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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섭(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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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화학공학자, 정치인, 관료이다.
2. 생애[편집]
1939년 5월 21일 경기도 수원군 팔탄면(현 화성시 팔탄면) 율암리 302번지에서 아버지 이붕림(李朋林, 1905. 3. 5 ~ 1950. 12. 26)[3] 과 어머니 청송 심씨 심업순(沈業順, 1906. 4. 14 ~ 1950. 12. 19)[4]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상황에서도 팔탄국민학교, 경기중학교를 거쳐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총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에서 화학공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대우엔지니어링 사장, 풍한방직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거구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해당 선거에서 아폴로 박사 조경철(무소속), 정운갑(신민당) 등과 대결하였는데 당시는 중선거구제라서 정운갑에 이어 2등 당선되었다.
전두환이 집권한 후인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민주사회당 고정훈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회 상공위원장,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민주한국당 이중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듬해인 1986년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구 을 지역구에 민주정의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1990년 유흥수와 사돈을 맺었다. 그러나 1991년 김태식, 오용운, 김동주 등과 수서 비리에 연루되어서 이듬해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남구 을 지역구에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홍사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듬해인 1997년 이병희 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수원시 장안구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종희 후보에 패해 정계를 은퇴하고 라이온스 클럽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선 중종의 아들 덕양군의 14대손[5] 이며 2012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을 지냈다. 후임은 이귀남.
3. 선거 이력[편집]
4. 둘러보기[편집]
[1] #[2] 덕양군파(德陽君派)-사간공계(司諫公系) 15세 섭(燮) 항렬.[3] 1928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응용화학과(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6회 특과를 졸업하고, 1933년 경상북도 영일군 속(屬), 1934년 포항세무서 속, 1935년 포항세무서 직세과 속, 1936년부터 1937년까지 부산세무서 간세과 속, 1938년 하동세무서 간세과장 등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이후 경상북도 양조시험실을 거쳐 세무서 관세과장으로 재직했다. 8.15 광복 후 미군정청 상무부 공업국 기사, 전라남도 기술연맹 식품기술협회 상무이사, 전라남도 상공국 광업과장, 상공부 화학과장 등을 역임했다.[4] 심관섭(沈寬燮)의 딸이다.[5] 탤런트 이정섭과 같은 항렬이다.[a] A B 강남구[6] 신민당 정운갑 후보와 동반 당선[7] 민주사회당 고정훈 후보와 동반 당선[8] 전임자 이병희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