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메이 아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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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초선의원으로 2017년 10월 27일부터 일본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고 있다.
2. 상세[편집]
1965년, 도쿄도(본적은 시마네현 쓰와노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가메이 히사오키는 중의원 5선과 참의원 2선의 국회의원으로 국토청장관과 국민신당 간사장을 역임하였다. 조부인 가메이 고레타케는 도후쿠개발 총재이자 구 쓰와노번 가메이가 제15대 당주였다. 증조부인 가메이 고레쓰네는 백작 작위를 수여받은 귀족이었다. 또한, 외증조부인 아리마 요리야스[2] 는 입헌정우회 소속 제국의회 국회의원이였으며 패전이후 A급 전범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를 선고받았기도 하였다. 고조부인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北白川宮能久親王)은 일본 황족이었다.
1998년 가쿠슈인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캐나다로 유학 가 1992년 칼턴 대학교 매스컴학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통역사로 활동하며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도쿄 디즈니랜드의 번역 활동에 참여하였다. 1996년 총무성 주최 '세계 청년의 배'에 참가하고 피스보트에도 참여하여 국제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국제활동 경력을 살려 의원 외교 분야에서 아버지인 가메이 히사오키를 보좌하였고 이후 정책비서까지 역임하였다.
2007년 7월, 국민신당의 공천을 받아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출마해 시마네현에서 과반이 넘는 득표율(50.9%)로 당선되었다. 이후 국민신당의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했으며 노다 제1차 개조내각이 소비세를 증세하려 하자 당시 당대표이자 그녀의 먼 친척인 가메이 시즈카[3] 와 함께 연정 탈퇴를 주도했다. 하지만 연정 탈퇴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열어 가메이 당대표와 가메이 정조회장을 해임하였다. 이후 당규에 없는 방식으로 열린 의원총회에 따른 해임은 무효라며 반발하였으나 결국 '언제까지나 그 6명과 싸우는 일은 바보같은 것'이라며 탈당하였다. 이에 따라 아버지인 가메이 히사오키는 국민신당 고문에서 물러났다.
2012년 7월 17일, 민주당 탈당파와 함께 녹색바람이라는 국회내 회파를 구성하였다. 이후 11월 15일에 총무성에 정당으로 등록하였다.
2013년,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같은 시마네현 선거구에서 녹색바람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2016년 5월 16일, 민진당 시마네현 연합이 카메이의 민진당 입당과 차기 중의원 선거(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시마네 1구 또는 시마네 2구의 공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3일, 시마네 1구에 출마하였고 민진당의 공천을 획득했다. 이후 희망의 당 합류 사태에서는 희망의 당에 참가하지 않고 입헌민주당에 참여해 공천을 받았다. 자민당 후보에게 패했으나 비례대표로 구제되었다.
지역구 특성 상 독도 문제에서는 일관되게 일본의 영토임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국회의원 중 한 명이다. 이승만 라인을 한국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설치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정부에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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