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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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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安東 權氏
안동 권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먼저 권씨(權氏)는 본래 김씨(金氏)로 신라의 김씨 왕실에서 분관[A] 하여 고려 태조에게 권씨(權氏)를 최초로 사성[B] 받아 김씨(金氏)에서 권씨(權氏)로 환성[C] 한 성씨이다. 시조는 당시 고창(古昌)[6] 에서 별장을 지낸 태사공(太師公) 권행이다. 본래 신라의 왕성(王姓)인 경주 김씨였으며, 본명이 김행이다. 신라 추존 국왕인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이고, 김알지 계열 성씨이다.
경순왕 원년 (927년 11월) 후백제의 군주인 견훤(甄萱)이 경애왕을 조롱하며 왕비를 능욕했으며, 후에 경애왕을 주살하게 하자, 이에 격분한 삼태사(三太師) 권행(權幸),[7]김선평(金宣平),[8]장정필(張貞弼)[9] 인물들이 고창 전투에 참전해 크게 승리를 거두자, 고려 태조가 "동쪽을(東) 편히(安) 했다."라는 뜻으로 당시 고창군(古昌郡)이였던 지역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하고 고려 창업에 공(功)을 세워 고려 태조(太祖) 세력에게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라는 작위를 받고, '능병기달권(能炳幾達權)'하다는 뜻으로 권씨 성을 사성(賜姓)받았다. 이것이 안동 권씨의 시초(始初)이다.
고려•조선 당시에 양반가하면 손에 꼽히는 가문이다. 고려때엔 고려 삼한공신(三韓功臣)에 들어가는 문벌 귀족 태사가문이였고, 조선에선 과거 제도(科擧 制度) 시험에 문과 368명, 무과 261명을 배출했다.#1#2 문과 급제자 배출 순위 전체 2위[10] 인 기록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11] 로 가면서 안동 김씨(安東 金氏)의 세도정치(勢道政治)로 인해 안동 김씨(安東 金氏) 가문의 권력(權力)과 가문(家門)의 위세가 급성장하였고, 이로 인해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위세가 떨어진 것 이다. 안동 권씨는 신라의 종성에서 권씨로 환성(換姓)하였고, 경주 김씨(慶州 金氏)에서 분적(分籍)된 것인데, 이를 분적(分籍)이라고 이르지 않는 이유는 분적(分籍)이란, 그 성은 그대로 두고 본관만 바꾸어 독립할 때에 지칭하는 말이고, 성(姓)과 본관(本貫)을 다 바꿀 때는 완전히 타성(他姓)으로 되어 통혼(通婚)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12]
한국사(韓國史)에서는 나름의 비중을 차지하는 성씨(姓氏)인데,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族譜)가 이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성화보>이기 때문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문화 류씨(文化 柳氏)의 <가정보>가 제일 오래된 족보(族譜)라고 적고 있지만, 과거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동양학과의 에드워드 윌렛 와그너(Edward Willett Wagner) 교수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족보(族譜)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 <성화보>라고 한다.
안동 권씨(安東 權氏) <성화보>가 문화 류씨(文化 柳氏) <가정보>보다 연대가 조금 더 빠르다고 하는데, 다만, 족보의 체계나 구성 등에 있어서는 <성화보>보다 <가정보>가 훨씬 수록 범위가 보다 더 넓고, 발전된 형태를 띠고 있다.
어쨌든 이 <성화보>는 1476년(성종 7) 목판으로 간행했고, 서거정이 족보의 서문을 썼다. 와그너 교수는 이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마이크로필름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안동시에서는 지역 정치를 안동 김씨(安東 金氏)와 안동 권씨가 세력이 강하고, 이 지역에는 권씨가 매우 많아 상위 3개 성씨가 '김,이,박'(金,李,朴)이 아니라 '김,이,권'(金,李,權)일 정도이다.[13]
강릉시에서도 세력이 강해서, 여기는 아예 지역구 국회의원부터 안동 권씨다.[14]
2. 분적과 분파[편집]
경상북도 북서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지금의 안동 지역에 있던 부족국가 창녕국(昌寧國)을 비롯한 구령국(驅令國)·소라국(召羅國) 등은 초기 신라의 속국으로 되어 있다가, 그 후 신라의 고타야군(古陀耶郡)으로 고쳐졌다.
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古昌郡)으로 고쳐졌고, 930년(태조 13)에는 안동부(安東府)로 개칭 승격되었다. 시대에 따라 지명이 바뀌고, 승격과 강등을 거듭하다가, 1895년(고종 32)에 23관찰부제에 따라 경상도 동북부 17개군을 관할하는 관찰부(觀察府)가 설치되었으며, 이듬해에 13도제(道制)에 따라 경상북도의 안동군(郡)으로 개편되었다.
분적한 성씨로는 강릉 권씨(江陵 權氏)[15] 가 있다.
안동 권씨에는 15개의 대파가 있다.
3. 안동 권씨 종기[편집]
출처: 안동권씨대종회
4. 신 안동 김씨 분적설에 대한 오해와 그 진실[편집]
종 종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에서 분적(分籍)된 것 이라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는데, 큰 오해다. 보학을 열심히 배워본 사람이면 알다시피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는 안동 권씨(安東 權氏),안동 장씨(安東 張氏)와 함께 역사가 시작되어 같이 뿌리를 이어나갔다. 한마디로 동시대(同時代) 가문(家門)끼리 분적(分籍)되는건 불가능하다. 시조 권행은 신라 종실(宗室), 즉 종친(宗親)의 인물이기에 경주 김씨(慶州 金氏) 본관의 인물이 맞다. 시조 권행이 안동김씨 인물이라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권행이 신라 왕손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안동권씨태사공실기(安東權氏太師公實記)의 한 구절에 따르면,
2. 경주 김씨(慶州 金氏) 연합대종원에 있는
360본관 가운데 안동 권씨도 표기되어 있다.
3. 대전 뿌리공원 <안동 권씨 조형물> 중
4. 시조 권행 태사묘
5. 시조 권행(김행)은 어느 김씨 왕의 후손인가?[편집]
시조 권행은 앞서 말했듯이, 신라 김씨 왕실의 후손이다. 하지만 계보가 상실되어 그의 부친조차 기록이 없다. 아마 이는 대종회 측에서 자세히 연구를 하지 않으면 영원한 미궁 속에 빠질 사실이니 우린 이것을 추측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어느 왕의 후손인지 짐작하려면 먼저 전해지는 기록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조 권행은 고려 태조 왕건에게 아부(亞父)라 불렸는데, 이 뜻은 아버지 다음으로 버금가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이걸로 대충 권행의 나이를 추측해 볼 수있는데 왕건보다 나이가 많았음을 인지하는 단어이니 60세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의 안동에서 일어난 후백제와의 싸움인 고창전투를 치뤘을 당시에 삼태사[권행,김선평,장정필] 중에 권행이 나이가 가장 많았음을 말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김선평은 고창의 성주로 효공왕대에 출생한 10세기 대 인물이다. 장정필은 당나라 사람으로 888년에 출생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시조 권행은 860년 대의 인물인걸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효공왕대 보다 앞선, 헌강왕 대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일단, “김행이 왜 신라 김씨 계보도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냐?”라는 의문에 답을 해보자면 “시조 김행은 헌강왕의 서자일 가능성이 있다.” 정도이다. 하지만 이 부분도 정확히 상고할 수 없는게, 정사에선 헌강왕의 아들은 요(嶢) 한 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점도 정확히 상고할 수 없다.[16] 그 까닭은 한반도의 국가 중 그 중에서도 신라의 왕실 혈통은 매우 중요시 여겼다.[17] 이로 인해 다른 한국사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신라의 신분체계인 골품제가 시행되었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신라의 왕들의 후궁 기록이 부실하다던가, 아예 후궁 소생의 서자가 임금이 되지 않는 이상,[18] 계보도에 기록 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마다했다. 이는 실제로, 광산 김씨의 시조 김흥광(金興光)과 문성왕의 왕자인 김안(金安) 등[19] 이 있다. 이들 모두 어머니가 미상인 서자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권행은 신라의 대보공(大輔公)의 벼슬을 지낸 김알지(金閼智)의 29~30세 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경순왕보다 나이가 훨씬 많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최소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비경순왕 계열, 즉 김알지(金閼智) 계열 성씨인 것과 더불어 신라계 김씨들의 직계 선조 내물왕인 김내물(金奈勿)의 후손임을 사실 확인 할 수 있다.
6. 다른 가문(왕실)과의 관계[편집]
6.1. 안동 권씨와 양천 허씨의 관계[편집]
안동 권씨의 시조모(始祖母)가 양천 허씨(陽川 許氏)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의 딸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안동 권씨의 시조 권행(權幸)의 독자 아시조(亞始祖) 권인행(權仁幸)의 처이다.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은 가야 왕실의 후손으로 수로왕과 그의 왕비 허황옥의 혈손이다.[20] 또 한 허가바위에 출생하여, 공암촌장이라 불렸는데, 훗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많은 군량미 등을 제공하여 고려개국 삼한벽상공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6.2. 안동 권씨와 금나라의 관계[편집]
고려사에서 김행이 금나라의 선조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권씨의 시조인 김행과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권행이 성씨를 하사 받기전 이름이 김행이긴 했지만 고려사에서 기록된 이름은 흔행이었으므로 금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따질 것도 없이 권행이 활동하던 지역은 당시의 고창군이고 현재의 안동이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는 김행은 당시 평주의 승려 금준(今俊)이었다 평주는 현재의 황해북도 평산군이다.
결론적으로 고려사에서 언급되는 김행과 안동 권씨의 시조인 김행은 다른 사람이다. 자세한건 여진족 신라인설 문서를 참조
6.3. 안동 권씨와 원나라의 관계[편집]
원 소종 아유르시리다르의 권황후(權皇后)는 고려 출신 여성으로 권겸의 딸이고, 원 소종의 황후이다.
그러므로, 소종과 인척 관계다.
7. 항렬표[편집]
근현대에 존재하는 안동 권씨들은 주로 33~39세손 사이에 위치하며, 이 가문 역시 항렬을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항렬자는 여자에게는 붙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이 가문은 여성도 예외없이 항렬자를 적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항렬자 규칙이 워낙 단순해서[21] 항렬표에 나와 있지 않은 한자를 항렬자로 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안동 권씨 대종원에서도 본항렬과 예비항렬을 모두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정해진 항렬자로 무난한 이름을 짓기 힘들다'는 이유로 항렬자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니면 여전히 각 문중의 항렬자를 쓰기도 한다.[22] 이건 다른 성씨 본관들도 마찬가지. 세대 분포가 넓은 가문으로 평가받는다. 동시대에 9세대 차이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면...
화천군파의 경우는 상기된 수교법 항렬을 쓰지 않고, 대다수 문중에서 쓰는 오행상생법을 쓴다.#
8. 집성촌[편집]
8.1. 서울·강원·경기[편집]
-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
-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 죽헌동[23] , 사천면 노동리, 성산면 보광리 [24]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하장면 어리
- 경기도 가평군 읍내5리 [25]
-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사리·횡산리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 모현읍 왕산리, 남사읍 아곡리
- 경기도 이천시 - 모가면 산내리·서경리[26] ·송곡리·양평리, 설성면 상봉리·장천리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가월리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덕리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수곡리(수곡서원)
8.2. 대전·세종·충청[편집]
-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 대전광역시 중구 목달동[27] ·무수동[28] ·정생동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청송리[29]
-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정용리
- 충청북도 음성군 - 삼성면 용성리, 소이면 갑산리[30]
-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야동리
-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다복리
-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남성리
-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 내법리
8.3. 전라·제주[편집]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학천리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신흥리[31]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32]
- 전라북도 순창군 - 순창읍 가남리·신남리, 구림면 성곡리, 적성면 고원리·대산리·운림리
-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신기리
- 전라북도 익산시 - 임상동, 망성면 화산리
-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33]
- 전라북도 정읍시 - 영원면 은선리, 옹동면 산성리, 정우면 장순리, 태인면 매계리
-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죽천리[34]
-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욱곡리[35] ·황룡리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봉덕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효동
8.4. 대구·경북[편집]
-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노행리
-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36]
- 대구광역시 동구 덕곡동
- 경상북도 경산시 정평동
- 경상북도 경주시 - 안강읍 두류리, 강동면 국당리, 내남면 망성리·율동리·화곡리·안심리, 문무대왕면 구길리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기족리
- 경상북도 구미시 - 도개면 궁기리·신림리, 옥성면 농소리
-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 경상북도 문경시 - 산양면 일원, 영순면 사근리
- 경상북도 봉화군
- 경상북도 상주시 - 공검면 양정리, 모서면 대포리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 경상북도 안동시
- 경상북도 영덕군 - 영덕읍 괴시리[52] , 병곡면 송천리[53] , 창수면 인량리
- 경상북도 영양군 - 영양읍 상원리, 수비면 계리, 입암면 신사리
- 경상북도 영주시 - 부석면 감곡리, 이산면 두월리·원리
- 경상북도 영천시 - 화남면 금호리·선천리[54] , 화산면 가상리[55]
- 경상북도 예천군 - 예천읍 상동리[56] ·왕신리·통명리, 용궁면 향석리[57] , 지보면 매창리·수월리·마전리
-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 경상북도 의성군 - 구천면 소호리, 다인면 삼분리, 옥산면 구성리·입암리[58] , 점곡면 서변리[59]
- 경상북도 청송군 - 안덕면 장전리[60] , 진보면 광덕리[61] ·신촌리·이촌리·진안리·후평리
- 경상북도 칠곡군 - 석적읍 도개리, 가산면 학산리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62]
8.5. 울산·경남[편집]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곡리·평리[63]
-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 유계리
-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량리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사월리·입암리[64] , 신등면 단계리[65] ·양전리
-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
- 경상남도 진주시 수정동[66]
-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사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67]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도북리
- 경상남도 합천군 - 대병면 상천리·성리·장단리, 쌍책면 다라리
- 경상남도 사천시 용강동
8.6. 북한[편집]
- 강원도 고성군 서면 송탄리[68]
- 강원도 평강군 - 목전면 기산리, 서면 문봉리, 평강면 간리[69]
- 황해도 봉산군 기천면 묵천하리
- 황해도 서흥군 매양면 양사리
- 황해도 신천군 - 궁흥면 성암리, 문무면 유령리, 용진면 삼봉리
- 황해도 연백군 호동면 용산리
- 황해도 평산군 용산면 노동리·광암리
-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 가좌동
- 함경남도 문천군 구산면 수치리·장발리
9. 실존 인물[편집]
9.1. 근대 이전[편집]
- 권행 - 안동 권씨의 시조. 삼태사
- 권부 - 고려 말의 성리학자
- 권겸 - 권부의 아들
- 권준 - 고려 말의 문신.
- 권황후 - 원 소종의 황후
- 권근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조선 건국 주도 세력 신진사대부 중 하나. 권람의 조부.
- 현덕왕후 - 조선 5대 왕 문종 의 정비
- 권람 - 조선시대의 문신. 수양대군의 측근.
- 권벌 - 조선시대의 문신.
- 권철 - 조선의 영의정. 권율의 아버지.
- 권율 - 조선시대의 장군(행주 대첩)
- 권종 - 조선시대의 군수
- 권응수 - 조선시대의 장군(임진왜란)
- 권세춘 - 조선시대의 의병장(임진왜란). 창녕에서 500여 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
- 권대운 - 조선 후기의 문신. 영의정을 지냈으며 탁남의 지도자였다.
- 권재호
9.2. 현대 인물[편집]
9.3. 계보 불명[편집]
- 권기동[70] - 핫도그 미디어의 ceo이자 유튜버
- 권가야 - 만화가, 본명 권기만
- 권교정
- 권나라 - 헬로비너스의 멤버
- 권리세 - 레이디스 코드의 멤버
- 권민석
- 권민아 - AOA의 전 멤버, 현재는 배우.
- 권병노
- 권병식
- 권상국
- 권상윤 - 대한민국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Sangyoon'
- 권성덕
- 권소현 - 포미닛의 멤버.
- 권소현(배우)
- 권수현 -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권은비 - 걸그룹 예아, IZ*ONE 출신의 가수.
- 권은빈
- 권은희
- 권이슬 - OGN의 아나운서
- 권진아 - 안테나 소속 가수
- 권채원 - 걸그룹 DIA 출신.
- 권평 - 대한민국의 프로게이머.
- 권해봄 - 마이 리틀 텔레비전 모르모트 PD
- 권해효 - 대한민국의 배우
- 나나 - 걸그룹 woo!ah!의 리더, 본명은 권나연
- 진격캐넌 - 메이플스토리 유튜버이자 방송인
- G-DRAGON - 빅뱅의 멤버, 본명은 권지용
- Sik-K - H1GHR MUSIC 소속 래퍼, 본명은 권민식.
[1] 시조가 고려 태조(太祖)에게 권씨(權氏)라는 새 성을 사성받기 전에 경주 김씨였기에 김알지의 후손이다. 대종회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선조로 여긴다. 비고[2] 시조 권행(權幸)은 경순왕(敬順王)의 외손자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시기가 안맞는다. 권행(權幸)이 왕건(877년)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고창전투(古昌戰鬪)를 치르고 있었을 당시 나이가 60세 정도였다. 경순왕(敬順王)은 왕건(王建)보다 나이가 적었으며, 고창전투의 시기가 929년 ~ 930년이였다. 경순왕(敬順王)의 출생이 897년이라 추정되면, 고창전투 시기때의 경순왕(敬順王)의 나이가 약 32살이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권행(權幸)과 경순왕(敬順王)의 나이차이가 심하면 30살까지도 차이가 났었던 것이다. 현재로서 계보가 확인된것은 내물왕(奈勿王)까지 이다. 한마디로 내물왕부터 김행(金幸)까지의 계보는 상고 할 수 없으나, 선계를 따지자면 내물왕(奈勿王)이 선조인 것 은 사실이다. 이로써 권행(權幸)은 헌강왕의 후손 설과, 문성왕의 후손 설이 있다.[3] 고려의 삼한공신(三韓功臣). 고려 태조(太祖)에게 권씨 성을 사성받기 전에 이름은 김행(金幸)[4] 시조 2세 즉 장남으로, 안동 권씨에서 모시는 아시조(亞始祖)이다. 모든 안동 권씨 후손들이 이 분의 후손이기도 하다.[복야공파] [직계종파] [광석공파] [5] 이 링크로 들어가서 인터넷족보-한글판대동보열람을 클릭하면 인터넷족보를 열람할 수 있다.[A] 본래 본관에서 다른 지역으로 본관을 삼아 독립된 성씨를 갖추는 것.[B] 군주에게 성을 받은 것.[C] 성씨를 바꾼 것.[6] 현재의 안동시[7] 당시 이름은 신라의 종성 김씨의 이름인 김행[8] 이 당시 김선평도 신라의 종성 김씨였다.[9] 그의 아버지 장원과 함께 당나라에서 신라로 망명을 왔으며, 고려에 공을 세워 작위를 받고 안동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10] 1위 전주 이씨, 3위 파평 윤씨[11] 1800년 ~ 1873년 이후[12] http://www.andongkwon.or.kr/page_view.html?page_no=7 그래서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와 혼인(婚姻)하는 일이 빈번하다.[13] 박씨(朴氏)는 여기에 많지 않고, 박씨(朴氏)보다는 이 지역에 최씨(崔氏)가 많다.[14] 지역구 국회의원은 당연직으로 그 지역의 당조직을 총괄하는 책임을 지며,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에 대한 공천권을 지닌다. 특히 강릉시와 같은 단독선거구인 경우, 지자체장보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힘이 막강할 수 밖에 없는데, 영동지방이 보수정당의 텃밭이고, 권성동이 윤석열의 최측근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강릉시에서 안동 권씨 세력이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15] 현재 25명이 있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안동 권씨로 합본되었다. (안동 권씨 시중공파에서 갈라졌다.)[권행,김선평,장정필] [16] 다른 서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17] 왕실의 정통성을 잇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에 등장하는 나라 중 유일하게 근친상간이 이루어진 왕조이기도 하다.[18] 대표적으로 헌강왕의 서자 효공왕이 있다.[19] 이들 모두 기록이 매우 부실하다.[20] 수로왕의 32대손이라 한다.[21] 항렬자 안에 숫자에 해당하는 한자가 있다. 수교법 문서를 참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반남 박씨도 역시 이 방법을 쓴다.[22] 특히, 37대손인 순자는 오늘날 보기엔 다소 촌스럽기도 하고, 남자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 쓰는 사람이 꽤 많고, 대신 동(東)자를 항렬자로 많이 쓰는 편이다.(예: 권성동)[23]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 마을 출신이다.[24] 특히 강원특별자치도 지역 중 가장 많은 안동 권씨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 강릉원주대학교(구 강릉대학교) 장정룡 교수에 따르면 강릉시 인구 중에서도 안동 권씨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25] 이곳은 구 경기도 가평군 군내면 엽광촌으로, 가평에서 대표적인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26] 독립유공자 권중효가 이 마을 출신이다.[27] 권선택 전 대전광역시장이 이 마을 출신이다.[28] 독립유공자 권용두가 이 마을 출신이다.[29] 독립유공자 권혁기와 권문용 전 서울특별시 강남구청장이 이 마을 출신이다.[30] 독립유공자 권재학이 이 마을 출신이다.[31] 독립유공자 권철수가 이 마을 출신이다.[32] 독립유공자 권중현이 이 마을 출신이다.[33] 독립유공자 권중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34] 참고문헌인 『한국근대민속·인류학자료대계 8 - 조선의 성씨』동족집단상황 부분에는 인동(仁同) 권씨 집성촌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안동 권씨의 오기로 보인다.[35] 독립유공자 권영회가 이 마을 출신이다.[36] 권오훈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37] 안동 권씨의 대표적 집성촌으로 권벌과 그 후손들이 살던 곳이다. 독립유공자 권경섭·권명섭·권상원·권상위·권상익·권세연·권영섭·권옥연·권차응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38] 독립유공자 권상경·권재호·권태규가 이 마을 출신이다.[39] 독립유공자 권상학·권예윤·권점필·권중석·권중윤과 권정달·권택기 전 국회의원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40] 독립유공자 권태염이 이 마을 출신이다.[41] 독립유공자 권정필이 이 마을 출신이다.[42] 권중동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43] 권영진 전 대구광역시장이 이 마을 출신이다.[44] 권오기 전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과 권중휘 전 서울대학교 총장이 이 마을 출신이다.[45] 독립유공자 권제영이 이 마을 출신이다.[46] 독립유공자 권두경이 이 마을 출신이다.[47] 독립유공자 권이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48] 독립유공자 권구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49] 독립유공자 권영석·권오규·권중희·권태환이 이 마을 출신이다.[50] 독립유공자 권각·권오돈·권오설·권준희·권혁수가 이 마을 출신이다.[51] 권영우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52] 독립유공자 권영만이 이 마을 출신이다.[53] 독립유공자 권영조·권유동·권정필·권진모·권태응·권헌문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54] 권칠승 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55] 임진왜란 때 의병장 권응수 장군이 이 마을 출신이다.[56] 독립유공자 권혁조가 이 마을 출신이다.[57] 독립유공자 권혁무가 이 마을 출신이다.[58] 독립유공자 권오균과 권도엽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이 마을 출신이다.[59] 독립유공자 권대직·권휘연이 이 마을 출신이다.[60] 독립유공자 권탁수가 이 마을 출신이다.[61] 독립유공자 권영만·권유현·권중호가 이 마을 출신이다.[62] 독립유공자 권대진·권중혁이 이 마을 출신이다.[63] 권기술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64] 권경석·권영길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65] 독립유공자 권숙린과 권익현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66] 독립유공자 권채근, 권봉근, 권유근이 이 곳 출신이다.[67] 독립유공자 권영대·권영조·권오규·권태용과 비전향 장기수 권오석-노무현 대통령 영부인인 권양숙 부녀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68] 독립유공자 권형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69] 독립유공자 권병식이 이 마을 출신이다.[70] 본명은 권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