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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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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대 국회의원에 대한 내용은 맹성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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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
2. 생애[편집]
1946년 8월 9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서울청운국민학교, 경복중학교, 경복고등학교(39회),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연합통신에서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국민일보 워싱턴 특파원을 거쳐[1] 1991년 SBS가 개국하자 SBS로 자리를 옮겨 SBS 8 뉴스의 초대 앵커를 역임하였다. [2]
1995년 9월 18일까지 SBS 8 뉴스를 진행한 후 다음날 9월 19일 민주자유당 서울 송파구 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내정되어[3] 앵커직에서 물러나고 SBS를 퇴사했으며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 송파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김진명, 통합민주당 후보 김종완을 꺾고 당선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대변인에 임명되어 1999년까지 역임했고 1999년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송파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5년까지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위원장직에서 사임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임하고 경선에 출마하였다. 사실 당내 경선에서는 굳이 의원직을 사퇴할 필요가 없으나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로 사퇴한 건데 오세훈에게 밀려 경선에서 패하고야 말았다.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하고 홍준표와 경쟁중이었는데 열린우리당이 공천한 강금실에게 둘 다 여론조사상으로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당시 한나라당은 16개 광역단체장 중 호남 3곳 + 대전[4] 을 제외한 전승을 노렸는데 서울에서 강금실에게 뒤지자 잠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있던 오세훈을 급하게 불러들인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일반적인 혐오감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자신의 국회의원직 사퇴로 치러진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다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본인도 "내가 사퇴한 지역구에 내가 출마해서 표 달라는게 말이 되냐"며 출마를 극구 사양했는데, 한나라당이 공천한 후보 정인봉[5] 에 대해 기자 성접대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황이 코미디처럼 흘러갔다. 부랴부랴 정인봉을 공천 취소한 당 지도부였지만 공천 마감까지 시간이 얼마 안남아 이대로 가다간 후보를 못내서 의석을 헌납할 상황에 놓였고, 결국 다른 사람 찾을 여유가 없어서 맹형규를 찾아가 제발 좀 출마해달라고 사정한 것이다. 때문에 맹형규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선거 때 국고지원 선거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았다. '맹형규 파동' 이후 국회에서는 재보궐 사유를 제공한 당사자가 해당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막는 법을 통과시켰는데, 속칭 '맹형규법'이다. 때문에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자유선진당 박상돈은 낙선 + 의원직만 날리면서 그의 천안시 을 선거구는 재보선에서 빙그레 회장 김호연(한나라당)이 차지해버렸으며, 2020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천안시장에 당선되기까지 무려 10년을 야인으로 보내야 했다. 그리고 같은 선거의 이계진, 4년 후의 정몽준, 이용섭[6] , 박성효, 김진표, 윤진식이 낙선했다.[7]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국민의당 안철수 역시 낙선+의원직만 날렸으며[8]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에서 경기 성남 분당 갑에 당선될 때까지 5년간 야인 생활을 해야했다. 2021년에도 이낙연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경선에서 탈락하였다.[9][10] 그리고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김은혜, 이광재가 낙선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 친박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당이 중심이되는 모임'을 결성하여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그러다가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인수위원으로 발탁돼 활동했으나[11] 정작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12]
이후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과 대통령 정무담당특보를 맡았고, 2010년부터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끝난 2013년까지 행정안전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로는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아 사실상 은퇴로 여겨지고 있다. 2018년 3월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당시 논현동 이명박 자택을 찾았다. 이듬해 이명박이 보석으로 풀려났을 때도 구치소 앞에서 마중나온 적도 있다.
친이계 중진답게, 2022년 1월 24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전직 국회의원들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
2022년 2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 선언을 한 대한민국 헌정회원 중 31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국민일보 특파원 재직 당시 MBC 워싱턴 특파원 이득렬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2] 원래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에서 취재 활동을 하다 메인 뉴스 앵커로 발탁된 후 급거 귀국 8뉴스 앵커이자 보도위원이 되었다. 후임 워싱턴 특파원은 훗날 전주방송 초대 사장을 지낸 TBC, KBS 출신 백낙천이 맡았다.[3] 1995년 7월에 입당 제의를 받고 1995년 9월 30일까지만 뉴스를 진행하고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발표를 하는 바람에 다소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로 3년 10개월 간의 앵커 생활을 마감했다.[4]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염홍철이 너무 강력해서 반포기상태였는데 대전은요? 사건으로 이겨버렸다.[5] 종로구가 기반이었던 정치인 겸 법조인이다. 13~14대 총선, 보궐선거에서는 연거푸 낙선했으나 16대 총선에서는 당선되었다. 이후 2002년에 2년 만에 의원직을 잃었다가 다시 피선거권이 회복되어 송파구 갑에 재보궐선거 공천을 받은 상황이었다.[6] 정확히는 단일화로 인해 정식 후보로 나서지는 않았다.[7] 그나마 이용섭은 다음 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으로 당선되었고, 김진표도 2년 후 총선에서 신설된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8] 이듬해 열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바른미래당 당적으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으며 같은날 열린 재보궐선거에서 그의 서울 노원병 선거구는 노원구청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성환이 당선되었다.[9] 그의 종로구 선거구는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지낸 국민의힘 최재형이 당선되었다.[10] 참고로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대통령 선거 출마 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아도 된다.[11] 이 시기부터 친이계에 가까운 행보를 시작한다.[12] 사실 18대 총선은 친박계의 공천학살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범친이계에서도 맹형규를 포함해 중진이었던 박희태, 김덕룡, 정형근, 권철현 등이 대거 낙천되었다.[13] 2006년 1월 31일 사퇴
(서울특별시장 출마)[14] 전임자 맹형규 본인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 사퇴[15] 17대 국회의 보궐선거이다. 따라서, 17대 총선 당선과 2006년 상반기 보궐선거는 똑같은 17대 국회의 선거이므로 국회의원 당선증이 두 장이더라도 의원 선수는 하나만 올라간다. 유사한 사례로 같은 당의 유승민이 있다. 유승민은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후 비례대표 사표를 내고 대구 동구 을 재보선에서 당선되었는데, 똑같은 17대 국회의 선거들이므로 의원 당선증이 두 장이더라도 의원 선수는 하나만 올라간다. 실제로 유승민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5번 당선되었으나 이 사유로 4선 의원으로 취급된다.[16]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17]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
(서울특별시장 출마)[14] 전임자 맹형규 본인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 사퇴[15] 17대 국회의 보궐선거이다. 따라서, 17대 총선 당선과 2006년 상반기 보궐선거는 똑같은 17대 국회의 선거이므로 국회의원 당선증이 두 장이더라도 의원 선수는 하나만 올라간다. 유사한 사례로 같은 당의 유승민이 있다. 유승민은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후 비례대표 사표를 내고 대구 동구 을 재보선에서 당선되었는데, 똑같은 17대 국회의 선거들이므로 의원 당선증이 두 장이더라도 의원 선수는 하나만 올라간다. 실제로 유승민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5번 당선되었으나 이 사유로 4선 의원으로 취급된다.[16]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17]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