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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히로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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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일본 야권 내의 대표적인 우익 ~ 극우 인사[2] 로 꼽혀 왔다. 입헌민주당 입당 이후로는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자신의 기존 입장을 뒤집으면서 큰 마찰 없이 당에 융화되는 등 중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2. 생애[편집]
1965년 후쿠오카시에서 태어나, 후쿠오카 현립 슈유칸 고등학교와 게이오기주쿠대학의 문학부를 졸업했다. 테레비 아사히의 기자를 지냈으며, 2003년 제43회 중원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하여 가나가와현지사 선거 출마로 의원직을 사퇴한 마쓰자와 시게후미의 지역구인 가나가와현 제9구에 출마했다. 50.3%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해 초선 의원이 되었으나 2005년 제44회 중원선에서 자유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에 밀려 44.5%를 얻는데 그쳐 2위를 기록했지만, 석패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9년 중원선에서는 60%대 득표율로 자민당 후보를 떡실신시키며 압승했다.
이후 문부과학대신 정무관을 지내면서 커리어를 쌓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여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2012년 제46회 중원선에서 보수표가 자유민주당과 모두의 당으로 갈리는 바람에 30%대의 낮은 득표율로 4선에 성공했다. 2014년 제47회 중원선에서는 38%의 득표를 하는데에 그쳤음에도 유신당과 자민당으로 일부 보수 표가 갈려 다시 5선을 기록했다.
이후 민주당과 유신당이 통합되자 옆 지역구의 에다 겐지 의원과 함께 민진당 내의 대표적인 보수 인사로 꼽혔고, 고이케 유리코 지사가 희망의 당을 창당하자 민진당을 탈당하고 희망의 당에 합류했다. 희망의당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지역 기반에 힘입어 41.3%를 득표, 불과 1.0%p차이로 자유민주당 후보를 재치고 힘겹게 지역구 수성에 성공했다. 참고로 간토 지역에서 생환한 3명의 희망의 당 후보중 한명이었다. 희망의 당에서는 원내대표격인 국회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희망의 당과 민진당이 합당해 국민민주당이 출범하자, 이에 반발해 희망의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신분으로 나가시마 아키히사와 미래일본이라는 계파를 만든다. 2019년 입헌민주당과의 공동 회파에 참여하였다. 2020년 입헌민주당이 창당되자 노다 요시히코와 마찬가지로 입헌민주당 입당이 점쳐졌으나, 최종적으로는 신당 합류 거부를 택했다.
이후 무소속 의원으로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사회민주당과 행보를 함께 해오다 2021년 9월 17일 에다노 유키오 대표와 면담을 가진 뒤 입헌민주당에 입당계를 제출했다. 자민당 1강의 정치를 바꿔 가겠다는 생각으로 입당을 결단했다는 것이 본인이 밝힌 이유이다.
입당 이후에는 당 국회대책위원회에서 필두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3. 정치적 성향[편집]
현재는 입헌민주당과 뜻을 함께하고 있지만,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입헌민주당, 심지어 입헌민주당 내의 대표적인 보수파로 꼽히는 와타나베 슈나 에다 겐지보다도 더 보수적이라는 평이 많을 정도로 우익적인 색체가 강하다. 이 때문인지 무소속이었다가 입헌민주당에 입당한 노다 요시히코와 달리 간을 보다가 입헌민주당 입당을 거부했다.
그러나 입당 이후 맞이한 총선거 기간에 각 언론사에서 실시한 후보자 앙케이트에서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와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 입장을 밝히고, 헌법 9조 개정을 통한 자위대의 명기에도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과거에 비해 중도・개혁 성향이 한층 강해졌다.
-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시절 종전일인 2011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해 논란을 일으켰다.
- 입헌민주당 의원들 중에서는 일본회의 가입자인 세 의원 중 한 명이다.[5][6]
- 여성 미야케 창설에 반대,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에도 반대한다. → 찬성으로 선회했다.
- 동성혼, 차별금지법에 반대입장. → 찬성으로 선회했다.
- 미국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규탄 결의에 항의했다.
-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에 찬성했었으나,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의 사후처리가 9년이 지나도록 수습되지 않는 것을 보고 반대로 입장을 바꾸었다고 한다. 다만 급격한 탈원전에는 여전히 거리를 두며, 쓰나미 위험지역에 있는 원전은 가동 중지해야하지만 그 외의 지역에선 가동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입장.
- 집단자위권 행사를 금지한 헌법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마에하라 세이지가 주재한 방위 연수회에 참석했다.
- 난징 대학살 사건을 옹호한 우익 다큐멘터리 <난징의 진실>(南京の真実)의 입장에 찬성(...). <난징의 진실>에 반대하는 미 하원 결의안 121호에 반대하는 광고에 이름을 실었다.
- 일본의 TPP 가입에 찬성하고 있다.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여담[편집]
-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의 회원이며, 일본회의의 회원이기도 하다. 매년 꼬박 꼬박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모양이다.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적 보수파로 꼽히는 하라구치 가즈히로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는 긍정적이나 일본회의에는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류 히로후미 의원은 아직도 회원자격을 가지고 있다.
- 과거 한국의 최재천 의원에게 영상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위의 정치 성향과 비교하면 의외로 한일관계에 관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다만 최 의원이 류의 편지에 답장을 했는지는 불명이다(…).
7. 둘러 보기[편집]
[A] 석패율제 당선.[1] 민주당 시절 소속된 계파였지만, 마에하라 세이지하고 결별하면서 탈퇴했다.[2] 나머지 한명은 마쓰바라 진 前 국가공안위원장이다.[3] 환경권 조항, 교육의 충실을 향한 환경 정비 실시 취지 명기, 지방 공공 단체 권한 강화, 헌법재판소 설치, 긴급사태 조항에 관한 부분의 개헌을 찬성했다.[4]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5] 다른 의원은 와타나베 슈, 마쓰바라 진.[6] 하라구치 가즈히로 의원도 과거 가입자였지만 지금은 탈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