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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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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SSG 랜더스 소속 좌완 투수.
2007년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해 5개의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를 획득한[9] 선수이다. 2008 시즌에는 MVP와 골든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했다. 안산공고 시절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프로에 와서는 역대 5번의 우승 때마다 투수진의 핵심 선수로 뛰었다. 특히 2010년과 2018년, 2022년의 우승 순간에는 그가 마운드에서 경기를 끝냈을 정도다.
2019년 12월 18일 2년간 최대 11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면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KBO에서 MLB로 직행한 이후 역대 11번째로 MLB에서 승리투수가 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됐으며, 2022 시즌을 앞두고 친정인 SSG 랜더스로 4년 151억의 계약 당시 KBO 역대 최고 대우를 받으며 복귀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통산 승리 일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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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수상 내역[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4. 선행[편집]
4.1. KK 위닝 플랜[편집]
5. 라이벌 역사[편집]
먼저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했던 류현진과의 라이벌리부터 살펴보면 류현진이 김광현보다 1년 빠른 2006년에 데뷔해서 첫 시즌부터 투수 트리플 크라운과 KBO MVP, 투수 골든글러브, 신인왕 수상 등 엄청난 포스를 보여주며 커리어 시작점부터 한국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고졸 1년차 임팩트로만 보면 염종석을 제외하고는 류현진에 비견될 선수가 없을 정도. 그리고 1년 후 고교 슈퍼루키였던 김광현은 데뷔 시즌 미디어데이에서 류현진에게 "현진이형 공은 단순해서 조금만 생각을 하고 치면 얼마든지 칠 수 있다."는 디스 아닌 디스 발언을 하면서 관심을 끌었다.[10] 하지만 류현진은 1년차만큼은 아니어도 매우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며 리그 최고의 국내선발투수 위치를 공고히 했는데, 김광현은 부진한 성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 이때문에 오랄킴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었다. 그래도 2군에서 제구와 투구폼을 가다듬고 복귀한 후 나름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 모두가 버리는 선발이라고 생각했던 경기에서 7⅓이닝 1피안타 9K의 인생투로 완승을 거두고 팬들이 원하는 영건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 매치업이 정규시즌 MVP인 다니엘 리오스였기에 더욱 높게 평가받았다. 2007 시즌 통합 우승 뒤 같은 해 11월 열린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일본시리즈 우승팀 주니치를 상대로 6⅔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으며, 기록 이상으로 타자들을 힘으로 찍어누르며 주니치 완파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2군 복귀 후 이런 유의미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다음 시즌에는 굉장한 투수가 될거라는 기대가 많아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류현진의 아성에 도전하기는 이르다는 평이 대다수였고, 오랄킴이라는 오명이 더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김광현이 2008년에 제대로 각성하면서 다승, 탈삼진 부분에서 1위를 기록하며 류현진과의 라이벌리가 재점화되었다. 투수 트리플 크라운까지 달성할 뻔 했지만, 시즌 막판 윤석민의 대약진[11] 으로 평균자책점은 2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투수 골든글러브와 KBO MVP를 석권하며 이전 시즌에 비해 아쉬운 성적[12] 을 기록한 류현진에게 완승을 거뒀다. 2008시즌 스탯티즈 RA9-WAR에서도 김광현이 6.16, 류현진이 4.93으로 sWAR에서도 류현진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2번의 일본전에 선발등판하여 호투를 펼친 김광현은 New 일본 킬러로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었으며, 캐나다전 완봉승과 결승 쿠바전에서 호투한 류현진은 대한민국 최고 좌완 에이스로 이미지를 굳혔다. 이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두 선수의 라이벌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2009 시즌도 류현진이 다소 부진했던 덕에[13] 시즌 중반까지 어마어마한 폼을 보여주던 김광현이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다.[14] 하지만 김광현이 8월 타구에 손등을 맞는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탓에, 규정이닝을 간신히 채우는데 그쳤다.[15] 김광현은 RA9-WAR 5.75를 기록하고 평균자책점과 승률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풀시즌을 완주한 류현진은 RA9-WAR에서 투수 1위인 6.47을 기록하며 애매한 시즌이 되어버렸다. 류현진은 전같지 않은 성적이었음에도 탈삼진 1위를 차지하며 저력을 보였다. 그래도 김광현이 부상 직전까지 상당한 위력을 보여줬고, 부상도 다소 불운한 일이었기에 다음 시즌 둘의 라이벌리를 기대하는팬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듬해 김광현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복귀하였고 팬들의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는데, 하필이면 류현진도 그해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면서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역대급 콩을 기록해버렸다. 두 선수의 커리어하이 스탯을 보면,
- KBO 커리어하이
- 10 김광현: 31경기 193⅔이닝 17승 7패 ERA 2.37 ERA+ 191.9 183삼진 sWAR 8.66
- 10 류현진: 25경기 192⅔이닝 16승 4패 ERA 1.82 ERA+ 253.6 187삼진 sWAR 10.63
김광현도 다른 시즌이었으면 다관왕을 넘어 MVP까지 노려봤을 괴물같은 성적이었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다. 이때 기록했던 ERA+ 191.9도 2000년대 들어 트리플 크라운을 수상했던 두 투수인 2006 류현진, 2011 윤석민보다도 훨씬 좋으며 2000년대 전체 5위인 엄청난 성적이었다.[16] 하필 상대가 2000년대 ERA+ 전체 1위이자, 2000년대 유일한 규정이닝 1점대 평균자책점의 류현진이라 완벽하게 묻혀버렸다. 이때 류현진은 KBO 9이닝 최다탈삼진 기록(9이닝 17K), 최다 연속 경기 퀄리티 스타트(29경기)를 기록하며 어마어마한 포스를 뿜었다. 이런 류현진도 전인미답의 타격 7관왕을 달성한 이대호에게 밀려버리며 MVP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골든글러브, 탈삼진 1위, 평균자책점 1위를 획득하며 김광현을 눌렀다. 김광현은 그런 류현진에게서 최다승 타이틀을 따온 것에 만족해야했는데, 이때 한화가 최하위를 기록했음에도 류현진이 16승을 따낸거라 오히려 승수면에서도 류현진이 주목받았다. 그래도 이때가 김광현과 류현진의 라이벌리가 가장 불탔던 시기이다. 21세기 KBO에서 범접하기 힘든 포스를 뿜어낸 10류현진에게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던 유일한 투수가 10김광현이었으며, 김광현이 1살 더 어렸기에 따라잡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하는 팬들의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2011년, 2012년 김광현은 부상과 부진으로 규정이닝도 채우지 못하면서 고전한 반면 류현진은 이후로도 계속 활약하며[17]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대우를 받고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했다. 결론적으로 독보적 1인자로 군림하던 류현진과 굉장히 벌어진 격차의 2인자 김광현으로 두 선수의 라이벌리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로도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격차는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벌어졌다. 때문에 SK 팬덤에서도 류현진과 라이벌로 엮는 건 이미 진즉에 접은 상태. 다만 김광현이 14년쯤부터 부활하더니 2019년 커리어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며 류현진과 같이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10년이 지나 다시금 두 선수의 라이벌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류현진은 이미 누적 스탯을 제외하곤 박찬호를 뛰어 넘었고 역대 아시아 출신 투수로 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커리어와 최고급의 비율 스탯을 쌓아 놓은지라 진지하게 둘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잠시나마 라이벌로 묶이던 선수들에 대한 옛 추억을 떠올리는 정도다. 기자나 팬 모두 이제 라이벌로 엮지는 않고 한국인 메이저리거 좌완 듀오로 엮는 편이다. 그리고 김광현이 양현종과 함께 KBO로 복귀했으니 이것도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 KBO 통산성적
- 김광현(07~19, 22~/13시즌): 326경기 1847이닝 149승 80패 ERA 3.17 ERA+ 142.4 1609삼진 sWAR 52.44
- 류현진(06~12/7시즌): 190경기 1269이닝 98승 52패 ERA 2.80 ERA+ 151.5 1238삼진 sWAR 46.16
- MLB 통산성적
- 김광현(20~21/2시즌): 35경기 145⅔이닝 10승 7패 ERA 2.97 ERA+ 134 104삼진 fWAR 1.9
- 류현진(13~22/10시즌): 175경기 1003⅓이닝 75승 45패 ERA 3.27 ERA+ 122 896삼진 fWAR 19.7
두 번째로 유명한 라이벌리는 양현종인데, 두 선수 모두 2007년에 데뷔했지만 데뷔 초부터 리그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으며 커리어를 쌓은 김광현과 달리 양현종은 다소 포텐셜이 늦게 터진 케이스라서 본격적으로 각성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4년까지만 해도 김광현이 우위를 가져갔지만 2015년에 양현종이 개인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고 2017년 양현종이 페넌트레이스 20승에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까지 달성하면서 통합 MVP 선정의 영예를 누리는데 반해 김광현은 2016년부터 팔꿈치 쪽에 문제가 생기면서 기량 저하 및 2017년을 아예 통으로 날려버리면서 동시대에서는 누적 기록의 차이가 발생했다. 하지만 2018년 부상에서 돌아온 김광현이 이닝 및 투구수 제한으로 인해 규정이닝을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sWAR 투수 전체 4위, 국내 선발 sWAR 1위를 기록하고[18]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세이브를 달성하며 업셋 우승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로 인해 17시즌 양현종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라이벌리가 더욱 강하게 부각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9년 시즌 초반 양현종이 부침을 겪었지만 후반기 엄청난 페이스로 보이고 김광현도 시즌 내내 안정된 기량을 선보이면서 두 선수 다 공통으로 커리어 2번째 커리어하이를 맞이하면서 두 선수 모두에게 성공적인 시즌[19] 이 되었다. 2020년 김광현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하고, 코로나19로 인한 단축시즌이지만 20-80 스케일에서 포심 55, 슬라이더 60, 커브 50으로 플러스 피치라는 평가를 받은 슬라이더를 포함하여 세 구종은 빅리그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만큼 올해의 신인 TOP 25 중 13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야구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선발로 정착하는 비교적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데 반해, 양현종은 최근 8년 중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며 완전히 격차가 벌어진 듯 했지만, 2021년 양현종이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같은 무대에서 경쟁할 여지가 생겼다. 2021년에는 김광현은 메이저 리그 2년차임에도 여전히 팀 내 2선발로 맹활약하고 있는 반면 양현종은 연속적인 부진과 실력의 한계로 2021년 6월 17일 DFA라는 수모를 당하고 마이너 리그 AAA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 둘의 비교는 결국 김광현의 우위로 굳어져가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김광현이 상위 리그에서 통할 재목이라고 말해왔으며, 실제 단축 시즌이긴 하나 한 매체에서 뽑은 메이저리그 올해의 좌투 루키에 뽑힐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보이며 전문가들의 예측을 증명해낸 바 있다.
- KBO 커리어하이
- 10 김광현: 31경기 193⅔이닝 17승 7패 ERA 2.37 ERA+ 191.9 183삼진 sWAR 8.66
- 15 양현종: 32경기 184⅓이닝 15승 6패 1홀드 ERA 2.44 ERA+ 202.1 157삼진 sWAR 8.14
사실 애초에 김광현은 2011~2016 시즌까지 겪은 각종 뇌경색 후유증 및 어깨 부상,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인한 토미 존 수술과 재활, 각종 잔부상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시기였던 2008~2010(09년 불의의 타구 부상 전까지)시즌, 2018~2019 시즌에는 모두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이뤄내며 자신에게 부상만 없다면 시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해낸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당연히 모든 운동선수들에게는 꾸준함이 그 선수의 실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지만 김광현은 부상이 공존하던 시기인 2011~2016 시즌의 기록들로 스텟에 손해를 본 부분이 있으며, 건강할 때의 기록을 본다면 김광현이 우위에 있다. 애초에 김광현은 건강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기록이 각 시기를 기준으로 봐도 일정했고, 양현종은 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때와 자유롭지 못한 때에도 기복 있는 시즌을 보내왔다.
투구 환경의 측면에서도 양현종은 타자 친화나 투수 친화가 아닌 중립 성향의 구장인 무등 야구장(득점 파크팩터 1.002)[20] ,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홈런 파크팩터 1.026)를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나 김광현의 홈구장인 문학구장(홈런 파크팩터 1.124)은 높은 홈런 팩터로 인하여 리그 최고의 타자 친화 구장으로 악명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김광현이 보다 투수에게 불리한 환경에서 뛰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내구성을 무기로 리그 탑급 투수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양현종 역시 운동선수로서의 최상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미국 진출 직전인 2020년에 KBO에서도 커리어 로우에 준하는 시즌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리그 스플릿 계약이나마 따낼 수 있던 데에는 이 내구성이 주요했다고 볼 수 있으며, 실제로도 현지 언론에서도 양현종의 내구성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렸다.
- KBO 통산성적
- 김광현(07~19, 22~/13시즌): 326경기 1847이닝 149승 80패 ERA 3.17 ERA+ 142.4 1609삼진 sWAR 52.31
- 양현종(07~20, 22~/15시즌): 455경기 2161⅓이닝 159승 102패 ERA 3.83 ERA+ 119.3 1814삼진 sWAR 52.89
- MLB 통산성적
- 김광현(20~21/2시즌): 35경기 145⅔이닝 10승 7패 2세이브 ERA 2.97 ERA+ 134 104삼진 fWAR 1.9
- 양현종(21/1시즌): 12경기 35⅓이닝 0승 3패 ERA 5.60 ERA+ 79 25삼진 fWAR -0.4
두 선수의 기록을 비교하자면, 파괴력의 김광현과 내구성의 양현종으로 볼 수 있다. KBO리그에서의 성적을 비교해보자면 통산 RA9-WAR[21] 에서는 두 선수가 의미 있는 차이가 없을 정도의 누적을 쌓았고,[22] 조정 스탯과 평균자책점 등의 비율 스탯에서는 김광현이, 이닝 등의 누적 스탯은 양현종이 비교우위를 가져간 채 끝나게 된다.[23]
통산 기록 및 커리어하이와 전성기를 유지한 기간, 통산 시즌 및 전성기에 쌓은 sWAR 등의 여러 기록을 종합해보면 KBO 리그에서의 커리어는 동급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때에도 투구 퀄리티와 같은 실력의 차이는 존재했다. 통산 기록 뿐이 아니라 jaws등에서 참고하는 전성기 7년을 기준으로 봐도 김광현은 평균 ERA+ 164에 166 이닝을 기록했으며 양현종은 평균 EAR+ 152에 180 이닝을 기록했다. 피칭 퀄리티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 ERA+가 10이 넘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전성기 기준으로도 투구의 질(=실력)은 명백히 김광현의 우위였지만, 평균 이닝이 14이닝이나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보듯 양현종은 피칭 퀄리티의 차이를 자신의 강점인 내구성으로 만회하여 동급에 가까운 누적 성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구성을 강점으로 발휘할 수 없는 상위 리그에서는 이 실력의 격차로 인한 차이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유의해야 할 것은 김광현의 이닝소화력도 우수했지만 양현종이 더 많이 소화를 하여 메꾼 것이고, 양현종 역시 비율이 우수했으나 김광현이 더 뛰어난 것 뿐이다.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위의 세이버메트릭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풀어 쓰자면 국내 기준으로 양현종이 10의 능력을 18경기만큼 보여줄 수 있다고 하면, 김광현은 15의 능력을 12경기만큼 보여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상위 리그인 메이저 리그에서는 이닝 소화를 강점으로 발휘할 수 없기에 실력의 격차로 인한 차이가 드러나면서 김광현이 양현종보다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최종적으로 김광현의 우위로 끝이 났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6.1. 유령태그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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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3년 WBC 대표팀 음주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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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미디어 활동[편집]
7.1. TV[편집]
7.2. 광고[편집]
7.3. 홍보대사[편집]
7.4. 공식후원[편집]
8. 여담[편집]
- 지금은 키가 큰 선수이지만,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150cm대 초반의 키로,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학교 다니는 동안 키가 33cm나 커서 고등학교 들어갈 때는 180대 중반이 되었다고 하며, 어떤 날은 성장통이 심해서 무릎이 아파 달리기도 제대로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할 때 키가 많이 자란 비결은 부모님이 자주 해준 보양식과 본인이 즐겨 먹던 초코우유라고 한다. 컴퓨터 게임하면서 작은 종이팩 초코우유를 14개나 먹었다고 한다.
- 마운드에서의 표정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나쁘게 말하면, 감정 기복이 매우 심각한 케이스. 특히, 본인이 생각한 대로 야구가 되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버릇이 있는데, 입단 첫 해였던 2007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깜짝 선발 등판했을 때는 1회초 피칭부터 실실 웃으면서 던졌다. 오죽 하면 그 경기에서 김광현의 볼을 받았던 박경완이 사인 교환 과정에서 실실 웃던 김광현을 보더니 "얘가 긴장을 해서 저러나? 올라가서 웃지 말라고 한 마디를 해줘야 하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가 실제로 볼을 받아보니 위력이 엄청 나서 그냥 뒀고 그 경기에서 무려 7⅓이닝 1피안타 2볼넷 9탈삼진[27] 무실점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냈다. 이후에도 본인의 생각대로 피칭이 이뤄지면 치아가 보이도록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고 혹여나 수비 실수가 일어나면 격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찡그리는 모습도 보여줬다. 다만, 격한 감정 기복과 달리, 대부분의 위기 상황에서는 본인 스스로 이겨냈고 팀의 분위기를 해치는 일도 없었기에[28] 크게 논란이 되지는 않고 있다. 오죽 하면 팬들도 "쟤 또 저러네 ㅋㅋㅋ"라고 웃으면서 넘어가는 일이 잦을 정도. 심지어 김광현 본인도 감정 기복이 심한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 2010년 9월 19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해서 은퇴식을 치르는 양준혁과 정면 승부를 했다. 양신의 은퇴식 전의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것이 대선배에 대한 예우라며 삼진 3개를 잡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 시즌 최고의 투구와 함께 그 약속을 지켰다.[29]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언행일치갑이라며 찬양받았다. 양신과의 대결에서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의 힘을 실어 던졌다.[30] 재미있는 점은, 김광현의 프로 통산 첫 피홈런을 안겨준 상대가 양준혁이었다.[31] 매우 드라마틱한 일. 하지만 에이스의 짐과 더불어 구설수를 조심하려는지 패기 있을 젊은 나이임에도 인터뷰를 예전처럼 자신감 있는 발언보다는 틀에 박힌 교과서적인 대답만 해서 아쉽다는 팬도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로 가며 에이스의 짐을 벗어던진 지금은 재치 있는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과거의 모습이 돌아오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 SK 와이번스의 최전성기[32] 에는 1위팀의 No.1 에이스로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 듯. 1위 팀의 선수이기에 타선과 든든한 불펜의 도움이 있지만, 1위 팀이기에 모든 경기를 이기려고 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1위 팀의 에이스로 자신이 나가면 반드시 승리를 챙겨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부담감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같은 팀 선수들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 SK 와이번스 팀 동료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은 귀공자였다고 한다. 데뷔 초부터 에이스 역할을 맡아 선배들에게 이쁨을 많이 받아서이기도 하고, 때문에 야구에만 집중하라고 다른 동료들이 놀 때도 같이 놀지 못하게 막는 일이 잦았다고. 그러다보니 SK 텔레콤 CF에도 나올 만큼 인지도가 있음에도 시구 외에 연예인을 처음 본 게 데뷔하고 만 13년이 된 《아는 형님》 촬영이었다고 한다.[33] 구단에서도, 감독, 선수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 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당시 김광현에 빗발쳤던 대외활동을 관리해줬던 김성근 감독은 이번 시즌 후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김광현에게 야구나 열심히 하라고 직접 전화했다고 한다.
- 팀의 리빙 레전드인 최정과 톱을 다투는 겜덕후로 유명하며 KBO 리그 시절 선수단 팀 컬러를 '겜덕후의 팀'으로 만든[34] 주역 중 하나로 꼽힌다. 마구마구와 프로야구 매니저를 하는 모습도 찍힌 적도 있고, 리그 오브 레전드도 좋아한다고 한다.[35] PC방 같은 곳에서도 가끔 발견되기도 했고. 동창의 증언으로는 초등학교 때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포켓몬 띠부띠부씰을 모으다가 전종 컴플릿을 바라볼 시점 스타크래프트에 눈을 떴다고.[36] 게다가 미국에 갈 때 한국에서 가장 먼저 챙긴 물건이 노트북과 키보드, 마우스였는데, 고국의 향수를 게임으로 달래려고 가져왔다고 한다.
- 프로게이머 Faker의 팬으로 유명하다. 페이커의 SK 와이번스 경기 시구[37] 당시 페이커의 팬이라고 언급했다. 시구 역시 본인이 직접 가르쳐주었다. 이후 T1 숙소에 방문해 페이커 선수와 함께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 웹툰 만화가 이말년이 김광현의 팬이라고 한다. 이말년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본래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었으나, 쌍방울이 해체된 뒤 옛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SK의 팬이 된 것.[38] 이후 이말년이 안산에서 오래 살면서 안산사람인 김광현에 애착을 가진 듯. 류현진에 비해 김광현은 저평가받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트위터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 또래의 팀 선수들과 훈훈한 장면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
- 실실 웃는 모습 등등 뭔가 모자라 보인다고 해서 모지리라는 별명이 있다. 워낙에 오랄이 강렬한 별명이라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는 않지만.
- 김광현의 또 다른 별명으로는 베테랑 막내라는 별명이 있었다. 김광현이 데뷔 7년차가 되어서야 그나마 한 살 어린 한동민이 나와서 전체 선수 중 막내였다가 투수조 막내가 됐다는 점에서 SK 마운드의 노인정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13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백인식조차 87년생으로, 김광현보다 형이니... 이 때문인지 대형 신인 투수가 SK에 지명되면 과연 김광현이 이번엔 막내를 탈출할 것인가가 관심사였을 정도. 하지만 얼마 후 박종훈과 서진용이 꾸준히 1군 엔트리에 올라와 투수조 막내도 역시 벗어났다. 2019 시즌 이후로는 투수조 최고참 수준으로, 2019 시즌 투수조 조장을 맡기도 했다.[39]
- 어렸을 때는 LG 트윈스의 팬으로서 이상훈을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로 꼽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극도의 부진에 빠진 2011년 이후로도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김광현의 영입을 바라는 팬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다만 김광현이 등번호 47번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하냐 말아야 하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40] 다만 김광현이 2016년 FA 때도 SK에 잔류하고 2019시즌 후에는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하게 되면서 SK 종신이 사실상 확정되었다.[41] 메이저 리그 선수 중에서는 랜디 존슨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를 '우리 형'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 축구선수 기성용과 닮은 꼴로 유명하다. 기성용의 빠른 생일로 보면 동갑 취급해도 될 정도, 서로가 닮은 꼴임을 잘 알며 의식하는 듯하다. 상대 종목이 인기를 끌 때 팬들에게 오해 받는 일도 빈번하다고 한다. 참고로 기성용은 광주광역시 출신답게 KIA 타이거즈의 팬이다.
- 애프터스쿨의 유이와의 소개팅을 거절했었다고 한다. 물론 유이가 애프터스쿨 멤버가 되기 전의 일이긴 하지만, 당시 김광현에게는 이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지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즉,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소개팅을 신청한 것부터가 미스였던 것이다. 아버지 김성갑이 야구인임을 생각해볼 때 유이의 언행은 상당히 의외다. 현역 선수와 루머에 엮이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는 없을 텐데.[42]
-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 윤시윤과 닮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기사로 떴다. 이미 김광현의 여자친구도 인정했으며, SK 선수들도 "탁구야" 하고 부르기도 하며, 이에 한 술 더 떠 김광현은 "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 NC 다이노스에게 창단 초창기엔 약했다. 등판하면 꼭 패전을 떠안고 내려갔다. 2013년에 선발 2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모두 패전을 떠안았고, 2014년에도 1경기 등판해 패전을 떠안았다. 2015년에는 선발 1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1승 1홀드를 기록했으나, 평균자책점이 10.13으로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16시즌 첫 맞대결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타선을 틀어막으며 통산 100승째를 기록하였다. 2019년 기록은 NC 상대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KBO 리그에 복귀한 2022년에도 NC 상대 첫 경기에서 평소보다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6회초 동점 적시타를 맞고 무사만루를 만드는 등 위기가 있었으나, 수비의 도움을 제대로 받고 7이닝까지 무난하게 소화했다. 그리고 이후 2경기에 등판해 1승 1패를 거두며 무난한 활약을 보였다.
- kt wiz에게도 약하다. 2015년, kt에게 2승을 기록했지만 23이닝 23실점 평균자책점 9.00로, NC 다이노스에 이어서 평균자책점이 제일 좋지 않았고, 2016년 또한 kt와의 개막전에 등판했으나, 4⅔이닝 7실점을 기록하면서 징크스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2019년, 거의 커리어 하이급 성적을 내고 어떤 팀을 상대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나마 kt를 상대로 4.1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해, 상대한 팀 중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KBO로 리턴한 2022년 첫 맞대결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를 펼쳤고, 2번째 맞대결에서 5이닝 2실점 승리투수가 되며 통산 146승과 KBO 7년 연속 10승을 달성해 징크스를 극복해낸 모습을 보였다.
- 본인이 직접 천적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KBO리그 시절 자신의 천적으로 이정후를 꼽았다. 관련 기사 아무리 전력을 다해 던져도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선수였다고 회상하면서 무조건 잡으려고 기를 쓸수록 이정후는 치고 나갔다며, 타격감이 정말 빼어난 선수다고 칭찬하기도.[43] 2022년에는 호세 피렐라가 김광현한테 초극강의 모습을 보였다.
- 이선희 - 구대성 등으로 이어져 온 좌완 일본킬러의 대를 잇는 투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두 차례 등판해 5.1이닝 1실점, 8이닝 2실점을 찍으며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WBC 때는 반대로 털리긴 했지만 이 것은 일본이 김광현한테 당하는 것이 두려워 분석을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일본 전력분석 자료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김광현의 공은 높게 보고 쳐야 한다. 높으면 직구 확률이 높다. 직구마저 낮게 제구되면... 칠 수 없다." 당시 김광현의 위력과 일본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실례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일본에서 김광현을 공략하는 핵심은 루킹 스트라이크 아웃을 각오하더라도 낮은 공, 특히 슬라이더는 철저하게 버리라는 것이었고, 이를 활용해 2회 WBC 때 공략에 성공했다.
- 부모님이 안산시 고잔동 주공아파트 상가에서 떡집을 운영했다.[44] 100승을 하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오면 직접 기념 떡을 해왔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서 별명도 떡광현이었다고 한다.[45][46]
- SK 와이번스 모기업인 SK텔레콤 TV 광고를 간판 에이스답게 두 번이나 출연하였다. 2008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한 번 찍었고, 2016년에는 생활플랫폼 광고를 촬영했다. 이후 스폰서인 미즈노의 지면, 영상광고도 찍었다.
- 2016년에 100승을 달성한 후 기념 글로브 29개를 제작해 개당 100만원에 판매, 판매수익금 전액을 야구 꿈나무를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했다. 해당 글러브에는 번호가 기입되어 있으며 1번은 김광현이 실착용으로 사용한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의견도 간혹 나오는데 위의 글러브는 미즈노 포 프로 글러브, 즉 프로 선수용으로 맞춤 제작되는 글러브로 현역 선수가 아니면 얼마를 줘도 구할 수가 없는 모델이다. 거기에다 한정판으로 29개만 있다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그다지 비싼 가격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 의외로 마케팅 쪽에 관심이 있다고 하며 위의 자선 글러브 이벤트도 본인이 직접 제안한 것이라고. 만약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게 된다면 구단 마케팅 직원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 2017년 마무리 캠프 이후 귀국하는 모습의 사진이 찍혔는데 2017년 항목을 보듯이 재활기간동안 기른 장발모습이 기존의 이미지와 갭이 너무 크다. 근데 기자가 하필 그 제목을 멋쟁이 테리우스로 변신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결국 김광현 팬과 모든 야구팬들이 한 마음이 되어 이발하라고 댓글이 달렸다. 머리를 기른 이유는 소아암 어린이에게 모발 기부를 하기 위해 길렀다고 한다. 그리고 김광현이 장발로 18시즌에 복귀전을 가졌을 때 전성기 기량을 보여주면서 장발간지투구를 보이자 팬들 사이에서도 이발하라는 여론이 잠잠해졌고 이발할 때에는 아쉬워하는 팬도 꽤 생겼다. 김광현이 존경하는 투수인 이상훈이 생각났다는 팬들도 제법 있는 편. 어쨌거나 성공적으로 복귀한 후 깔끔하게 이발하였다.
- 이사만루2019까지는 김광현이 와이번스에서 뛰고있던 지라 라이선스가 제대로 붙어있었는데, 이사만루23에서는 김광현이 MLB로 넘어가서 라이선스 취득을 못하고 김기혁이라고 개명 당했다가 다시 한국에 복귀하면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 아는 형님에 출연해서 밝힌 일화로, 처음 카디널스에서 훈련할 때 예상보다 일찍 끝나 당황한 김광현은 메이저리그 선배 류현진에게 훈련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류현진의 답변은 ''그냥 가~''[48]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입단식에서 존 모젤리악 단장이 김광현을 KK라고 부르고,관련 기사 카디널스 SNS에서도 KK라고 부르는 등 미국에서 KK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계진도 이름을 빠르게 말하기 어려웠는지 중계할 때 KK라고 부른다. MLB.com의 선수 프로필에서도 닉네임으로 KK가 작성되었다. 링크
-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웃는 얼굴을 보여주어 현지에서는 '스마일 K'라는 별명도 생겼다고 한다. 사실 국내에 있을 때도 데뷔 때부터 잘 웃는 모습을 보여줘서 소수의 기자들과 팬들이 '스마일 K'라고 불렀다.
- 2020 시즌 등판할 때마다 호수비가 많이 나와서 운광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49] 하지만 베이스볼 서번트의 김광현 타구 데이터에 따르면 2020시즌의 하드힛%, xwOBA, 배럴%, xSLG, 평균 타구 속도까지 리그 평균보다 좋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하드힛%과 배럴%는 투수 상위 16%를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시범경기보다도 낮은 구속으로도 나름대로 효과적인 투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BABIP의 경우 2020시즌에는 MLB 시즌 평균이 .291이었으나 김광현은 .217로 시즌 평균보다 확연히 낮은 수치를 보여 2020시즌에 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었다. 2021시즌에는 MLB 시즌 평균 .289에 김광현은 .280을 기록하여 리그 평균 수준에 수렴하고 있다. BABIP이 리그 평균 수준으로 올라온 2021시즌에도 전반기 종료 시점 기준으로 2020시즌보다는 약간 상승했으나 평균 타구 속도와 하드힛%는 투수 상위 24%, 배럴%는 투수 상위 28%로 리그 평균보다 좋은 수준을 보여 2020시즌에 이어서 뛰어난 타구 억제 능력을 보였다. 이외에도 지난 2020시즌에 리그 평균보다 좋은 수준을 보였던 BB%, xwOBA, xERA, xSLG 모두 2021시즌에도 리그 평균보다 좋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 2020 시즌 종료 이후 메이저리그 야구카드 제조사 톱스(Topps)가 선정한 '올스타 루키팀' 좌완 투수로 선정되었다. 관련 기사
- 2020년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마치고 귀국해서 자가격리를 마친 뒤 여러 인터뷰와 예능에 출연한다. 유튜브 인터뷰로는 이랜드뮤지엄의 "윤태진의 9회말앵콜"[50] 과 이영미TV "이영미의 셀픽쇼"[51] 에 출연했으며 TV 예능으로는 11월 21일 아는 형님과 11월 25일 라디오스타와 12월 20일 런닝맨에 출연했다.
- 숫자 88과 연관이 많은데, 1988년생이며, 네이버 프로필 기준 키는 188cm, 몸무게는 88kg이다. 다만 실제로는 몸무게가 88kg 보다는 적게 나간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유튜브 영상도 존재한다.
- 2021년 3월 27일 시범경기 이후 인터뷰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평소 김광현과 달리 면도를 하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을 보여주며 큰 화제가 되었다. 이상훈 해설의 최근 모습과 유사하다는 말이 많다. 허리 통증이 심해서 면도를 하지 못했다고 했으며, 어쨌든 다음 경기에는 면도를 하겠다고 했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절 등장곡은 Black Eyed Peas의 Where Is The Love?[52] 였으며,[53][54]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데뷔 초기 이승철의 소녀시대와,[55][56] Jamelia의 Superstar[57][58] 를 사용했으며, 좀 연차가 된 뒤에는 The Offspring의 Why don't you get a job?을 등장곡으로 사용했다.[59]
- MLB 진출 이전 국내에서 활약할 당시에는 구단 유튜브 채널 같은 자체 컨텐츠 활동에 참여하는 일이 거의 드물었으나[60] , MLB라는 큰 무대를 경험하며 최고의 선수들이 야구뿐만 아니라 팬 서비스에 매우 적극적이고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팬 서비스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덕분에 복귀하고 나서 부터는 이전엔 잘 볼 수 없었던 김광현의 쓱튜브 출연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투구를 마치고 내려올때 김성현이 로진백을 챙겨줘서 경기가 잘 풀리게 되었다고 하는 일종의 징크스가 생겼다. 김성현이 선발로 나오지 않으면 최정이 챙겨준다고 한다. 하루는 케빈 크론이 챙겨주자 루틴이 깨지는 것 같아 놀랐다고 한다.
- 메이저리그 시절에는 33번을 달았으나 4월 15일 경기에는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간적이 있었다. 이것은 류현진, 김하성, 추신수도 마찬가지였다.[61]
- 2022년 8월 말~9월 초 사이 인천지역 초등학교 1학년 학생 2만 5천명에게 문구세트와 티켓을 선물했다. 본인의 딸 김민주 양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기념으로 인천지역 초등학교 1학년 전원에게 추석선물을 제공했다. 9월 8일에는 한 초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기도 했다.
- "게임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골프"라고 말할 정도로 골프 마니아다. 야구를 하지 않는 날에는 주로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2021년 김구라의 뻐꾸기 골프에 출연하기도 했고 골프채 & 골프의류 브랜드 'PXG'의 홍보대사로 활약한 바 있다. 인천 청라국제도시 내 베어즈베스트 골프장 인근 고급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매일 골프를 치고 싶어서 청라 골프장 옆으로 이사 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 가수 김광석과 외모가 상당히 닮았고 특유의 웃는 모습 또한 똑같다. 이름마저 비슷해서 숨겨진 형이라는 소문도 있다.
- 2022년 부진하고 있던 오태곤에게 오태곤의 응원가를[62] 고장난 오태곤 ops 595~[63] 라고 불러서 오태곤의 별명이 고장난 오태곤이 되었고 오태곤이 어느정도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자 오태곤 본인이 고쳤다 오태곤이라고 응원가를 개사해서 불렀고 팬들도 고쳤다 오태곤이라고 화답했다.
- 여느 프로야구선수들이 그렇듯 김광현도 여러 루틴을 가지고 있는데 대략적인 타임테이블이 공개된 적이 있다.[64]
- 라이벌이라고 불렸던 류현진과의 맞대결이 2010년 성사될뻔 했지만 우천 취소되며 단 한 번도 맞대결을 한 적이 없다. 반면 이후 라이벌이라고 불렸던 양현종과의 맞대결은 총 8경기로 상당히 자주 있었는데 2승 5패로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 KBO 리그 한 시즌 최다 연봉 기록을 가지고 있다. 2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친정팀인 SSG 랜더스로 복귀할 때 4년 151억에 비FA 다년계약을 맺었다. 계약금 없이 연봉으로만 처리하는 구조, 거기에, 이 당시 이미 2023년부터 샐러리캡을 시행하기로 논의[65] 된 상황이었기에, 1년차에 계약총액의 절반 이상의 금액을 처리했다. 1년차 연봉이 무려 81억으로 역대 한 시즌 최고 연봉이다. 종전 기록은 추신수의 27억으로 이것과 비교해도 무려 3배 차이이다.
8.1. 김광현에 대한 언사[편집]
내 지도자 생활 중 최고로 손꼽히는 재목이다.
김광현의 힘이 있었기에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 나도 감독으로서 김광현이를 만난 게 행운이었다.
광현이 슬라이더가 참 탐이 나요. 오른손, 왼손(타자) 가리지 않고 던지는데 정말.
구대성과 김광현을 놓고 고민했다.[66] 김광현이 더 강력한 공을 던졌다. 나한테 첫 홈런을 맞았는데 이후 은퇴할 때까지 김광현을 상대로 빗맞은 안타 1개를 친 게 전부다.
경기를 보니 김광현은 메이저리그에서 경쟁할 만한 실력을 갖췄다.
내가 김광현이라는 선수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투수의 공을 받은 것, 시작을 함께 했다는 점이 내 행운이다.
김광현은 한국에서 13년간 선발로 뛰었다.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안다. 쉬어갈 때와 싸워야할 때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모든 구종을 스트라이크로 던질 수 있고, 구속 조절이 가능하며, 빠른 템포로 던지는 투수.
위기 상황에서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다. 그는 ‘피치 메이커'다.
김광현이 양쪽 코너를 활용하는 공격적인 투구를 한다. 내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김광현은 좋은 커브를 던지고, 슬라이더도 선보였다. 그의 슬라이더는 갑자기 사라지는 것 같았다
김광현 덕분에 한국야구가 일본야구를 거의 따라잡은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고,
반대로 무너지는 김광현을 볼 때면 새삼 일본야구의 높은 벽을 체감하기도 했다.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우리보다 한 수, 때로는 몇 수 위인 일본을 상대로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꺼내 들었던 좌완 에이스
국가대표 김광현이 남긴 최종 성적은 평균자책점 3.92다.
하지만 3.92라는 숫자에는 기록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우리의 기억이 있다.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8.2. 별명[편집]
- KK : 2020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당시 소속 구단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붙여준 별명으로 'Kwang Hyun Kim'에서 따왔으며 기록지에서 삼진을 뜻하는 영문 머리글자 K를 두 번 붙여서 만든 '삼진을 잘 잡는 투수'라는 뜻이고 이 별명에 맞춰 등번호 33번을 달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팀 동료들도 김광현을 KK라고 불렀으며 2년 동안 메이저리거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이 별명은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친정팀인 SSG 랜더스에 복귀해서도 이 별명으로 불리고 있으며 2022년에는 이 별명을 딴 'KK 위닝플랜'이라는 팬 서비스 이벤트도 열었다.
- Born to be ace :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부터 '팀의 에이스'라는 중책을 맡게 되어 붙여진 별명 쓱튜브에서 종종 쓰였다. 관련 영상 근래에는 KK에 밀려 잘 쓰이지 않는다.
- 비룡의 에이스 : SK 왕조를 이끈 팀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로서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에도 SK 와이번스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하였기에 붙여진 별명.
- 대한민국 에이스 : SSG 랜더스의 홈구장인 인천 SSG 랜더스필드 내 가로전광판에 표시되던 별명이자 선발 등판 경기 전 라인업을 소개할 때 장내 아나운서가 언급하던 수식어. 국가대표 역대 투수 중 최다승 공동 1위, 최다 선발 등판, 최다 이닝 1위 등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기에 붙여졌다.
- 일본 킬러 : 전통적으로 좌완투수 상대로 약했던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게 강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칭호. 김광현에게만 붙은 별명은 아니고 1980년대 이선희, 1990년대 구대성, 2000년대 초 봉중근 등 시대를 대표했던 좌완투수들에게 붙은 별명이기도 하다. 생애 첫 국가대표였던 2005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A조 예선리그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김광현은 6이닝 3피안타 2실점을 기록했고, 특히 5회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이어가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2007 코나미컵 아시아 시리즈에서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6.2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국제용 투수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이에 이어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일본을 상대로 5⅓이닝 1실점, 8이닝 2실점을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당시 일본팀 감독도 김광현의 공을 공략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