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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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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으로, 연고지는 서울특별시다. 홈 구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두산 베어스와 공동으로 쓰고 있다.무적 LG, 끝까지 TWINS!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와 더불어 서울을 연고지로 삼는 3개의 야구단 중 한 팀이다. 창단 당시에는 팀명이 MBC 청룡이었으며, 1990년에 럭키금성에 인수되어 팀명이 LG 트윈스로 바뀌었다.
모기업은 LG그룹으로, 산하 스포츠 법인인 LG스포츠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2. 구단 소개[편집]
최초의 서울연고 프로스포츠 팀으로써, 럭키금성그룹이 1982년 창단한 문화방송의 MBC 청룡을 1990년 1월 18일 150억 원에 인수하여 그 해 3월 15일에 재창단, LG 트윈스 시대가 시작되었다. 로고나 유니폼은 팀이름도 그렇고 미네소타 트윈스와 매우 흡사하다. 팀명인 LG는 모기업 이름인 Lucky(럭키) + Goldstar(금성)의 약자. 트윈스라는 애칭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상징과도 같던 여의도 트윈타워[19] 사옥에서 유래했으며, 미국에도 같은 애칭의 야구팀이 있으므로 야구팀 이름으로 못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20]
팀 상징색의 경우 MBC 청룡 시절에는 파란색을 메인 컬러, 노란색을 보조 컬러로 사용하였으며 LG 트윈스 시절부터는 검정색을 메인 컬러, 빨간색과 매우 진한 핑크색[21] 을 보조 컬러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TV 중계나 스카우팅 리포트같은 서적 등에서는 LG 트윈스를 소개할 때 검정색보다는 진한 핑크색을 주로 사용한다.[22]
1990년 창단 원년에 순위 변동이 심했지만[23] 여름에 들어서면서 순위 상승을 하는가 싶더니 마지막에 가서 해태와 근소한 차이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그 해 시즌의 돌풍을 일으키며 화려한 데뷔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듬해 성적이 내려앉고 이후 이광환 체제로 들어서면서 세대교체와 자율야구를 도입하는 과정에 약간의 진통을 겪다가 1993년부터 포스트시즌에 계속 진출을 하면서[24] 90년대 포스트시즌의 단골 손님으로 입지를 굳혔다. 물론 가을야구에 실패한 시즌도 있었지만 이듬해엔 보란듯이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정도로 저력이 있던 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성적은 6668587667(2003~2012년)으로 좋지 않은 편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가지고 있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기록을 경신하며 신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다. LG가 21세기 들어서 가을야구를 한 시즌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02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2013년, 최하위에서 4위로 대반전에 성공한 2014년, 처음부터 리빌딩을 선언하고 잠시의 추락 후 2014년의 재현을 이루어낸 2016년, 시즌 4위를 달성했지만 준PO 불패 징크스가 깨져버린 2019년 다섯 번 뿐이다. 그래도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포스트시즌에 4차례 진출을 하면서 2000년대의 부진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한층 높이는 중이다. 하지만 양상문이 감독 + 단장으로 재임하던 14~18년동안 정성훈 손주인 이병규, 이진영 등등 베테랑들을 다른 팀으로 축출한데다가 베테랑들의 자리를 꿰찬 루키들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상승세가 더뎌지면서 팀 순위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2020년 4월에 구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캐치프레이즈와 기념 엠블렘을 발표했다. 엠블렘은 서울의 상징 동물인 해치를 모티브로 하여 트윈스의 T와 숫자 30이 들어간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캐치프레이즈는 LG 트윈스/2020년 문서 참조.
3. 팀 특징[편집]
LG 트윈스/팀 특징 문서 참조.
4. 구단이 모기업 이름을 바꾸다[편집]
사실 LG그룹은 KBO 리그에 더 일찍 참가할 수도 있었다. MBC가 추진하던 프로야구 창설 TF에서 럭키금성그룹에 "부산·경남지역 연고 프로야구단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했다. 구자경 당시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LG그룹 오너 일가는 모두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3세대 경영인 형제들도 모두 부산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게다가 LG그룹의 뿌리이기도 한 락희화학 공업사 공장이 부산 온천동에 있기도 했다.
이 때 당시 외유 중이던 구자경 회장 대신 이헌조[25] 럭키금성그룹 기획조정실장이 "지금 오너가 부재중이니 돌아오신 후에 협의 후 확답하겠다"며 답변을 미뤘고[26] , 당시 KBO는 프로야구 창단 목표일까지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서울 연고를 고집하던 롯데그룹을 부산으로 보내버리며 프로야구 원년 연고지 배치를 마무리지었다. 이후 구자경 회장이 귀국하여 이헌조 실장으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자 무릎을 치며 "이 문디야, 그냥 하겠다고 받아 들였어야 안카나!" 라며 이 실장을 나무랐다고 한다. 능성 구씨 집안 가풍상 아랫사람을 나무랄 때도 조용히 타이르는 식이었고 구자경 회장 또한 성품이 온화했다는 이야기를 감안한다면 이 당시 프로야구단 창단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구 회장이 상당히 격분했음을 알 수 있다[27] . KBO 리그는 구단주 회의로 대표되는 대기업의 카르텔 구조이기 때문에, 한 번 때를 놓치면 마음대로 참여할 수도 없다[28] . 그래서 꿩 대신 닭격으로 만든것이 럭키금성 황소였다는 후문.
당시 럭키금성그룹은 (주)럭키(현 LG화학), (주)금성사(현 LG전자) 양대 주력사를 주축으로 계열사 이름도 럭키xx, 금성## 식으로 일관성이 없었다. 럭키금성이라고 그룹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로, 그 이전에는 그냥 럭키그룹이었다. 그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락희화학공업사-(주)럭키-LG화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창업한 금성사가 주력으로 같이 부각되면서 이같이 부르게 된 것. 그러나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럭키금성은 너무 길고, 줄여서 럭금은 어감이 별로라는 이유로[29] 팀명을 럭키의 L과 금성의 G를 합쳐서 LG로 정하게 되었다.[30] 반도패션, 호남정유도 LG로 바뀌면서 명칭을 LG패션(현재는 그룹에서 분리), LG정유(현 GS칼텍스)로 통일했다. 또한 럭키금성 시절엔 편의점 이름을 LG25 (현 GS25) 라고 한 적도 있었다.
이후 LG 유니폼이 바뀐해인 1994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무 회장이 크게 기뻐하면서 그 다음해 그룹명을 정식으로 LG로 확정했고 뚝섬 돔 경기장을 지을 계획도 세우기까지 했다. 구단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갈아버린 셈이다. 또한 1984년 창단된 프로 축구단 럭키금성 황소도 LG 치타스(현 FC 서울)로 이름을 바꾸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참고로 LG 트윈스 창단작업 때 만든 로고는 이후 편의점 체인인 계열사 LG25에서도 사용하게 되어 GS그룹으로 분리되어 GS25로 바뀌기 전까지는 매년 수익의 일정 %를 LG트윈스에 로열티로 지급했다.
그러나 LG그룹에서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1984년에 그룹 계열사인 LG애드가 발족한 것을 보면 장기적인 프로젝트였을지도 모른다. 2007년에 발간한 LG 60년사에서는 야구단이 그룹 이름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들어가 있지 않다. 다만 최초는 LG애드나 LG카드에게 내어줬을지언정, LG라는 그룹명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 것은 90년대 초반 LG트윈스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 그룹이 야구단을 자신들의 가장 큰 홍보 수단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2017년 구단 CI와 워드마크가 바뀐 것으로도 볼수 있는데 송구홍 단장이 밝힌 바로는 2017년 LG 그룹 70주년을 기념해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송구홍 단장이 "그럴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라며 얼버무리긴 했지만 자신이 단장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준비되어온 작업이었다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그룹 윗선에서 직접 개입했을 확률이 높다.
5. 마스코트[편집]
서울, LG사이언스파크!
국내 최대규모의 과학연구단지로
LG그룹의 우수한 전문 R&D연구원들 모여있다.
이 곳에서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하는 LG만의 세계 최고 첨단기술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갖춘 쌍둥이 휴먼 야구로봇 형제 ‘럭키’와 ‘스타’가 탄생하게 되었다.
‘럭키’와 ‘스타’는 탄생과 함께 로봇 최초로 프로야구팀 LG트윈스에
특별선수로 입단, 놀라운 능력과 사람에 가까운 감성으로 야구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신바람 나게 선사하는 중이다.
- 공식 홈페이지 설명
- LG 트윈스의 현 마스코트는 럭키와 스타로 2017년에 처음 공개되었다. 두 캐릭터의 이름은 LG그룹의 과거 명칭이었던 럭키금성(Lucky GoldStar)에서 이름을 따온 듯. 다만 LG 트윈스의 새로운 CI와 로고에 대한 불만의 불똥이 마스코트에까지 튀면서 영 좋지 못한 반응을 얻었다. 두 마스코트의 등번호는 90, 94. LG가 우승한 연도에서 유래했다.
- 왼쪽부터 1990-2005 / 2006-2016 / 2017-[31] 로 구분된다. 마스코트가 쌍둥이 로봇에서 쌍둥이 사람으로 그리고 다시 쌍둥이 로봇으로 돌아왔다.
5.1. 이전 마스코트[편집]
6. 구단 색상 일람[편집]
7. 영구결번[편집]
2017년 7월 18일 kt wiz 전부터 걸려있었던 두 레전드의 등번호[34]
최근에는 이를 제거한 후 3루 외야측 깃발 게양대에 깃발로 걸어놓았다.
7.1. No.41 김용수[편집]
- 1985 - 2000
- 1999년 4월 19일 영구결번
- 통산 613경기 126승 89패 227세이브 평균자책점 2.98 1146 탈삼진
- 1990년 한국시리즈, 1994년 한국시리즈 MVP
최초로 두번의 한국시리즈 MVP를 달성했던 선수이자 2019년 현재까지 LG 트윈스가 배출한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인 늘 푸른 소나무 노송 김용수 선수가 트윈스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1999년 4월 19일에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100승 200세이브를 달성한 김용수 선수의 41번은 팀의 첫 영구결번이 되었고 2017년 이병규의 영구결번 지정 이전까지 트윈스의 유일한 영구결번이었다.
MBC 청룡부터 LG 트윈스로 팀명이 바뀐 이후로도 활약했던 노송인지라 청룡과 트윈스의 역사를 이어주는 선수이기도 하다. 실제로 청룡 유니폼을 잠실야구장에 입고 오는 팬들의 등에는 41번이 높은 확률로 마킹되어 있다.
선수 시절의 김용수는 그야말로 레전드 대접을 받을만 하지만 코치 시절의 삽질과, 결정적이었던 조시카 사건으로 LG팬들이 현재 노송을 보는 시선은 굉장히 복잡하다. 한 마디로 하자면 선수시절의 노송은 깔 수 없지만 코치로서는 이제 만나지 말자. 하지만 김용수는 조윤준 추천 루머를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병규가 영구결번되기 전까지 잠실 야구장 LG 홈경기 시 1루 내야석과 우측 외야석 사이 계단에 김용수의 등번호 41번과 영구결번일인 1999.4.19가 박힌 대형 현수막이 걸렸었다.[36]
7.2. No.9 이병규[편집]
- 1997 - 2016
- 2017년 7월 9일 영구결번
- 통산 1741경기 2043안타 161홈런 972타점 992득점 타율 0.311
- 1999년 30-30 달성
2017년 7월 9일 한화전에서 이병규의 은퇴식과 함께 영구결번 지정이 확정되었다. 1997년 데뷔해 2019년 정우영 이전까지 LG의 마지막 신인왕을 수상했고, 최단 기간 2000안타, 최고령 타격왕, 최고령 싸이클링 히트등등의 걸출한 기록들을 남기고 프로 커리어 20년중 일본 진출을 제외한 모든 커리어를 LG에 바친 타자 이병규도 두 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이다. 다만 먼저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김용수와는 달리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고[37] 한국시리즈에 3번(1997년, 1998년, 2002년) 출전한 경험은 있다. 90년대 LG의 황금기 중반부터 다시 팀이 회복할 때까지 함께했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가 달았던 9번은 LG트윈스의 두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8. 임시 결번[편집]
8.1. No.47 이상훈[편집]
- 1993 - 2003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트윈스를 상징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야생마" 이상훈을 첫 손에 꼽는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팀의 에이스였고 1995년 선발 20승의 신화를 썼으며 팀이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 등판을 자청할 정도로 트윈스를 사랑했던 투수다.
불펜에서 마운드까지 역동적으로 뛰어오는 특유의 등판 장면과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완벽한 활약을 한 그를 기억하다가 현재의 LG 투수진을 볼 때 LG팬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고 한다. 야생마는 금지어 시절 구단과의 마찰로 석연찮은 이별을 한 후 옆집을 거쳐 2015년 겨울에 LG 코치로 다시 돌아왔다.[38] 등번호는 선수 시절과 같은 47번[39] 다시 LG로 이상훈이 돌아온 만큼 영구결번을 원하는 LG팬들도 많으나 실현가능할지는 아직 모른다. 물론 LG 구단과 이상훈 사이의 구원(舊怨)이 풀린 만큼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릴 가능성도 있다.
이상훈이 2018년 LG를 떠나며 차명석 단장이 이상훈이 돌아올 때까지 47번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LG의 47번은 비공식적이나마 영구결번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9. 프랜차이즈[편집]
1994년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 3인방은 90년도 리즈시절 LG의 팀컬러였던 신바람 야구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들[40] 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허슬 플레이어" 송구홍 이나 "검객" 노찬엽 또한 추억의 선수들이다. 이후 2016년을 마지막으로 "적토마" 이병규가 은퇴함에 따라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중에는 박용택이 LG의 거의 유일한 대표 프랜차이즈 선수로서 활약하고 있다. 혹사의 영향으로 오랜 재활을 통해 다시 돌아와준 이동현도 팀의 대표적인 투수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2007년부터 입단한 봉중근 또한 무너진 선발진중 유일하게 팀의 에이스로 활동하다가 선발, 마무리 보직을 오가며 팀을 위해 헌신하였고 그가 LG를 사랑하는 만큼 팬들에게도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고 있다.
포수 중에는 김동수가 레전드 대접을 받고 있다. FA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는 등[41] 당시에는 김통수 같은 비난을 받았지만, 2014년 말 15년 만에 친정팀 LG로 돌아온 뒤 현재는 2군에서 차근차근 차기 감독 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2군에서 평가가 상당히 나빠 1군 감독 데뷔는 무산되었다.
LG의 포수계보는 김동수 - 조인성 - 유강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중엔 2008년, 2009년 시즌 맹활약을 펼친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있다. 얼마나 활약이 대단했으면 LG팬들이 페타신, 페느님이란 별명을 붙였을 정도. 그가 남긴 충격이 대단했기에, LG팬들은 활약이 대단한 선수들에게 ~타지니라는 접미사를 붙이고 있다.[42] 그리고 2007년 시즌 중반 입단해 2008년 시즌 팀의 성적 부진, 특히 불펜진의 난조로 많은 승수를 챙기지 못해 옥크라이라는 별명을 얻으면서도 10승을 챙기면서 대인배급 성격과 상냥한 팬서비스를 보여줬던 크리스 옥스프링도 옥춘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외국인타자를 뽑을 때 미국 출신이 아닌 용병을 뽑아야 대박을 친다. 2008~2009년 베네수엘라 출신의 로베르토 페타지니
2015~2017년 도미니카 출신의 루이스 히메네스 2020년 멕시코 출신의 로베르토 라모스이다.
투수 쪽에서는 부상으로 이닝을 많이 소화하지 못했지만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시즌 동안 리그의 1선발 에이스였던 데이비드 허프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고, 최장수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는 이닝 이터 역할을 해주며 활약했었다.
2019 시즌엔 타일러 윌슨과 케이시 켈리의 외국인 원투펀치가 동반 14승을 달성하고 각각 2.92, 2.55(4위)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선발진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 찾아온 10년간의 암흑기 탓에 다른 방면으로 상징적 인물이 된 이들도 존재한다. 특히 2006년 활약한 방화신기(등유규민, 휘발류택현, 경유헌호, 김민기름, 정유재복) 멤버들은 전설이 되었으며, 이 외에도 먹튀계의 영원한 아이돌 홍현우와 국내 프로야구계의 첫 먹튀 이정길이 있다. 부산 영도구청장에 취임한 어윤태[43] 도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우규민이 KIA의 한기주와 화염 방사를 하고 다녔다. 파이야!~ 하지만 그랬던 우규민도 경찰청 제대 이후에는 선발투수로 전향하여 오랜 기간 흔들렸던 LG 선발진의 한축을 담당하며 토종 에이스로 발돋움하며 국가대표에까지 뽑혔다.
이 외에도 팀에서 오래 헌신한 이종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최동수, 구단 통산 최다 도루를 기록한 '슈퍼소닉' 이대형 등이 있다.
MBC 청룡의 4할 타자이자 첫 번째 우승 감독이었던 백인천은 LG, 삼성팬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롯데에서의 악명높은 활약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조금 묻힌 감이 있다. 하지만 본인이 2017년 개막전 시구에도 나서려고 하는 등 LG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다.[44]
80년대를 상징적인 선수들로는 '빨간 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개구리 번트' 김재박, '미스터 청룡' 김상훈, '개막전 만루홈런' 이종도, '청룡의 안방마님' 심재원, '첫번째 에이스' 하기룡, '쌕쌕이' 이해창, '청룡 최초의 선발투수' 이길환, '곰사냥꾼' 김기범 등이 있다.
9.1. 1994년 신인 3인방[편집]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먼 옛날로 건너가면 LG에도 영광스러운 과거들이 있었다. 특히 1994년 이광환 감독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가장 파격적인 활약을 보인 신인 선수 셋 김재현, 유지현, 서용빈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LG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세 명의 1994년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김재현: 시즌 125경기 출장, 타율 0.289 134안타 홈런 21 타점 80 도루 21(20-20 클럽,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
- 유지현: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05 147안타 홈런 15 타점 51 도루 51 (신인왕 수상)
- 서용빈: 시즌 126경기 출장, 타율 0.318 157안타 홈런 4 타점 72(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수상)
그러나 LG의 암흑기 금지어 시대에 김재현은 FA 후 SK로 이적하고, 서용빈은 병역비리에 연루된 후 은퇴, 유지현도 은퇴했다. 김재현은 2005년 이후 SK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우승으로 장식하며 은퇴했으며, 서용빈과 유지현은 각각 LG 트윈스의 타격과 주루코치가 되었다.
다만 항상 셋이 나란히 언급되는 것과 달리, 특히 김재현과 유지현은 사이가 굉장히 나쁘다. 선수협 결성 당시 김재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에 반해 유지현은 구단의 편에서 선수협을 결사반대했고, 김재현을 제외한 LG 선수들이 전부 선수협에서 나오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 당시 김기태, 이 모 씨 등과 함께 오적으로 불렸다.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이 둘은 이 때 완전히 갈라섰다. 그러나 유지현도 나중에 LG 프런트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은 좀 아이러니.
덧붙이자면, 1994년 LG의 신인 중엔 위의 세 선수 말고도 주목할 만한 선수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투수 인현배. 그는 위의 세 선수와 함께 혜성처럼 등장하여 94년 전반기에만 10승을 쓸어 담으며 LG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부상 등의 악재가 겹쳐 남은 기간 동안 1승도 못 올리고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어쨌든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 10승을 올렸으니 수치상으로는 성공했다 볼 수 있지만, 그 후로 거의 활약을 못하고 은퇴함으로써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허나 1994년 LG의 최전성기를 지켜본 올드팬들 중엔 신인 3인방에 인현배가 더해진 신인 4인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30대의 늦은 시기에 기량이 만개한 최동수 역시 94년 신인으로서 LG에 입단했다. 당시엔 별 활약도 없었고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201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때까지 노장으로서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이래저래 94년 LG의 신인 농사는 프로야구 사상 최대의 대박 농사였다고 볼 수 있겠다. 하긴 그것으로도 모자라 옆집 1차지명 투수 류택현을 빼와서 한참 동안 잘 굴리고 있으니...
그 결과...
2위 태평양 돌핀스와 11.5경기차의 압도적인 1위를 해낸다.
오랜 시간이 흘러 김재현은 구단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팀을 떠나 SK에서 활약하고 은퇴했고, 유지현은 주루코치, 서용빈은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그러나 박병호 폭행사건과 지속적인 탈쥐효과로 인해 서용빈은 예전만큼의 레전드 대우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LG 타자들이 죄다 똑딱이가 되어버리면서 그의 현역 시절 활약도 모조리 깎여나가고 있는 중. '김재현과 유지현에게 묻혀 별 것도 아닌 타자가 신인 3인방 취급을 받았다.' 'LG의 신인 3인방은 유지현, 김재현, 인현배였다'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90년대의 신인 3인방의 활약은 정말 대단한 것이 맞았다. 셋 중에 가장 선수로서 기량이 떨어지던 서용빈도 중요한 때에 꼬박꼬박 안타 치면서 선수시절은 좋은 활약을 했을 정도. 그러나 서용빈이 10년 동안 타격암흑기의 주범이 되며 쫒겨나고 김재현은 FA 이적으로 LG와 완전히 인연이 끊어져버렸으며 유지현은 팀에 오랫동안 코치로 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중이라 유지현이 감독으로 LG를 우승시키는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이 3명은 영구결번을 받기는 어려울 듯 하다.
9.2. MVP & 신인왕[편집]
- 프로야구 전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정규시즌 MVP를 배출한 적이 없다.[46] 가장 MVP에 근접한 사례는 4할타자 백인천(1982), 좌완 최초 20승 이상훈(1995), 해당 시즌 다승왕 신윤호(2001).
- 2019년 정우영이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1997년 이병규 이후 무려 22년 만에 신인왕을 배출하였다.
10. 팀의 역사[편집]
LG 트윈스/역사 참조.
11. 관련 기록[편집]
11.1. 역대 감독[편집]
MBC/LG의 한국시리즈 감독은 2017년까지 5명으로 김동엽(1983), 백인천(1990), 이광환(1994), 천보성(1997, 1998). 김성근(2002)
11.2. 역대 구단주[편집]
MBC 청룡 시절에는 문화방송 사장이 구단주 역할을 맡았고 LG그룹이 구단을 인수한 후부터는 LG그룹 오너가 구단주를 맡고 있다.
11.3. 역대 성적[편집]
그 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문서 참조.
11.4. 포스트시즌 전적[편집]
11.5. 역대 개인 성적[편집]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MBC-LG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
11.5.1. 통산[편집]
11.5.2. 단일 시즌[편집]
12. LG 트윈스 선수 관련[편집]
13. 트윈스 관련 커뮤니티[편집]
13.1. I love Twins [편집]
13.2. LG 트윈스 갤러리 [편집]
14. 역대 유니폼 변천사[편집]
- LG 트윈스/유니폼 참조.
- 2016년부터는 무려 스타워즈와 어벤져스와의 콜라보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스타워즈는 시범경기 때 매장에 나왔고, 어벤져스는 5월에 출시. 트윈스샵이 아니라 헬로트윈스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야 상품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5월부터는 국산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진행되었다.
- 2019년에는 미니언즈와 콜라보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 2020년부터는 무려 카카오프렌즈와의 콜라보레이션 굿즈 상품이 출시되었다. 2020년 8월 현재는 레플리카, 모자, 인형만 예약판매로 출시 된 상태며 차후 키링, 에코백등이 추가될 예정. 기사 이로써 LG트윈스는 KBO에서 콜라보레이션의 명가임을 다시 한번 각인 시키게 되었다.
15. 사건사고[편집]
- LG 트윈스/사건사고 참조.
16. 지역 연고 학교[편집]
17. 팬덤[편집]
17.1. 인기도[편집]
전신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하며, 기나긴 암흑기 끝에 빠질 사람은 다 빠졌던 시기에도 관중 수 3위 정도는 너끈히 찍었다.[70] 특히 한일 월드컵에 밀려 프로야구의 인기가 많이 떨어져서 연 관중이 불과 200여만명대에 불과했던 2000년대 초중반 암흑기때, 총 8개 팀 중 유일하게 평균 관중 1만명대, 연 70만 관중을 유치하며 전체 관중 30퍼센트 비율을 자랑하며 수위의 인기팀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3년 그 길고 길던 비밀번호를 깨버리자 6년 만에 관중 동원 1위를 재탈환, 128만 명[71] 을 동원하며 95년에 세워졌던 최다관중 기록을 갈아치웠고, 2014년에도 118만 명을 동원하며 1위를 유지했다. 2014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손민한(NC)vs 이병규(LG)를 보면 떼창이 어마어마하다. 더불어 2019년 4월 21일 잠실 키움전에서 KBO 리그를 넘어서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3000만 관중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여전히 넘사벽인 인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리즈 시절의 LG는 전국구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였다.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시작되는 구단 내 삽질과 자율이 방종이 돼버린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들이 성적부진으로 귀결되어 팬이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KBO 전체 관중중에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인기 많은 구단 중 하나이다. 이는 마산에서 치러진 2014년 준플레이오프를 봐도 알 수 있는데, 홈팀이었던 NC 다이노스를 누르고 3루 쪽까지 전부 LG를 응원하는 상징인 노란 수건으로 뒤덮어 버렸다. 심지어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LG트윈스의 홈인 잠실에서는 220블록,221블록의 원정 NC 팬들을 제외한 3루 그리고 3루쪽 외야까지 전부 LG트윈스 팬들로 점령해버렸다. 물론, NC가 신생구단임을 감안해야 하지만, 팬덤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줬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특히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미남 선수들로 인해 여성팬들을 다수 보유했던 원조 오빠부대 구단이기도 하다[72] .
응원 도구로는 현재 빨간 응원방망이(2,000원)와 노란색 응원수건(4,000원)이 사용된다.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입으로 불어서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응원도구(일명 '막대풍선')를 사용한 구단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노란색 응원방망이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1997년 가을부터 응원방망이 색깔이 현재의 빨간색으로 바뀌었다.[73] 가끔 노란색 응원수건과 비슷한 크기의 노란색 응원종이를 경기 도중 나눠줄 때가 있다. 그리고 LG팬들의 영혼의 친구 유광잠바가 있다.
잠실야구장 LG 홈경기에 가보면 파랑+노란색의 잠바나 모자를 쓰고 있는 팬들이 많은데 이것은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유니폼이다. LG 구단에서는 자체적으로 청룡과 관련된 행사를 많이 하고 있지는 않지만, 상당수의 팬들이 주문제작 등을 통해 청룡 관련 상품들을 소유하고 있다.
2013년과 2014년에도 여전한 관중 동원력을 보여준 LG이지만 너무나 길고 긴 암흑기의 탓으로 대부분 신생 서울팬을 두산에게 빼앗긴 상태다.[74][75] 더 이상 90년대의 영광만 바라볼 수만은 없는 상황. 야구 팬들의 신규유입을 위해서는 구단의 노력과 자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많은 LG팬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LG팬들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유입이 줄고 있는 반면, 반대로 두산은 팬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이며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76] 그나마 비밀번호 탈출 후 LG의 성적이 중상위권은 되어 기존의 주류 LG팬 연령층의 자녀 세대(200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팬들)의 팬유입은 꽤 있다. 10년간의 긴 암흑기 탓에 두산팬 연령층과 LG팬 연령층의 갭이 크다.
신규팬 유입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서울팀들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KBO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를 배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 90년대까지는 자체 팜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를 다수 배출하며 인기팀 반열에 올랐지만 두산이 전직 두산 선수를 포함하여 다수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하고 키움이 이정후, 김하성을 배출할 때 LG 내부에서는 박용택 이후로는 성장한 슈퍼스타가 사실상 없다.[77][78][79]
또한 잘생긴 외모로 여성팬들을 불러모았던 심수창, 이대형, 우규민도 전부 팀을 떠난 상태.[80]
하지만 2021년 1월 기준 구단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보면 78,000명으로 집계되어 80,000명의 롯데 자이언츠에 이어 전체 2위인데 이는 LG가 여전히 팬덤이 거대하고 엄연히 인기구단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의 주 이용층이 젊은이들임을 감안하면 LG도 젊은 팬의 숫자가 결코 작지 않다. 구단 유튜브 구독자수는 두산, 롯데에 이어 3위이다. 차명석 단장이 부임한 뒤 그동안의 LG와는 다르게 프런트 자체적으로 구단 라이브 방송 등 팬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정우영이 22년만에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젊은 선수들이 1~2년차 이내에 빠르게 1군에 자리잡기 시작하고 연속 5할 승률+가을야구에 진출하면서 팬덤 이탈이 줄어들고 꽤 안정화되고 있다.
2016년, 밑바닥을 찍었던 7월 이후 신바람을 몰아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면서 통산 27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
2018년 극심한 롤코를 타다가 8위로 추락해버린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전체관중 1,108,677명에 평균관중 15,398명을 기록했다. 다만 리그 관중1위는 두산에게 내주었다. 올해 KBO전체 관중이 리그 끝나기 1~3일 전에 800만을 겨우 넘겼다는것을 감안하면 감탄할만한 수치이다.
2019년 4월 21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 3차전에서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통산 30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
2019년 9월 30일 11,810명의 관중이 입장해 1,000,400명으로 통산 14번째이자 역대 두번째 10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를 달성했다. 2019시즌 유일한 100만관중 돌파 구단임과 동시에 두산 베어스의 10년 연속 100만관중(2009~2018)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를 통틀어서 최다인 14번째 100만 관중도 달성하게 되었다.
LG는 이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못 간 시즌만 6시즌에, 역대급 바로 다음가는 DTD를 보여준 시즌도 있었고[81] 시작부터 끝까지 9위인 시즌도 있었으며, 잠실 라이벌에게만 1승 15패를 당하는 시즌까지 있었는데도 꼬박꼬박 100만을 넘겼다는 이야기다. 10년 동안 100만을 채운 두산은 포스트시즌을 가지 못한 적이 2014 시즌 뿐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처참한 성적을 내주는데도 꼬박꼬박 직관을 와주는 LG팬들도 대단하다. 심지어는 KBO에서 인기있는 두산과 KIA 및 롯데와 한화를 포함해서 그리고 스포테인먼트로 관중을 모르면서 홈에서는 인기있는 SK가 있지만 선전하는 편이다. [82]
팬층은 연고인 서울특별시와 인근의 인천광역시와 성남시를 포함한, 수도권 전체에 넓게 펴졌다. 지방에서는 모기업인 LG화학 공장이 있는 충청북도 청주시와 LG전자 창원공장과 형제 농구단으로 현 KBL 최고 인기 프로농구팀인 창원 LG 세이커스가 있는 경상남도 창원시[83] 에 팬이 소수 있다.
2020년 부터는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MLB가 연기되고 대신 KBO가 ESPN의 전파를 타면서 은근히 인기를 불려나가는 중이다.
원래부터 KBO에 관심이 있었던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KBO팀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 미국 시청자들 입장에선 무언가 자신의 시선을 확 잡아 끌거나 자신과의 연관성이 있는 팀을 선택하여 응원을 하려 하는데, 가전시장에서 입지가 탄탄한 LG다 보니 집안에 LG제 가전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내가 LG제품 많이 쓰니까 LG나 응원해 볼까"라며 선택하는 경우가 꽤 많았고 마침 성적도 꽤 잘 나오자 이들이 고정팬이 되어가고 있는 것. 여기에 같은팀명을 가진 미네소타 트윈스의 팬들이 LG팬이 된다거나 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그러나, MLB의 미네소타 트윈스는 스몰마켓이다. 이로인해 LG전자 북미 지구가 있는 LA 다저스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LA 다저스는 한 때 코리안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한화 이글스 출신인 박찬호와 류현진이 뛴 팀이다. 그 여부와 상관없이 LG전자는 LA 다저스와 후원한다.
덕분에 시즌 시작하자 마자 한지붕 라이벌인 두산의 팬들과 서로 잠실의 주인은 우리라며 싸우거나 [84] , 판매상품군이 비슷한(가전과 스마트폰) 삼성 팬들과 라이벌리 세우기도 하는 등 미국팬들 나름의 즐기는 법을 찾아가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모습에 한국 팬들이 정보도 없었을텐데 저런 걸 어떻게 이렇게 빨리 파악했나 혀를 내두르기도 하는 중이다. 사실 삼성은 KBL 농구에는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가 있으며 이로인해 형제 농구팀인 창원 LG 세이커스가 있으며 이 관계로 보면 전자라이벌 구도다. 전자업계팀들간의 한일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17.2. 네임드 팬[편집]
- 강우석[86]
- 경리(나인뮤지스)[87]
- 고우석[88]
- 고유진
- 공형진[89]
- 구준엽[90]
- 김광현[91]
- 김동욱
- 김동원[92]
- 김민성[93]
- 김세의[94]
- 김선우[95]
- 김성수(문화평론가)[96]
- 김소연(배우)[97]
- 김은희[98]
- 김용민[99]
- 김용준
- 김이나[100]
- 김준선[101]
- 김태진
- 김태희[102]
- 김택용[103]
- 김현수[104]
- 김현우(기자)[105]
- 김현태(아나운서)[106]
- 김형준(기자)
- 나승엽[107]
- 낸시(모모랜드)[108]
- 데니 안[109]
- 라임(헬로비너스)
- 루카스 하렐[110]
- 류철민[111]
- 루코[112]
- 문빈[113]
- 무적핑크[114]
- 박성웅[115]
- 박보미[116]
- 박상면[117]
- 박신영[118]
- 박용우[119]
- 박용택[120]
- 박치국[121]
- 배기성[122]
- 배정대[123]
- 백호
- 봉중근
- 소리(가수)
- 손연재[124]
- 송신영[125][126]
- 송창의[127]
- 수호(EXO)
- 시우민[128]
- 신동욱
- 신소율[129]
- 신화 신혜성[130]
- 신화 앤디(신화)[131]
- 심수창[132]
- 심양홍[133]
- 심재학[134]
- 아웃사이더
- 안재욱[135]
- 야부(래퍼)
- 양석환[136]
- 여진구[137]
- 여의주
- 오리갑
- 오재원[138]
- 옥냥이[139]
- 유라[140]
- 유연석[141]
- 유희열[142]
- 유현준
- 윤박[143][144]
- 윤보미[145][146]
- 윤서인
- 윤종신[147][148]
- 은지[149]
- 은혁
- 이강인 [150]
-
이국종[151][152] - 이규호
- 이광섭
- 이동건
- 이동현[153]
- 이명학
- 이문세[154]
- 이민혁[155]
- 이상윤
- 이승기[156]
- 이승우[157]
- 이승원(게임 해설가)
- 이연수[158]
- 이영자
- 이영돈[159]
- 이윤아[160]
- 이적 [161]
- 이종혁[162]
- 이지영(강사)[163]
- 이희은[164]
- 임찬규[165]
- 장규리[166]
- 장성호[167]
- 장혜리
- 전상규[168]
- 전소미
- 전현무[169]
- 정샘물
- 정승제
- 정우영[170]
- 정유빈
- 정이수[171]
- 정재웅[172]
- 정재원[173]
- 정찬우[174][175]
- 조성환[176]
- 조수애[177]
- 주영훈[178]
- 지조[179]
- 진세연
- 최강창민[180]
- 최민식[181]
- 최슬기[182]
- 최웅[183]
- 최정원
- 최준용
- 최태성
- 최효종[184]
- 최훈[185]
- 캐스터안[186]
- 타이미[187]
- 타카피[188]
- 하정우[189][190]
- 한명재[191]
- 한지혜
- 허영만[192]
- 문현아(가수)
- 현재윤[193][194]
- 현주엽[195]
- 홍경민[196][197]
- 홍서범[198]
- 황정음[199]
- LG그룹 오너 가문[201]
-
윤세호 기자[200]
-
18. 라이벌전[편집]
18.1. 잠실시리즈[편집]
자세한 내용은 잠실시리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2. 엘키라시코[편집]
자세한 내용은 엘키라시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3. 엘 꼴라시코[편집]
자세한 내용은 엘 꼴라시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