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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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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대한민국의 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이자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리적으로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와 접하고 있으며, 이들 특별시·광역시와 함께 대한민국의 수도권을 이루고 있다.세상을 바꾸는 기회수도, 경기도
대한민국 전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고, '유일하게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 광역자치단체'이다.[7] 경기도는 충청남도와 더불어 군보다 시가 더 많은 지역으로 산하의 31개 기초자치단체 중 군은 단 3개뿐이며(가평군, 양평군, 연천군)[8] 나머지는 모두 시고, 특히 이들 중 11개 시는 인구가 50만을 넘어 대도시 특례를 받고 있을 정도로 발전한 지역이기도 하다. 심지어 양평군조차도 광역시 산하 군 지역을 제외한 군 중에서는 인구 수 1위인 지역이다.
강원특별자치도와 더불어 남북분단으로 갈라진 도다. 다만 북한 행정구역 상에서는 경기도가 남아있지 않다.
2. 상징[편집]
3. 도청[편집]
자세한 내용은 경기도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원래 한성부와 경기도로 나누어져 있던 조선시대까지는 경기감영(경기도청)이 성저십리 돈의문 바깥에 있었다. 경기감영 터는 수도권 전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서울적십자병원을 찾아가면 된다. 원래 경기감영이 있던 곳에 서울적십자병원이 들어선 것이다.[14]
이후 1896년에 감영을 수원으로 이전하여 수원화성 내에 있는 화성행궁을 경기관찰사와 수원군수가 함께 일하는 합동청사(경기도 관아+수원군 관아)로 전용했지만, 한일합방 직후에 경성부로 이전하면서 대한제국의 내부(內部) 청사를 조선총독부의 경기도청으로 전용했다. 1995년에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판정하면서 철거한 조선총독부의 경기도청은 조선시대의 의정부 청사가 있었던 곳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76-14(수도권 전철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북쪽으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과 前 문화체육관광부 자리)에 있었다.
1953년부터 도청 이전이 거론되면서 이전 위치를 놓고 인천과 수원이 대립했으나 1963년 수원으로 확정되면서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전했다.# 2022년에는 광교신도시로 도청을 이전했으나 주소상으로는 여전히 수원에 있다.
4. 경기도지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경기도지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경기’라는 용어에 대해[편집]
다른 도의 이름은 고려시대~조선시대 지역 내의 대표 도시 두 곳의 첫글자를 딴 것이지만,[15] 경기도라는 이름은 수도 주변 지역을 말하는 '경기(京畿)' 에서 따온 것이다.
고유 명사가 아닌, 일반 명사 경기(京畿)는 서울(수도)[16] 을 뜻하는 '서울 경(京) 자'와 수도의 주변 지역을 뜻하는 '경기 기(畿)[17] 자'가 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수도를 중심으로 한 가까운 주위의 지방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에 행정구역의 한 단위인 도(道)를 붙여 고유 지명인 경기도(京畿道)가 된 것이다. 경기도라는 명칭은 본래 중국의 당나라에서 수도였던 장안의 권역을 가리킬 때 사용했고, 당나라의 행정구역 용어를 차용한 고려와 조선에서는 경기의 세부 구역에 각각 경기○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아울러 부르거나 경기 하나만을 운영할 때는 경기라는 명칭으로 사용했으며,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다시 경기도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간혹 문화적 측면에서 수도를 포함한 "권역" 일대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고대부터 수도권이라는 의미로 경기, 기내(畿內)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일례로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긴키(近畿), 혹은 기나이(畿內)라고 하며 이 기(畿) 자를 사용하는데, 모두 수도 주변이란 뜻이다. 메이지 시대에 수도가 에도(도쿄)로 바뀌기 전까지 일본의 수도는 항상 간사이 지방에 있는 교토였기 때문이다.
5.1. 경기의 사용례[편집]
우리 역사 속 경기가 기록된 사례는 신라 때가 최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수도 서라벌 중심지(경주 분지 가운데 지역) 동쪽은 대성군(大城郡), 서쪽은 상성군(商城郡)을 두었는데, 전국 다른 군은 밑에 현(행정구역)이 있는 것과 달리 이 대성군과 상성군 두 군은 특이하게 아래에 현 대신 정(停)이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상성군은 남기정(南畿停), 중기정(中畿停), 서기정(西畿停), 북기정(北畿停), 막야정(莫耶停) 5개의 정으로 되어있고, 대성군은 약장현(約章縣)과 동기정(東畿停)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기(畿) 자는 '도읍의 주변'이란 뜻으로, 바로 경기도 할 때의 기 자다. 지리적 위치로도 짐작할 수 있지만 대성군과 상성군은 일종의 경기도, 내지는 수도권 역할에 해당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정황상 여기까지는 보편적으로 왕경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 역시 이 정도 범위까지 포함된 개념을 말한다. 그리고 신라의 공식 행정구역명은 '동서남북+기'로 여러 개로 쪼개져 있었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여러 구절에 의하면 이를 통틀어 경기(京畿)라는 이름도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경기라는 이름을 별칭이 아닌 실제 행정구역 이름으로 사용된 사례는 고려 왕조 때가 최초다. 1062년, 제11대 국왕 문종이 서경[18] 에 부속도서 '경기사도(京畿四道)'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한국사 최초의 경기도다.[19] 서경을 중심으로 경기도가 네 구역으로 나뉘어 감싼 것으로,[20] 지금의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1390년, 고려 마지막 국왕인 공양왕은 수도 개성부[21] 에 부속 행정구역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를 설치했다.[22] 이것은 중앙 수도에 경기도가 설치된 최초의 사례다.[23]
신라나 고려의 경기는 당시의 수도였던 경주시나 개성시 주변 지역[24] 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조선 건국 후 공양왕의 전례를 따라 수도 한성부를 중심으로 교외 행정구역 경기좌·우도(京畿左右道)를 설치했다가 다시 태종 때 경기좌·우도를 경기라는 이름으로 통합한 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경기도다. 한편 이렇게 경기를 만들면서 기존의 양광도에서 북쪽 반 쪽 정도가 잘려나갔는데, 양광도의 남은 반쪽을 기반으로 충청도가 만들어졌다.
5.2.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동질성[편집]
대한민국의 경기도는 휴전선으로 인해 잘려서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전체 경기도 지도를 보면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한 타원형에 가까운 편이다. 즉 서울은 경기도 안에 들어와 있으며, 당연히 상호 영향을 받았다.
정치, 행정 상으로는 1946년에 서울특별시가 경기도에서 분리되었기에 '경기'라고 볼 수 없다.[25]
언어·문화(풍습) 상으로는 서울도 경기의 일부에 속한다. 단적인 예로, 서울 방언이 경기 방언의 하위 방언으로 취급되는 것으로 꼽을 수 있다.[26] 향토 전통 요리도 왕실 음식을 빼면 서울 요리와 경기 요리도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경기 민요의 지역적 범위에 서울, 인천이 포함된다.
6. 역사[편집]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의 핵심 중의 핵심을 지킨 지역으로 중국의 '중원'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다. 미수복 경기도를 포함하면 이곳에 중심을 둔 정치체는 백제, 태봉, 고려, 조선, 대한제국, 현대 대한민국이고 특히 고려시대 이래 1100여년간 한국의 중심 지위를 잃은 적이 없는 동네다.
초기 백제가 터를 잡았던 지역이며, 장수왕 때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가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다. 삼국이 돌아가며 한강 유역을 차지한 것이 각자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 위상이 공고했다. 이 때 신라가 이 지역을 접수했음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국보인 북한산 순수비다.
통일신라 때는 9주 5소경 중 한주(한산주)였는데, 지금의 도청(행정)에 해당하는 주치는 지금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이성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한주의 중심 도시가 지금의 광주시라고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당시 한주가 고려시대 광주가 됐고 광주에서 나중에 하남시가 독립한 것이므로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당시에는 행정구역의 숫자가 적어 신라의 변방으로 인구 밀도는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사적으로는 중요해서 지방군인 10정을 다른 주에는 1정씩 배치했으나 한주에는 특별히 2정 배치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패서 지역의 호족이었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다시금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고려시대의 경기는 당시의 수도였던 개경(송도) 및 그 주변 지역에 해당되었는데, 이 당시의 경기는 현재 북한에 남은 경기도 범위와 비슷하다. 중기 이후 남경(南京, 현 서울특별시 사대문안 일대)이 중요시되면서 경기의 영역이 남경 일대까지 확대되었다. 고려 시기 경기가 본격 확장된 것은 문종 23년(1069년)인데, 이 시기에 양광도에서 경기로 편입된 지역은 지금의 서울(단, 구 광주군 지역인 강남, 송파, 강동 제외), 인천, 부천, 김포, 광명, 시흥, 안산, 화성 서부(구 남양군), 안양, 과천, 군포, 고양, 파주, 의정부, 양주, 동두천, 포천, 구리, 남양주 일대에 속한다. 다만 이 시대의 경기는 개성 중심의 주변지역이었으므로 지금의 황해도 동부까지 경기에 속했고, 도(행정구역)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경기'라는 특수한 행정구역이었다.
조선 건국 후 수도가 남경(한성부, 한양)으로 천도되면서 현재의 경기도 영역이 확정되고 사실상 다른 도와 같은 행정구역이 되었다. 그러나 명칭에는 특수성이 남아있어서 정식 명칭은 여전히 경기였고, 잠깐 쓰이다 1413년(태종 13) 최종적으로 폐지된 세부 구역인 경기좌·우도를 가리킬 때만 도라고 불렀다. 이 지역을 총괄하던 지방관인 종2품 관찰사 역시 '경기도관찰사'가 아니라 '경기관찰사'였다. 실록에서 검색되는 '경기도관찰사'는 원문을 찾아보면 '京畿道觀察使'가 아니고 '京畿都觀察使'인데, 도관찰사(都觀察使)는 세조 때 관찰사(觀察使)로 개칭되기 이전의 명칭으로 道와는 상관이 없다. 즉 '경기도 관찰사'가 아니라 '경기 도관찰사'라는 것. 연산군 때 평택, 진위를 편입하였다가 중종 때 충청도로 환원되었다. 1896년 진위를 편입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울(경성부)이 경기도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평택군을 편입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에는 북위 삼팔선 이남의 황해도 영역[27] 을 경기도에 임시 편입시켰다. 황해도를 실질 지방자치단체로 살리기에는 면적과 인구가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그 뒤 6.25 전쟁을 거치면서 황해도 영역은 서해 5도만 남기고 모두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넘어갔다. 서해 5도는 현재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 옹진군으로 재편입된 상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해방 이후 1946년까지는 서울은 잠시 동안 경기도 서울시(경성부)였던 적이 있었다.[28] 1946년 8월 15일에 미 군정청에 의해서 당시 경기도 경성부(서울시)가 경기도 관할에서 분리승격되어서 다른 도와 같은 급인 "서울특별자유시"로 하는 서울시헌장이 발표되는 것을 시작으로 1946년 9월 28일에는 경성부에서 서울시로 바뀌었다.1947년 서울시가 서울특별자유시(1949년 현재의 서울특별시로 개칭)로 승격되었다. 서울시가 경기도에서 분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청은 그대로 서울 시내에 있다가 1967년 수원으로 옮겨갔다.[30] 다만 1896년부터 수원으로 이전, 1910년까지 14년 동안 있었다. 1967년 당시 경기도청 유치 과정에서 경기도의 양대 대도시였던 수원과 인천이 치열하게 유치 전쟁에 나섰다. 결국 유치전에서 수원이 승리했는데, 앞의 주석에서 설명한 대로 구한말에 14년 동안 경기도 관찰부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리고 사통발달 교통이 편리하여 접근성이 뛰어난 점을 감안한 듯하다. 이후 인천은 1981년 경기도 인천시에서 인천직할시로 분리되어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변경된다.
역사 관련 서적에서(특히 조선 이전의 시기를 설명할때) '경기 지역', '경기 일대'이라는 표현은 행정구역상 지금의 경기도 뿐만 아니라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 북한 치하의 미수복 경기도, 즉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역사책에서 삼국시대에 관해 설명할 때 '백제는 지금의 경기 지역을 상실하였다'는 표현에서 경기 지역은 지금의 경기도(미수복 지역 포함)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지역도 포함한다는 의미라는 것.
6.1.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편집]
경기
7. 인구[편집]
자세한 내용은 경기도/인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03년 12월 부로 서울의 인구를 추월한 이후 줄곧 광역자치단체 인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기준 외국인 인구 포함 시 1400만에 가까운 인구수를 자랑한다.# 21세기 이후 재개발된 화성시, 남양주시, 평택시, 김포시 등 도농복합시 지역이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반면 도시의 역사가 오래된 대도시인 성남시, 부천시, 안양시, 안산시 등은 인구가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평균 연령도 전국에서 가장 젊은 지역 순위권에 드는 지역으로 전국에서 가장 아이들이 많은 젊고 활력 있는 지역이다.[31] 2023년 기준으로 가평군, 양평군, 연천군 등은 고령화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수원시, 용인시, 화성시, 오산시, 하남시, 과천시, 시흥시, 김포시, 평택시 등은 평균 연령이 약 40세 내외의 젊은 동네다.
7.1. 인구 추이[편집]
위와 같이, 6.25 전쟁 시기와 1981년 인천광역시가 떨어져 나갔을 때를 제외하면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서울특별시와 비교해보면 이미 1988년에 1000만명에 도달한 서울[32] 에 비해서는 인구증가가 비교적 늦은 편으로, 본래는 서울보다 인구가 적었다. 하지만 1990년대 1기 신도시 개발과 이후에도 지속적인 신도시 개발 및 서울에서의 인구 유입, 비수도권에서의 유입 등으로 인구가 급증하여 2003년에 서울 인구를 뛰어넘었고 2010년대 이후로는 서울 인구를 크게 추월하였다. 이러한 많은 인구는 경기도의 큰 특징으로서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인해 전국에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이다.[33] 물론 서울에 비해 면적이 넓어 인구밀도는 서울보다 낮다. 하지만 이미 경기도의 인구밀도는 전국 평균의 2.6배인데다 울산광역시를 뛰어넘을 정도로 인구가 많다. #
8. 지리[편집]
수도권(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을 나타낸 지도.
지도를 보면 서울특별시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나, 완전히는 아니고 서울특별시의 서쪽 일부(강서구)가 인천광역시(계양구)와 접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완전히 감싼다기보다는 95% 정도 감싸고 있다.[34] 이외에도 인천광역시 역시 경기도와 접한다. 주요도시는 수원시, 고양시, 용인시, 성남시, 화성시, 부천시, 남양주시, 안산시, 평택시, 안양시, 시흥시, 의정부시 등이 있다.[35]
해방 이래로 북한과의 휴전협정으로 인한 경계선 변경 및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와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경기도 고양군에 있던 옛 성저십리 지역이 서울시에 재편입되었으며[36] ,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의해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면서 개성시를 북한에 내주고 대신 연천군 일부를 회복했고 1963년 서울시역 대규모 확장 시 경기도 시흥군, 김포군, 광주군, 양주군의 상당부분이 서울시 영역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1973년에는 고양군 일부분[37] 이 서울에 편입되었고, 1981년에는 인천시가 인천직할시(현 인천광역시)로 분리되었으며, 1989년에는 김포 계양과 영종도 일대, 1995년에는 강화군, 옹진군과 김포 검단이 인천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옹진군과 강화군의 인천 편입으로 경기도 관할 해역의 약 70%가 사라졌다.[38] 또한 안산공단의 건립과 시화호 간척 사업의 실패로 수원 근해의 넓은 해역이 더이상 해역이 아니게 되었으며 그나마도 구 옹진군에서 풍도를 포함한 대부도 일대를 가져와서 바다가 조금 있는 정도다. 그래서 해양 개발 측면에서 경기도는 북부의 경인 아라뱃길, 서남부의 시흥시와 화성시와 평택시에 집중하고 있다.
관할하는 유인도는 달랑 6개. 풍도, 대부도, 육도(이상 안산시 관할), 제부도, 국화도, 입파도(이상 화성시 관할). 다른 연해지역인 김포시, 시흥시, 평택시는 유인도가 없다. 참고로 인천광역시의 팽창 과정에서 경기도가 상실한 유인도가 전부 39개다.[39]
한편 북쪽으로는 강원도와 함께 휴전선을 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북한과 인접한 최북단의 영향이 있는 지역이어서 경기 북부 지역은 북한과의 남북관계에 민감한 편이며 특히 강원특별자치도에 비해 이곳은 수도권답게 더욱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8.1. 기후[편집]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연교차가 매우 큰 냉대 동계 건조 기후의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일부 경기남부는 온대 하우 기후와의 점이지대이다.
서울 근교 지역과 남부의 수원시까지는 서울특별시와 마찬가지로 열섬 현상을 받아 여름에 상당히 더운 곳이 많다. 더위는 외곽으로 갈수록 덜하며[40] 추위는 외곽으로 갈수록, 특히 북부와 동부가 심하다.
8.2. 권역 구분[편집]
파일:경기도 행복 생활권.bmp
수도권의 생활권을 간단히 나타낸 자료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활권 문서로.
대체로 동부와 서부보다는 한강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를 구분한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도청은 수원과 의정부 두 곳에 청사를 두고 있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오랜 세월 동안 경기도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독립된 광역시(직할시)로 분리된지 40여 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행정상으로는 경기도에서 독립되어 있어도, 언어·문화(풍습)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경기 서부권이라 할 수 있다. 부천(그리고 가끔 추가적으로 광명, 시흥까지)과 묶어서 경기 서부권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경기도는 다른 도(道)와 달리 행정구역보다는 거점 중핵도시(수원시, 의정부시, 성남시 등)를 중심으로 단일한 생활권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행정구역과 생활권의 불일치), 이는 비교적 많은 인구와 그로 인한 도시간의 연담화, 그동안 수없이 이어진 행정구역 개편에 기인한 것이다.
경기북도 신설 관련 공청회에서는 경기도를 6개의 생활권으로 나눴다.
- 경의권: 고양, 파주, 김포. 경의선 라인이다.
- 경원권: 의정부, 양주, 포천, 동두천, 연천. 경원선 라인이다.
- 동북권: 남양주, 구리, 양평, 가평
- 동남권: 광주, 하남, 이천, 여주
- 경부권: 수원, 성남, 용인, 안성, 과천, 안양, 의왕, 군포. 경부선, 경부고속도로, SRT 라인이다.
- 서해안권: 화성, 평택, 부천, 광명, 시흥, 안산, 오산 남은 지역중 서해안에 인접한 지역들이다.
9. 정치[편집]
자세한 내용은 경기도/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경제[편집]
경기도는 남부 위주로 발전한 탓에, 남북 차이가 매우 심한 편이다. 경기 북부라고 일컫는 지역들은 남부 지역들에 비해 확연히 푸대접받는 지역이다. 일단 연천군의 경우에는 휴전선과 접해있는 탓에 북한의 도발 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며, 경기 동부는 상수원 등의 문제로 개발 제한이 걸려 있거나 교통이 비교적 불편한 편이라서, 투자자들이 개발을 꺼리기 때문이다. 또 군 부대가 많고, 민간 인구도 적다 보니 지역 목소리가 작고, 목소리가 작으니 정책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린다. 그나마 고양시, 남양주시, 구리시, 의정부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경기도에서 시골인 연천군, 포천시, 가평군, 양평군, 여주시의 낙후도는 인천광역시의 강화군, 옹진군의 낙후도와 거의 대등할 정도로 심각한 편이다. 대신 여주와 가평, 양평 같은 경우 개발이 덜 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서울 및 경기도 도시들과 가깝다는 이점으로 근교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군사분계선과 비교적 가까워 군부대가 많은 북부 지역은 개발 우선 순위에서 늘 밀렸고, 이것 때문에 남북 차이가 매우 심한 편이다. 일단 인구가 7~80만명 이상의 준대형급 도시들이 수원, 용인, 성남, 부천, 화성 등 남부에 주로 포진해있는 반면, 북부에는 고양과 남양주 단 두 도시 뿐이다. 북부청사가 있는 의정부의 인구가 약 46만명 정도이다. 또한 대기업 공장, 연구소 등도 남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북부는 대부분 베드타운이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경기북도와 경기남도로 나누자는 논쟁이 나오고 있다.
10.1. 산업[편집]
기업들의 공장과 연구소가 많이 있다. IT,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많이 발달한 편이다.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비수도권 지역에 있던 공장이나 연구소 등이 경기도로 많이 옮겨왔으며 신규 투자도 집중되고 있다. 이는 남방한계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수도권 선호가 심해지면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위치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 서비스업
- 공업
- 농업
11. 교통[편집]
11.1. 철도[편집]
일반철도로는 경인선, 경부선, 경원선, 경의선, 중앙선, 경춘선, 안산선, 교외선, 경강선 등이 있다. 교외선을 제외한 다른 노선은 수도권 전철[42] 이 운행 중이며 경인선과 안산선, 경강선은 수도권 전철만 운행한다.
남양주시와 양평군에서는 중앙선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역은 양평역으로, 강릉으로 가는 경강선 KTX (강릉선 KTX)와 중앙선 KTX, 모든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이전에는 ITX-새마을도 정차했고, 중앙선 ITX-새마을은 2021년 1월 5일 개편 이후로 폐지되었다가 2022년 11월 5일부터 다시 운행하기 시작했다. 용문역부터 원주역 사이에 있는 양평군의 철도역들은 모두 하루 왕복 2~4회의 무궁화호만 정차하는 시골역이었으나, 2022년 11월 5일 이후로 ITX-새마을도 정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석불역, 일신역, 매곡역 등 허허벌판 한가운데 있는 역들까지 모두 정차한다는 것이다. 남양주시에 있는 덕소역에서도 안동, 강릉[43] , 태백 등지로 향하는 무궁화호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출퇴근용으로 하루 왕복 4회만 정차한다. 남양주시의 평내호평역, 등지에서는 춘천으로 가는 ITX-청춘 열차도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 남쪽 지역인 안양시, 수원시, 오산시, 평택시, 화성시에서는 부산, 목포, 광주, 대전 등지로 가는 무궁화호와 새마을/ITX-새마을, 누리로, 그리고 KTX열차와 동탄역, 평택지제역에서는 SRT도 이용할 수 있다. 수원역에는 모든 무궁화호, 누리로와 새마을/ITX-새마을이 정차하고, 수원경유 KTX도 정차한다. 평택역에도 모든 무궁화호, 누리로와 일부 새마을/ITX-새마을이 정차한다. 오산역, 서정리역, 안양역에는 정차횟수가 적다. 광명시에서는 광명역을 통해 경부고속선, 호남고속선, 전라선, 경전선, 동해선 KTX를 이용할 수 있다. 동탄역에서는 목포나 광주송정역, 부산역에서 출발하여 수서역에 도착할 때 동탄역에 정차하거나(경부.호남선) 그 반대로 수서역에서 동탄역을 지나 부산역 광주송정역 목포역으로 갈 때 정차하는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