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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하라 노부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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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기자, 정치가. 도쿄도지사를 역임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장남이다. 자유민주당 소속 전직 중의원 의원이며 지역구는 도쿄도 제8구였다. 자유민주당의 파벌 중 군소 파벌인 근미래정치연구회, 일명 이시하라파의 회장이었으나, 2021년 총선에서 낙선하여 파벌 회장을 은퇴하였다.
2. 생애[편집]
1957년 4월 19일, 가나가와현 즈시시에서 이시하라 신타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를 거쳐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사회학과 도시사회학 전공을 졸업한 후, 1981년 닛폰 테레비에 입사해 보도국 기자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1989년 퇴사한 후 1990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낙선 없이 계속 당선되어 10선을 기록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행정개혁담당대신[5] 과 국토교통대신을 맡는 등 3년간 내각에 중용되었고, 아베 1차 내각에선 간사장대리를 맡았다. 2007년 후쿠다 총재 체제에서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맡았으며 2008년 총재선거에 역대 최연소로 출마하나 4위러 낙선한 후 아소 다로 내각에서 자민당 간사장대리를 역임했다. 이후 2009년 총재선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 추천인으로 참여하여 다니가키 총재 체제에서 조직운동본부장을, 그리고 2010년부터 도쿄 선출 중의원 출신 최초로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했다.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직전에 치러진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또다시 출마했으나 1차 투표에서 낙선했다. 이후 자민당 전 부총재인 야마사키 타쿠의 뒤를 이어 근미래정치연구회 제2대 회장에 취임했고 아베 신조 2, 3차 내각에서 환경대신, 그리고 수뢰사건으로 사직한 아마리 아키라의 후임 경제재생담당대신을 역임했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민주당 여성 후보인 요시다 하루미에게 패배하고 비례 부활도 못하고 낙선했다. 최근 코로나 감염 후 우선 입원 사건으로 인해 상급국민이라며 유명해지기도 했고 지역구에서 30년을 밀어줬는데 한 게 없다며 비토여론이 크기도 했다. 동생 이시하라 히로타카도 낙선 후 석패율로 부활하는 등, 이번 선거는 전체적으로 이시하라 패밀리 영향력의 종막이 엿보였다.[6]
이번 선거에서 현직 간사장인 아마리 아키라의 낙선 다음으로 충격적인 패배로, 전체적으로 자민당이 압승했지만 그 와중 비리 정치인 아마리나 자질 부족 정치인 이시하라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다. 이시하라는 현재 근미래정치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지만 낙선에 따라 회장을 은퇴해야 하는데, 아예 계파 해체까지 점쳐진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의해 관광정책담당 내각관방참여에 기용되었지만, 임명되자마자 지역구 사무소가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지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어#, 결국 내각관방참여직에서 물러났다.#
2023년 6월 26일 차기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6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차기 중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고, 참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7]
3. 선거 이력[편집]
4. 여담[편집]
- 망언제조기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의 아들답게(?) 2011년 9.11 테러 10주년 당시 "9.11 테러는 역사의 필연"이라는 말을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또한 2014년 6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따른 오염 토양의 중간 저장 시설 계획을 둘러싸고, 이시하라가 "마지막은 값나가네요."이라고 말한 탓에 당시 환경부대신이던 이노우에 신지가 "후쿠시마현의 여러분에게 불쾌감을 보여드려,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하고 수습한 적이 있다. 그래도 지나치게 파격적인 아버지보다는 발언이 신중한 편이다.
- 아버지 이시하라 신타로를 닮아 일본 정치계에서 손꼽히는 장신이다. 신장이 180 cm인데 1950년대생 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 일본인 남성의 평균 신장인 171 cm보다도 훨씬 크다.
- 방송기자 출신답게 발성이 좋고 발음이 뚜렷하다.
- 헌법 개정은 찬성하지만, 여타 자민당 의원들과는 달리 헌법 9조 개정은 반대한다. 다만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므로 우익 성향은 맞는 듯. 더불어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도 참가했다.
- 1989년 옴진리교가 출마를 위해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노부테루를 도청하려 했으나, 도청기 설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실패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때 원전 1호기를 제1사티안(후지산 인근 옴진리교의 본진의 건물을 부르는 이름)이라 부르는 말실수를 저질렀다.
- 야마모토 타로가 최초로 입후보한 지역이 이 사람의 선거구인 도쿄 8구였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낙선했다. 그럼에도 야마모토 타로는 최종적으론 2위후보가 되면서 가능성을 내비췄고 이후 야마모토 타로는 참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10]
- 2014년 6월 환경상 시절에 발표 중에 '후쿠시마 오염토 문제에 대해서 최종적으론 배상금이 얼마나 될 것이냐.'했다가 지역 주민들에게 비난받기도 했다. 이후 이 발언에 관해서는 철회했다.
- 나가시마 아키히사 의원이 과거 자신의 비서였다. 나가시마는 이후 민주당에 입당해 이시하라와 정적이 되지만, 나가시마가 이후 희망의 당을 거쳐 자민당으로 이적하면서 같은 당 동료 의원이 되었다.
- 사쿠라다 요시타카가 운영하는 농장에 방문했다고 한다.
- 아소 다로가 자민당 의원들을 평가할 당시에 아베 신조는 "속이 나쁜 녀석", 이시바 시게루는 "어두운 녀석", 그리고 노부테루는 "별로 머리가 좋지 않은 녀석"이라고 하였다.#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행정개혁) 시절 다마키 유이치로(현 국민민주당 대표)를 비서로 두었다. 당시 다마키 대표는 재무성 관료로서 내각부의 비서전문관[11] 으로 파견된 것이었다.
- 2021년 1월 22일.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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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 탤런트, 사회자, 기상캐스터.[2] 본인과 같은 자민당 소속 정치인으로, 도쿄도 제3구 중의원이다.[3] School of Visual Arts출신, 미술가.[4] 결혼 전 이름은 다나카(田中)로, 80년대 당시에 탤런트로 활동한 사람이다.[겸임]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규제개혁담당)[겸임2] 자유민주당 개혁실행본부장, 선거대책부본부장[겸임3]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경제재정정책담당)[5] 이때 다마키 유이치로를 비서관으로 두었다.[6] 이전까지는 접전을 펼치고 있을때, 이시하라 군단 연예인들의 유세지원으로 부동층이 이시하라를 지지하게끔 만들고, 표로 그대로 연결이 돼서 당선이 되었는데, 2020년에 이시하라 군단의 리더인 와타리 테츠야가 사망하면서 이시하라 군단이 해체되고, 소속사인 이시하라 프로모션이 2021년 1월에 없어지면서, 더 이상 이들의 유세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노부테루에게는 천군만마 같은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7] 임기가 불안정한 중의원보단 6년 임기와 여러명을 선출 하는 참의원이 더욱 더 당선되기 쉬울 것으로 보이며, 도쿄선거구의 경우에만 봐도 마루카와 다마요는 중의원으로 전업을 다케미 케이조는 2025년 75세 고령으로 이를 기반하여 참의원으로 출마를 할 것으로 보인다.[8]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9] 11번의 선거 중 첫 낙선[10]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또 낙선했다가 2년 후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11] 물론 관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