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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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의 주에 대한 내용은 플로리다주(우루과이) 문서 참고하십시오. 다른 의미의 플로리다에 대한 내용은 플로리다(동음이의어) 문서
, 미국의 가수에 대한 내용은 플로 라이다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미국 남동부의 주. 주의 대부분은 멕시코 만과 대서양 사이에 놓인 플로리다 반도다. 주도는 탤러해시. 주요 도시는 마이애미, 탬파, 잭슨빌, 올랜도이다. 인구는 약 2천만명이 넘는데 이는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텍사스 다음으로 세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이다. 북쪽으로는 앨라배마주, 조지아주와 접해있으며 남쪽으로는 카리브해 섬 국가들이 많다. 중북부는 온대기후지만 남부는 열대기후와 사바나 기후가 나타난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더운 지역 중 하나다.
올랜도와 마이애미가 지도상으로 조금만 보면 가까워보일 수도 있으나, 플로리다 자체 크기가 한반도의 약 85%로써 비행기로는 30분, 차로는 4시간이 걸려서 미국 땅덩어리 치곤 가까운 편이다. 케네디 우주센터, 스페이스포트 플로리다, 월트 디즈니 월드, 유니버설 올랜도 리조트, 시월드 올랜도, 탬파 레고랜드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이 주에는 1565년에 스페인 개척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세인트 어거스틴도 있다. 스페인어 명은 산아구스틴이며 스페인계 미국인 등 스페인 혈통들이 많다.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이자 푸에르토리코 총독이었던 후안 폰세 데 레온이 1513년에 지금의 마이애미를 유럽인 최초로 발견하여 'Pascua Florida'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오늘날의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꽃의 축제'라는 뜻의 'Pascua Florida'는 스페인의 부활절인데, 발견한 때가 부활절 기간인 4월 3일이었고 당시 꽃이 만발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부, 중남부가 완전 다른 주인데 북부와 남부 오키초비 호 일대의 하틀랜드(Florida Heartland) 지역은 흑인 카운티로 위에 있는 앨라배마,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중부 플로리다인 올랜도부터는 점차 히스패닉 비중이 높아지고 동북부 출신 은퇴 이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다.[5]
2. 자연지리[편집]
멕시코 만, 대서양, 플로리다 해협 사이의 큰 반도에 위치해 있고 미국 전체에서 남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적도에서 가까운 편이다. 여기에 반도 끝에서 다시 플로리다키스 (Florida Keys) 제도가 이어진다. 플로리다 반도에서 제도 끝인 키 웨스트 (Key West) 까지 이어지는 1번 국도 (US-1) 길이만 180km를 넘어서[6] , 키 웨스트는 마이애미보다 오히려 쿠바 아바나에서 가깝다.
해발고도도 낮아, 가장 높은 지점이 주의 북서쪽에 위치한 브리튼 힐(Britton Hill)로 105m에 불과하다. 애초 동남부는 평지가 대부분인 대평원의 남쪽 끄트머리 지역이라 고도가 낮으며 애팔래치아 산맥으로 들어서는 테네시부터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름마다 허리케인 및 토네이도에 시달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이 온대기후라지만[7] 온대기후 중에서도 매우 무덥고 습한 축이고, 남쪽 끝으로 내려가면 아예 열대기후이다.[8]
그래서인지 따뜻한 기후 덕에 사탕수수와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이 재배되고 있다. 또한 채소와 여러 과일을 생산하는데 겨울철에 더 추운 동북부 주들에서는 각종 채소와 복숭아, 사과, 포도 등 과일들을 플로리다에 의지하고 있는 편이다. 이들의 생산으로 통조림과 주스의 제조업이 발달하였다. 물론 북부 플로리다는 1월 평균기온이 12도[9] 정도로 플로리다 치고는 꽤 쌀쌀한 덕에 겨울에 영하권으로 떨어져서 얼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눈은 절대 안 온다. 다만, 그만큼 기온의 변화가 크기에 따뜻한을 넘어 더운날도 더러 있다. 부산광역시, 통영시, 사천시, 여수시 등 남해안이나 제주도처럼 눈이 와도 진눈깨비다. 눈이 쏟아지는 건 제주도 평지에 눈이 오는 것처럼 기상이변으로 몇 년마다 한번씩 오는 정도다.
그러니까 북부 플로리다는 호주의 시드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정도의 겨울 기온을 보이는 셈이며, 중부 올랜도와 탬파 일대는 대만 타이베이시나 일본 오키나와현, 홍콩, 베트남의 하노이시, 남부 마이애미는 하이난섬, 가오슝시 등과 겨울 기온이 비슷하다고 놓고 보면 된다.
늪지대가 많고, 그 유명한 플로리다의 미시시피악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인간 거주지가 넓어지면서 악어 서식지와 겹치다보니 사람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 절대로 수영해도 된다고 적혀있지 않은 호수나 강에 들어가면 안된다![10] 그래도 악어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플로리다를 연고로 하는 플로리다 대학교의 마스코트, 스포츠팀 이름 역시 게이터로 즉 플로리다 악어들이다. 플로리다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개발한 게토레이(Gatorade)도 여기서 이름을 따왔다. 동시에 플로리다에는 열대지역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고, 현재 나일왕도마뱀과 물왕도마뱀과 더불어 가물치, 이구아나, 보아, 버마비단뱀, 붉은털원숭이, 카피바라 등의 외래종들이 너무 많이 유입되어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고 있기에 문제가 되고 있다. 악어 뿐만 아니라 플로리다흑곰도 많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쪽도 민가로 내려와서 주택가의 앞마당에서 쉬거나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는 등 마을을 헤집고 다니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이 흑곰들은 겁이 매우 많아 사람을 보면 당황해서 도망가기 때문에 인명 피해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곰인 만큼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크고 작은 호수가 많다. 석회암으로 된 지반이 많아서 그런건데 그만큼 싱크홀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허리케인이 자주 습격하는 곳이다. 그리고 토네이도 역시 북부 플로리다가 토네이도 진로에 들어오며 해상 토네이도 즉 용오름이 흔하게 보인다. 플로리다는 반도로 양 끝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어 해상에 토네이도가 발달하는 것이다. 가끔 해상 토네이도가 허리케인 때문에 생성되는 통에 허리케인이 슈퍼 허리케인으로 번져 연안지역에 큰 피해가 오기도 한다. 심한 경우 허리케인으로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 등이 시설 일부가 파괴되고 물에 잠기기도 한다.
플로리다 북부에 스와니 강이 있는데 동명의 민요로 잘 알려져있다.
3. 주기[편집]
1861년 1월 13일 ~ 1861년 9월 12일.[11]
1861년 9월 13일 ~ 1868년 5월 5일.
1868년 5월 6일 ~ 1900년 11월 5일.
1900년 11월 6일 ~ 1985년 5월 20일.
1985년 5월 21일 ~ 현재.
4. 역사[편집]
대략 14000년전부터 초창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며 서부 지역은 미시시피 문화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근대 초기에 스페인인과 접촉했을 때 35만명의 인구에 100여개 이상의 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다양하게 추정되기도 한다.
1513년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플로리다를 탐험했고 1521년에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세미놀족 인디언에 의한 반복 공격으로 쫓겨났다. 이후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가 1528년에 플로리다 서부를 탐험했고 1539년 에르난도 데 소토가 플로리다를 탐험하고 원주민 세미놀 및 체로키 부족과 전투를 해서 승리했다. 1559년 8월 스페인 탐험가 트리스탄 데 루나 이 아렐라노는 오추세 만[12] 에 있는 펜사콜라에 최초의 정착지인 산타마리아 데 오추세[13] 를 건설했지만 2년 만에 포기하고 철수했다. 그리고는 새 거점을 마련한 곳이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아구스틴으로 현재의 세인트 어거스틴이다. 세인트 어거스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한편 프랑스도 이곳에 관심을 가져 1564년 잭슨빌에 캐롤라인 요새를 건설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 다음해 1565년에는 세인트 어거스틴에 새 스페인 식민지가 세워젔다. 이 곳이 미국 동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스페인의 새 거점이었다.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플로리다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이 벌어젔다가 결국 스페인이 완전히 손에 넣고 프랑스는 철수했으며 잭슨빌의 캐롤라인 요새도 스페인 해군이 인수했다. 그리고 1586년 잉글랜드의 해적왕인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습격을 가해 세인트 오거스틴을 불태웠다. 스페인의 예수회 소속 가톨릭 전도사들은 이곳을 오지 선교를 위한 기지로 사용하였다. 한편 세인트 오거스틴은 1656년의 반란과 1659년의 전염병으로 황폐화되었다. 이후 계속된 해적의 습격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스페인의 세력은 늘어갔다.
17세기에 북부 버지니아 쪽과 캐롤라이나에서 잉글랜드인 이민자들이 슬금슬금 내려와서 플로리다는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3파전으로 변했다. 프랑스는 루이지애나에서 플로리다 서부로 밀고 들어왔고 영국은 북부에서 밀고 들어왔다. 이 각축장 와중에 많은 원주민 부족이 휩쓸려 희생당했다. 결국 프랑스는 스페인 땅을 뺏는 걸 포기하고 대신 스페인에서 넘겨받은 루이지애나에 집중하며 앨라배마 남부 멕시코만 연안지역과 미시시피 빌록시, 파스카굴라 등이 스페인 세력권에 흡수되고 영국은 조지아 남부에서 기회만을 노린다.
한편 영국은 7년 전쟁 와중에 스페인 식민지를 대거 점령해 쿠바 아바나, 필리핀 마닐라, 그리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점령했다. 그 중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수비대를 조직해 상륙한 영국 해군을 쫓아냈다. 그러다가 7년 전쟁이 끝나고 영국은 쿠바 아바나와 필리핀 마닐라 등 점령지를 돌려주는 댓가로 플로리다 전체를 손에 쥐었다. 영국의 플로리다 통치는 강압적이었고 이때 개척민들과 흑인 노예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많이 들어왔다. 이후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독립하고 그 동맹이었던 스페인은 영국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되찾았다. 스페인의 2차 지배 시기는 개척민을 끌어오기 위해 토지 무상분배를 시행했기 때문에 많은 유럽인 개척자들이 들어왔다. 유럽인 개척자들은 스페인인들과 이탈리아인은 물론 독일인도 흔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인들은 주로 남부, 독일인은 북부와 중부에 정착했다. 또 이웃 남부 노예주들에서 탈주노예들이 흘러들어왔고 이들을 받아들인 세미놀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미국과 투쟁을 하는 근거지도 플로리다였다. 그리고 야금야금 미국인 개척자들과 영국인도 조지아에서 유입되기 시작해 어느새 북부 플로리다에선 영미인 개척자들이 다수가 되었다. 이 때 미국은 도망친 노예를 잡기 위해 노예들을 숨겨주던 세미놀족과 충돌했고 스페인에게 원주민 부족들을 통제할 것을 요구했으나 스페인의 지배력은 미약했다. 결국 영국계 개척민들과 미국인 개척자들의 불만이 쌓여 1810년 서부 플로리다가 서부 플로리다 자유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810년 제임스 메디슨 대통령은 서부 플로리다를 병합하고 이를 루이지애나 매입의 일부로 선언했다.
스페인은 항의했으나 나폴레옹 전쟁으로 본토도 정신없고 플로리다 북부에는 스페인계 주민도 많지 않아 사실상 이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한편 세미놀족이 미국 영토인 조지아를 공격했고 이는 스페인의 후원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화가 난 미국 정부는 세미놀족의 말살을 선포하고 앤드루 잭슨을 보내 제1차 세미놀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완승을 거둬 플로리다 동부를 점령했다. 1819년 애덤스-오니스 조약이 맺어젔고 2년 뒤 발효되었다.
결국 1821년 스페인은 더이상 통치권을 유지하기 힘든 플로리다를 포기하고 500만 달러를 받고 정식으로 펜사콜라에서 앤드루 잭슨에게 플로리다를 넘겨주기로 합의했다. 이후 플로리다는 미국의 준주가 되었다. 남부 지역에 살던 스페인인들은 고스란히 미국 시민으로 흡수되었으며 북부는 이미 미국인들 천지였고 여기에 미국인들이 데려온 흑인 노예들까지 넘쳐흘렀다. 어차피 사는 지역이 달라 기존 스페인인-이탈리아인 이주민들과 미국인 개척자 간 갈등은 없었다. 문제는 미국의 통치를 전면거부한 원주민 부족인 세미놀족이었다. 1835년 미국인 개척자들과 세미놀족의 갈등은 극에 이르러 제2차 세미놀 전쟁이 터젔다. 1845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에서 미국은 초토화 전술을 써서 세미놀족과 싸웠고 천문학적인 경비를 소모했다. 세미놀족은 게릴라 전술로 격렬히 저항했으나 결국 미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꺾이고 상당수의 부족인들이 희생되고 항복했다. 상당수의 세미놀족이 강제로 남서부의 사막지대 내 보호구역으로 이주당했고 애버글레이즈에서 버티던 소수의 세미놀족은 원주민 보호구역에 남아있는 것을 허락받았지만 이후 제3차 세미놀 전쟁으로 인해 오클라호마 주로 남아있던 부족의 상당수도 이주당했다.[14]
1845년 플로리다는 주로 승격했고 남북전쟁때는 남군의 일원으로 북군과 싸웠다. 플로리다도 엄연한 노예주였기에 남군에 가담했으나 전력이 허약했다. 플로리다는 주요 해상 통행로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북군으로서는 탐난 곳이었고 남군은 삼면이 바다이고 항구를 낀 이 지역을 지켜야 할 해군력이 아주 허약하여 방어력도 형편없었다. 결국 북군 해군이 플로리다의 무역항을 봉쇄하고 해병대를 상륙시켜 점령했다. 이후 남북전쟁이 끝나고 플로리다는 계속된 이주와 관광지 개발로 미국의 휴양지로 이름을 떨쳤다.
1920년대에는 1920년대 플로리다 부동산 개발 붐이 일어나 투자자들의 대규모 부동산 투기가 이뤄졌었고 이를 통해 늪지대였던 에버글레이즈에 수많은 도시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1925년 마이애미 태풍과 태풍 오키초비 등으로 지역이 완전히 초토화되면서 버블경제 또한 빠르게 꺼져갔다. 뒤이어 일어난 대공황으로 인해 피해 복구가 더뎌졌다.
1960년대에는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영향을 받아 흑인들의 항의 시위와 이를 거부하는 백인들간의 갈등과 린치가 일어났다. 이러한 홍역을 치르고 나서 1962년에는 케네디 우주센터가 들어서 미국 우주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쿠바 혁명으로 망명한 쿠바계 난민들이 플로리다에 대거 정착하면서 쿠바계 미국인 사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스페인어로 소통이 가능했던 남부 플로리다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이들 중 뉴욕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뉴욕은 동부의 대도시이자 미국 최대도시로 기회가 더 많았기에 원래 쿠바의 부유층인 이들에겐 비즈니스에 좋은 곳일수밖에 없었다. 쿠바 이주민들은 타 히스패닉 그룹과 달리 스페인 혈통 특권층 의식이 강했고[15] , 상당수가 바티스타 정권 당시 쿠바의 상류층들이었으며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어서 다른 히스패닉 그룹과 섞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살았다. 그러다 1970년대~1980년대에 마이애미 항구를 통해서, 같은 카리브해를 낀 남아메리카 콜롬비아에서 기승을 부리던 마약 카르텔들이 본격적으로 코카인 밀수를 하기 시작해 마약과 갱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또한 2013년 차베스 정권 말기부터 시작된 베네수엘라의 경제파탄과 이후 들어선 마두로 정권의 철권통치를 피해 이민 온 베네수엘라인들도 플로리다에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플로리다는 따뜻한 기후와 휴양 관광지 개발로 인해 은퇴한 사람들의 낙원으로 불리며 미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2020년대부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퇴임 후 재기를 위한 새 거점으로 낙점되고 반공성향이 강한 베네수엘라 이주민들과 스페인계 미국인의 일부로 원래 쿠바의 부농이던 쿠바 백인 이주민들이 많아서 성향 자체가 리버럴한 멕시코계 미국인이 많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과는 다르다.
5. 인종[편집]
인구가 많고 이주민들도 많은 주 인만큼 인종 구성도 다양한 편이다. 백인이 과반 이상으로 가장 많지만 히스패닉과 흑인 비율도 40% 내외 수준으로 상당한 편.[16] 백인의 경우에도 다른 주와는 좀 다른게 동북부에서 은퇴한 은퇴 이주자들과 쿠바에서 건너온 쿠바계 미국인들이 많다. 이들은 쿠바가 공산화되자 탈출한 케이스가 많다. 그래서 플로리다는 동북부 은퇴 이주 백인들의 경우 그 지역의 리버럴한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은 편이고, 반대로 히스패닉들은 반공 정서 때문에 도리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상당한 편이다.
쿠바 뿐만 아니라 도미니카 공화국이나 푸에르토리코 등 카리브해 출신의 혼혈 혈통 히스패닉도 적지 않으며,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계 히스패닉도 많다. 플로리다는 베네수엘라가 한창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잘 나갔을 때부터 베네수엘라인들에게 거리도 가깝고 스페인어도 통하는 곳이 많아 인기 있는 관광지였고 그에 따라 상당수 베네수엘라인들이 플로리다로 가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다.[17]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도 정계에서 불명예 은퇴한 후로는 플로리다에 거주했을 정도였다.
남동부 주들이 으레 그렇듯이 흑인 비중도 꽤 높은 편이다. 흑인의 경우 미국에서 생존한 흑인 노예 후손인 미국 흑인 외에도 카리브해국가들 예를 들어 아이티에서 건너 온 아이티계 흑인들이 상당히 많다. 이들은 영어 외에도 따로 프랑스어를 쓸 줄 알며 별도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그렇지만 이들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미국 흑인과 구분이 안갈 수 있다. 다만, 아이티계 흑인들은 프랑스 계통 문화이기 때문에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흑인과 많이 다를 수 있고 아이티계 흑인들의 이름이 프랑스어 계통일 확률이 100% 라서 주로 이름으로 구분될 수 있다. 아이티계 흑인들끼리는 부모님이 아이티계임을 알게 되면 고향 사람이라 생각하고 빨리 친해질 수 있는 정도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자메이카 출신 흑인도 꽤 있으며 자메이카인들은 보통의 미국 흑인과 구분되지 않는데 아이티계와 달리 영어를 쓰고 영국식 성명을 써서 미국 사회에 금방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콜린 파월이 자메이카계 이민자 후손이다. 자메이카와 아이티 외에 또 다른 카리브 흑인계 히스패닉으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들이 있다. 정확하게 따지면 이 쪽은 흑백혼혈인 물라토로 흑인인데도 백인 비슷한 외모도 갖고 있으며 구분이 된다. 얼핏 보면 선탠한 백인으로 착각할 정도.[18]
플로리다의 흑인들 중 아이티나 도미니카, 자메이카 등 카리브해 출신들이 아닌 경우는 대개 미국 흑인들이 그렇듯 서아프리카 영국 식민지 출신들로 영국 노예상인들을 통해 신대륙에 건너왔는데 백인 개척자들이 서부와 남부로 뻗어나가며 노예들도 시중을 들기 위해 따라다녔다. 특히 남부 주들의 경우 뜨거운 기후 탓에 대개 잉글랜드 출신인 백인들이 뭘 하기 싫어한데다 목화 등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이 대부분이라 노예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유독 노예를 많이 부렸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령 당시에도 공업화된 뉴욕, 보스턴 등 북부 주들과 달리 이 플로리다와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등은 현실적으로 농업지대들이 대부분이라 노예 해방하면 자기들 기준으론 타격이 크다고 생각했기에 이에 반발해 남북전쟁까지 갔다. 허나 남북전쟁 패배 후 남부 노예주들도 노예를 전원 해방했다. 이후에는 아시아 국가들의 빈농들을 속여 농업이민을 받은 후 사실상 농노 비슷하게 부려먹었으며 라틴아메리카 각 국가에서도 농업이민을 받았다.
또한 올랜도에는 브라질계 미국인도 꽤 많이 거주한다.
6. 경제[편집]
2022년 기준으로 약 1조 3천억 달러의 명목 GDP로 미국에서 네 번째로 명목 GDP가 높은 주[19] 이며 웬만한 선진국이나 인구 1억 이상의 개발도상국 수준[20] 의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규모는 인도네시아보다 높고 멕시코 바로 아래 있는 수치이며 플로리다주가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면 세계 16위 경제대국이 된다.
2022년 기준으로 1인당 명목 GDP는 $62,965달러로 미국 동남부 내에서도 텍사스에 이어 2번째로 높아 개인당 소득이 매우 높은 곳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열대 휴양지이자 관광지이며, 그리고 노령의 은퇴자들이 여생을 보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카지노도 꽤 있고 대규모 테마파크, 리조트나 호텔도 많다.원래 쿠바 상류층이던 쿠바계 미국인들도 부유한 편이다. 지역별로 볼 경우, 올랜도, 마이애미 등 중남 플로리다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다.
노령의 은퇴자들이 플로리다로 많이 모이는 이유는 따뜻한 날씨 등도 있지만, 미국 연방에서 주 소득세가 없는 7개 주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때문에 미국 동부지역에서 돈 많이 벌어 성공한 사람들은 집주소를 플로리다에 두고 일은 뉴욕 등지에서 한다. 그리고 은퇴자들 역시 플로리다에 집을 장만해 부동산 수익으로 은퇴생활을 즐기는 주이다. 뉴욕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수천만달러 연봉을 받는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의 선수들이 뉴욕주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집주소는 플로리다에 두고 있다.[21]
올랜도나 마이애미는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각한 곳이다. 물론 부동산 투기도 매우 심각하다. 휴양지 도시라서 부자도 많고 관광객도 많아 당연히 범죄율도 상당히 높은 곳이다. 거꾸로 이 때문에 2008년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때 이 동네 경기는 직격탄을 맞았다. 은퇴한 노년층의 재테크 수단인 부동산과 은행이 이 사태로 된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7. 지역 특징[편집]
플로리다의 문화는 원래 이 땅을 지배한 스페인, 이 땅의 원주민인 세미놀족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미국에 매입된 후 남하한 영국계 미국인 개척자들과 이들이 같이 끌고 온 흑인 노예들의 흑인 문화와 카리브해 국가 출신 흑인들이 서로 섞여 미국내에도 문화적으로 독특한 곳이다.
이렇게 서로 배경이 짬뽕이라서 플로리다는 재미있는 밈이 있다. Florida weird 라는 것으로 지역드립 유머인데 미국 내외로 별의 별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마경, 이상한 주라는 이미지가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스페인 제국 지배 하에 있어 라틴 문화가 남아서 문화가 특이한데다 별로 큰 트러블도 없었고 날씨 따뜻하고 살기 편한 주라는 인식이 있어 다양한 인구가 관광 및 은퇴지로 선택하다 보니 생긴 현상으로 추측되는데, 대체로 약에 절은 미친놈들이 즐비하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헐벗은 차림으로 마약하고 야자수 깔린 땡볕에 거리를 건들건들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온갖 파티를 벌이거나 약을 너무 많이 해서 맛이 간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는 인식이 대다수다. 플로리다에서는 악어를 슬랭으로 swamp puppy(늪 강아지)라고 부른다.
특히 Florida Man & Florida Woman 이라고 하면 그들은 가장 웃긴 혹은 재미있는 일을 일으킨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이미지를 기반으로 Florida Man 이라는 놀이가 인터넷에서 유행했다. 방법은 구글에서 “Florida man”다음에 자신의 생일을 넣어 검색하고[22] 어떤 기괴한 일이 있었는지 감상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악어랑 같이 산다거나, 악어를 봐도 무심하거나 전봇대를 기어올라 지나가는 차에 침을 뱉는다거나 생선을 의자로 쓴다거나 등등 갖가지 기상천외한 기행과 범죄행각을 벌여 쉴새없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실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플로리다인 이유가, 플로리다는 다른 주에 비해 범죄자 신상보호가 느슨하다. 그만큼 경찰이 그날 처리한 일이 많이 올라오고 그 중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매스컴에 실려서 나오는 것. 플로리다만 유난히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다.
북부 플로리다에도 스페인이 식민지배를 안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 늪지대라서 이주민 숫자가 적었고 대부분은 세미놀족 인디언 땅이었다가 나중에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매입하면서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기존의 최남단 남부에서 백인 개척자들[23] 이 데리고 있던 흑인 노예들까지 같이 데리고 내려와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미국인 인구가 폭증했다. 반면 기후가 더 따뜻하고 바다를 면하고 있으며 땅이 좋아서 예전부터 스페인에서 많은 이주민이 건너온 중남부 플로리다의 경우는 탬파나 산아구스틴 같은 오래된 도시들도 많으며 스페인 혈통 비중이 과반수 이상이다. 그래서 둘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물론 거주지가 분리된 만큼 스페인 사람들과 미국인 개척자들이 충돌한 일은 없었다. 대신에 이 지역의 아메리카 원주민인 세미놀족은 미국의 통치를 전면거부해 결국 미군이 여러 번 세미놀족과 전투를 치르고 섬멸해 버렸다. [24] 그리고는 여기에 동북부에서 은퇴한 노인이나 따뜻한 날씨와 해변을 찾아 놀러오는 히피족들이 들어오면서 문화가 잡탕돼서 요상한 곳이란 이미지가 나온 것이다.
8. 교통[편집]
플로리다는 지하철이 있는 마이애미와 잭슨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대중교통이라곤 버스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열악한 편이라 자동차로 다니는 편을 추천한다. 그나마 관광도시인 올랜도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마이애미에는 교외 지역인 데이드까지 연결하는 마이애미 지하철이 있으며 잭슨빌에서는 모노레일이 지하철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에서 플로리다에 가려면 직항편은 없어서 뉴욕, 시카고, 애틀랜타, 댈러스 등지에서 미국 국내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댈러스나 애틀랜타에서 환승하는 것이 시간 상 가장 빠르다. 보통 14시간 걸리는 애틀랜타에서 환승하는 경우가 많다. 도착하는데 환승시간을 포함해 19시간 걸리지만 뉴욕이나 시카고 등지에서 환승할 경우 하루를 꼬박 비행한다. 물론 입국은 시카고나 뉴욕을 통한 입국이 더 쉽다. 대한민국에서 직항을 뚫기에 상당히 멀어 항속 거리 때문에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