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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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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2. 생애[편집]
1925년 1월 16일 경상북도 문경군(現 문경시) 산양면 현리에서 아버지 채홍희(蔡鴻僖, 1894. 11. 27 ~ 1976. 1. 12)와 어머니 인동 장씨(1903. 5. 30 ~ 1990. 4. 24)[4]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산북공립보통학교(현 산북초등학교), 사립 중앙중학교(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4월 경성제국대학 예과(제19회, 문과)에 입학했다.
경성제국대학에서 대학예과 과정을 수료한 1944년 10월, 좌익 서적을 탐독한 혐의를 받고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고, 이후 1년 후배들(예과 20회[5] )과 함께 1945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로 진학하여 재학하던 중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인 1948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같은 정치학과 학생이었던 박준규[6] 와 함께 반탁 우익 운동을 하였다.
서울대학교 졸업 이후인 1950년 영남일보 논설위원, 1952년 문경군수, 선산군수, 1953년 경산군수, 1960년 명지대학교 교수 등을 지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병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동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고흥문 계보에 속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문경군-예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황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4년까지 신민당 대변인을 역임했고 같은해인 1974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구범모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한 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으로 신군부에 협력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김기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국회부의장을, 1983년부터 1985년까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반형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초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되었고, 같은 해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과반수 의석 확보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위원직을 사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때는 민주자유당 내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후보가 선출되자 불만을 품고 탈당하여 이종찬의 새한국당 창당에 참가했다. 선거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여 고려중앙학원(고려대학교 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녹조 · 소성훈장과 수교훈장 광화대장, 국민훈장 모란장 등 다수의 상훈을 받았다.
2010년 6월 26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영결식은 29일 오전 국회 잔디광장에서 국회장으로 거행됐다.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인천채씨대동보 권6 227쪽에는 5월 26일생으로 오기되어 있다.[2] #[3] 소감공파(少監公派)-졸재공파(拙齋公派) 30세 식(植) 항렬.[4] 장한탁(張漢卓)의 딸이다.[5] 1943년 4월 입학, 1945년 3월 수료 후 학부 진학.[6] 전 국회의장인 그 분 맞다.[7] 문경군[8] 문경군[9] 문경군, 예천군[10] 민주공화당 황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11] 민주공화당 구범모 후보와 동반 당선[12] 문경군, 예천군[13] 한국국민당 김기수 후보와 동반 당선[14] 후반기 국회의장[15] 문경군, 예천군[16] 신한민주당 반형식 후보와 동반 당선[17] 제5~6대 국회의원 선거벽보는 확인 되지 않고 있다. 이는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벽보 보존의 필요성을 못 느껴 선거벽보를 보존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으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비롯한 1950년대 부터 정치를 시작한 원로 정치인들의 선거벽보 상당수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18] 국민의당(1963년)과 합당[19] 민정당과 신설 합당[20] 신한당과 신설 합당[21] 3당 합당 합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