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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치 미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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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외교관 출신 정치인.
2. 초기 생애[편집]
1965년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경찰관료 기우치 야스미쓰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쿄에서 태어났기에 지역구인 하마마츠시와의 연결점은 없어보이지만 그의 조부가 하마마츠시 자치회 연합회 부회장을 지냈고 할머니는 하마마츠시 텐류구 사쿠마마치 출신이라고 한다. 당시 아버지는 히로시마현 경찰본부 수사2과장으로 근무중이었는데 히로시마 항쟁 사건 수사중이었기에 가족에 피해가 가지 않게 도쿄 집에서 출산하였다. 그리고 출생 후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히로시마에서 지낸다.
이후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독일로 가 1971년 서독 고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1975년 고베시립 스와야마 초등학교에 편입할때까지 독일에서 지내다 귀국한 귀국자녀이며, 그로 인해 독일어가 유창하여 이후 외교관 시절 천황이나 총리의 독어 통역을 맡을 정도이다. 이후 다시 도쿄로 옮겨 1977년 미나토구립 히노키초 초등학교에 전학하더니 1978년 요코하마시립 나카타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아버지의 전근에 따라 초등학교만 네 곳을 옮겨다녔다.
한동안 요코하마에 살았는지 1981년 요코하마시립 토츠카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입시를 치러 동일본 굴지의 명문교인 카이세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자민당 내에 고교 동문으로 기시다 후미오, 이노우에 신지, 고바야시 다카유키, 스즈키 게이스케 등이 있다. 1984년 카이세이 고교를 졸업하였고 도쿄대학 교양학부에 입학한다.
1989년 도쿄대학 후기교양과정 교양학부 교양학과 종합사회과학분과 국제관계론코스[2] 를 졸업하고(B.L.A.) 외무성에 입성하여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 외무성 입성후 독일어 연수를 받고 1990년 바로 주독 대사관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1997년부터는 아키히토 천황이나 총리대신의 독일어 통역관을 맡는다. 2000년부터 외무성 유럽국 서유럽1과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아시아국 동북아과 한국담당 시절엔 문부과학성에 센터시험 외국어에 한국어 과목 포함을 제의하였다. 2002년 외무성을 퇴임하였다.
3. 정치 활동[편집]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 지역구 개편된 시즈오카현 제7구에서 당시 연립여당인 보수신당 당수 구마가이 히로시 후보를 깨부수고 무소속으로 첫 당선된다. 명목상 연립여당 당수 지역구기에 자유민주당에서 대놓고 지원해주진 못했고 시즈오카현련에서 기우치를 지원했다. 이후 세이와 정책연구회에 가입한다. 2004년 당 개혁실행본부 간사를 맡는다.
그런데 2005년 우정 민영화 표결에서 세이와회 내에서 유일하게 기우치만이 우정 민영화에 반대표를 던진다. 같은 파벌이던 아베 신조 간사장의 거듭된 설득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직후 치러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했으니 무소속으로 출마, 고이즈미가 꽂은 여성 자객인 가타야마 사쓰키[3] 에게 748표 차이로 석패하여 낙선한다. 이후 탈당 권유를 받아 자민당을 나와서 타쿠쇼쿠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자민당 전직 가타야마는 낙선시키고 민주당 광풍이 불었음에도 민주당 후보 역시 밀어내고 당선되는 등 지역구 기반이 강한듯 하다. 이후 2009년 9월 히라누마 다케오, 고이즈미 류지 등과 무소속 회파 "국익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한다. 허나 2010년 히라누마가 창당한 정당에는 따라가지 않고 잔류하다 자민당 시즈오카현 제7선거구 지부가 복당 요청할 의사를 굳히고 이후 2011년 "자유민주당 무소속 회파"를 거쳐 2012년 5월 7년만에 자민당에 복당한다. 이후 9월 치러진 총재선에서 아베 신조 추천인에 이름을 올린다.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60%를 득표하며 민주당 후보는 낙선시키고 당선된다. 이후 아베의 측근 행보를 보이며 선거 직후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 외무대신 정무관이 된다. 이어 2013년 당 외교부회장, 외무위와 국가안보특위 이사를 역임한다. 2014년 제2차 아베 개조내각에서 외무부대신이 된다.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70%를 득표하며 압도적으로 당선된다. 이후 출범한 제3차 아베 내각에서도 외무부대신에 유임. 2016년 중의원 납치문제특별위원장, 2017년 당 경제산업부회장과 정보조사국장을 맡는다.
2017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65%를 득표하여 압도적으로 당선되는데 상대인 입헌민주당 히요시 유타가 겨우 13%밖에 득표하지 못했는데도 입헌민주당의 도카이 블럭 후보가 워낙 적어 석패율 비례대표로 부활하는 이례적 케이스가 된다. 2018년 환경부대신, 2019년부터 당 국회대책부위원장 역임. 2020년부터 당 홍보본부장 대리도 겸한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야당단일화로 표차가 줄어 히요시 유타 의원의 2배 정도 득표했다. 그래도 압승하였다. 이후 11월 11일부로 중의원 외무위원장에 취임했다.
2023년 5월 10일 모리야마파에 가입하였다.
4. 성향[편집]
일본회의 모임,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임에 가입 되어 있어서 우파 성향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부부 별성 인정 발언을 하는 등 사회문화적으론 자유주의 성향이 일부 있다. 하지만 기우치는 #에서 LGBTQ+ 혐오를 내비친 적이 있다.
아베 신조의 최측근들 모임인 창생일본에 가입되어 있다.
5. 여담[편집]
- 취미는 SP 레코드 수집. 빈티지 오디오 매니아이며 일본음반클럽 이사이고 외교관 시절 레코드 수집가 직함으로 칼럼을 정기적으로 썼을 정도이다.
- 또한 축구를 초등학생때부터 계속해왔으며 일본인 최초 분데스리가 우승자인 오쿠데라 야스히코와 절친하다고 하다.
- 어린시절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와 본에서 지냈으며 외무성에서 독일어 연수를 받고 주독 대사관 근무 및 천황, 총리의 독어 통역관을 지낸 독일통이다. 현재도 일독우호의원연맹 사무국장을 지내는 중이다. 2018년엔 독일 공로훈장 대공로십자장을 받았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