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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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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법조인(검사,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48년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에서 태어났다. 대구삼덕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경북고등학교(48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2기로 수료했다. 이후 검사로 근무하면서 박철언과 가까운 선후배 관계로 지냈다.
3. 정치 활동[편집]
박철언의 사조직인 월계수회 계보로 정계에 입문하여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을 지지하면서 박철언과 결별하였다. 1993년 민주자유당 대변인,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민주연합 최운지 후보와 무소속 서중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 3선 의원이 되었고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이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당 위원장을 맡으면서 이해봉의 권유로 박근혜를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시켰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구 갑 선거구와 서구 을 선거구가 합구되면서[3] 서구 단일 선거구에 출마했으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당 대표로서 공천 파동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했다.[4]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손학규 후보에게 근소하게 역전패당하면서 낙선, 정치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낙선을 기록하였다. 이 사건은 일명 '분당대첩'이라고 불리며 당시 정치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공식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정계 입문 이후 당적을 변경하거나 탈당한 적은 한 번도 없고, 정계 은퇴 상태인 현재도 탈당하지 않고 국민의힘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3.1. 비판[편집]
-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7년에 문화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 '조철봉'을 언급하면서 "조철봉은 요즘에 왜 섹스를 안 하냐? 예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은 하더니만 요즘은 한번도 안하더라", "오늘은 할까, 내일은 할까 봐도 절대 안 하더라", "그래도 한 번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너무 안 하면 흐물흐물 낙지 같아진다" 라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
3.1.1. 지나친 지역구 홀대[편집]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은 대구광역시 서구에서 그것도 내리 4선을 하면서 심각한 수준으로 지역구를 홀대했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 서구에서 출마할 당시까지만 해도 서구는 대구직할시에서 인구 수 40만의, 대구직할시 자치구 중 인구 수 1~2위를 다투는 곳이었으며 달서구 신설 후 쇠퇴가 진행 중이었기는 하나 지금만큼 낙후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계속 성장, 하다못해 현상유지라도 하는 대구광역시의 다른 자치구들과는 달리 서구는 아파트단지도 들어서지 않고 도시철도 노선 역시 2호선과 3호선 모두 서구를 스쳐가고, 산업단지도 쇠퇴해가며 낙후가 가속화되면서 16대 총선부터는 갑/을 2개였던 국회의원 선거구 역시 1개로 통폐합되고, 자살률, 범죄율 등 부정적 지수만 대구에서 최상위권일 지경에 이르었는데, 이 같은 사태의 책임에는 서구에서 내리 4선을 한 강재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5] 결국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종현 경북대학교 교수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후 지역구를 성남 분당구 을로 옮겨 출마하게 된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당시엔 15년 분당 토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8] 이 때문에 대구에서는 서구에서 내리 국회의원 4선을 지내면서 지역구를 홀대하기까지 했던 사람이 분당 토박이 운운한 것에 대해 분노가 꽤 극심했다. 오죽했으면 이 당시 대구 서구 주민 중 일부는 분당까지 올라가 낙선 운동을 했을 정도.
이런 전례가 있어서인지 현재 서구 지역구의 김상훈 의원은 일단 고향부터 서구이며, 서구에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막내 아들도 서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서대구역 신설, 평리뉴타운 재개발 등 지역구 관리에도 신경쓰고 있다. 그 덕에 비박 현역 의원이 대거 컷오프되었던 20대 총선에서도 김상훈은 경선에서 친박 윤두현 청와대 전 홍보수석을 꺾고 공천을 받았다.[9]
4. 여담[편집]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직후 나왔던, 이명박의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 드립의 대상이 바로 강재섭 대표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 2022년 2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 선언을 한 대한민국 헌정회원 중 31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5. 소속 정당[편집]
6. 선거 이력[편집]
7. 관련 문서[편집]
- 법조인/목록
- 정치인/목록
-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 - 위에 언급했듯이 그 드립의 대상이 바로 강재섭 대표다.
8. 둘러보기[편집]
[1] 김수한 前 국회의장과 고향이 같다.[2] 2011년 재보궐 당시 공보물 참조[3] 서구 갑 한나라당 현역의원이었던 백승홍은 중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17대 총선에서는 다시 서구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나 낙선했다.[4] 지역구인 대구 서구에는 이종현 경북대학교 교수가 벼락공천을 받았으나 친박연대 홍사덕 후보가 당선됐다.[5] 당만 보고 몰표를 보내준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최소한 대구의 다른 국회의원들은 이 정도로 지역구를 홀대하지는 않았다. 당장 똑같이 서구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백승홍만 봐도 중리동 퀸스로드 자리에 있던 도축장을 북구 검단동으로 이전시켰고, 중리주공, 신평리주공 고도제한을 해제하여 두 아파트의 재건축에 기여하는 등 지역구 관리에 꽤 신경썼으며 경부고속도로 확장을 비롯한 대구광역시 전체의 현안까지 신경썼다.[6] 당초 강재섭 본인이 공천을 받아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공천 파동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하여 이종현 교수가 공천을 받은 것이다.[7] 그런데 강재섭 본인이 출마했어도 친박 성향의 다른 정당들이 후보를 내지 않았거나 친박 성향의 무소속 후보가 불출마한 경우면 몰라도, 친박 성향인 홍사덕의 출마와 지나친 지역구 홀대로 인한 심판론 때문에 어차피 강재섭 본인이 당선될 확률이 낮았다.[8] 다만 강재섭뿐만이 아니라 비수도권을 지역구로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대다수는 자신의 지역구에 전세 혹은 월세로 거처를 구해 주소지만 옮겨놓고, 의정 활동 등을 이유로 서울 혹은 수도권 지역에 자택을 소유하고 거기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유승민(대구 동 을), 박지원(전남 목포) 전 의원 역시 각각 서울 개포동과 여의도에 자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저렇게 지역구를 옮기고 토박이 운운하는 마케팅이 문제지.[9] 윤두현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경산시로 옮겨 당선된다.[10]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11]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12]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3] 6번의 선거 중 첫 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