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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형(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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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호는 백천(百川)이다. 본관은 한양 조씨.
2. 생애[편집]
1931년 8월 22일, 전라북도 김제군(現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용화동마을에서 아버지 조영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11대 민주한국당 국회의원 정진길과는 고향 친구 사이였다. 전주고등학교(27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하여 조선일보 기자로 베트남 전쟁에 종군하여 취재했고, 경향신문 부국장,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이철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공천을 받아[3]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정래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에도 지구당위원장 자리는 유신 정권에 의해 피선거권이 제한되어 출마하지 못했던 조윤형(조병옥의 장남 및 조순형의 친형)에게 양보하였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 당시 정치 활동이나 언론 활동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야인으로 지내면서 비정치적인 잡지인 스크린을 창간한다.
1984년 2월 정치규제에서 해금된 이후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세기 후보와 신한민주당 박용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 후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을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조순에게 밀려 패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판사 출신의 정치 신인 신한국당 김학원[4] 에게 패해 낙선하였다.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김대중 총재가 일상적인 당무에서 손을 떼면서, 1996년 8월부터 새정치국민회의 최선임 부총재로서 총재권한대행을 맡았다. DJP연합 성사에 앞장섰으며, 대선 승리 후 1998년 7월 21일 치러진 제15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5] 에서 경기도 광명시 을 지역구에 출마, 최초의 민선 여성시장을 지낸 전재희 전 광명시장을 꺾고 당선되면서 원내에 복귀했다.[6]
1999년 4월 5일, 세풍 사건과 관련된 서상목 한나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여권의 수적인 우세 속에서도 부결되자 총재권한대행직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광명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접전 끝에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에게 패하면서 5선에 실패했다.
이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주일대사를 역임하고,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2009년 6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충격을 받아 뇌경색으로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으나 16일 후인 2009년 6월 17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향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3. 가족관계[편집]
부인 박경자 여사[7] 와 장남 조성훈, 차남 조성주, 고명딸 조혜림을 두었다.
4. 선거 이력[편집]
5. 소속 정당[편집]
6. 둘러보기[편집]
[1] #[2] 배우 유지태의 조부이다.[3] 이 과정에서, 유옥우[2] 등 다른 인물을 밀던 중진들의 반대가 있었다.[4] 이후 1997년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이인제가 창당한 국민신당이라는 정당에 입당하였고, 이듬해 국민신당이 해체되자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이후 여러 의원들의 탈당과 총선 패배로 인해 미니 정당이 되었음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2006년 한나라당과의 합당에 동의하면서 10년만에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이 되었다.[5] 당시 경기도 광명시 을 지역구의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6] 김영진 현 수원시 병 국회의원이 이 때의 보좌관 출신이다.[7] 2007년에 별세.[8] 성북구[9] 민주공화당 정래혁 후보와 동반 당선[10] 성동구[11] 전임자 손학규 경기지사 선거 출마로 사퇴[12] 신한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13]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4]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15] 민주당과 신설 합당.[16]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위한 탈당.[17]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8] 주일대사 취임으로 인한 자동 탈당.[19]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20] 민주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