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성(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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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25대 국무총리, 제24대 국토교통부장관
2. 생애[편집]
1926년 1월 9일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석항마을에서 시골 유생인 황영수(黃永秀)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인 황대연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로부터 유종환 의진에 들어가 포대장으로 활동하다가 전사했는데, 의병활동을 하면서 군량미를 구하기 위해 여러 집을 다니며 차용증을 써주었고, 조부가 전사한 후 후손들이 쌀을 갚느라 가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빈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후 무풍초등학교[4] 를 졸업하고,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4기로 졸업하여 임관되었다. 1968년 예편할 때까지 20년간 중앙경리단장, 경리학교장, 국방부 재정국장(소장)을 거쳐 군의 경제통으로 통했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1961년에는 한국전력공사의 전신 중 하나인 조선전업의 사장을 지내며 전력회사들의 통합 작업을 주도하여 한국전력공사를 발족시켰다. 또 같은 해, 외자청이 조달청으로 개설되었을 때에는 초대 조달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예편한 다음인 1970년에는 무임소장관실(현 특임장관실) 보좌관(차관급)으로 기용되었다. 1973년에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가 같은 해 관선 전라북도지사로 부임하였다. 그 이후에는 박정희 정권에서 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민주정의당 전북지부 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전라북도 진안군-무주군-장수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오상현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7년까지 농수산부~농림수산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88년 창립 때부터 1992년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초대 사장 및 회장을 지냈다. 금호그룹이 항공사업전을 따낸 직후 아시아나항공의 초대 사장을 및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노선 신.증설, 항공기 도입 등을 이끌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전라북도 진안군-무주군-장수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3년 2월 문민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기용됐다. 그러나 당초 쌀 시장 개발을 막겠다는 김영삼 정부의 공약과는 달리, 우루과이 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쌀시장 개방이 확정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0개월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5]
이후 민주자유당 상임고문을 맡다가 1996년 금호그룹 상임고문을 거쳐 2002년부터 6년 간 안중근 의사 숭모회 8대 이사장을 맡았고, 이후 명예이사장을 맡다 2010년 10월 11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