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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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객열차에 대한 내용은 ITX-청춘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경춘선(京春線, Gyeongchun Line)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역과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춘천역을 잇는 철도이다. 현재 ITX-청춘이 운행하는 유일한 노선이다.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보며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 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
2. 연혁[편집]
3. 역사[편집]
▲ 구 경춘선. 2010년 12월 20일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촬영. 영상 속의 7000호대 디젤기관차와 직각형 발전차도 현재는 모두 추억이 되어 버렸다. 모든 객차가 리미트 객차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경춘선 무궁화호 폐지 직전인 2010년까지 경춘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성이었다.
3.1. 부설[편집]
1939년 경춘철도 주식회사에 의해서 사설 철도로 개통되었다. 경춘선이 사철로 지어진 이유는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당시 도청 소재지 중에 유일하게 철도가 없었던 춘천에서 철원군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세우자, 이에 반발한 일본인 중심의 춘천 6개 지역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서 사철회사를 설립하고 경춘선을 지어서 간신히 도청을 유지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1920년대에도 경춘철도 건설 시도가 있었는데, 이 때도 도청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같은 처지에 놓였던 충청남도 공주시는 철도 유치에 실패해 대전에게 진작에 도청을 빼앗기고 인구 10만의 소도시로 전락해버렸다. 자칫하면 춘천도 공주처럼 몰락할 뻔했던 상황이었다. 한편 1925년 경상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했지만 철도가 개통되기 몇 달 전에 이전했다. 반면 현대의 전방 지역 이미지와는 달리 일제강점기의 철원은 경원선과 금강산선 철도가 분기하는, 중부 지역의 중요한 교통 거점이어서 도청을 이전할 만한 명분이 있었다.[17] 화천군의 산림자원 벌채 및 운반을 위한 목적과도 맞물렸다고 볼 수 있다.[18]
서울 쪽 기점은 서울특별시 제기동역 2번 출구 근방인 성동역이었다. 지금은 해당 부지에 쇼핑몰인 '미도파백화점->한솔동의보감'이 들어와 있다.
경춘철도 주식회사는 동대문부터 서울역까지 지하철 부설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으나 태평양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경춘선은 일제강점기 당시 남북한 통틀어 유일하게 조선인의 자본으로 부설한 사철이라는 설이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 내에 건설된 많은 사철들(금강산전철을 비롯, 장항선, 수인선, 장진선 등등) 중 유일하게 조선인의 자본으로 건설된 사철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와 같은 설은 신문기사 등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19] 그런데 1926년 2월 7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춘천번영회라는 단체가 주축이 되어 경춘철도기성회 (요즘 말로 하면 추진위원회)를 설립했다고 나오는데, 이 춘천번영회라는 단체는 춘천 주재 일본인들의 단체이다. 아울러 1936년 5월 21일 경춘선 회사 설립 이전부터 건설을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총독부 내무국장 출신의 우시지마 쇼조(牛島省三)를 영입하기도 했으며, 김찬수의 '일제의 사설철도 정책과 경춘선'을 참고하면 5,000주 이상 대주주 11명 중 2명만이 한국인이었다(p.169~171). 그리고 회사 임원 중에서 일본인 이름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20] 경춘철도 민족자본설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어디까지나 철도 건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일본 자본이 100%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1936년부터는 조선인의 창씨개명이 흔했다는 점은 감안되어야 한다. 당시에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1935년 일본의 국정교과서들은 조선인과 대만인을 일본인이라고 표기하는 등 이전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동화의 의지를 표명한 상태였기 때문에, 민족 자본이라는 형태가 어떤 것인지 추가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21]
3.2. 해방 이후[편집]
경춘선 개통 당시 건설 비용은 개통 이후 9년 동안의 운임 수입으로 건설 비용을 충당하기로 하였는데 운영 기한을 2년 남기고 건설 비용을 전부 회수하면서 이에 따라 1946년 미군청 군정청 법령 제75호에 의해 국유화되었다.[22]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운수부를 거쳐 철도청이 운영하게 되었다.
1971년 10월 5일 성동-성북 구간이 폐선되면서 시종착역이 청량리역으로 변경되었다. 무궁화호 운행 당시 청량리~춘천까지 소요 시간은 약 2시간이었다. 명목상 운행시간은 1시간 50분을 조금 넘겼지만 단선이었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지연되면서 제 시간을 지키기는 어려웠다.
3.3. 복선전철화[편집]
경춘선을 복선전철화하는 계획은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1978년부터 성북역 - 퇴계원역 구간을 복선전철화하는 계획이 있었다.[23] 그리고 제13대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도 언급되었다. 1990년에 경춘선 복선전철화는 타당성 조사를 마쳤지만 그 뒤로는 사업비가 배정되지 않아 진척이 없다가, 1997년에 예산이 배정되면서 다시 사업이 추진되었다. 최종적으로 성북 - 청량리 간 용량 포화 문제 및 평면교차 문제 해결을 위해 종점을 망우역으로 바꾸었고, 그 외 다수의 굴곡 노선 구간도 직선으로 개량하기로 하여, 1999년에 착공되었다. 망우역에서 금곡역까지는 광역철도 사업으로써 진행되어 지자체가 비용의 25%를 부담했으며, 금곡역에서 춘천역까지는 일반철도 사업으로써 전액 국비로 충당되었다.
당초에는 2003년 개통을 예정했으나, 예산 배정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려 개통이 늦어져 결국 2010년 말까지 밀렸다. 2000년 12월부터 2004년 3월까지는 무궁화호 10왕복 + 통일호 10왕복으로 운행했으며, 2004년 4월 1일부터 객차형 통일호의 폐지로 인해 시간표가 개정되면서 무궁화호 19왕복으로 대체되는 일이 있었으며, 이 시간표는 큰 수정 없이 수도권 전철 전환 이전까지 이어진다. 본래 18왕복으로 줄어들 예정이었으나 춘천발 첫 차가 1시간이나 늦춰지는 바람에 민원이 폭주했고, 결국 2004년 4월 12일부터 첫 차가 환원되었다.
2010년 12월 21일 복선 전철화를 하면서 성북 - 퇴계원 구간을 폐선하고, 망우 - 퇴계원 구간을 신설하면서 시종착역이 상봉역으로 변경되고 무궁화호 운행도 폐지되었다. 이는 무궁화호 운행으로선 사실상 폐지 1호라고 볼 수 있다.
사라지는 경춘선 일반열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을 감지한 한국철도공사가 12월 18일부터 20일까지 카페열차가 달린 특별 임시 무궁화호를 1일 2왕복 집어넣어 전역 정차 운행하였다. 원래 경춘선의 주말 및 성수기 수요가 엄청난데도 내부 규정을 이유로 카페열차를 운영하지 않았는데 특별 운행한 것이다. 시간표상 운행시간이 편도 2시간 미만이면 카페열차를 편성하지 않았는데, 경춘선은 턱걸이로 이 규정에 미달한다. 그래서 정규열차는 폐지 이전까지 판매승무원이 탑승했다.
현재 경춘선에서 운행되는 열차는 한국철도공사 361000호대 전동차와 한국철도공사 368000호대 전동차[24] 이다. 단, 최고속력 180km/h의 준고속 좌석급행열차 ITX-청춘은 용산역까지 운행된다. 이로써 이전의 구불구불한 노선에서 직선화된 노선으로 개량하면서 운행 거리가 줄어들어 춘천까지의 소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청량리역 출발 기준으로 ITX-청춘 이용시 약 55분이 소요되며, 일반 전동열차로는 약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동고서저의 지형인 한반도의 특성상 산을 피해 곡선으로 이어지던 선형을 직선화하면서 터널과 교량의 비중이 매우 높아져 이전의 강변을 따라 이어지던 기존 노선이 주던 좋은 경치와 낭만은 줄었지만, 운행거리가 짧아지면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이로 인해 기존의 역사들이 폐역되고 새로운 위치로 옮긴 역 건물이 많다.
4. 전 구간 주행 영상[편집]
5. 관광[편집]
수도권 대학 MT의 장소가 이 노선상에 있는 곳으로 결정되는 일이 많았고, 북한강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창 밖의 풍경도 아름답다. 때문에 '낭만과 청춘의 대명사'로 통한다.
노선 주변에 유원지가 다른 어느 노선보다도 많다. 마석역 근처의 천마산과 수동계곡, 대성리역의 대성리 국민관광지, 청평역의 청평호 유원지, 상천역의 호명산(호명호수), 가평역 근처의 남이섬과 자라섬, 백양리역 근처의 엘리시안 강촌 리조트, 강촌역을 필두로 한 강촌 유원지와 구곡폭포와 등선폭포, 김유정역의 김유정문학촌, 춘천역의 의암호반, 소양호 등등이 있다.
이들 유원지는 근래에 생긴 것도 있지만, 1960~70년대부터 존재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MT를 가게 되면 거의 80%는 경춘선 상에 있는 유원지가 선택된다. 경춘선의 옛 출발역이었던 청량리역 앞 시계탑은 이들의 집결지였고, 청량리역 옆에 있던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은 출발 전에 장을 보는 장소였다. 당시에는 아직 마트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때였다. 롯데백화점도 이 점을 노려 MT에 필요한 먹거리나 물품 등을 많이 들여놓고,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적힌 포장 상자를 제공하여 광고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전철화된 지금은 대부분의 경춘선 열차가 상봉역에서 출발하게 된 데다 마트가 일반화되어 상봉역, 망우역 근처에 있는 홈플러스 서울상봉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전철 개통 초기에는 이마트 상봉점이 맡았다가 2014년 이노시티 건물 완공으로 홈플러스 상봉점이 대세가 됐다. 의외로 바로 옆에 있는 코스트코 상봉점은 잘 안 가는데, 회원카드가 필요한 데다 개통 당시에는 문 여는 시간이 오전 10시로 MT 출발 시간보다 늦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일반적인 가족 단위나 연인 단위의 관광객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봄과 가을이면 주말 경춘선 열차 승차권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는 지금의 ITX-청춘도 마찬가지이다.
구 경춘선 노선 중 대부분이 노반을 이용한 자전거 도로(옛날의 경춘선 선로)가 되었다. 당시의 옹벽, 터널, 폐역 등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전거도로상에 위치하게 되었고, 북한강변을 끼고 달리는 구간이 전체의 절반 이상이 되기 때문에 경치가 아름답다. 몇 군데 터널 안에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아름답다.
서울에서 춘천까지만 100km 넘는 거리가 나와 대한민국의 자전거 도로 중 매우 길다는 것도 특이점인데, 원래 철도였다는 특성 때문에 급경사가 없어[25] 남녀노소 실력 관계 없이 갈 수 있고, 힘들면 조금만 벗어나서 새로 생긴 경춘선 전철 기차를 타면 되므로, 하루 안에 편도로 갔다 올 수 있기에 자전거를 타는 데 최적인 것도 장점이다. 자전거도로를 따라서 가다 보면 폐역인 옛 금곡역이 남아있다. 승강장과 역사 건물이 남아있는데, 역사 건물은 현재 교회로 사용 중이다. 평내호평역 근처 구간의 경우 호평동을 가로지르던 옛 경춘선 선로가 있던 자리 대부분이 평내지구와 호평지구 개발에 따라 지금은 도로, 아파트 등으로 개발되어있다 보니 이 구간은 옛 경춘선 선로가 있던 자리에 짓지 못하고 평내동과 호평동의 경계를 따라 가게 되었다. 참고로 옛 평내역은 폐역된 직후 도로가 들어서서 흔적도 찾기 힘들다. 자전거 도로니까 중간중간 스탬프 찍는 곳도 있다.
노선 일부는 선로 공원과 레일바이크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레일바이크는 2012년부터 김유정역 → 구 강촌역[26] , 구 경강역 ~ 가평 인근 철교 코스로 운영을 시작했다.
선로공원은 현재 서울시와 노원구에서 서울시 구간을 선로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현재는 공사도 다 완료되어 잘 되어있는 상태이다. 이마트 월계점/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 월계점 뒷편부터 구 화랑대역까지 이어져있다. 공원화된 화랑대역에는 미카5-56호 증기기관차와 허기1호 증기기관차와 전차 두 량이 있다. 증기기관차 뒤에는 무궁화호 객차들이 물려있다.
6. 운영[편집]
6.1. 수도권 전철 경춘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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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전철화가 완료됨과 동시에 무궁화호의 운행을 중단하고 수도권 전철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6.2. ITX-청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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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그 외의 열차[편집]
- 화물열차: 경춘선의 화물열차는 군화물 취급이 주를 이루며, #6127 ~ #6128 열번으로 운행중이다. 매주 월요일, 화요일 및 기타 필요할 때마다 화물이 들어가며, 취급역은 김유정역과 퇴계원역이고 춘천역은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다. 전차를 상하화할 수 있는 군부대 전용 인입선과 연결된 역은 김유정역과 퇴계원역뿐이며, 인근에 군부대가 있다. 구 갈매역까지 들어가는 화물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춘천역 착발 화물은 포대시멘트가 주를 이룬다. 그 외에도 사릉역, 마석역, 대성리역, 청평역, 가평역은 화물 취급이 가능하며, 상천역은 화물 취급을 위한 부지가 마련되어 있다.
- 건설새마을: 매주 목요일마다 신병 배출 목적으로 운행한다.
- 병원열차: 비정기적으로 운행된다.
7. 기타[편집]
무궁화호는 1980년대 중반 ~ 1990년대 중반에는 장항선과 더불어 NDC 디젤동차와 DEC 디젤동차가 주로 다녔으며, 통일호는 경전선(서울발 및 전구간 운행 제외), 충북선과 더불어 1995년 비둘기호 격하 직전까지 비냉방형이 주로 다녔다.
1939년 성동역~성북역 사이에는 성동역, 월곡역 등이 있었으나, 1971년에 폐역되어 사라졌다. 도중 폐역으로는 답내역, 상색역, 의암역 등이 있었다. 2010년 복선전철화로 신공덕역과 화랑대역이 폐역되었으나, 화랑대역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 그리고 경춘선 숲길이 조성되었다.
구 경춘선 구간 중 퇴계원역에서 현 별내역까지의 구간은 복선전철화 후 폐선된 뒤에도 선로가 철거되지 않고 인근 군부대 철도수송대대의 인입선으로 재활용되어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군수물자 수송 열차가 다니는 중이다. 상봉 방면으로 가는 열차 좌측으로 비전철화된 단선 선로가 보이는데 그 선로이다. 원래는 군부대의 들어가는 입구 부분에서 구 경춘선 본선이 분기했었는데, 현재 흔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철도가 있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단서는 부대 옆으로 곧게 나있는 산책로뿐이다.
백양리역 및 가평철교를 지나는 풍경은 경춘선에서도 특히 아름답기로 꼽힌다.
2022년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춘선을 경유하는 정기열차의 운행 빈도는 다음과 같다(단위: 회/일, 작성기준: 편도, 주중).
선로용량이 여유가 있어서 시운전 차량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구글 지도에서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과 함께 노선색이 칠해졌다(참고). 중랑공영차고지는 복선전철화 이후 경춘선이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곳이라서 경춘선을 타면 그곳에 있는 버스들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8. 역명코드[편집]
9. 역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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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지선 철도[편집]
경춘선에는 총 1개의 지선이 있다.
11. 관련 문서[편집]
[1] 업무분담역으로 지정된 12개 역의 역무는 코레일네트웍스에 위탁하고 있다.[2] 망우역~금곡역 구간[3] 매주 월요일에 #6127 열번으로 청량리에서 김유정(춘천)으로 군수송열차를 운행하고 있다.[4] 이후 조성모, 이한철, 태연 등이 이 곡을 커버해서 부르기도 했다.[5] 성동, 고상전, 월곡, 연촌, 묵동, 태릉, 갈매, 퇴계원, 사릉, 금곡리, 평내, 마석, 대성리, 청평, 상천, 상색, 가평, 서천, 백양리, 강촌, 의암, 신남, 성산, 춘천 개업[6] 대한민국 철도청으로 이름이 변경된 것은 1963년의 일이다.[7] 인근의 호수인 청평호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임시승강장이었다. 그러나 수요 감소로 인해 1969년에 폐지되었다.[8] 이설 전 6.3km에서 이설 후 6.4km로 소폭 연장되었지만 선로최고속도는 종전 70km/h에서 150km/h로 2배 이상 증속되었다.[9] 이설 전 8.5km에서 이설 후 7.4km로 단축되었다.[10] 이설 전 12.6km에서 이설 후 12.3km로 소폭 단축되었다.[11] 이설 전 3.5km에서 이설 후 3.3km로 소폭 단축되었다.[12] 이설 전 8.1km에서 이설 후 7.6km로 소폭 단축되었다.[13] 이설 전 77.5km(퇴계원-춘천)에서 이설 후 73.0km로 크게 단축되었다.[14] 해당구간은 복선전철 개통 당일에 이설되었다.[15] 망우선을 이용해 신설된 운행계통이다. 평일 한정 일 편도 2회만 운행한다.[16] 완전한 환원이 불가능한 이유는 중앙선 청량리-망우 구간의 선로용량이 오래 전부터 심각한 수준의 과포화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선로 두 가닥에 KTX, ITX-청춘, 무궁화호, 누리로, 경의중앙선/경춘선 전동차, 화물열차 등 수십여 대의 열차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열차를 더 넣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17] 「[아침산책]경춘선 철도 설치에 대한 유래」, 강원일보, 2007-05-09[18] 「私鐵線徹底𢿋理(사철선철저정리)」, 동아일보, 1926-02-05[19] 「조선인 자본으로 세운 첫 철도... 경춘선만의 특별함」, 오마이뉴스, 2018-07-01[20] 「京春鐵道創立(경춘철도창립)」, 동아일보, 1936-07-21[21] 출처: [기획칼럼]손길신 前철도박물관장의 철도歷史 이야기 제43話」 : 경춘선은 민족자본으로 건설한 철도는 아니다., 매일건설신문, 2020-04-27[22] 「서울에도地下鐵道(지하철도)」, 동아일보, 1939-06-01[23] 「首都圈(수도권)철도 電鐵(전철)체제로 84㎞(㎞) 複線化(복선화)」, 조선일보, 1978-06-03[24] 준고속 좌석급행열차 "ITX-청춘"용[25] 1,000m당 상승 분량인 퍼밀(per mil)로 재는데, 철도는 세어도 1,000m 당 30m 상승, 30 퍼밀이고 그 이상 되면 급경사이다. 경춘선 자전거 도로에선 7단 기어 자전거에서 낮춰야 2-3단으로 전 구간을 갈 수 있다. 아예 변속 기어가 없는 싱글 기어 자전거로도 힘들지 않다.[26] 운영 초기에는 무궁화호 운행 시절 이용했던 거리 표지도 그대로 있었고 양방향 이용이 가능했으나, 2016년 11월 현재 거리 표지는 사라지고 김유정역에서 구 강촌역 방향만 이용할 수 있다. 반대 방향은 주로 오르막길이다. 중간에 전동기를 이용하여 경사길을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설치하였으나, 한 방향만 운행하게 된 이후에는 이용하지 않는다. 김유정역으로 돌아갈 이용객을 위해서 도착지인 구 강촌역에서 김유정역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고장이 잦아서 운행 중지하려는 방안에 강촌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12.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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