[편집]
출신 주는 건국 초기에는 버지니아 주 출신이 7명이 나왔고,[87] 그랜트 이후로 하딩까지 55년간 모두 7명의 오하이오주 출신 대통령이 나왔다. 오하이오 출신 대통령들은 죄다 공화당이다.[88] 이후에는 다양해졌다. 오바마는 하와이 출신으로 미국 최초의 비본토지역 출신 대통령이기도 하다.
서경 100도 너머의 서부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출신의 리처드 닉슨과 하와이 출신의 버락 오바마 2명뿐이다. 다만 서경 90도 서쪽 출신은 꽤 많은 편이다. 오바마 이전에는 아이오와 출신의 허버트 후버, 미주리 출신의 해리 S. 트루먼, 텍사스 출신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와 린든 B. 존슨, 네브래스카 출신의 제럴드 포드, 아칸소 출신의 빌 클린턴이 있다. 미국은 1850년대부터 태평양에 진출했기 때문에 서부 출신 대통령은 20세기에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후버 이전에는 켄터키에서 태어난 에이브러햄 링컨이 서경 85도 서쪽에서 태어난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링컨 사후에는 서경 85도 동쪽의 오하이오에서 대통령이 대거 배출된다. 최초로 서경 80도 서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 파인빌 출신의 제임스 K. 포크.
한편 가장 동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매사추세츠 퀸시 출신의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 두 번째는 매사추세츠 밀턴 태생의 조지 H. W. 부시. 세 번째는 매사추세츠 브루클라인 출신의 존 F. 케네디다.
가장 남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하와이 태생의 버락 오바마. 최초로 북위 30도 이남에서 태어났다. 본토만 놓고 본다면 텍사스 스톤웰에서 태어난 린든 B. 존슨. 그 외 지미 카터(조지아 주 플레인스), 빌 클린턴(아칸소 호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텍사스 데니슨), 리처드 닉슨(캘리포니아 요바린다), 앤드루 잭슨(사우스캐롤라이나 웩스호),[89] 제임스 K. 포크(노스캐롤라이나 파인빌), 앤드루 존슨(노스캐롤라이나 롤리)이 버지니아 이남인 북위 36도 이남에서 태어난 대통령들이다.
가장 북쪽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버몬트 주 페어필드에서 태어난 체스터 A. 아서. 그 외 버몬트 태생의 캘빈 쿨리지, 뉴햄프셔 출생의 프랭클린 피어스, 매사추세츠 브루클라인 태생의 존 F. 케네디, 매사추세츠 밀턴 태생의 조지 H. W. 부시, 매사추세츠 퀸시 태생의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 업스테이트 뉴욕 모라비아 태생의 밀러드 필모어, 업스테이트 뉴욕 킨더후크 태생의 마틴 밴 뷰런이 북위 42도 이북에서 태어난 대통령들이다.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로 나선 존 매케인과 세라 페일린이 둘 다 대통령이 되었다면, 파나마 미군기지에서 태어난 존 매케인은 최남단 출생(북위 10도 이남)이 되고 아이다호 샌드포인트에서 태어난 세라 페일린은 최북단 출생(북위 45도 이북)[90] 이 된다. 또 알래스카에서 태어난 대통령이라면 최초로 북위 50도 이북 태생의 대통령이 된다.
출신 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버지니아 -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제임스 매디슨(4대), 제임스 먼로(5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9대), 존 타일러(10대), 재커리 테일러(12대), 우드로 윌슨(28대).[91] 8명.[92]
- 오하이오 - 율리시스 S. 그랜트(18대), 러더퍼드 B. 헤이스(19대), 제임스 A. 가필드(20대), 벤저민 해리슨(23대), 윌리엄 매킨리(25대), 윌리엄 태프트(27대), 워런 G. 하딩(29대). 7명.
- 뉴욕주 - 마틴 밴 뷰런(8대), 밀러드 필모어(13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32대), 도널드 트럼프(45대). 5명.[93]
- 매사추세츠 - 존 애덤스(2대), 존 퀸시 애덤스(6대), 존 F. 케네디(35대), 조지 H. W. 부시(41대).[94] 4명.
- 노스캐롤라이나 - 제임스 K. 포크(11대), 앤드루 존슨(17대). 2명.[95]
- 펜실베이니아 - 제임스 뷰캐넌(15대), 조 바이든(46대). 2명.[96]
- 버몬트 - 체스터 A. 아서(21대), 캘빈 쿨리지(30대). 2명.[97]
- 텍사스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34대),[98] 린든 B. 존슨(36대). 2명.
- 사우스캐롤라이나 - 앤드루 잭슨(7대). 1명.[99]
- 뉴햄프셔 - 프랭클린 피어스(14대). 1명.
- 켄터키 - 에이브러햄 링컨(16대). 1명.
- 뉴저지 - 그로버 클리블랜드(22-24대).[100] 1명.
- 아이오와 - 허버트 후버(31대). 1명.
- 미주리 - 해리 S. 트루먼(33대). 1명.
- 캘리포니아 - 리처드 닉슨(37대). 1명.
- 네브래스카 - 제럴드 포드(38대).[101] 1명.
- 조지아주 - 지미 카터(39대). 1명.
- 일리노이 - 로널드 레이건(40대). 1명.
- 아칸소 - 빌 클린턴(42대). 1명.
- 코네티컷 - 조지 W. 부시(43대).[102] 1명.
- 하와이 - 버락 오바마(44대). 1명.
아버지 부시를 제외하면 닉슨부터 오바마까지 새로운 주들이 대통령을 배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4. 총득표수에서 패하고 선거인단 수로 승리한 대통령[편집]
선거에서 총득표수에선 패했지만 선거인단에서 승리하여 한 경우는 역대 5번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로 인해 승리한 쪽은 모두 공화당이라는 것.[103]
- 1824년, 6대 존 퀸시 애덤스(84 대 99, 4만 표 뒤짐), 앤드루 잭슨을 꺾고 승리. 애덤스는 사실 득표도 선거인도 모두 밀렸지만 잭슨이 선거인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이 경우 하원 의원이 선거인단이 되어 대통령 후보를 뽑게 되는데, 거기서 애덤스가 헨리 클레이 담합을 성공시키면서 당선되었다. 미국은 양당제 국가인지라 그 이후로는 과반 후보가 나오지 않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 1876년, 19대 러더퍼드 B. 헤이스(185 대 184, 25만 표 뒤짐), 새뮤얼 J. 틸던을 꺾고 승리. 오레건주의 선거 결과가 재검표를 할 때마다 다르게 나와서 개표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표결을 날치기해서 승리했다.
- 1888년, 23대 벤저민 해리슨(233 대 168, 10만 표 뒤짐), 그로버 클리블랜드를 꺾고 승리. 하지만 클리블랜드는 후에 다시 도전해 두 번째(24대) 임기를 맡게 된다.
- 2000년, 43대 조지 W. 부시(271대 267, 50만 표 뒤짐) 앨 고어를 꺾고 승리. 플로리다주 재검표 문제가 주대법원 재판까지 올라갔으나 결국 기각되어서 부시가 이겼다. 당시 플로리다주의 주지사가 부시의 둘째 동생이라서 재판이 편파적이라는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112년만에 제도의 불합리성이 다시 드러나 많은 미국인들이 충격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제도가 달라지지는 않았다.[104]
- 2016년, 45대 도널드 트럼프(306 대 232, 300만 표 뒤짐)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승리. 역대 사례 중 뒤진 표 수가 가장 많으면서, 동시에 선거인단 수 차이 또한 가장 많은 케이스. 힐러리 클린턴이 러스트 벨트의 주들을 다 잡은 물고기로 생각하다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12.5. 가족으로서 대통령이 된 경우[편집]
- 부자 대통령은 제2대 존 애덤스 대통령과 제6대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있다.
- 제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과 제23대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은 조손 관계이다.
-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제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먼 친척 형제 지간. 흔히 당숙과 조카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처삼촌과 조카사위 관계이다(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 부계로도 이어져있지만 12촌 지간. 사적으로 두 사람이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는 했다.
여기서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당이 다르고[105] , 부시 부자는 모두 공화당이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과 밴저민 해리슨은 같은 계보인 휘그당과 공화당이다.[106]
12.6. 임기/취임시 나이/사망시 나이[편집]
-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한 대통령은 암살당한 25대 윌리엄 매킨리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1년 9월, 당시 42세 11개월). 당선된 대통령으로 가장 젊은 나이에 취임한 대통령은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1961년 1월, 당시 43세 6개월), 3위는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1993년 1월, 당시 46세 5개월), 4위는 18대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1869년 10개월, 당시 46세 10개월), 5위는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2009년 1월, 당시 47세 5개월).
- 가장 노년에 취임한 대통령은 46대 조 바이든 대통령(취임일 기준 만 78세 2개월), 그 다음은 45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취임일 기준 만 70세 7개월), 3위는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년 1월, 당시 만 69세 11개월), 4위는 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1841년 3월, 당시 만 68세 1개월), 5위는 15대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1857년 3월, 당시 65세 10개월) 순이다.[107]
- 가장 단명한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암살당한 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 당시 46세 6개월(177일)), 2번째로 단명한 대통령으로는 역시 암살당한 49세 10개월(304일)의 20대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이다. 임기를 다 마쳤으며, 암살당하지 않고 병사한 대통령만 치면 11대 제임스 K. 포크 대통령이 53년 7개월(225일)로 가장 단명했다(전체적으로는 3위). 4위는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56세 62일. 암살), 5위는 21대 체스터 A. 아서 대통령(57세 44일)[108][109]
- 가장 장수한 대통령은 2023년 10월 1일 자로 99세가 된 39대 지미 카터 대통령.[110] 2번째는 2018년 11월 30일 사망한 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94세 5개월), 그 다음이 2006년 12월 26일 사망한 38대 제럴드 포드 대통령(93세 5개월)이고, 4번째는 간발의 차이로 2004년 6월 5일 알츠하이머로 사망한 40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당만 93세 4개월). 참고로 81세로 사망한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이후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각각 93세 졸) 대통령도 90대를 넘겼다.[111][112] 이 외에는 2대 존 애덤스 대통령과 31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90세로 각각 5, 6번째로 오래 살았다(애덤스가 후버보다 2개월 더 살았다).[113] 그 이전에는 1972년 12월 26일에 사망한 33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88세 7개월)이 5위 안에 들었다. 더 나아가 1990년대 까지는 1836년 6월 28일에 사망한 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85세 3개월)과 1826년 7월 4일 사망한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114] (83세 3개월)이 5위 안에 들었다.
- 임기가 가장 길었던 대통령은 단연 12년 1개월의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4선 대통령이었으나 4기가 시작되자마자 사망). 이후 1951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반면 가장 짧은 대통령은 딱 1개월의 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115] 그 다음은 5개월 반 만에 암살당한 가필드가 뒤를 따른다.
- FDR 이전까지는 승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당선 다음해 3월 4일이 취임식이었는데[116] , 1933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20조에 의거 FDR 재선 이후로는 1월 20일로 바뀌었다.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부터 도널드 트럼프까지 퇴임 당시 나이를 비교하면,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이 퇴임하고 난 뒤의 나잇대에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이 퇴임하는 것을 알수 있다.[117][118][119]
- 대통령이 13명 밖에 안나온 우리나라에 비하면 미국은 45명 나온거 치고 환갑을 넘겨 취임한 대통령이 얼마 안되는 편이다. 미국 대통령들중 60을 넘겨 취임한 대통령은 위에 나온 7명을 제외하고는 존 애덤스, 앤드루 잭슨,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제럴드 R. 포드 이 5명 외에는 전무하다. 다만 미국이 세워졌을 당시에는 평균 수명이 현재에 비해 높지 않았고, 이마저도 애덤스와 잭슨, 그리고 위에 나온 해리슨, 테일러, 뷰캐넌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한민국 시대에 나온 대통령들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이 4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취임식 당시에 환갑이 넘은 상태였다.
12.7. 생존 중인 전직 미국 대통령[편집]
2023년 현재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은 39대 지미 카터, 42대 빌 클린턴, 43대 조지 W. 부시, 44대 버락 오바마, 45대 도널드 트럼프까지 총 5명이다.
- 지미 카터 (1977년 ~ 1981년 재임, 1924년 10월 1일 출생, 100세)
- 빌 클린턴 (1993년 ~ 2001년 재임, 1946년 8월 19일 출생, 78세)
- 조지 W. 부시 (2001년 ~ 2009년 재임, 1946년 7월 6일 출생, 78세)
- 버락 오바마 (2009년 ~ 2017년 재임, 1961년 8월 4일 출생, 63세)
- 도널드 트럼프 (2017년 ~ 2021년 재임, 1946년 6월 14일 출생, 78세)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이 단 한명도 없었던 기간은 미국 역사상 총 5번 있었다.
- 조지 워싱턴 사망일인 1799년 12월 14일부터 존 애덤스 퇴임일인 1801년 3월 4일까지.
- 앤드루 존슨 사망일인 1875년 7월 31일부터 율리시스 S. 그랜트 퇴임일인 1877년 3월 4일까지.
- 그로버 클리블랜드 사망일인 1908년 6월 24일부터 시어도어 루스벨트 퇴임일인 1909년 3월 4일까지.[120]
- 캘빈 쿨리지 사망일인 1933년 1월 5일부터 허버트 후버 퇴임일인 1933년 3월 4일까지.[121]
- 린든 B. 존슨 사망일인 1973년 1월 22일부터 리처드 닉슨 사임일인 1974년 8월 9일까지.[122][123]
12.8. 미국 대통령의 애완동물[편집]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임기 도중 여러 동물을 키웠었다.[124] 21세기에 가까워 질수록 키우는 동물이 개나 고양이 처럼 평범하지만, 초반에는 개나 고양이는 물론, 훨씬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길렀었다. 특히 옛날에는 외국에서 외교적 선물로 받은 동물도 키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바로 동물원으로 보내졌다. 대통령이 한 연설에 대통령이 기르던 애완동물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많이 기른 동물은 개로, 최소 135마리가 있었으며, 그 다음으로 많이 기른 동물은 약 88마리의 양, 그 다음은 당나귀와 조랑말을 포함한 말 최소 49마리다.
13. 인기 순위[편집]
- 16대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대통령 업적 평가 순위에서 거의 항상 1위를 차지하며, 2위는 초대 조지 워싱턴, 3위는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4위는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5위는 3대 토머스 제퍼슨이 주로 차지한다. 쉽게 말해서 정치적 견해나 설문조사 기관, 학자 등의 전문가나 일반 시민들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러시모어 산에 얼굴이 새겨진 4명의 대통령들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까지 포함해서 5명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5명으로 인정받는다고 보면 된다.[177]
- 그 뒤를 이어 33대 해리 S. 트루먼과 34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35대 존 F. 케네디, 36대 린든 B. 존슨, 40대 로널드 레이건이 주로 10위 이내에 꾸준히 들어가는 편이며[178] 4대 제임스 매디슨, 5대 제임스 먼로, 11대 제임스 K. 포크, 25대 윌리엄 매킨리, 28대 우드로 윌슨[179] 의 평가도 비교적 상위권에 속한다. 2대 존 애덤스나 6대 존 퀸시 애덤스, 7대 앤드루 잭슨, 41대 조지 H. W. 부시, 42대 빌 클린턴은 중상위권에서 등락이 심하다.
- 과거에는 평가가 낮았으나 오늘날에 상승세를 보이며 중위권으로 올라온 대통령들도 있다. 18대 율리시스 S. 그랜트의 경우 현재는 중위권에서 등락이 심한 편이지만 20위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중간은 가는' 대통령으로는 22대 겸 24대 그로버 클리블랜드,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등이 있다. 그 외에도 8대 마틴 밴 뷰런, 20대 제임스 A. 가필드, 30대 캘빈 쿨리지, 37대 리처드 닉슨[180] , 38대 제럴드 포드, 39대 지미 카터가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 그보다 조금 아래에는 12대 재커리 테일러, 19대 러더퍼드 B. 헤이스, 21대 체스터 A. 아서, 23대 벤저민 해리슨 등이 중하위권 ~ 하위권 사이에서 등락이 심한 편이다.[181]
- 주로 남북전쟁 직전인 남북 갈등기에 재임한 대통령들이 하위권을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에는 링컨의 전임자인 15대 제임스 뷰캐넌이 대부분 최하위이며, 가끔 링컨의 후임자인 17대 앤드루 존슨이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10대 존 타일러, 13대 밀러드 필모어, 14대 프랭클린 피어스, 29대 워런 G. 하딩, 31대 허버트 후버가 하위권 ~ 최하위권을 고수하고 있다.
- 43대 조지 W. 부시는 재임 중이던 2002년과 2005년에는 각각 23위, 19위로 중위권이었지만, 퇴임 직후인 2009년 C-SPAN[182] 조사에서 42명 중 36위를 차지했다. 재임 중인 2008년의 조사에서도 37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그러나 부시도 퇴임 후에는 평가가 점차 오르고 있어 현재는 중하위권 ~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오바마 퇴임 후인 2017년에는 전체 43명 중 33위, 트럼프 퇴임 후인 2021년에는 전체 44명 중 29위를 기록하였다.[183]
- 2017년에 퇴임한 44대 버락 오바마는 비교적 호평을 받았는데, 재임 중인 2010년 시에나 대학 조사에서는 전체 43명 중 15위, 퇴임 직후인 2017년 C-SPAN 조사에서는 전체 43명 중 12위를 차지했다. 트럼프 퇴임 후인 2021년에는 전체 44명 중 10위로 상승해서 10위권 이내에 들어가기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생존한 정치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정치적 견해에 따라 찬사와 비판이 엇갈리지만, 각종 설문 조사나 업적 평가에서는 10위권 초중반대를 차지하는 편이다. 오바마는 태생부터 흑인인지라 당연히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들과 서민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지지층이 인기를 지탱하고 있다.
- 새로운 최하위권 멤버가 나타났는데, 바로 오바마의 후임인 45대 도널드 트럼프. 2018년 현역 대통령으로서 처음 명단에 올랐던 APSA, 시에나 대학 조사에서 전체 45명 중 44위, 42위를 기록하며 대표적인 역대 최악의 대통령 탑쓰리로 꼽히는 하딩, 뷰캐넌, 앤드루 존슨과 함께 최하위권에 올랐다. 2021년에 조정된 C-SPAN 조사에서도 전체 44명 중 41위에 그쳤는데, 특히 도덕적 권위와 행정력 두 가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184] 게다가 2022년 시에나 대학 조사에서도 43위에 그쳤으며, 그 뒤로는 전술한 뷰캐넌과 앤드루 존슨 둘밖에 없었다.
- 현직인 46대 조 바이든은 임기 초반에 지지율이 몹시 저조한 데다가 전임자 트럼프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어 새로운 하위권 멤버가 될 뻔했으나, 현재는 다행히 지지율을 많이 회복한 상태로, 2022년 시에나 대학 조사에서는 전체 45명 중 19위를 기록하며 약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14. 창작물에서의 미국 대통령[편집]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매튜 엘리스, 릿슨
- 메탈기어 시리즈 - 조지 시어스, 제임스 존슨
-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미국 대통령(바이오하자드 시리즈)
- 웨스트윙 - 제드 바틀렛
-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 - 마이클 듀건
- 하우스 오브 카드 - 프랜시스 언더우드
- 인디펜던스 데이,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 토머스 J. 휘트모어, 엘리자베스 랜퍼드
- 세인츠 로우 시리즈 - 주인공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퍼니 밸런타인
- Grand Theft Auto 시리즈 - 조 로턴
- Mr. President! - Ronald Rump[185]
15. 미국 해군의 함명으로서의 미국 대통령[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미국 해군은 항공모함, 전략원잠 등 전략적 초고급 함선에 역대 미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함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59년에 취역한 조지 워싱턴급 SSBN이 그 효시이다. 그 이후 함명에 사용된 미국 대통령의 이름들은 아래의 다음과 같다.
- 조지 워싱턴 (2번)
- 조지 워싱턴급 전략원잠 1번함 조지 워싱턴:1959년 취역, 1985년 퇴역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6번함 조지 워싱턴: 1992년 취역, 현역함
- 토머스 제퍼슨 (1번)
- 이튼 앨런급 전략원잠 5번함 토머스 제퍼슨: 1963년 취역, 1985년 퇴역
- 제임스 K. 포크 (1번)
- 벤자민 프랭클린급 전략원잠 6번함 제임스 K. 포크: 1965년 취역, 1992년 퇴역
- 에이브러햄 링컨 (2번)
- 조지 워싱턴급 전략원잠 5번함 에이브러햄 링컨: 1960년 취역, 1981년 퇴역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5번함 에이브러햄 링컨: 1989년 취역, 현역함
- 시어도어 루스벨트 (2번)
- 조지 워싱턴급 전략원잠 3번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1961년 취역, 1982년 퇴역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4번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1986년 취역, 현역함
- 프랭클린 루스벨트 (2번)
-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2번함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45년 취역, 1977년 퇴역
-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방공 구축함 30번함 루스벨트: 2000년 취역, 현역함
- 루스벨트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 개인만을 기리는게 아니라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까지 기리기에 함명이 루스벨트다.
- 해리 S. 트루먼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8번함 해리 S. 트루먼: 1998년 취역, 현역함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2번함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1977년 취역, 현역함
- 존 F. 케네디 (2번)
-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4번함 존 F. 케네디: 1967년 취역, 2007년 퇴역
- 제럴드 R. 포드급 핵추진 항공모함 2번함 존 F. 케네디: 건조예정
- 린든 B. 존슨 (1번)
- 줌왈트급 구축함 3번함: 린든 B. 존슨: 건조예정
- 제럴드 R. 포드 (1번)
- 제럴드 R. 포드급 핵추진 항공모함 1번함 제럴드 R. 포드: 2017년 취역, 현역함
- 지미 카터 (1번)
- 시울프급 공격원잠 3번함 지미 카터: 2005년 취역, 현역함
- 로널드 레이건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9번함 로널드 레이건: 2003년 취역, 현역함
- 조지 H. W. 부시 (1번)
-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10번함 조지 H. W. 부시: 2009년 취역, 현역함
2차대전 이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로 이렇게 3인뿐이다. 워싱턴이야 미국을 건국한 대통령이자 국부이고, 링컨은 미국의 분열을 막아냈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양대양에 걸친 미국의 제국주의 시대를 개막하며 현대 미국의 기틀을 닦아 평판이 좋다.[186]
반대로 루스벨트 이후에 현임인 바이든까지의 대통령들 중에서 함명에 쓰이지 않은 것은, 비교적 최근에 퇴임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와 현직인 조 바이든과 함께 리처드 닉슨까지 6명뿐이다. 상술한 5명은 현직이거나 퇴임한지 얼마 안되어서이기도 하고, 리처드 닉슨은 이미지가 워낙 안 좋다.[187]
16. 둘러보기[편집]
[1] 미국 대통령의 문장은 제19대 러더퍼드 B. 헤이스 대통령에 의해서 1880년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미국 대통령기는 1960년 하와이 주를 상징하는 50번째 별을 추가한 마지막 형태가 현재 쓰이고 있다.[2] 관례적으로 I와 do 사이에는 대통령 당선인 본인의 이름을 넣어서 말한다.[3] 미국에서 선서를 하는 것(to swear)은 기독교적인 색채가 강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혹은 개인적인 신념으로 인해 선서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대신 확약(to affirm)을 할 수 있다. 이는 미국 헌법에 직접적으로 기재되어 있는 권리이며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확약(affirm)으로 취임선서를 한 대통령은 프랭클린 피어스가 유일하다. 피어스 대통령은 성공회 신자였기에 루터교 색채가 강한 선서를 거부하고 확약을 선택했다고 한다.[4] 이 선서문을 다 읽고 나면 "진심으로"(So help me God.)를 말하는 것이 취임 선서의 관례이며, 이를 말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미국의 어떠한 선서에 있어서도 자유의사로 넣거나 뺄 수 있지만 초대 조지 워싱턴 이후 모든 대통령이 취임 선서에서 이 말을 함으로써 관례를 이어가고 있다. "신이여 도우소서" 로 번역하기도 하나 이는 완벽한 번역이 아니다.[5] 또한, 선서문을 완벽히 낭독하면 21발의 예포와 Hail to the Chief가 울려퍼진다.[6] 대통령 권한 행사 이전에 필수적으로 본 선언을 완독해야 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의 취임 선서 영상.[7] 해밀턴은 대통령이라는 직책 창설 아이디어가 관철되자 주 정부의 자치권도 박탈하는 강력한 중앙집권화된 정부를 추진했으나 이것은 민주공화당 쪽 정치인들에 의해 부결되었다.[8] 그러나 생각 의외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제한적이다. 미국 의회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등 미국 내 다른 기관들과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그렇지만 특히 의회가 여소야대일 경우 더욱 심하다.[9]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서 '대통령 서명' 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아주 골때린다. 입법권과 사법권을 동시에 침해할 수 있는 괴랄한 권한이다. 자세한 것은 거부권 문서로.[10] 한국 : 법률 > 대통령령, 미국 : 법률= 행정명령[11] 물론 대통령은 거부권이 있기 때문에 여소야대가 3분의 2 이상 나지 않는 이상 막기가 어렵다.[12] 연방 지방법원부터 행정명령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단, 최종결정은 연방 대법원의 몫이다. 보통 논란이 많은 행정명령은 법률심사를 통해서 지방법원에서 정지처분을 받고 대법원의 결정에 의해서 파기된다.[13] 다만, 주방위군은 주지사의 지휘를 받고 미국 연방의 모든 군 지휘는 미국 대통령이 총 지휘하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전시 상황 등 유사시에는 대통령이 주지사의 주방위군 통수권을 뺏어올 수 있다. 대표적으로 리틀록 사건이 있다.[14] 반대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의회해산권을 제외하고, 법률안 제출권과 개헌 발의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15] 제14차 수정헌법에 따라 정부 관리로 취임한 미국민이 반란이나 반역에 참여하면 다시는 정부에 진출할 수 없다. 정부 관직에 재진출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16] 즉, 외국으로부터 이주해서 시민권을 얻은 사람은 안 되지만 그 사람의 자녀가 태생적으로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대통령 자격을 비롯해 미국의 정부 주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17]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로서 큰 인기를 끌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섹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임기 말 지지율이 준수하자 "미국 헌법을 개정해서 귀화자의 대선 출마를 허용하고 대통령의 3선 금지를 철폐해서 귀화자 아놀드 슈워제네거 vs 3선 도전 빌 클린턴의 빅 매치를 성사시키자"는 말도 나왔다. 물론 헌법 개정은 인기 투표를 위한 도구가 아니므로 현실화되지 않았다.[18] 하지만 오바마가 설령 케냐에서 태어났어도 '미국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는 전제부터 애초에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태생적 미국 시민의 범위에 미국인 자녀가 포함된다고 해석할 경우 버락 오바마의 모친이 미국인이므로 오바마가 설령 케냐에서 태어났더라도 태생적 미국 시민이 된다.[19]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을 birther라고 부른다.[20] 제럴드 포드는 1974년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직을 승계 받아 2년 165일 동안 임기를 수행했고, 1976년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출마하여 재선을 노렸으나 떨어지고 말았다. 1980년 선거에서 다시 한번 도전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출마하지 않았다.[21] 실제로 경선까지 참여하였으나 존슨 본인의 건강 문제, 베트남 전쟁에서의 삽질로 인한 지지도 하락 등의 이유로 선거를 포기하였다.[22]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1912년 3선 출마를 하였지만 낙선했다. 1920년에도 출마를 결심했으나 1919년 사망했다.[23] 새벽 0시(자정)에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과 같은) 긴급상황에 대응하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어 한국도 미국처럼 정오에 임기를 마치게 하자는 논의도 제기된다.[24] 이는 미국 수정헌법 20조 1항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임기가 끝나는 해 1월 20일 정오에 끝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1월 20일 정오가 지나고 시작되는 것.[25]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내무부 장관인 Sally Jewell이 이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여 계승 순위에 들지 못하였고 그 뒤의 계승권자들의 순번이 하나씩 올라가 있다.[26] 상원 임시의장이라고 번역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상원의장과 다름없는 직위이다. 미국 수정헌법에서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겸직하게 되어 있지만, 부통령은 표결이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기에 실질적으로 상원에 출석하는 경우가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임시의장을 두고 실질적으로 하원의장과 비슷한 역할을 정해둔 것이다. 임시의장은 다수당의 최다선 의원이 맡는 게 관례로 되어 있다.[A] A B C 어느 당의 당원인지 알려지지 않았다.[27] 캐나다 출신으로, 4살 때 부모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같이 미국으로 넘어왔다. '태생적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승계받을 권한이 없다.[28] 쿠바 태생으로, 1살 때 부모가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같이 미국으로 넘어왔다. '태생적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승계받을 권한이 없다.[29] 원칙적으로 부통령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러닝메이트제로 함께 출마하고 같은 선거인단에게 투표를 받으므로 33대 해리 S. 트루먼 등의 경우에는 선거를 거친 대통령으로 판단된다.[30] 주인공이 대통령 계승 서열 13위인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인데, 의회에서 폭탄이 터져 대통령과 계승 서열 1~12위가 모두 사망했다.[31] 선출직 상원의원이 사망시, 보궐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해당 주의 주지사가 임시 상원의원을 임명할 수 있다.[32] 보통 캐딜락 원(Cadilac One)이나 더 비스트(The Beast)라는 호칭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33] 2016년 기준 행정부의 경우 부통령의 연봉은 $230,700, 장관 및 그에 준하는 공무원(Level 1) $207,500,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한 핵심참모급 $176,461 정도 받는다. 사법부의 경우 연방 대법원장은 $255,500, 대법관은 $244,400, 입법부의 상/하원 의원의 연봉은 $174,000이다.[34] 사실 링컨의 후임자인 존슨은 민주당이다. 다만 내각은 공화당이 장악한 형태다.[35] 이 시대의 정치사를 사회주의자의 시각으로 본 것이 소설 <강철군화>이다. 강철군화는 인민당이 주지사 권한을 넘겨받지 못할 것이고, 선거 역시 그럴 것이라는 대단히 냉소적인 시각을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물론 지금도 미국의 급진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이 시대는 "사회주의 혁명을 의회 쿠데타에 가까운 보수 양당의 선거제도 개악으로 저지시킨 시기"로 이해되고 있다. 실제로 선거인단 제도 등 미국 선거제도 자체가 소수당을 사표로 몰아 붙이는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36] 포퓰리스트, 포퓰리즘의 어원이 되는 정당이라고 하나, 포퓰리즘의 진짜 어원은 로마의 평민파에서 출발한다.[37] 흔히 "진보 정치사조"로 해석되는 "progress"는 여기서 유래되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국민참여당 정도가 "혁신진보" 사조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의 사조는 "사회/사민"사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란 단어 자체는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시작되었지만, progress의 의미는 이렇게 조금 복잡하다. 링컨의 반트러스트적 면모를 두고 혁신주의 사조를 링컨대까지 끌어올리는 시각도 있다. 이후에도 혁신주의는 1924년, 1948년(이 경우는, 민주당의 전직 부통령 월리스가 탈당한 경우) 대선 등에서 독자 출마로 상당한 득표력을 보인다.[38] 전체적인 남부 지역에서 골드워터에 대한 존슨의 대승으로 끝난 1964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여섯 주에서만 승리했는데, 모두 남부(골드워터의 홈 스테이트였던 애리조나 및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였다. 텍사스 주는 린든 B. 존슨의 홈 스테이트여서 민주당을 꾸준히 지지했다.[39] 미국 대통령의 공식 예우곡으로 공식 행사등에서 미국 대통령이 등장할때는 항상 이 곡이 나온다. 한국의 봉황과도 비슷하지만 봉황은 군 행사에서만 연주하고 저 노래는 어느 행사에나 쓰인다는 차이점이 있다.[40] 사실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관련 논쟁보다는 인종 관련 논쟁이 더 뜨겁게 달궈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있는 것도 있다.[41] 정확히는 루오족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 여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좀 있다.[42] 다만 이것은 민주당이 남북전쟁이라는 과오로 인해 내전 이후 당분간 찍혀있었던 탓도 있다.[43] 이전의 같은 연도 생 대통령으로는 존 퀸시 애덤스와 앤드루 잭슨, 율리시스 S. 그랜트와 러더퍼드 B. 헤이스,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그리고 지미 카터와 조지 H. W. 부시가 있다. 존 Q. 애덤스와 잭슨은 1767년 생이고, 그랜트와 헤이스는 1822년 생, 닉슨과 포드는 1913년 생이고, 카터와 아버지 부시는 1924년 생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15대 대통령인 김대중도 1924년 생이다.[44] 미국 제9대 대통령이자 그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앵글로색슨계지만 어머니 쪽이 아일랜드 혈통.[45] 심지어 케네디는 아일랜드계의 전형적 종교인 가톨릭(구교)까지 믿었다.[46] 모계쪽은 100% 부계쪽은 50%가 아일랜드계 혈통이라고 본인이 밝혔다.[47] 클린턴은 정확히는 본인이 그렇게 주장한 케이스. 앤드루 존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해리 S. 트루먼, 린든 B. 존슨,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도 부분적으로 아일랜드 혈통.[48] 이승만(제1~3대), 박정희(제5~9대), 전두환(제11·12대)처럼 2번 이상 역임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49] 예외는 윌리엄 해리슨과 제임스 포크. 해리슨은 임기 1달 후에 죽었고, 포크는 건강 문제로 재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이쪽은 퇴임 후 3개월 만에 죽은 터라 오히려 임기를 마친 것이 용할정도.[50] 대신 제일 친하게 지낸 사람은 있었는데 바로 전임 프랭클린 피어스의 최단임 부통령이었던 윌리엄 루퍼스 킹. 뷰캐넌은 그와 동거한 적도 있었고 주변 정치인들도 킹을 뷰캐넌의 배우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것 때문에 뷰캐넌을 동성애자로 추측하기도 한다.[51] 이전에는 무신론으로 되어있었으나 사실은 이신론에 가깝다.[52] 원래는 이신론이었다.[53] 아래의 토머스 제퍼슨까지 합하면 12명.[54] 그리스도의 교회였으나 이후 장로회로 개종.[55] 쿨리지까지는 공화당이었다가 트루먼부터 쭉 민주당이다.[56] 원래는 성공회였으나 1977년부터 감리회로 개종.[57] 포크만 민주당이고 나머지는 다 공화당이다.[58] 첫번째가 민주당이고 두번째가 공화당이다.[59] 첫번째가 공화당이고 두번째가 민주당이다.[60] 전부 다 공화당 소속이다.[61] 전부 다 민주당 소속이다.[62] 앞에 나온 존 애덤스와 부자지간이다.[63] 전부 다 민주당 소속이 아니다. 존 애덤스는 연방당, 존 퀸시 애덤스는 민주공화당, 밀러드 필모어는 휘그당, 윌리엄 태프트는 공화당.[64] 본인만의 성경을 만들기도 했는데,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교훈에만 집중하였다. 공식적으로는 성공회에 출석했다고 하는데, 굳이 포함시키지 않아도 성공회가 가장 많다.[65] 이 때문에 포클랜드 전쟁도 사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이길지를 결정하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칠레부터 미국의 눈치를 봤기 때문에 영국에게 자국 영공을 개방한 것이다.[66] 전임자인 케네디가 가톨릭 신자라 에어포스원에는 성경이 없었다고 한다.[67] 총 4장의 사진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마지막에 찍은 사진은 제임스 포크 대통령 내외와 백안관 앞에서 1849년에 촬영한 사진이다.[68] 그 불륜이 벌어진 당일 직후에 클린턴의 요청을 받고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영문도 모르고 평소처럼 사진을 찍었던 맥닐리는 후일 스캔들이 드러나자 큰 충격에 휩싸여,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가 증인으로 세울까봐 두려워하며 변호사와의 접견조차 거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해프닝으로 샤론 파머가 보좌관으로 영전하게 된 것도 흥미로운 점. 밥 맥닐리는 흑백사진을 주력으로 사용한 마지막 사진 보좌관이기도 하다.[69] 타임지의 사진 기자로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였던 레이건을 1976년부터 쫓아다녔고, 취임 후 4년간 사진 보좌관으로 재직했다. '레이건의 자석 같은 힘을 이길 수 없었다'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1985년 레이건의 2기 임기가 시작되면서 물러나 타임지로 복귀. 사진 보좌관 자리는 레이건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공석이 되었다.[70] 엄밀히 따지면 해당 사진은 취임 전인 1976년의 작품이지만, 워낙 유명한 에반스의 대표작이고 컬러 사진이라 같은 시기 흑백 사진들 사이에서 눈에 띈다.[71] 제임스, 존, 리처드, 허버트, 해리, 로널드, 드와이트, 프랭클린.[72] 리처드 닉슨 암살 시도는 암살범이 무려 비행기(!)를 탈취하여 백악관에 충돌시킨다는 계획을 짰는데, 다행히 탈취에 실패하고 암살범은 자살했다.[73]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태프트 대통령이 그 살 때문에 그대로 욕조에 끼었다고 한다. 백악관 관리 여러 명도 모자라 버터 한 통을 부은 다음 간신히 꺼낼 수 있었고, 이후 욕조를 교체해 현재까지도 백악관 욕조는 미 전국에서 가장 사이즈가 크다고 한다. 당시 성인 남성 3명이 들어갈 크기다.[74] 앞의 링크에는 245파운드라고 되어있지만 일단 공식 기록을 따른다.[75] 링컨은 키는 가장 크지만, 반대로 체중에서는 마른 편에 속한다.[76] 만약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가 승리했다면 공동 1위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분도 키가 193cm로 매우 크기 때문.[77] 듀이는 FDR과 대결한 1944년 대선에서 오하이오에서 승리했음에도 징크스가 빗나가며 크게 패했다. 물론 FDR의 상대로 나온 네 명 가운데는 가장 선전했다.[78] 사람들은 대체로 무의식 중에 키가 큰 사람들을 더 친절하고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같이 선 상대보다 키가 월등히 크면 상대에게 말 못 할 압박을 주면서도 보는 이들에겐 상대보다 더 긍정적인 첫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79] [80] 6피트 3.5인치(192cm)로 5피트 5인치(167cm, 2008년 대선 당시 프로필)의 힐러리 클린턴보다 8인치(25cm)나 컸다. 그야말로 머리 하나 차이. 힐러리는 2016년 대선에서 174cm로 자그마치 7cm나 크게 프로필을 수정했지만, 실제로는 8년간 나이를 먹은 만큼 167cm보다도 살짝 작아졌다는 반응이다.[81] 역대 두 대통령 후보 사이의 가장 큰 키 차이는 1860년 선거에서 193cm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163cm인 상대 스티븐 A. 더글러스보다 12인치(30cm) 큰 것이었고, 두 번째로 큰 차이는 1812년 선거에서 드윗 클린턴이 191cm로 현직 제임스 메디슨보다 11인치(28cm) 더 컸다.[82] 그나마 6대인 퀸시 애덤스가 구레나룻을 길게 기르긴 했다.[83] 다만 링컨도 처음부터 수염을 기르고 살았던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계 입문 전후에는 여느 전직 대통령들처럼 면도를 했었으나 한 소녀가 링컨에게 수염을 기르면 좀 더 인상이 부드러워질 것 같다고 제안하고, 수염을 기른 자신의 모습이 의외로 마음에 들어 그뒤로 계속 수염을 기른 것이 결과적으로 최초로 수염을 기른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낳은 것이다.[84] 이 외에 윌슨의 키는 5피트 11인치로 6피트인 태프트와 5피트 10인치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딱 중간이었다.[85] 닉슨을 이긴 35대 존 F. 케네디(1960년)와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4기 선거(1944년),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를 이긴 조 바이든(2020년).[86] 클리블랜드는 주지사를 지낸 뉴욕을 지지기반으로 승리하는 특이한 경우로, 약점인 뉴욕 주에서 패해 중간에 한 번 쉬었다가 대통령 임기를 나누어 두 번 수행한 케이스다.[87] 이후에 나온 대통령들 중에서는 우드로 윌슨이 유일하게 버지니아 출신이다.[88] 게다가 이 사이에 있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은 뉴저지 태생의 그로버 클리블랜드와 버지니아 태생의 우드로 윌슨 둘 뿐이다. 아마도 해당 시기에는 남북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게 큰듯.[89] 현재의 뷰포드로 추정.[90] 캐나다와 버몬트의 국경이 북위 45도다. 체스터 A. 아서는 아슬아슬하게 이 국경의 남쪽에서 태어났다.[91] 다만 성장은 조지아에서 했다.[92] 이들 중 윌슨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공회 신자이다. 다만 제퍼슨은 명목상으로만 성공회이고 이신론자이긴 하지만.[93] 이 중 뉴욕시에서 태어난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맨해튼)와 도널드 트럼프(퀸스)가 있다. 웃긴 게 뉴욕주는 뉴욕시 중심가는 스태튼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민주당의 세가 강하고 시골 지역은 공화당 세가 강한데 정작 민주당 소속인 밴 뷰런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북부 시골에서(킨더후크와 하이드 파크), 공화당 소속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트럼프는 뉴욕시 시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덤으로 네덜란드계 대통령인 밴 뷰런과 두 명의 루스벨트 모두 뉴욕주에서 태어났다.[94] 다만 성장은 코네티컷에서 했다.[95] 둘 다 민주당 소속이다.[96] 둘 다 민주당 소속이다.[97] 둘 다 오하이오 출신 공화당 대통령이 사망하여 대통령직을 승계한 부통령이다.[98] 다만 성장은 캔자스에서 했다.[99] 현재는 사라진 지명인 웩스호에서 태어났는데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사이에 걸친 지역이지만 본인은 사우스캐롤라이나 태생이라고 주장했다.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 출신이 아닌 최초의 사례.[100] 다만 성장은 뉴욕 주에서 했다.[101] 다만 성장은 미시간에서 했다.[102] 다만 성장은 텍사스에서 했다.[103] 존 퀸시 애덤스가 속한 민주공화당은 공화당의 전신쯤 되는 당이기도 하다.[104] 부시가 테쿰세의 저주를 피한 것이 이것 때문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105] 다만 두 루스벨트는 정치 성향은 같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공화당이 좌파에서 우파로, 민주당이 우파에서 좌파로 변하는 시기였기 때문.[106] 다만 성향은 다를수도 있다. 왜냐하면 휘그당은 보수적 성향이였고, 공화당은 19세기만 해도 진보적 성향이였기 때문이다.[107] 바이든과 트럼프가 이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1989년 1월, 당시 64세 7개월)과 12대 재커리 테일러 대통령(1849년 3월, 당시 64세 3개월)이 5위 안에 들었다.[108] 현직이었다가 암살당한 대통령들을 제외하고 퇴임 후 병사한 대통령만 포함한다면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60세 2개월), 30대 캘빈 쿨리지 대통령(60세 6개월), 18대 율리시스 S. 그랜트(63세 3개월) 대통령이 5위 내로 들어가 있다. 29대 워런 G. 하딩 대통령(57세 9개월), 25대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58세 8개월), 32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63세 2개월 17일)은 이 안에 들어가 있지만 임기 도중 각각 심장마비, 암살, 뇌출혈로 죽었기 때문.[109] 반면 역대 영부인 중 현 기준까지의 요절 최고봉은 바로 10대 존 타일러의 배우자 러티샤 타일러(생몰 1790 ~ 1842). 그 다음으로 28대 우드로 윌슨의 영부인인 엘런 윌슨. 여담으로 미국 역대 영부인 중의 인물들이 아닌 이미 남편의 대통령 재임 이전에 요절 만년 1위는 바로 3대 토머스 제퍼슨의 영부인 마사 제퍼슨(1748 ~ 1782), 이 다음으론 8대 마틴 밴 뷰런의 영부인 한나 밴 뷰런.[110] 2번째로 장수한 41대 조지 H. W. 부시보다 4개월 늦게 태어났지만, 부시 사망 이후에도 생존.[111] 한마디로 리처드 닉슨 이후에 나온 4명이 모두 90세를 넘겼다. 카터를 제외한 나머지 생존해 있는 전현직 대통령 5명(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도 모두 왕성히 활동 중이고, 의학 기술의 발달로 장수 기록은 후에 갱신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닉슨도 서거 당시 81세로, 미국 전직 대통령들 수명 치곤 장수한 편이다(장수 기록 10위).[112] 번외로 미국 역대 영부인 중 2020년까지 최장수 영부인 타이틀을 유지 중인 인물은 바로 33대 해리 S. 트루먼의 영부인 베스 트루먼. 97세에 죽었다.[113] 앞서 설명했듯이 이들보다 더 오래산 포드, 카터, 레이건, 부시 4명 모두 4연타로 1974년부터 1993년까지 쭉 재임했기에, 레이건이 90세가 된 2001년까지는 애덤스가 1위였고, 그 후로 포드, 부시, 카터 순으로 최고령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114] 상술했듯이 독립기념일에 사망하였고 몇 시간 뒤에 전자인 존 애덤스도 사망했다.[115] 취임년 4월 4일에 사망. 취임식 날 비를 철철 맞으면서 연설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특히 바이든과 트럼프, 레이건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중에 취임 최고령자였다.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거전으로 승리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런 노력이 모두 무색하게 되었다.[116] 단, 조지 워싱턴은 4월 30일 취임.[117] 퇴임 당시 나이가 젊은 순서대로 따지면, 존 F. 케네디(46세, 암살)> 빌 클린턴(54세)> 버락 오바마(55세)> 지미 카터(56세)> 린든 B. 존슨(60세)> 리처드 닉슨(61세, 사임)> 조지 W. 부시(62세)> 제럴드 포드(63세)> 조지 H. W. 부시(68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70세)> 도널드 트럼프(74세)> 로널드 레이건(77세) 순서이다. 이 대통령들의 당을 비교하면 앞에 5명이 모두 민주당 출신이고, 나머지는 전부 공화당 출신이다.[118] 아이젠하워의 전자인 민주당 출신 해리 S. 트루먼은 퇴임 당시에 68세였고, 트럼프의 후자인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은 현직 대통령인데, 이미 역대 대통령들중 가장 늦은 나이에 취임한걸 감안하면 바이든이 이 기록을 깬 것이라고 볼수 있다.[119] 다만 취임은 공화당 출신인 조지 W. 부시가 민주당 출신인 린든 B. 존슨보다 1년 더 일찍 했는데(부시 54세, 존슨 55세), 둘다 재선에 성공했으나 존슨은 케네디 암살로 승계받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120] 루스벨트의 전임자인 윌리엄 매킨리는 임기 도중 알살당했다.[121] 이 시기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당선인 신분이였다. 그리고 가장 공백이 짧았다.[122] 존슨이 죽기 1달 전에는 해리 트루먼이 사망한터라(기일은 1972년 12월 28일) 닉슨으로선 전직 대통령의 장례를 연달아 주관하게 됐다. 덤으로, 닉슨이 부통령이였던 시절 대통령이였던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닉슨 재임기에 서거해서(1969년 3월 28일 서거) 닉슨은 재임 5년동안 전직 대통령 장례를 3명이나 주관한 것이다.[123] 만약 워터게이트 사건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4년동안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이 없을 뻔했다. 왜냐면 존슨 사망일이 닉슨 2번째 임기 시작 이틀 뒤(1973년 1월 22일)였기 때문이다.[124] 후술할 제임스 포크, 앤드류 존슨, 도널드 트럼프가 유일한 예외다.[125]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에게 받은 당나귀다.[126] 워싱턴이 독립전쟁때 탔던 말들이다.[B] A B C D E F G H I J K L 종류는 불명이다[127] 조롱의 의미인진 모르지만 이름을 요크타운 전투때 상대했던 찰스 콘월리스에서 따온 이름을 붙혔다.[128] 제퍼슨은 이 중 딕이라는 흉내지빠귀를 제일 좋아했다.[129] 브리아드 종으로 추정된다.[130] 휘하 장군에게 선물받은 곰들로, 이내 자신이 키우기엔 너무 위험하고 부담이 돼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박물관장에게 넘겼다.[131] 1807년에 4마리로 시작한 순종 양들이 1808년이 돼서는 40마리로 늘어났다. 야사인지 모르지만 이중 한 숫양은 어린 남자아이를 죽였다고 한다.[132] 이 앵무새는 매디슨과 영부인보다 오래 살았다.[133] 영부인은 이 누에들이 만든 실로 비단을 만들었다.[134] 백악관에서 약 2개월동안 길렀다. 다만, 현대에 와선 아담스가 악어를 길렀다는게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135] 말도 할줄 알았는데, 욕도 배웠다. 잭슨의 장례식에도 참여했지만, 너무 시끄럽게 굴고, 욕까지 해돼서 중간에 빼버렸다.[136] 오만 제국의 술탄 사이드 빈 알 사이드가 선물한 호랑이다. 잠깐 기르다 의회에 요청에 따라 동물원에 기증했다.[137] 타일러의 두번째 아내가 대려온 새인데, 타일러에게서 이름을 따왔는지 조니 타이라는 이름을 가졌다.[138] 테일러가 전쟁때 탔던 말이다.[139] 원래 서커스에서 묘기를 하던 조랑말이었는데, 테일러가 막내딸에게 선물로 줬다.[C] A B 쿠로후네 사건이후 일본이 개항을 하자 일본에서 받아온 동물이다.[140] 원래는 크리스마스 저녁때 먹을 칠면조였지만, 링컨의 막내 아들 태드의 중재로 기르게 되었다.[141] 이중 피도(Fido)라는 개는 링컨이 암살당한뒤 몇개월뒤 술취한 행인에게 죽었다. 링컨의 영향으로 피도는 한국의 "바둑이"처럼 미국에선 흔한 개의 이름이다.[142] 이 중 올드 밥(Old Bob)이라는 말은 링컨과 인연이 깊다. 올드 밥은 일리오니주에서 링컨이 변호사 생활을 할때 원래 있던 말이 너무 나이가 들자 새로 마차를 끌기위해 사왔다. 그러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이사를 해야되자 마부에게 팔았다. 그뒤 몇년 동안 올드 밥은 은퇴 생활을 하다 1865년에 남부연합이 항복을 하자 축하 행사를 위해 미국 국기의 색의 담요를 입고 나왔다. 후에 링컨이 암살되고, 그의 장례식때 링컨의 영구마차와 링컨의 아들 로버트가 탄 마차 사이에서 행차를 했다. 장례식후 몇몇 사람들이 전시를 하기위해 올드 밥을 사고 싶어했지만, 마부는 전부 거절했다.[143] 다만 자신의 방에서 발견된 흰쥐들에게 먹이를 종종 주곤했다.[144] 이중에는 그랜트가 전쟁 당시에 탔던 말도 있고, 그랜트가 도살당할 말을 사와서 기른것도 있다.[145] 미국 최초의 샴 고양이들이다.[146] 종종 해리슨의 손주들이 탄 조그마한 수레를 끌기도 했다.[147] 미국 민요 양키 두들을 휘파람으로 부를수 있었다.[14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등장인물에서 따와 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149] 그냥 금강앵무도 아니고 현재 멸종위기에 처한 히아신스금강앵무다.[D] A B C D E F 바로 동물원에 기증되었다.[150] 에티오피아의 황제 메넬리크 2세가 준 선물이다. 루스벨트는 당대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남아있는 "하이에나는 겁쟁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빌이라는 이름의 이 하이에나를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정이 들었는지 남아있던 음식을 던져주기도 하고, 묘기도 몇가지 가르쳤다고 한다. 나중에는 루스벨트가 선물받은 사자와 함께 워싱턴의 동물원으로 보내졌다.[151] 에티오피아의 황제 메넬리크 2세가 상아 2개와 함께 준 선물이다.[152] 이 양들은 백악관 잔디 다듬는데 탁월했다. 양들의 털을 팔아서 번 돈은 적십자에 기부되었다.[153] 래디 보이(Laddie Boy)라는 이름의 개로, 최초로 신문에 등장한 대통령의 애완동물이다. 래디 보이는 백악관에서 생일 파트도 열어주고, 주요 회의때 전용 의자에 가저 앉는등 하딩이 아끼던 개다. 하딩과 영부인은 동물을 몹시 좋아했으며, 래디 보이를 마스코트 삼아 동물 학대 근절 캠페인을 벌였다.[154] 보통 미국 대통령중 많은 동물을 키운 사람 하면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생각하지만, 이 사람도 루스벨트 못지 않게 동물을 좋아했으며, 그에게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만큼 다양한 동물을 길렀다.[155] 신기하게도 워런 하딩이 키우던 에어데일 테리어와 이복형제 관계다.[156] 원래 미국 대통령의 추수감사절 만찬때 쓰일 칠면조는 호레이스 보세라는 농부가 기른 칠면조가 쓰였다. 하지만 보세가 사망하자 수많은 농부들이 자신의 칠면조를 써달라며 쿨리지에게 선물을 보내왔다. 그 선물중에는 라쿤 1마리가 있었는데, 쿨리지는 라쿤을 먹어본적도, 또 딱히 먹을 생각도 없어서 애완동물로 기르기로 했다. 이때 레베카라는 그 암컷 라쿤을 위해 영부인이 나무에 집을 지어주었다. 후에 레베카의 짝으로 수컷 라쿤 루벤을 들여왔지만, 루벤은 탈출한뒤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쿨리지의 임기가 끝나면서 백악관을 떠날 준비를 할때 쿨리지는 이 라쿤을 워싱턴 동물원에 기증했다. 하지만 라쿤은 동물원 생활을 적을 못해 금새 죽었다.[157] 빌리라는 이름의 하마는 1927년에 파이어스톤 타이어 회사의 창립자가 라이베리아에서 잡아서 쿨리지에게 선물로 줬다. 피그미 하마는 당시 미국 대중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동물이었는데, 쿨리지는 자신이 귀한 하마를 선물로 받는다고 선전했다. 쿨리지는 빌리를 포함해 많은 동물을 동물원에 기증했는데, 기증한 동물의 숫자만 루스벨트 다음으로 역대 대통령중 2위였다. 쿨리지는 수시로 동물원을 방문해 빌리와 여러 동물들을 구경했다. 빌리는 미국에 들어온 8번째 피그미 하마였으며, 워싱턴 동물원에서 금새 큰 인기를 차지했다. 빌리는 그 인기덕분에 1939 뉴욕 엑스포에도 전시되었다. 빌리는 동물원에서 두 마리의 암컷을 거닐고 살았는데, 두 마리 모두 빌리를 위해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대려온 개체들이었다. 빌리는 총 23마리의 자손을 가졌었는데, 이중 13마리가 살아남았다. 빌리의 자손들은 미국내의 여러 동물원은 물론, 런던이나 시드니같은 외국에도 보내졌다. 이 덕분에 현재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피그미하마들은 빌리의 자손들이다. 1955년, 빌리가 죽고나서 암컷들이 짝없이 지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당시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이였던 윌리엄 터브만이 미국에 수컷 피그미하마를 보내고, 그 피그미 하마는 빌리처럼 계속해서 번식을 했다. 이 수컷이 짝짓기를 한 개체중 두 마리는 빌리의 딸들이었다.[158] 부활절 선물로 받은 오리였으며, 영부인이 화장실에서 길러보려 했지만 곳 포기하고 동물원으로 보냈다.[159] 이 주머니쥐는 전임자 쿨리지의 아내가 지은 나무 집에서 생활을 시작하자 후버 가족이 애완동물로 받아드렸다.[160] 이 중 팔라라는 이름의 개는 루스벨트가 가장 좋아한 개다. 한번은 알류산 열도의 한 섬을 방문했다 팔라가 없어지자 사람을 동원해서 찾아냈다. 공화당에서 예산 낭비라고 비난하자, 루스벨트는 "팔라 연설"이라는 연설을 했는데, 연설의 내용은 "날 욕하는건 참지만, 팔라를 욕하는건 참지 못한다"이다. 이 팔라 연설은 루스벨트의 4선 당선에 어느정도 도움이 됐다고 평가받는다.[161] 한대 경찰견이였던 개로, 계속해서 사람을 물어대자 뉴욕에 있는 루스벨트의 개인 자택으로 보내졌다.[162] 케네디의 5살 딸이 기르려 했으나, 테리어와 자꾸 마찰이 생겨 결국 근처 공원에 방생했다.[163] 이 중 1마리는 아일랜드의 대통령 에이먼 데 벌레라가 선물했다.[164] 소련의 서기 니키타 흐루쇼프가 준 선물로, 소련이 우주로 보냈던 개의 자손이다.[165] 케네디가 기르던 웰시 테리어와 러시아 개의 자손들이다.[166] 존슨이 비글 중 한 마리를 귀를 잡고 들어올린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몇몇 동물 애호가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이 논란에 대해 독설가로 유명했던 해리 트루먼은 "왠 난리냐. 개는 원래 저렇게 다룬다.(What the hell are the critics complaining about; that's how you handle hounds.)"라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 비글은 대통령 리무진에 치어죽었다.[167] 유키라는 이름의 개로, 존슨과 울음소리 내는걸 좋아했다.[168] 체커스(Checkers)라는 이름의 개로, 닉슨이 딸들에게 받은 선물이다. 닉슨은 1952년 아이젠하워의 부통령으로 일 할 당시 비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적이있는데, 이때 텔레비전에 출연해 비자금을 받았다는걸 부인하며 "내가 받은 거라곤 이 개밖에 없으며, 이건 절대 돌려줄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연설을 개의 이름을 따와 체커스 연설(Checker's speech)라고 부른다.[E] 부모 자식관계다.[F] A B 백악관에서 키우진 않고 켈리포니아에 있는 레이건의 별장에서 키웠다.[169] 클린턴이 기르던 개 버디(Buddy)와 고양이 삭스(Socks)는 사이가 어찌나 좋지 않던지 클린턴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중재하는게 저 둘을 중재하는것 보다 쉽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 둘을 주제로 아이들을 위한 책도 썼다.[170] 아버지가 기르던 스파니엘의 자손이다. 스포티(Spotty)라는 이 개는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일 시절 백악관에서 태어났는데, 그로 인해 2명의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산 애완동물이 되었다.[171] 이 중 한마리는 부시가 아내에게 2005년에 생일선물로 준거다.[172] 백악관에서 기르지는 않고 부시의 목장에서 길렀다.[173] 원래 오바마 가족은 애완동물이 없었으나, 오바마는 딸들에게 백악관으로 이사를 하면 개를 기르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말리아 오바마에게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알레르기가 심하지 않은 개를 찾다 포르투갈 워터 독을 골랐다.[174] 이 중 한마리는 자꾸 사람을 물어서 델라웨어의 지인에게 보내졌다.[175] 펜슬베니아의 행사때 무대위로 뛰어올라오자 대려가 기른 고양이다. 바이든의 머리위에서 종종 잠을 잔다고 한다.[176] 왼쪽부터 초대 조지 워싱턴, 3대 토머스 제퍼슨,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1927년에 시작되어 1941년 완성된 이 조각은 당시 재임 중이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제외하고 미국 국민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린 대통령인 링컨, 워싱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제퍼슨이 새겨졌다. 만약 이 산이 적어도 10년, 늦어도 25년 정도 늦게 착공되었다라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도 새겨졌을 가능성이 높았다.[177] 물론 링컨을 제외하면 모두 비판할 점이 없지는 않다. 조지 워싱턴은 당시에는 합법이라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비판받지만, 그의 위상 때문에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4선 관례나 불륜 스캔들과 같은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였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대한제국의 한일병합에 앞장섰던 적이 있어 자국인들이라면 모를까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좋게 볼 수 없는 사람이다. 제퍼슨 또한 사생활 논란이나 남북전쟁을 일으킨 계기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점에서 욕을 좀 먹지만, 솔직히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고, 세계 경제가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갔을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이들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을 뿐, 이들이 세운 업적 또한 무시무시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점들은 덜 언급된다.[178] 대부분 제2차 세계 대전과 그 이후에 나온 대통령들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편이다. 게다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부터 린든 B. 존슨까지 5명 연속으로 10위 이내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아이젠하워와 트루먼은 2017년과 2021년에 조사된 C-SPAN의 미국 대통령 업적 평가에서 제퍼슨을 제치고 각각 5위,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179] 윌슨은 과거에는 10위 이내에 포함될 정도로 평가가 높았지만, 현대에는 백인우월주의자 의혹이 생겨나며 일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비판받고 있는 추세이다.[180]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사임 8년 후인 1982년 M-B 조사에서 전체 36명 중 34위를 기록했지만, 이후로 대통령은 늘어나는데도 등수는 조금씩 올라가는 중이다. 현재는 후임자들인 제럴드 포드와 지미 카터보다 약간 낮지만, 중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181] 이들 중 1~2명 정도는 뒤에서 10위 내에 들어가기도 한다.[182] 미국 국내 유선 종합편성채널 중 하나로 미국 상원, 하원 의정 활동 실황 및 미국 내 정책연구기관이 주최하는 국내외 정책 현안 관련 토론회 등을 방송한다. 아울러 대학교 교수들과 국내 정책 대담 및 학술회도 방영한다.[183] 뉴스 영상에서는 21위라고 나와 있는데, 이건 보도가 잘못된 것이며, 그의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가 21위이다.[184] 그 뒤로는 남북 갈등을 고조시킨 피어스, 최초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앤드루 존슨, 남북전쟁을 막지 못한 뷰캐넌 단 3명 뿐이었다.[185] 누가봐도 도널드 트럼프인 가상의 인물. 플레이어는 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186] 2차대전 이전의 대통령들 중에서, 새롭게 함명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토머스 제퍼슨과 율리시스 S. 그랜트, 우드로 윌슨 정도 있겠다. 이들 중에서 그랜트는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는' 좋지가 않지만, 남북전쟁의 영웅이기 때문이다.[187] 하지만 닉슨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외교적인 업적과 평가가 올라가고 있어서, 추후에는 쓰일 수도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