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캐롤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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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 남부의 주. 북쪽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서쪽과 남쪽으로 서배너 강을 끼고 조지아 주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대서양과 닿아 있다. 가장 큰 도시는 주도인 컬럼비아다.[2] 가끔씩 오하이오의 주도와 헷갈리기도 하는데 거기는 콜럼버스. 초기 독립 13주로 남부의 주들 중 가장 작은 편이지만 화학 공업이 발달해 있으며 담배 재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또한 목화, 채소, 콩류의 재배도 성하다.
그나마 대도시들을 몇 개 끼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와는 달리 유명한 도시도 없고 딱히 눈에 띄는 산업도 없고, 뛰어난 관광지도 없고 해서 주 전체가 약간 조용하고 차분한 시골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다만 의외로 외국인 입장에서 짧게 둘러보기에는 괜찮은 곳인데, 주 기에 나온 것처럼 야자수로 둘러싸인 덥고 습한 곳에 남북전쟁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옛스러운 저택, 교회, 마을 등이 어우러져 예전의 미국의 모습을 간직하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뉴욕, 시카고 등 마천루로 대표되는 거대한 현대 도시만이 미국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경향이 있다. 대도시와는 조금 다르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의 미국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 육군 최대의 기초군사훈련소인 포트 잭슨이 주도인 콜럼비아에 위치하고 있다.
캐롤라이나라는 이름은 찰스(Charles)의 라틴어 형태 카롤루스(Carolus)의 여성형이다. 이 이름은 찰스 2세 시대에 찰스 1세를 기려 정해졌다고 한다.
2. 주기[편집]
1775년 ~ 1861년 1월 26일.
1861년 1월 26일 ~ 1861년 1월 28일.
1861년 ~ 1910년.
1910년 ~ 1940년.
1940년 ~ 현재.
주기의 나무는 Sabal palmetto라는 나무이다.
3. 역사[편집]
백인 정착민들이 오기 전에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에는 30개 이상의 북미 원주민 종족들이 살았다. 주요 종족들로는 카토바 족, 체로키 족과 야마세 족 등이 있었다. 카토바 족은 수우어족 단체에, 체로키 족은 이로쿼이어족 단체에, 그리고 야마세 족은 머스코기어족에 속하였다. 원주민들은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고, 대부분 농작물을 재배하였다.
노예를 부리던 대농장 경제가 정착된 바베이도스에서 농장주들이 1670년대에 이주한 미국 최초의 식민지 중 하나다. 원래 북미 식민지로 한 주(캐롤라이나)였다가 독립 전인 1729년 분리되었고, 가장 먼저 영국에게서 독립을 선언한 주이며, 헌법에 서명한 최초 13개주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농장주가 많았고 공화주의적 귀족정을 선호했던 지역 특성상 미 연방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앤드루 잭슨 재임기에 관세 문제로 연방법 무효화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잭슨은 이 주에서 태어났지만 군대를 몰고가서 패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고, 결국 타협 관세법이 통과되어 흐지부지되었다. 19세기 전반 내내 남부의 의견을 대표하며 미국 의회를 주도했던 존 C. 칼훈이 이 주 출신이기도 했다. 밀러드 필모어 시절에도 노예 관련 갈등이 극에 달하자 탈퇴 드립을 친 적이 있으며 필모어도 연방군을 동원하여 탈퇴를 막겠다고 강경 엄포를 놓아 탈퇴를 포기하도록 하였다. 그 후로도 미연방 탈퇴 드립을 좀 자주 쳤으며 실제로 남북전쟁 시기에 연방에서 가장 먼저 탈퇴하여 아메리카 연합국 창설에 앞장섰고, 전쟁도 이 주에 있는 요새인 섬터 요새에 있는 북군을 남군이 공격한 것에서 시작하였다. 물론 그 덕에 바다로의 행군을 마친 셔먼에게 초토화당했지만...
이런 전통은 현대에까지 이어지는데, 비록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의 충격으로 공공장소에서 퇴출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노예제도와 흑인 인종차별을 대표하던 남부연합기를 어디서든 볼 수 있었으며,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마지막 성지였고 오늘날에도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오죽하면 스티븐 콜베어가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통령 후보 드립을 쳤을까. 2015년 4월에는 백인 경찰이 교통법을 위반한 월터 스콧이라는 흑인 시민이 경찰에게서 도망치자 그의 등에 대고 총을 쏘아 죽여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3]
4. 경제[편집]
영국 식민지 시절과 남북전쟁 이전에는 다른 지역처럼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지역이다. 하지만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 등으로 인해 농업은 크게 쇠퇴하였고, 대신 섬유산업을 육성하였다. 이곳은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수력발전이 매우 유리했으며, 이에 따라 수력을 이용한 기초적인 공업이 흥성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제조업 공장들이 들어서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2018년 가동을 목표로 뉴베리{Newberry} 지역에 미 중장비업체인 캐터필러가 이용하던 기존 공장을 보수, 확대하여 가전제품 생산공장을 건립 중에 있다. BMW의 X1, X2를 제외한 BMW의 SUV들은 스파르탄버그 그리어에 위치한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볼보도 S60를 생산할 목적으로 리지빌에 현지공장을 차렸다.
5. 정치[편집]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일람은 역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문서 참조.
매 선거마다 공화당이 안정적으로 승리하는 주이다.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이 남북을 갈라먹던 시절에는 미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었다. 선거만 했다 하면 민주당이 90%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갔고, 1936년 대선에서는 민주당(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득표율이 98.57%를 기록했다. 게다가 그 중 2개 지역구에서는 루즈벨트 후보의 득표율이 100%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의 남부전략 이후 남북의 정당지지 양상이 뒤집히면서 지금은 공화당 텃밭이 되었다. 이 주에서 민주당이 마지막으로 이긴 것은 1976년의 지미 카터.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앞으로도 쭉 공화당이 확보할 주로 여겨진다. 2020년 대선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졌다. 공화당이 스윙 스테이트 노스캐롤라이나에서 1.5%p 차로 승리하고 조지아에서는 0.2%p 차이로 아쉽게 패배했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무려 12%p 차이로 압승하는 등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공화당의 아성을 넘볼수는 없다는 걸 보여줬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주, 버지니아주와는 달리 대도시가 없는 주인 영향이 큰 듯하다.
파일:2020_대선_사우스캐롤라이나.jpg
전국적인 정치지형과 마찬가지로, 사우스캐롤라이나 또한 저소득층일수록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반면, 고소득층일수록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연 가구소득 5만달러 미만의 저소득층에서는 민주당 조 바이든이 53%의 득표율로 트럼프의 46%에 비해 7%p 앞섰지만, 연 가구소득 10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에서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64%의 득표율로 바이든의 34%에 비해 30%p나 우세했다. #
이외에도 금주법을 폐지한 수정헌법 21조를 비준하기를 거부한 유일한 주이다. 술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dispensary system'이라 하여 정부가 소유한 주점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술을 판다고 한다. 또한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을 주 의회에서 선출한 마지막 주였다. 한때는 대부분의 주가 해당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선출했는데, 다른 주들이 현재의 방식(주 내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후보가 주의 선거인단을 싹쓸이)으로 바꾸는 와중에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오랫동안 해당 제도를 고수한 것. 1868년에 해당 제도를 폐지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주들과 같은 방식으로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선거인단은 9명이 배정된다.
미국 제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의 출신 주이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모두 자신들이 앤드류 잭슨의 출신지라고 주장하였지만, 잭슨 대통령 본인은 자신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잭슨은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연방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자 고향이라도 가차없이 밞아죽이겠다고 했다.
2024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곳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아이오와 대신에 첫지역으로 삼자는 바이든의 제안이 나왔다. 사유는 아이오와의 인종구성이 다양하지 않고,[6] 프라이머리 방식 대신 보다 폐쇄적인 코커스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2020년 경선에서 여러 파행을 겪으며 비판받았기 때문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원래 경선에서 3번째로 시작한 지역이다. 바이든이 2020년 경선에서 아이오와, 뉴햄프셔[7] 에서 몰락하는 와중에 남부 흑인들의 몰표로 승리의 발판을 삼은게 바로 사우스캐롤라이나다. 이러한 시도가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여 흑인들의 바이든 몰표에 크게 공헌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짐 클라이번 민주당 원내총무(Whip)에게 보답하려는 것이며, 다음 경선에서도 바이든의 승리를 유도하려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8]
5.1. 스트롬 서먼드[편집]
연방 정치 차원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단연 미국 역사상 최고령 연방 상원의원으로 기록된 스트롬 서먼드(Strom Thurmond, 1902~2003) 상원의원의 지역구로도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으로.
6. 대중매체에서[편집]
남북전쟁을 소재로 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화 영광의 깃발과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 패트리어트의 전장이다. 영 어덜트 소설이자 영화화된 뷰티풀 크리처스 역시 이 주의 고등학교가 주 무대이다. 또한 니콜라스 스파크스 원작 소설을 기반해 레이첼 맥아담스가 열연한 영화 노트북과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영화 디어 존의 배경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 프랜시스 언더우드가 이곳 출신이고 이 주의 하원의원이다. 프랜시스 언더우드는 여기서 2015년 현재 얼마 남지 않은 남부 민주당원으로 나온다.
워킹데드에서 애틀랜타를 떠나 노아의 고향으로 향할때 잠깐 지나간다. 에제키엘의 고향이기도 하다.
7. 출신 인물[편집]
- 니키 헤일리(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역임. 전 미국측 유엔 대사)
- 리 애트워터(태어난 곳은 애틀랜타)
- 메리 루이즈 파커('의뢰인', '웨스트윙', '레드 시리즈' 등에 출연한 배우)
- 모린 프라이스(성우, 사진작가)
- 빅 쇼(WWE의 프로레슬러)
- 스티븐 콜베어(태어난 곳은 워싱턴 DC, 자란 곳은 찰스턴)
- 스티븐 톰슨 (UFC 웰터급 파이터, 심슨빌에서 체육관 운영 중)
- 아이언 앤 와인 (가수, 채핀 출신.)
- 앤드루 잭슨(노스캐롤라이나와 경계지역인 랭카스터 카운티의 왁스하우스 출신)
- 앤디 맥도웰('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사랑의 블랙홀,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 출연한 배우)
- 윌 패튼(배우)
-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 제임스 브라운(5세 무렵 조지아로 이사)
- 존 C. 칼훈(미국 제7대 부통령, 재임 중 사임한 최초의 부통령이다)
- 채드윅 보즈먼(배우, 현재 고인)
- 크리스 락(자란 곳은 뉴욕)
- 크리스틴 데이비스(태어난 곳은 콜로라도. 섹스 앤 더 시티의 '샬롯 요크')
- 페뷸러스 물라(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컬럼비아 출신 프로레슬러)
- 처비 체커 - 미국의 트위스트 열풍을 불러 일으킨 가수
- 네이단 워커
- 빌 오버스트 주니어 - 미국 배우
- 그렉(영어 강사 및 가수, 유튜버 '그렉형 Greg'.)
- 케네스 에드워드 킬로렌(서강대학교 초대 총장. 현재 고인)
- 캐리 마허(영산대학교 영어강사 교수, 롯데자이언츠 외국인 매니저. 현재 고인)
- 케빈 가넷 - 전 농구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