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쇼 진품명품/방영 목록/2016~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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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쇼감정단 중 우승자는 밑줄 표시.
2. 2016년[편집]
3. 2017년[편집]
4. 2018년[편집]
5. 2019년[편집]
6. 2020년[편집]
2020년 9월 6일 방영된 1239회부터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출연자 좌석 사이에 아크릴 칸막이가 놓여졌다.
[1] 권은아가 장원이었으나 청자 장구를 표인봉에게 양보했고, 표인봉은 전윤민에게 다시 양보했다.[2] 동곳 2개 200만 원 + 풍잠 1개 100만 원 + 관자 1쌍 50만 원[3] 현재 심사정의 낙관을 위조해 그림에 찍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진동만 위원은 낙관의 인주가 바랜 정도로 보아 일제강점기에 찍은 것으로 보이며, 해당 그림이 심전 안중식의 화풍과 유사해보인다고 밝혔지만 작가가 누구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4] 피난민증, 공민증 각 150만 원 + 야간통행허가증 100만 원 + 도강증 300만 원[5] 건국대학교 박물관 학예실장[6] 만인산[7] 교지[8] 순원왕후 김씨가 사위에게 보낸 편지[9] 서사상궁이 대필한 명성황후 민씨의 편지[10] 단령본 3억 원 + 군복본 5억 원[11] 그림 두 폭 2,000만 원 + 글 1,000만 원[12] 흑혜[13] 진신, 나막신[14] 진신 350만 원 + 흑혜 150만 원 + 나막신 300만 원[15] 조선 시대에 성냥처럼 사용한 민속품. 2011년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속박물관에 묄렌도르프가 수집해 기증한 인광노의 실물이 확인되었으며, 한국에는 실물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TV쇼 진품명품 1053회에서 공개된 인광노가 국내 최초로 발견된 실물이었다.[16] 병부 주머니 800만 원 + 학정대 400만 원 + 유물 사용자가 확실해 300만 원 추가[17] 바위 : 심향 박승무, 금붕어 : 묵로 이용우, 송사리 : 심산 노수현, 버드나무 : 청전 이상범, 물총새 : 춘곡 고희동, 쏘가리와 새우 : 정재 최우석, 화제(畫題) '혼연백락(渾然百樂)' : 석정 안종원[18] 어사화 1,500만 원 + 교지와 성적표가 함께 있어서 가치가 상승해 2,000만 원 책정[19] 청자 분합[20] 청자 유병[21] 분합 250만 원 + 유병 500만 원[22] 말다래 1,600만 원 + 말째찍 400만 원 + 문서함 600만 원[23] 장죽 500만 원 + 담뱃대 걸이 450만 원[24] 어린이 글씨체첩 150만 원 + 중등글씨본 50만 원[25] 작은 자물쇠 100만 원 + 큰 자물쇠 250만 원[26] 보관 상태 좋은 갓 100만 원 + 보관 상태 덜 좋은 갓 50만 원 + 갓집 100만 원 + 유건 30만 원 + 탕건 2개 각각 50만 원 + 일습이 남아 있는 것을 반영해 50만 원[27] 혼함 1점당 150만 원 + 자물쇠까지 남아 있는 것을 반영해 50만 원[28] 이용 의자 200만 원 + 도구들 100만 원[29] 목재 허행면(장미) + 소전 손재형(괴석) + 남농 허건(소나무) + 의도인 허백련(국화, 난)[30] 왼쪽 풍로 500만 원 + 오른쪽 풍로 400만 원[31] 두 줄 다식판 : 약 120~150년 전, 물고기 모양 다식판 : 약 180년 전[32] 두 줄 다식판 200만 원 + 물고기 모양 다식판 250만 원[33] 방영분에서는 정확한 연대가 나오지 않았으나 대련에 쓰여진 칠언시가 증국번의 작품인 것을 고려하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으로 추정.[34] 향주머니 3점, 자라줌치노리개 3점[35] 화조도 10폭 병풍 : 1900년대 초반, 풍속도 8폭 병풍 : 1860년대 [36] 화조도 10폭 100만 원 + 풍속도 8폭 1200만 원[37] 서산 3점 200만 원 + 책갈피 100만 원[38] 맨 윗단 : 일제강점기, 중간 단 : 해방 이후, 한국 전쟁 때, 아랫 단 : 한국 전쟁 후[39] 맨 윗단과 중간 단 : 한 점당 15만 원 x 20개 = 300만 원, 아랫단 : 한 점당 3만 원 x 8개 = 24만 원, 저금통 인형 : 30만 원[40] 갓 150만 원 + 갓집 300만 원[41] 과자 그릇 1점 150만 원 + 팔촌반 3점 100만 원, 80만 원, 80만 원[42] 육골침 3점 : 약 100년 전, 퇴침 4점 : 약 120~130년 전, 베갯모 4점 : 약 80~100년 전[43] 손잡이가 달린 찬합 : 150~160년 전, 가로로 긴 형태의 찬합 : 120~130년 전, 높은 형태의 찬합 : 100여 년 전[44] 손잡이가 달린 찬합 250만 원 + 가로로 긴 형태의 찬합 150만 원 + 높은 형태의 찬합 100만 원[45] 전통무기 감정위원[46] 전통도검 감정위원[47]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2016년 원득한 박사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했다.[48] 소정 변관식 작품 150만 원 + 의재 허백련 작품 100만 원[49] 이봉술 노리개 1점[50] 매화잠 1점, 뒤꽂이 4점[51] 이봉술 노리개 1점 600만원 + 매화점 1점 900만원 + 뒤꽂이 4점 400만원[52] 장미 전문가[53]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 116호 화혜장 기능보유자[54]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기능 보유자[55]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의 영향으로 무기한 방영 중단되었다가 2018년 3월 4일부터 방영 재개.[56]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장[57] 각궁[58] 화살통[59] 각궁 300만 원 + 깍지 50만 원 + 화살통 500만 원[60] 첫 번째 줄 기차표 장당 150만원 + 두 번째 줄 기차표 장당 70만원 + 세 번째 줄 기차표 장당 50만원[61] 예술의 전당 서예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62] 나무 설거지대[63] 나무 독[64] 나무 설거지대 300만원 + 나무 독 700만원[65]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66] 1폭, 7폭: 소정 변관식 / 2폭, 6폭: 향당 백윤문(그림), 동강 정운면(글) / 3폭, 10폭: 남농 허건 / 5폭, 8폭: 탄월 김경원[67] 총검 500만 원 + 그릇 300만 원[68] 박가분 500만 원 + 설화분 300만 원 + 가정장분 200만 원[69] 은장도 130만 원 + 먹감나무 장도 120만 원[70] 김정연과 한해원이 남상일에게 청자 장구를 모두 양보.[71] 전주대학교 디자인학부 명예교수[72] 오죽으로 만든 담뱃대와 소도구들[73] 오동상감된 담뱃대와 재판[74] 곱돌 연초합 300만 원 + 휴연대 150만 원 + 재판 200만 원 + 담뱃대 2대 150만 원 + 타구 및 부시 등 110만 원[75] 왼쪽에 놓인 도자기 150만원 + 오른쪽 도자기 200만원[76] 솔표 20만 원 + 박쥐표 50만 원 + 조개표 70만 원 + 승리표 70만 원[77] 수저집[78] 필낭[79] 수저집 130만 원 + 필낭 130만 원[80] 38선 사진 1장[81] 휴전회담 사진 11장[82] 김일성 원수 사진 300만원 + 나머지 사진 평균 20~30만원[83] 궤 450만 원 + 유기 그릇 150만 원 + 수저 150만 원 + 제기 250만 원[84] 1952년, 1954년, 1963년, 1972년[85] 레코드판 80만 원 + 1950년대 교과서 각 150만 원 + 1960년대 교과서 100만 원 + 1970년대 교과서 80만 원[86] 소형 인형: 1점당 10만 원 + 중형 인형: 1점당 25만 원 +대형 인형: 250만 원 + 액자형 인형: 200만 원[87] 문서 1건당 20만원 + 22장이 하나로 묶여 있어서 1,000만원[88] 외손잡이형 떡살 약 70년 전, 장방형 다식판 약 150년 전, 다식판과 떡살 겸용 약 150년 전, 약과판 약 200년 전, 약과판과 다식판 겸용 약 170년 전[89] 의뢰인이 감정가를 정확하게 맞혀서 691회(2009년 1월 4일)에 이어 2010년대 처음으로 인형 2개를 받았다.[90]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91] 군대 보고서[92] 인삼제품 4점[93] 군대 보고서 300만 원 + 인삼제품 4점 550만 원[94] 발향 노리개 1점[95] 향갑 노리개 2점[96] 발향 노리개 1점 2,000만 원 + 향갑 노리개 2점 500만 원, 300만 원[97] 서울시 무형문화재 15호 오죽장 이수자[98] 단국대학교 교수[99] 한의사[100] 의병연구가[101] 건국대학교 축산경영연구소 박사[102]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0호 색지장[103] 춘경·하경산수화 250만 원 + 추경산수화 150만 원[104] 동양학자[105]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교수[106] 약초 채집가[107] 나전칠기 명장 1호[108]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109] 경기도 한의사협회장[110]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111] 17세기 말의 원본을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112]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0호 안동소주 전수자[113] 개인의 기록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기 때문에 감정가 추정을 할 수 없다고 김영복 위원이 밝혔다.[114] 성종의 서9남 익양군 이회-용청군 이수한-청성군 이걸-죽림수 이영윤[115] 느티나무 거북 화약통: 약 200년 전, 무늬 없는 거북 화약통: 약 200년 전, 작은 거북 화약통: 약 150년 전, 대모 화약통: 약 100~150년 전[116] 느티나무 거북 화약통 800만 원 + 무늬 없는 거북 화약통 400만 원 + 작은 거북 화약통 350만 원 + 대모 화약통 450만 원[117]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교수·한국대중음악 사학자.[118] 현자에게 청자 장구 양보.[119] 큰 거북이 둔테 350만 원 + 물고기 둔테 100만 원 + 작은 거북이 둔테 150만 원[120] 경수연도 2억 원 + 신선도 3점 5,000만 원 + 축하시문 전체 1억 5,000만 원[121] 1~2폭: 관재 이도영, 3폭: 성당 김돈희, 4폭: 위창 오세창, 5폭: 해강 김규진, 6폭: 석촌 윤용구, 7폭: 석정 안종원, 8폭: 우하 민형식, 9폭: 춘고 박영효, 10폭: 무정 정만조[122] 망건통, 망건, 풍잠 700만 원 + 옥관자 한 쌍 300만 원 + 은동곳 5개 300만 원 + 나무 풍잠 100만 원 + 비녀가 있는 상투관 350만 원 + 비녀가 없는 상투관 300만 원[123] 코로나로 인해 2020년 2월 이후로는 출장 감정을 하지 않고 스튜디오 방송 위주로만 하고 있다.[124] 대원군의 글씨 500만 원 + 나머지 9명의 글씨 1명당 100만 원[125] 직접 쓴 포스터 400만 원 + 전단지 장당 30만 원, 총 90만 원[126] 의뢰인이 감정가 추정을 원하지 않아 표기되지 않았으나, 김준영 위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진풍명품에 나왔던 도자기 중 최고가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127] 범표신발 간판 500만 원 + 나머지 간판 150~230만 원[128] 큰 함 500만 원 + 찬합 200만 원[129] 유혜[130] 나막신 2점[131] 유혜 2,500만 원 + 나막신 한 점 당 1,000만 원[132] 우승 상품으로 받은 청자 장구를 조은지에게 양보.[133] 아라진 500만 원 + 아이나의 모험 500만 원[134] 영화연구가.[135] 자유부인 100만 원 + 오발탄 300만 원[136] 야구공(1800년대 중반) 가격. 야구공 3개 50~100만 원, 글러브 3개 50~100만 원, 야구 배트 150만 원, 포수 보호대 50만 원, 야구 신발 80만 원[137] 낙화암, 돼지수유그림[138] 한글 승경도 판 & 유리 윤목 100만 원 + 한자 승경도 판 & 나무 윤목 150만 원[139] 문교부 교과서 2권 300만 원 + 철필 교과서 30만 원[140] 한 점당 500만 원씩.[141] 한미전기회사 운영 전차표 500만 원 + 나무 전차표 150만 원 + 야간 이용권 30만 원[142]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143] 풍수지리 학자[감정위원소장전] A B C [144] 대한당구연맹 국가대표팀 감독[145] 관재 이도영의 선면화[146] 검여 유희강의 선면화[147] 관재 이도영의 선면화 200만 원 + 검여 유희강의 선면화 100만 원 [148] 남상일이 장원이었으나 청자 장구를 김승혜에게 양보했다.[149] 업[150] 귀면[151]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152] 묵로 이영우(고목석죽도), 정재 최우석(쏘가리와 게), 영운 김용진(국화), 제당 배렴(색비름), 남농 허건(매화), 성재 김태석(화제)[153] 국가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154] 사주보자기 400만 원 + 보자기 2점과 혼서지 등 300만 원 + 하나의 세트로 있다는 점을 고려해 100만 원[155] 2018년에 이어 의뢰인이 추정감정가를 맞추어 인형 2개 받아 쇼 감정단을 놀라게 했다.[156] 연락편도 승차권 100만 원 + 한강 유람선표 50만 원 + 장항-군산간 배 승선권 30만 원[157] 의뢰인의 요청으로 추정 감정가를 공개하지 않음.[158] 저금통 150만 원 + 다리미 받침 30만 원 + 병아리 물병 50만 원 + 항아리 두 점 각 100만 원 + 재건 문구 항아리 70만 원[159]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역사적 자료,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나타내는 역사적 증거이자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감정가를 책정하지 않았다.[160] 처네 800만 원 + 장옷 600만 원[161] 매국노 이완용 처단에 결의한 청년들. 왼쪽부터 오복원 의사, 이재명 의사, 김용문 의사, 이교담 의사.[162] 집인첩 100만 원 + 전기철도 노선도 50만 원 + 금강산 조감도 50만 원[163] 관복과 흉배 1,700만 원 + 관복함 1,200만 원 + 각대 600만 원 + 관모 300만 원 + 상아홀 500만 원 + 목화 200만 원 + 관복 일습이 갖춰진 점을 높게 평가해 500만 원[164]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음악사학자[165]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념 사진첩 2점 & 1948년 런던 올림픽 기념 사진첩[166] 공식 조직위원회 사진첩 200만 원 + 두 사진첩 각 10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