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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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 대한민국의 법조인
- 대한민국의 판사
- 대한민국의 변호사
- 마산합포구 출신 인물
- 1951년 출생
- 광주 이씨
- 경상남도 부지사
- 제16대 국회의원
- 제17대 국회의원
- 제18대 국회의원
- 제19대 국회의원
- 제20대 국회의원
- 대한민국의 판사 출신 변호사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새누리당 국회의원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 대한민국 국회부의장
- 해양수산부장관
- 여의도연구원 원장
- 박근혜 정부/인사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관련 인물 및 단체
- 법조인 출신 정치인
- 판사 출신 정치인
- 판사 출신 변호사
- 변호사 출신 정치인
- 경기고등학교 출신
- 서울대학교 출신
- 국민의힘 소속
- 공군 출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
2. 생애[편집]
2.1. 장관 이전[편집]
1951년 9월 30일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고등법원 판사,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지낸 후 변호사가 되었다. 이 동네 정치인 치고는 드물게 마산고등학교나 마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 아니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재직 당시에는 김보은 양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맡았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딸이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인데 살인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파격적으로 관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훗날 가정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하여 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 을 [3]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황낙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김태호 경상남도지사 밑에서 정무부지사를 역임하였다.
2006년 김정부 의원의 당선 무효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수석정책조정위원장을 맡다가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자 정책위의장에 올랐다.[4] 이후 김형오 원내지도부의 임기가 끝나면서 물러났다. 이 시기가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있었기 때문에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당 지도부에 있어 친박, 친이 양 쪽 진영에 속하지 않았다. 후일 원내대표 - 정책위의장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 황우여 의원(당시 당 사무총장)도 그런 이유에서 계파색이 없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5]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한나라당 경남도당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2011년부터 황우여 원내대표의 런닝메이트가 되어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한 번 더 지냈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6]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3년 4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여의도연구원장을 맡았다.
2.2. 해양수산부장관[편집]
박근혜 대통령 집권 후, 유독 구설수가 많던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이 결국 물러나고 그 후임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2014년 2월 12일 장관에 지명되어 3월 6일 취임. 사실 아주 뜬금없는 인사는 아닌데, 정치인 이주영의 주요 후원처 중 하나가 바로 마산 어시장 상인회이기 때문이다.[7]
다선의원이지만 존재감이 없던 이주영 장관이 전국구급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취임 이후 한 달만에 터진 세월호 사건 당시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유족들을 위로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주영 전 장관 "팽목항 200일, 죄인 된 심정으로 임했다" 사고가 터진 날 이후부터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아서 흡사 도인 같은 외모로 변했음에도 사표를 제출하고 수리하는 그해 연말까지 이를 계속 유지했다.[8] 국회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에 장관 자격으로 출석보고를 해야 했던 관계로 장발은 유지한 채 수염을 정리했다.
원래 이런 대형사고가 터지면 문책성 인사로 책임자가 사의를 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9] , 이주영 장관은 사고를 수습한 후 사의를 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고 기간 동안 사고대책본부가 있던 진도 팽목항에 계속 거의 살다시피 했으며, 유가족들과 자주 접촉하며 사고를 수습하려 노력했기 때문에 본인의 보수적 정치성향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정부 및 정권을 거세게 비판하는 측에서도 정작 주무부처 장관인 이주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적었다. 심지어는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도 그의 행보에 인정했을 정도. 초기엔 곧 사표가 수리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그의 진정성 있는 태도에 유가족회의서 오히려 그의 유임을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에 사건 수습이 마무리되면서 사표가 수리되었다.
2.3. 장관 사임 후[편집]
2015년 초,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 도전했지만 유승민에게 아쉽게 패배하였으며 2017년에 또다시 원내대표에 도전했으나 한선교 의원으로 단일화가 이뤄지며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다시금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선거구에서 여당 단독후보로 공천되었으며 본선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7월 3일 당대표에 출마했다. 그러나 이정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언론에서는 친박계(신박)으로 보나, 나라 망신이 터진 후 대통령 탄핵이 필요성이 있으면 제기하면 된다든가 새누리당/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의 목록엔 없는 점으로 보아 게이트 이전, 혹은 그 이후에 탈박인 것으로 추정. [10] 친홍계로도 분류되기도 하였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과거부터 인연이 있었고,[11] 19대 대선 때 홍준표 지지 선언을 하고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낙선 후 홍준표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해서 독선적이라며 가장 나서서 비판하기도 하여서 완전히 친홍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러면서도 친홍과 비홍 사이의 중재에도 힘썼다. 협조할 것은 하면서도 비판할 건 하는 사이인 듯. 초, 재선 의원들이 계파색이 다소 옅은 의원으로 지목하였음으로 당내에서는 무계파로 보는 듯하다. 실제로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거 때는 본래 독고다이인 나경원, 친박에서 탈박한[12] 한선교와 같이 중립진영을 표방하기도 했다.
2018년 4월 30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11월 29일 수정가결되었다.
2018년 7월 12일, 원구성 협상에 따라 자유한국당 몫으로 돌아간 국회부의장 자리를 두고 같은 당 정진석 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했다. 13일 본회의 투표를 거쳐 정식 취임했다.
2.4. 2020년 이후[편집]
2020년 3월 5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 경남을 지역구로 삼는 4선 김재경 의원(경남 진주시 을), 재선 김한표 의원(경남 거제시) 등과 함께 컷오프되었다.
컷오프 직후 공정한 경선의 기회조차 배저해버린 기준 없는 공천에 반발, 납득할 수 없다며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으나 이후 대의를 위해 불출마 선언하였다.
이후 본업인 변호사로 복귀하였다. 아들이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명재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은 국회의원 사무실을 그대로 쓰고 있다.
2021년 6월 사단법인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총재로 선임되었다. #
2021년 9월 김석준, 나경원 전 의원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아 자유와 공정포럼을 출범시켰다. 산하에 13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대선공약을 개발하여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한다. #
2022년 6월 1일 예정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유력한 국민의힘 경남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인 2022년 3월 15일 경상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경선부터 박완수와 대결해야 하며, 결국 4월 22일 경선 결과 박완수 의원에게 밀리면서 탈락하였다. 창원시 의창구 지역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아직 남았지만 비슷한 처지이던 김영선 전 의원, 김종양 전 인터폴 총재와의 경선이 아직 남아있다.[13]
이후 불출마 선언을 했고 의창구 재보선은 김영선 전 의원이 공천을 받고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5. 논란[편집]
- 2015년 8월 일부 변호사들이 딸이 외부 공고 없이 단독 채용 절차로 네이버 사내 변호사로 채용되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
- 2019년 9월 27일 국회 대정부질문 정치분야에서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문희상을 대신해 의사진행을 맡고 있었는데, 자유한국당의 긴급 의총 요구로 정회를 선언하였다. 원래 정회는 국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의장이 단독으로 정회할 수 없으며 여야 교섭단체와 합의한 이후에만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후 문희상 의장이 돌아와 위와 같이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넌지시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다.
6. 여담[편집]
7. 둘러보기[편집]
[1] #[2] 문경공파 24대손.[3] 현재의 창원시 성산구 선거구.[4] 직무대행을 맡다가 의원총회에서 전재희 정책위의장의 잔여임기를 맡는 정책위의장이 되었다.[5] 이 것이 정치적 자산이 되어 황우여 의원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되어 입각했고(물론 이 쪽은 대선 당시의 당 대표였기 때문에 보상의 성격도 있었다.) 이주영 의원은 해양수산부장관이 되어 입각한다.[6] 마산, 진해, 창원이 합쳐지면서 예전에 쓰던 합포구 명칭에 마산이 붙게 되었다.[7] 의원 사무실부터가 시내 쪽이 아닌 해안도로변 어시장 바로 옆에 있다.[8] 재미있게도 2019년 조국 사태 당시에는 이와 반대로 심재철 의원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삭발을 하였다. #[9] 그래서 정홍원 국무총리부터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대통령의 만류로 인해 사건 수습이 얼추 끝날 때까지 유임되었다. 물론 이후 총리 구인난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정홍원 총리는 임기가 늘어나고 말지만....[10] 다만 탄핵 절차의 하자 지적을 위한 논의에 참여한 적은 있었다. [11] 이 둘은 1984년에 각각 청주지방검찰청과 청주지방법원에서 일했기 때문에 안면이 있었다.[12] 사실 한선교 자체는 박근혜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듯 한 행보를 보여주었기에 탈박보다는 소위 말하는 주류 강성 친박과의 결별이라 보는 것이 맞다.[13] 본래 이주영 전 의원은 창원시 을(성산구)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이 있다. 만일 공천을 받고 당선될 경우에는 창원시내에서만 지역구를 2번 옮긴 것이 된다.[14]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15]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16]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7] 전임자 김정부 의원직 상실[18]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19] 상술된 채용논란을 보면 딸 한명도 변호사인걸로 보인다.[20] 이재희 변호사는 프라임법학원에서 '경만헌법'이라는 책도 내고 경찰간부 헌법 강의를 하기도 했다# 로톡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변호사협회의 로톡 징계 사건에서도 변호사모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