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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황후 모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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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도무제 탁발규의 황후. 후연의 혜민제 모용보의 넷째딸이자 막내딸.
황시 2년(397년) 10월, 후연의 중산(中山)을 무너뜨린 도무제 탁발규는 입성하여 미처 아버지 모용보와 함께 도망치지 못 한 막내딸 모용씨를 얻고, 궁 안에 들인 뒤 특별히 총애하였다.
천흥 3년(400년) 3월, 좌승상 위왕의(衛王儀) 등이 황후를 정할 것을 주청하니, 도무제는 그들의 말을 듣고 국가 관례에 따라 모용씨와 유씨(劉氏)에게 명해 금인(金人)을 주조하게 하였다. 이때 유씨는 금인 주조에 실패한 반면, 모용씨는 금인을 성공적으로 주조하자, 도무제는 3월 8일에 모용씨를 황후로 삼고, 교외 사당에 이 사실을 고하였다. 또, 모용씨 어머니 맹씨(孟氏)는 표양군(漂陽君)에 봉하였다.
나름 도무제의 황후임에도 책봉 후 사망했다는 것 외에는 다른 행적이나 시호가 없다. 단지, 천흥 5년(402년)에 후진의 문환제 요흥이 도무제가 이미 모용씨를 황후로 세웠다는 이유를 들어 도무제의 혼사를 거절했다는 《자치통감》의 기록만 있어, 황후가 되고 최소 2년 정도는 살아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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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추존 황후 道武皇后 | 도무황후 | |
시호 | 없음[1] 따로 받은 시호는 없지만 일단 도무제 탁발규의 정실이고, 소성황후 모용씨와의 혼란을 방지코자 후대에는 보통 '도무황후'라 불리운다. |
성 | 모용(慕容) |
생몰연도 | 미상 |
능묘 | 미상 |
부친 | 모용보(慕容寶) |
부군 | 도무황제(道武皇帝) |
자녀 | 미상 |
1. 개요[편집]
북위의 도무제 탁발규의 황후. 후연의 혜민제 모용보의 넷째딸이자 막내딸.
2. 생애[편집]
황시 2년(397년) 10월, 후연의 중산(中山)을 무너뜨린 도무제 탁발규는 입성하여 미처 아버지 모용보와 함께 도망치지 못 한 막내딸 모용씨를 얻고, 궁 안에 들인 뒤 특별히 총애하였다.
천흥 3년(400년) 3월, 좌승상 위왕의(衛王儀) 등이 황후를 정할 것을 주청하니, 도무제는 그들의 말을 듣고 국가 관례에 따라 모용씨와 유씨(劉氏)에게 명해 금인(金人)을 주조하게 하였다. 이때 유씨는 금인 주조에 실패한 반면, 모용씨는 금인을 성공적으로 주조하자, 도무제는 3월 8일에 모용씨를 황후로 삼고, 교외 사당에 이 사실을 고하였다. 또, 모용씨 어머니 맹씨(孟氏)는 표양군(漂陽君)에 봉하였다.
나름 도무제의 황후임에도 책봉 후 사망했다는 것 외에는 다른 행적이나 시호가 없다. 단지, 천흥 5년(402년)에 후진의 문환제 요흥이 도무제가 이미 모용씨를 황후로 세웠다는 이유를 들어 도무제의 혼사를 거절했다는 《자치통감》의 기록만 있어, 황후가 되고 최소 2년 정도는 살아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