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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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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광주광역시장은 광주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86년 11월 1일 이전까지는 전라남도 광주시장,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광주직할시장이었다.
지역 정치 특성상 역대 민선 시장이 모두 민주당 출신이기는 한데, 의외로 이 중에서 호남 정관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광주제일고등학교 출신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 특징. 거기다가 1995년 시행된 민선 이후 단 한 번도 중도 사퇴하거나 광주광역시장직을 상실한 시장이 없다.[1]
민주당계 정당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곳이지만 3선은 커녕 재선도 박광태 한 사람밖에 없는데 이는 그만큼 내부 싸움이 치열함을 보여준다. 실제 지역 지상파 방송에서는 민주당 경선 토론을 방영해주는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장의 경우 광주광역시를 기반으로 했거나 고향인 정치인들, 혹은 광주권에서 주로 활동한 관료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가는 느낌이 강한 자리. 어떻게 보면 군대의 참모총장 자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2]
광주 FC의 당연직 구단주도 맡는다.
2. 광주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1987년 민주화 이후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광주광역시장 선거는 총 8번을 진행하였다. 광주광역시장 재보궐선거는 지금껏 없었다. 이 점은 대구광역시장이나 인천광역시장과 비슷하다.
사실 광주광역시는 원사이드 지역인데, 전 지역에서 역대 8번의 선거를 모두 맞혔다.
3. 목록[편집]
3.1. 역대 전라남도 광주부윤[편집]
3.2. 역대 전라남도 광주시장[편집]
3.3. 역대 광주직할시장[편집]
3.4. 역대 광주광역시장[편집]
4. 생존 중인 전직 민선 광주광역시장[편집]
- 고재유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2기, 1938년 3월 20일 출생, 86세)
- 박광태 (2002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재임, 민선 3·4기, 1943년 6월 2일 출생, 80세)
- 강운태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재임, 민선 5기, 1948년 11월 15일 출생, 75세)
- 윤장현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재임, 민선 6기, 1949년 4월 26일 출생, 75세)
- 이용섭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7기, 1951년 8월 11일 출생, 72세)
5. 역대 선거 결과[편집]
5.1. 1995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민주당 송언종 후보는 90%에 육박하는 89.71%를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그리고 민주당 송언종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역대 광주광역시장 최다 득표율(89.71%)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민주자유당 김동환 후보는 선거 반액선인 10.28%을 기록하며 참패했다.
5.2. 1998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새정치국민회의 고재유 후보가 67.20%의 득표율로 당선되긴 했지만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비해 새정치국민회의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지고 보수 성향 후보인 무소속 이승채 후보에게 32.79%의 득표율을 내주었다.
5.3. 2002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5.4. 2006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5.5. 2010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5.6. 2014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선거 기간 동안 여론조사상으로 강운태 후보가 앞었으나 막상 개표를 해보니 새정치민주연합 윤장현 후보가 57.85%를 얻어 31.77%를 얻은 무소속 강운태 후보를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5.7. 2018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일단 여긴 문재인이 안철수를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이긴 지역구다. 원래 시장이였던 더불어민주당 윤장현 전 시장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친안철수계 낙하산으로 많이 까였고, 게다가 시정 평가도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워낙 안 좋아서 일찍이 윤장현 전 시장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어차피 재출마를 선언해도 시정 평가가 워낙 별로라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통과할 가능성도 없었다. 이용섭의 경우 인지도도 괜찮고 재선 의원에다가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공신이였고, 공직 경험도 긴 편이였다.
호남 지역 정당이라는 민주평화당은 광주광역시장 공천을 포기했고, 바른미래당은 전남대학교 전덕영 교수를 공천했다. 결국 남은 곳은 정의당, 민중당 뿐인데, 정의당, 민중당의 체급을 생각하면 더불어민주당과 1:1로 대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이러한 호재에 힘입어 이용섭은 출구조사 83.6%, 실제 개표 결과 84.07%의 위엄찬 스코어를 자랑하며 압도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중 유일하게 출구조사 예상 득표율까지 뛰어넘어 당선되었다. 2위 정의당 나경채 후보의 14배를 넘는다. 야당 후보들이 얻은 표를 모두 합쳐도 기껏해야 이용섭 전 시장의 표의 5분의 1 미만이다. 광주광역시의회 선거도 전체 23석 중 정의당의 비례 1석을 제외하고 22석을 차지했다.
윤민호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4번째로 낙선했다.
5.8. 2022년[편집]
[광주광역시장 구별 개표 결과 보기]
37.66%라는 역대급으로 저조한 투표율로 마감한 이번 광주광역시장 선거는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 강기정 후보가 압도적 격차로 이겼다. 하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주기환 후보의 득표율이 역대 광주광역시장 선거 가운데 보수 정당 당적을 달고 출마한 후보 중 가장 높은 15.90%를 득표하여 최초로 선거비 전액 보전인 15%를 넘기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광주광역시 및 호남 지역에 더 많은 국민의힘 후보의 공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21]
6.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7.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8. 시정 구호[편집]
9. 관련 문서[편집]
[1] 그렇기 때문에 후술하듯 광주광역시장 재보궐선거는 지금껏 없었다.[2] 이와 유사하게 보수의 텃밭이자 TK 관료 출신 정치인들의 종착지라는 평가를 받는 대구광역시장도 치열한 내부 경쟁으로 3선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재선이 한계이다. 그래도 대다수가 초선에 시장 커리어가 마무리되는 광주광역시장에 비하면 +1선이 더 가능한 셈.[3] 이후 관선 전라남도지사 역임.[4] 이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군 수습대책위원 역임.[5] 이후 관선 전라남도지사 역임.[6] 이후 관선 전남지사 역임.[7] 이후 관선 전남지사, 민선 광주광역시장 역임.[8] 이후 관선 전남지사 역임, 재임중 5.18 민주화운동 발생.[9] 이후 관선 광주직할시장 역임.[10] 선거 당시 당적.[11] 1995년 1월 1일 이후로는 광주광역시장. 후에 광주광역시 남구 국회의원 및 민선 5기 광주광역시장 역임.[12] 선거 당시 당적.[13] 1995.
탈당.
1995.
[[새정치국민회의|
]]
입당.[14] 2000.1.20.
[[새천년민주당|
]]
으로 당명 변경.[15] 2005.5.6.
[[민주당(2005년)|
]]
으로 당명 변경.[16] 2007.6.27.
으로 합당.
2007.8.13.
[[민주당(2007년)|
]]
으로 당명 변경.
2008.2.17.
[[통합민주당(2008년)|
]]
으로 신설 합당.
2008.7.6.
[[민주당(2008년)|
]]
으로 당명 변경.[17] 2011.12.23.
[[민주통합당|
]]
으로 신설 합당.
2013.5.4.
[[민주당(2013년)|
]]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
으로 당명 변경.
2014.5.3. 공천 불복으로
[[새정치민주연합|
]]
탈당.[18]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19] 무소속 강운태 후보와 단일화.[20] 역대 전국 단위로 치러진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21] 지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호남 28개 지역구에서 공천 신청자가 없어 단 9곳에만 공천하였다.[22]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3] 보수 성향 후보.[24] 민주당계 성향 후보.[25] 민주당계 정당 후보.[26] 민주당계 정당·진보 정당 후보.[27] 민주당계 성향 후보, 이용섭과 단일화.[28] 진보 정당 후보.[29] 진보 정당 후보.[30] 광주 FC의 2020년 유니폼이 퀄리티가 좋지 않아 국내축구 관련 여러 커뮤니티에서 희화화된 시정 구호이기도 한다. 광 대한민국 주 미래로(...) 이런 식으로.[31] 내일(tomorrow)과 내 일(my work)의 중의적 의미이다.
탈당.
1995.
[[새정치국민회의|
입당.[14] 2000.1.20.
[[새천년민주당|
으로 당명 변경.[15] 2005.5.6.
[[민주당(2005년)|
으로 당명 변경.[16] 2007.6.27.
으로 합당.
2007.8.13.
[[민주당(2007년)|
으로 당명 변경.
2008.2.17.
[[통합민주당(2008년)|
으로 신설 합당.
2008.7.6.
[[민주당(2008년)|
으로 당명 변경.[17] 2011.12.23.
[[민주통합당|
으로 신설 합당.
2013.5.4.
[[민주당(2013년)|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으로 당명 변경.
2014.5.3. 공천 불복으로
[[새정치민주연합|
탈당.[18]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19] 무소속 강운태 후보와 단일화.[20] 역대 전국 단위로 치러진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21] 지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호남 28개 지역구에서 공천 신청자가 없어 단 9곳에만 공천하였다.[22]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3] 보수 성향 후보.[24] 민주당계 성향 후보.[25] 민주당계 정당 후보.[26] 민주당계 정당·진보 정당 후보.[27] 민주당계 성향 후보, 이용섭과 단일화.[28] 진보 정당 후보.[29] 진보 정당 후보.[30] 광주 FC의 2020년 유니폼이 퀄리티가 좋지 않아 국내축구 관련 여러 커뮤니티에서 희화화된 시정 구호이기도 한다. 광 대한민국 주 미래로(...) 이런 식으로.[31] 내일(tomorrow)과 내 일(my work)의 중의적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