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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시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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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46년 도쿄도 에도가와구에서 태어났다. 1970년 고쿠가쿠인대학 법학부를 졸업했으며, 대학 졸업 전후로 후카야 다카시 의원과 시마무라 이치로 의원의 비서로 근무했다.
1975년 고향인 에도가와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구의원 4선을 기록했다. 1984년 최연소로 에도가와구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구의원 역임 후 체급을 높여 1993년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에도가와구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도의원 4선을 기록했다. 2007년 도의원 임기 중 사퇴 후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자민당 비례대표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낙선 후 자민당 도쿄도련 부회장과 고향인 에도가와구를 관할하는 도쿄도 제16구의 자민당 총지부장을 맡는다.
이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 소속으로 도쿄도 제16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국회에 진출한다. 이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도쿄도 제16구에서 당선되어 3선을 기록한다. 3선 달성 후 아베 신조 4차 개조 내각에서 총무 정무관을 역임한다. 그 뒤 스가 요시히데 내각에서 국토교통 부대신을 역임한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입헌민주당 미즈노 모토코 후보를 꺾고,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4선을 기록했다. 당초 여론조사에서 접전이 예상되었으며,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지역구 낙선 조짐까지 보였으나 선거 결과 여유있게 당선되었다.
3. 논란[편집]
- 2014년 4월, 국회 중의원 총무위원회에서 질문자로 나선 여성 의원에게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성희롱성 야유를 해 논란이 되었다.
- 2015년 6월 25일, "언론을 손 보는데는 광고료 수입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제일이니 게이단렌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좋겠다." "악영향을 주고 있는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그 스폰서 기업을 열거하면 된다."라고 말해 당으로부터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다. 30일에는 "안보 관련 법안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징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된 보도를 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 2016년 3월,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유세를 위해 홋카이도에 갔다가 무녀에게서 자민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무녀 주제에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다"고 발언했으며, 이에 더해 당시 대화를 나눈 무녀의 연령이 20세 정도였다고 밝히고서 "무녀에 권해서, '삿포로의 밤'에 설득하려고 생각했다"라는 발언을 해 당 내에서 비판을 받았다.
- 2017년 5월, 간접흡연 방지책을 논의하는 자민당 내 비공개 회의에서 담배 연기에 암환자들이 힘들어하는 얘기에 대해 "암환자는 일하지 않아도 좋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암환자 발언으로 비판이 커지자 오니시 의원은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유감 표명을 했지만,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발언 당시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를 앞둔 상황이라, 자민당은 도쿄도련 부회장 직을 맡고 있던 오니시 의원을 부회장 직에서 경질했다.
4. 기타[편집]
- 숫자 4와 인연이 많다. (구의원 4선, 도의원 4선, 현재 중의원 의원 선수도 4선, 아베 신조 4차 개조 내각에서 정무관 역임 등)
5. 둘러보기[편집]
[1] 에도가와구의회 의원 역임. 2021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에도가와구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경력으로보아 아버지의 정계 은퇴 이후 지역구를 물려받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