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념(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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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정치인 겸 대학교수.
2. 생애[편집]
1940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1962년 제14회 고등고시 행정과[4] 에 최연소 합격했다. 이후 미국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졸업하였다.
고시합격후 공직생활은 경제기획원에서 시작했으며 노태우 정권 때 소속부처 차관까지 올랐다가 동력자원부 (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으로 임명됐다. 이후로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현 고용노동부)장관, 김대중 정부에서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장관 등을 역임하였다[5] . 이러한 이력 때문에 '직업이 장관'이라 불리기도한 전문관료 스타일이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에 밀려 패하였고[6] 이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기도 하면서 정치 행보를 이어가는 듯 했으나 결국 정치 쪽은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2010년 5월 26일, 전북대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되었다.#
3. 여담[편집]
'陳稔'이라 적고 '진념'이라 읽는다. 稔은 '여물 임/념'이라는 한자로, '여물다', '(곡식이) 익다'라는 뜻을 가진다. 1991년 이후로는 대법원 인명용 한자표에 따라 稔는 '임'으로만 쓸 수 있는데, 1991년 이전에는 인명용 한자의 제한이 없다 보니 '념'으로 쓴 것이다.[7]
4. 선거 이력[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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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의 정부 출범시 대통령하에 신설한 기관[2] 예산청과 기획예산위원회를 합병하여 신설[3] 김대중 정부 제4대 재정경제부장관을 하던 도중 장관직이 부총리로 승격됨.[4] 당시는 사시 행시 외시를 합쳐서 고등고시라 불렀다.[5] 그래서 1998년 부도를 일으킨 기아의 회장 권한대행으로 임명되기도 했다.[6] 전임자인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는 경기도지사에 당선됐었으나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는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당에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었다.[7] 다른 예로 뽀빠이 이상용의 경우 瀧(비올 롱, 여울 랑, 물이름 상)인데 "용"으로 쓴다든지, 양택식처럼 鐸(방울 탁)을 "택"으로 쓰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