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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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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의 제12대 황제.
묘호는 없고, 시호는 절민제(節閔帝)였으며, 휘는 공(恭)이었다. 북제때 편찬된《위서》에는 전폐제(前廢帝)로 기록되었고, 당나라때 편찬된《북사》에서는 서위에서 올린 시호인 절민제로 기록했다.
2. 생애[편집]
2.1. 즉위 이전[편집]
제7대 고조 효문제 원굉의 동생인 광릉왕 원우(元羽, 선제로 추존)와 왕씨의 아들로 태어나 제8대 세종 선무제 정시(正始) 연간(504~508)에 광릉왕의 봉작을 이어받았다. 그후 산기상시와 황문시랑을 역임했다. 제9대 숙종 효명제때 원차(元叉)가 북위 조정 내에서 권력을 차지하자 이권을 잃고, 용화불사(龍花佛寺)에 유폐되었다가 530년 모반을 꾸민 혐의로 체포되었다. 오랫동안 구금되었지만, 혐의가 없어서 석방되었다.
530년 제10대 경종 효장제 원자유가 장인이자 권신인 이주영을 암살하는 정변이 일어났다. 이 암살 사건에 격분하여 복수심에 불타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이주조 등에 의해 효장제가 살해당했다.(이주씨의 난) 그 후 이주세륭[1] 등에 의해 장광왕 원엽이 제11대 황제로 옹립되었지만, 이주세륭과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고, 이예 이주씨 일족이 원엽의 폐위를 도모했다. 황제 원엽이 북망산(北邙山) 남쪽으로 갔을 때, 이주세륭이 원엽한테 광릉왕 원공에게 선양을 할 것을 강요하여 원공을 제12대 황제로 옹립했다. 이때 태위 이주도율(爾朱度律)이 원공을 맞아 궁궐에 들어갔다.
2.2. 치세와 독살[편집]
531년 2월 원공은 태극전전(太極前殿)에서 북위의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보태로 개원했다. 3월 폐제가 된 장광왕 원엽을 동해왕으로 책봉하고, 노군왕 원숙(魯郡王 元肅)을 태사(太師)로 임명했으며, 패군왕 원흔(沛郡王 元欣)을 태부로 임명했다. 또한 이주중원(爾朱仲遠)과 이주천광(爾朱天光)을 대장군으로, 이주조(爾朱兆)를 천주대장군으로 임명하고 고환을 발해왕(渤海王)에 봉했으며,[2] 이주세륭을 태보로 삼았다. 6월에 고환이 신도(信都)에서 반 이주씨 거병을 하고, 10월에 후폐제 원랑(元朗)이 즉위하면서 북위에는 두 명의 황제가 등장했다.
532년 3월에 이주천광이 한릉(韓陵)산 전투에서 고환의 군대에게 대패하자, 황제 원공은 고환에 의해 폐위당했고 불사에 유폐되었다. 고환이 평양왕 원수를 제14대 효무제로 옹립하고 난 뒤에 문하외성(門下外省)에서 짐살당했다.
후에 서위에서 절민황제(節閔皇帝)로 추증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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