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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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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미국 대통령 선거
1864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파일:ElectoralCollege1864.svg


(90.6%) 212인 링컨


1864년 11월 8일
1864 대선

1868년 11월 3일
1868 대선
}}} ||
선거 일시
11월 8일 8시 ~ 11월 9일 6시 (UTC)
투표율
73.8%
선거 결과
후보
[[공화당(미국)|

국민연합당
]]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부통령 앤드루 존슨

[[민주당(미국)|

민주당
]]
대통령 조지 B. 매클레런
부통령 조지 H. 펜들턴

선거인단


212명[1]
21명
전국 득표


55.0%
2,218,388표

45.0%
1,812,807표
대통령 당선인
부통령 당선인

국민연합당





1. 개요
2. 주요 이슈
3. 본선
4. 결과



1. 개요[편집]


미국의 제16대 내지 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진행된 선거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내전 중에 치른 대통령 선거다.

국민연방당의 에이브러햄 링컨 후보가 선거인단 과반수를 확보해 당선, 연임에 성공했다.

2. 주요 이슈[편집]



2.1. 남북전쟁[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의 [[남북전쟁#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8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 인근의 섬터 요새에서 시작된 남북전쟁은 어느새 4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대선 1년전 있었던 게티즈버그 전투 승리로 북부가 우세를 잡았지만 좀처럼 전쟁이 끝나지 않자 미국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 노예 해방 선언 이후로도 노예제 문제를 둘러싸고도 공화당 내에서 남부와의 전쟁이 계속되더라도 노예제의 완전한 폐지를 우선시하는 급진파와 남부를 끌어안아 전쟁을 일찍 종결하려는 온건파 사이에 일어나는 등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맞이한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전쟁 과정에서 링컨과 일시적으로 손을 잡았던 북부민주당 역시 게티즈버그 전투를 기점으로 남부와의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주화파와 전쟁의 지속을 주장하는 주전파로 분열되었고 앤드루 존슨 등 전쟁파는 끝내 링컨의 공화당으로 이동해 국민연방당으로 통합한다. 반면 주화파는 민주당에 남아 병사들에게 인기가 높았지만 1862년 링컨의 손에 해임된 조지 B. 매클레런 전 총사령관 등을 가담시켜 세를 불렸다.

3. 본선[편집]


1812년 미영전쟁 이후 52년만에 벌어진 전시 대선 과정에서 다행히 공화당을 비롯한 국민연방당의 후보 지명을 받아낸 링컨 대통령이었지만 재선 가능성은 높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1832년의 앤드루 잭슨 대통령 이후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 자체가 없어서 재선 도전 자체가 정치적 도전인 상황이기도 했고, 동부 전역에서 율리시스 S. 그랜트가 이끄는 포토맥군이 지겨운 소모전을 이어가면서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2]

이 과정에서 그랜트의 전전임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B. 매클레런 소장이 민주당 쪽에 가담하면서 링컨 행정부를 흔들었고[3], 공화당 내에서도 링컨이 노예제 문제에 너무 온건하다고 주장하며 존 C. 프리몬트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이 링컨의 후보 지명보다 2개월 앞서 급진민주당(Radical Democracy Party)을 창당, 독자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프리몬트 전 의원은 즉각적인 흑인 투표권 부여 등 말그대로 급진적인 주장을 통해 인기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1864년 여름이 지나면서 링컨에게 기회가 찾아왔으니, 매클레런이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는 과정에서 호레이쇼 시모어 등 기존 당내 세력의 견제에 당을 단결시키지 못해 곤욕을 치러야했으며 독자 출마했던 존 C. 프리몬트 후보가 매클레런의 후보 지명과 민주당의 노예제 유지 공약에 경악해 독자 출마의 뜻을 접고 링컨 지지를 선언 한 것.[4] 이로 인해 대선은 다시 공화당 온건파 + 공화당 급진파 + 전쟁민주당(주전파) vs 평화민주당(주화파)의 3:1 구도가 된다.[5]

거기다 1864년 9월, 그랜트가 주력 포토맥군을 지휘하면서 리가 지휘하는 북버지니아군을 상대로 동부전선에서 버티는 사이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이끄는 테네시군이 애틀랜타 전역에서 승리를 거둬 남군의 배후를 점령하고 바다로의 행군을 시작하면서 전세는 이제 누가봐도 북군쪽으로 완전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 승전보가 전해지자 전쟁상황마저도 이제는 링컨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선거전의 기세를 잡은 후 공화당과 민주당 주전파들은 링컨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받은 직후 한 말인 "강 한가운데서 말을 바꾸어 타지 말라."(Don't change horses in midstream.)[6]을 본격적으로 내세워 링컨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냈고, 각 주 공화당에서는 매클레런을 "대통령을 배신한 사령관"으로 프레이밍해 민주당 매클레런 후보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 구호 덕분인지 군인들의 지지 역시 매클레런쪽에서 링컨쪽으로 본격적으로 선회하기 시작한다.


4. 결과[편집]


최종 선거 결과
투표 시간
1864년 11월 8일(UTC +9}
투표 결과
후보자
에이브러햄 링컨
조지 매클레런
선거인단 수
212 / 233명
21 / 233명
전국 득표 수
2,218,388표 (55.0%)
1,812,807표 (45.0%)
당선인
파일:Abraham_Lincoln.jpg
에이브러햄 링컨

[1] 원래 선거 결과로는 213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지만, 선거인단 투표일 당일에 네바다의 선거인단 2명 중 1명이 눈에 갇혀 투표에 참석하지 못하면서 결국 212명의 표만 획득했다. 당시에는 네바다 주에 긴급상황에 선거인단을 대체하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2] 동부전역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지는 동안 서부전역에서 북군이 계속 승리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잡았지만 이를 유권자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했다.[3] 맥클렐런 장군은 민주당에 들어가진 않았다. 대선 출마할 때도 무소속 신분이었지만 나중에 민주당에서 매클레런을 자당 후보로 공인한 것.[4] 그에 앞서 게티즈버그 연설의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5] 다만 매클레런은 전쟁 초기만 해도 급진파들에게 지지받았으며,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된 뒤에도 전쟁민주당과 가까운 성향이었지, 평화민주당에 가깝지는 않았다. 평화민주당도 시모어나 조지 H. 펜들턴같은 진성 주화파를 지명하고 싶었지만, 매클레런의 당내 지지가 너무 강한 탓에 결국 그를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6]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면 "달리는 말에서 기수를 바꾸지 마라."와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