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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게토쿠 가즈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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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70년 아이치현 토요타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토요타에서 근무했으며, 아버지의 일 때문에 3살부터 7살 때까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살았다. 토요타시립 마에야마 소학교, 토요타시립 호난 중학교, 아이치현립 오카자키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자치성(현재의 총무성) 관료로 근무했다. 입성 직후 야마가타현청에서 파견 근무를 했으며, 1996년부터 2년 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국제공공정책대학원(SIPA)에서 유학을 하기도 했다. 유학 당시에 대학에서 알고 지내던 여성과 다시 만나 결혼했다.
2000년에는 관료로 근무하던 중에 중의원 의원 스기우라 세이켄과 함께 ‘도주제를 실현하는 모임’을 설립했다. 2003년 총무성 소방청 방재과 재해대책관을 맡았으며, 2004년 니가타 추에쓰 지진 현장에 파견되기도 했다. 2005년에는 히로시마현청에서 파견 근무를 했으며, 2009년에는 내각부 행정개혁회의 사무국에서 근무했다.
이후 2011년 아이치현지사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아이치현 연합으로부터 출마 요청을 받았으며, 요청을 수락해 공무원을 퇴직한 뒤 아이치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자민당 출신의 오무라 히데아키[1]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해 낙선했다. 아이치현지사 선거 낙선 이후에는 고향인 토요타시 시장 선거 출마 요구가 있었으나, 자민당과 후보 추대를 논의하던 민주당이 시게토쿠에 대해 “노조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라고 하며 반대해 무산되었다.
그 뒤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고향인 토요타시가 속한 아이치현 제11구가 아닌 아이치현 제12구 출마를 표명했다.[2] 이후 일본 유신회에 입당했으며, 일본 유신회 소속으로 아이치현 제12구에 출마했으나 자민당 아오야마 슈헤이에 밀려 3위로 패배했다. 그러나 석패율 구제로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결속당, 유신당에 합류했으며,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이치현 제12구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성공 후 2015년, 오구마 신지, 오자와 사키히토 등과 유신당을 탈당해 개혁결집회를 창당해 활동했다. 그러다가 2016년, 개혁결집회 창당 멤버들과 함께 민진당에 합류했다.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당선 후 한동안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오카다 가쓰야가 주도한 무소속 모임에 합류했다. 이후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간 합당으로 새로 창당한 입헌민주당(2020년)에 합류했다. 입헌민주당 합류 후, 당내에서 직간회(直諫の会)라는 계파를 이끌고 있다.
이후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어, 4선 의원이 되었다.
3. 둘러보기[편집]
[A] 석패율 비례대표[1] 자민당에서 중의원 의원까지 역임했음에도 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공명당과 감세일본의 지지를 받아 출마했다. 출마 과정에서 자민당과 잡음이 발생해 제명 절차까지 가기도 했다.[2] 엄밀히 따지면 고등학교는 아이치현 제12구에 속하는 오카자키시에서 다녔기 때문에, 연고가 아예 없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