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재욱
덤프버전 :
분류
코미디언 최재욱에 대한 내용은 최재욱(코미디언)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
2. 생애[편집]
1940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속리[1] 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40회), 영남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박정희 정권 때 동아일보 기자를 역임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에 임명되었다.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였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부상을 당하였다.[2] 1986년부터 1987년까지 경향신문 사장을 역임하였다.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청와대 대변인 겸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박태준 최고위원의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달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민주자유당 사무부총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말 김영삼 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에 반발하였다. 결국 1996년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3] 그리고 그 해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구광역시 달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해봉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4]
1998년부터 1999년까지 환경부장관을 역임하였다. 1999년 자유민주연합 총재 정무담당 특별보좌관에 임명되었다. 2000년 상반기 박태준이 국무총리로 부임하자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3. 버마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현장에서의 마지막 생존자[편집]
최재욱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에 임명되었고, 그 후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의 동남아∙대양주 해외 순방에 동행하였다가 북한의 버마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중상을 입었다. 최재욱은 테러 현장의 단상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기다리던 1급이상 공식 수행원 15명 중 한명이었는데, 이들 중 현장에서 13명이 숨졌고,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과 최재욱만 살아남았다. 이기백 합참의장이 2019년 별세하였기에, 현재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이다.[5]
최재욱은 인터뷰에서, “최초에 TV속보에서 테러 사망자 명단에 최재욱이 포함된 것으로 보도되어 아내가 혼절했었는데, 2시간만에 중상자로 정정보도 되었다고 한다. 테러 당시 폭탄 폭발로 인해 날아간 서까래와 부딪혀 머리와 고막이 터졌고, 온 몸에 파편이 박힌 채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관계로 병원을 방문한 대통령이 처음에는 몰라봐서 “제가 최재욱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무사하십니까”라고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겨우 알아보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나야 그 이후로 덤으로 사는 인생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나라 주권을 짓밟는, 인류역사에도 없는 이런 테러를 하는 집단이 북한이라는 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면 좋겠다”고도 했다.
인터뷰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0KbZy7eF9wU (YTN 2015년 10월 9일 '32년전 아웅산 테러, 운명의 그날)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0108244 (JTBC 2012년 5월 10일 단독인터뷰 - 미얀마 대사를 전두환으로 착각 공격)
https://m.mbn.co.kr/tv/610/1067813 (MBN 시사마이크 2014년 3월 27일 아웅산 테러 외교 보복조치, 작전명 '늑대사냥')
4. 선거이력[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최운지 전 국회의원도 이 마을 출신이다.[2] 테러 당시 도열해 있던 사람들 중 폭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기백 당시 합참의장과 더불어 단 둘 뿐인 참사 생존자.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여서 병실로 찾아온 전두환은 최재욱 자신이 누군지 말을 하기 전까지 알아보지도 못했다고.[3] 무엇보다 지역구인 달서구 을이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가 벌어졌던 곳이라 문민정부와 신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다. 15대 총선에서 달서 을에 출마한 신한국당 이철우(경상북도지사 이철우와 동명이인) 후보가 15%도 득표하지 못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4] 고작 689표 차이였다.[5] 본인하고 함께 살아남았던 이기백(군인) 당시 합참의장은 2019년 향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물론 당시 20대~30대 비공식 수행원 중에는 생존자가 많이 계신 편이다. 대표적인 분이 당시 이기백 의장을 모시던 전속부관 전인범 당시 중위였다.[6] 1990년 3당합당 합류[7] 1996.1.10 신한국당 탈당
1996.3.30 자유민주연합 합류
1996.3.30 자유민주연합 합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