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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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
親舊 / friend"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
토마스 풀러
가깝게 오래 사귀어 정이 두터운 사람을 친구라고 한다. 비슷한 말로 벗, 동무가 있다.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친해져 사실상 반쯤 가족인 인간관계를 친구라고 한다.
2. 어원[편집]
친구(親舊)는 원래는 친고(親故)와 같은 말로 '친척과 벗'을 뜻하는 한자어였다. 친(親)은 친척, 구(舊)는 '오랜 벗'을 뜻한다. 그러던 것이 한국에서는 친척의 의미가 빠지고 '벗'의 의미로 한정되어 쓰이게 되었다. 지인과는 구분된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중장년층 이상에서만 쓰이는 단어였다.
그런데 동무라는 단어가 북한에서 애용하다보니 남한 땅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게 되어 쓰임새가 길동무, 말동무, 어깨동무 등의 복합어로만 남게 되었고, '벗'은 살짝 우아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1] 한자어인 친구가 어의확장을 해서 유치원생을 비롯한 나이어린 사람들 간에도 친구란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스펀지에 의하면 일본의 쓰시마 섬에서도 일종의 방언으로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발음 자체는 '칭구'에 가깝다. 원래 일본어 단어는"현철군이 그저께 아리랑고개에서 불심검문을 만나 "어디 갔다 오느냐" 하기에 "동무 집에 놀러 갔다 온다" 하였더니 "동무란 말을 쓰는 걸 보니 너 빨갱이 아니냐" 하더라고. 우리 연배면 '친구'라는 좋은 말이 있지만 현철이 나이 또래에는 '동무'라야 격에 맞을 터인데 무슨 알맞은 대용어라도 찾아내어야겠다."
또래관계의 발달
북한에서는 동지라는 말 또한 자주 쓰는데, 이 말은 같은 뜻을 품고 함께 행동하는 사이를 일컫는 한자어다. 동지는 보수 정당내에서도 같은 당원을 일컫는데 자주 쓰인다. 대표적으로 박근혜도 새누리당원들에 전하는 서신에 '당원 동지'라고 잘만 썼다.
2.1. 언어별 단어[편집]
3. 이성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편집]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단어는 친구와는 확실히 다른 애인의 의미이다. 물론 애인도 친구의 아주 본질적인 의미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애인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성애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친구 사이와의 분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이미 일반 대중의 언어에서는 친구와 애인을 분리하여 나타내고 있다.[21]
남자사람 친구(남사친) 또는 남자인 친구, 여자사람 친구(여사친) 또는 여자인 친구라 불리는 '연애 없는 친구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는 찬반이 심하게 갈린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라고 하면 말그대로 '그냥 친한 사이'로 보지 않고 묘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남녀간에 평범한 친구관계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은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거론되기도 한다. 반면 서양은 비교적 관대한 편.
3.1. 긍정론[편집]
친구의 정의에 따라 다르다. 이성 친구를 동성 친구와 완전 동일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이성 친구는 아예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동성 친구끼리는 같이 목욕탕에 갈 수 있지만 이성 친구와는 그러는 것이 많이 어려울 것이다. 반면 성별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친구라고 인정한다면 이성과의 친구는 있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성관계를 하고도 둘이서 서로가 친구라고 규정하면 친구다. 물론 이런 관계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친구가 아닐수도 있지만, 친구 관계란 주변 사람이 아닌 당사자들이 정하는 것이다.
물론 친구 사이에도 선은 지켜야 하며, 이성 간의 관계에서는 이 범위가 좀 더 좁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둘 다 남자라면 단 둘이서 같이 놀러 간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남녀 사이라면 같은 상황에서도 사회적으로 의심을 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연인에게 이성 친구를 인정받고 싶다면, 친구니까 괜찮다는 핑계로 연인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웹상에서는 이성 간에는 "절대 친구가 있을 수 없다"라는 설이 정설처럼 퍼져 있다. 이성 간의 관계인만큼 친구의 선을 넘어서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물론 많은 상황에서 이성친구와의 관계는 연애 감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며, 실제로 이성과 연애감정 없는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언도 종종 나오는 만큼 '절대 불가능'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친구 관계의 경우 단둘이 밤새 술을 먹거나 여행을 가도 별 일 안 일어나고, 심지어 상대의 애인과 면식을 트거나 결혼식에 참석하는 관계를 10년 단위로 유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성애자가 이성과 친구가 절대 될 수 없다는 논리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오로지 이성 동성애자와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즉 게이와 레즈비언끼리만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양성애자나 범성애자는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다는 해괴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3.2. 부정론[편집]
성별에 따라 태도가 다르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의견이고, 우리는 수많은 조건에 따라 친구를 달리 대하고 있으며 성별은 그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성간에는 연인이라는 상위 클래스가 있으니, 이성 친구가 언제까지 친구로 머무를 수 있고 언제부터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보통 직장이나 동기동창 모임 등에서 간단하게 교류하는 지인 관계 정도는 가능하지만, 1:1로 가깝게 지내고 마음을 소통하는 친구관계는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지속적으로 유지가 안 된다는 측면이 있다. 결혼한 사이에서 "아무 감정 없는 여자 사람 친구이니 단둘이서 영화보고 커피 마시고 오겠다", "고등학교 동창 남자 사람 친구인데 단둘이서 맥주 한 잔 하고 오겠다"고 말한다고 상상해보자. 결혼이 아니라 연애 중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1:1로 만난다고 하면 애인들이 정말 싫어한다. 거짓말을 하면서 1:1로 만나든지 솔로일 때만 1:1로 만나는 사이라는 거다. 이를 진정으로 순수하게 친구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애인이 다른사람 만나는 것에 관대하다면 괜찮다.[22]
다음으로, 어떻게든 연애나 짝사랑 같은 것으로 바뀌기 쉽다는 점이 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친한 친구가 되려면 둘 모두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양쪽 다 호감이 없다면 처음부터 친구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양쪽 다 호감이 있으면, 이성 간에서는 그 호감이 연애의 감정으로 바뀌기 쉽다. 이는 사실상 남사친/여사친을 가장하는 썸이기 때문에 우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쪽만 호감이 있을 경우, 우정을 빙자한 짝사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한쪽은 짝사랑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반대쪽은 연애 감정이 전혀 없이 좋은 친구로만 볼 경우에 이런 관계가 형성되기 쉬운데 이건 겉으로 티를 안 낼 뿐이지 친구 관계라기 보다는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에 가깝다.
3.3. 기타[편집]
아예 연애로 바뀔 가능성이 적은 관계도 있다. 나이차이가 한참 나는 사이라든지, 외국인 펜팔, 종교와 문화적 차이가 심한 사이, 양쪽 다 이성으로서 너무 매력이 없을 경우[23] 등등이다. 이런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연애감정이 안 생길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꽤 많고, 종교적/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은 현실에서도 매체에서도 많이 볼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다가도 사랑이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다. 외모가 이성으로서 매력이 없더라도 다른 면모가 어필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3.4. 결론[편집]
이 논쟁이 결론이 나기 힘든 이유는, 서로가 다른 친구의 잣대를 전제로 가능 유무를 따진다는 점이다. 긍정파는 연애 감정이 있어도 친구로 보고, 부정파는 연애 감정이 있으면 친구로 보지 않으니 애초에 여기서 하나의 논쟁거리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점을 해결하지도 않고 이성간에 친구가 가능한가 불가한가를 따지니 결론이 나올리가 없다. 이 논쟁을 2개의 주제로 나누자면, "어디까지가 친구인가"라는 논의와 "연애 감정 없이 친구가 가능한가"의 논의로 나누어야 한다. 이 중 후자쪽이 논쟁의 본질에 가까우니, 보다 세련된 토론을 위해서는 친구의 정의라는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주제 설정에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연애감정 없이, 이성간에도 친구는 있을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있고 없고가 아닌, 친구 관계 성립이 쉬운가 어려운가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당 링크에 따르면, 이성 친구간 연애감정을 느껴보았다는 사람이 80%를 넘어선다. 연애감정이 있어도 친구라 하면 친구겠지만, 연애감정이 없는 친구 관계는 유지가 어렵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결론을 몇 가지로 도식화 하면 아래와 같다.
- 이성 간에 친구가 있을 수 있는가? → 있다.
- 이성 간에 연애감정 없는 친구가 있을 수 있는가 → 있다.
- 이성 간에 연애감정 없는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가 쉬운가? → 어렵다.
4. 친구의 개념[편집]
한국의 '친구' 개념과 영어권의 'Friend'는 의미가 다소 다르다. 영어권에서는 동년배이든 나이차가 10살 이상이든 가족, 친인척을 제외하고 친한 사람을 Friend라고 부른다.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라 朋友라고 하면 나이차는 중요하지 않고, 친하게 지내는 동년배 정도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공식 베프(?)인 제라드 듀갈과 알렉세이 스투코프 두 제독은 무려 나이 차가 12살이나 나지만 전혀 격의없이 어울리며 어색해 보이지도 않는다.
반면 현대 한국에서 친구는 '나와 동갑 또는 동급생인 친한 사람'만을 친구라고 보른다. 반대로 단 한 살만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친구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25] 이는 흔히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군사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군대 문화가 사회에 섞여들어왔고, 이 사이에 주민등록제가 시행되며 전 국민이 나이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된 탓이다. 특히 일제의 악독한 군대 문화가 사회에 심어져 이어 내려온 영향이 크다.[26] 실제로 유교는 한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해당하는 사상인데도, 나이를 1년 단위로 끊어서 서열을 매기는 것은 한국뿐이다. 이를 유교 문화의 영향만으로 보는 것은 오히려 유교에 대한 몰이해에 가깝다.
반면 전통 유교 문화에서는 나이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더라도 친구로 지내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상팔하팔이라는 말이 있는데, 위로 8살, 아래로 8살까지는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절친의 대명사인 오성과 한음도 5살 차이,[27] 역시 친한 친구 관계였던 서애 류성룡과 충무공 이순신은 3살 차이다. 송시열과 윤휴는 10살 차이가 났으나 서로를 호나 자로 부르며 격의 없는 친구처럼 지냈는데, 이를 보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마음만 맞으면 얼렁뚱땅 친구먹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아버지의 젊은 친구가 집에 왔는데, 그게 하필 내 친구이기도 해서 방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거나 하는 일화도 있었을 정도다. 실제로 나이 지긋하신 분들 중 교육을 잘 받으신 분은, 고작 1살 차이인 사람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걸 이상하게 여긴다.
유교 사회에 존재하던 장유유서라는 말 때문에 나이 차이가 엄격하게 다뤄진다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이 말은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유세부리라는 뜻이 아니라 어른과 아이 사이에도 예의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애초에 삼강오륜에 해당하는 내용 자체가 모두 쌍방이 서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므로, 장유유서 또한 어른이 어른답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문화가 널리 퍼졌기 때문에, 친구 관계가 꼬이는 경우도 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세는 나이 기준으로 같은 나이에 입학해서 같은 학년으로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같은 학년(나이)=친구', '다른 학년(나이)=선, 후배'라는 공식이 통하지만, 성인이 되어 대학교나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나이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서로 친구처럼 지내더라도 뭐라 지칭하기는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분명 말도 편하게 놓고 막역하게 지내지만 나이가 많아서 '형'이라고 부르고, 어디 가서 소개할 때도 "그 사람은 내 친구다"라기 보다는 "그 사람은 내 친한 형이다.", "그 사람은 내 동기 형이다." 등으로 호칭하게 되는 것이 그 예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생긴 특성이 있는데 '형, 오빠, 언니, 누나'와 달리 '동생'이 2인칭으로 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위의 예시처럼 '친한 형'은 많이 쓰여도 '친한 동생'은 어감이 이상하여, 친한 동생을 언급할 때는 그냥 친구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선에서 빠른년생과 관련한 문제도 나타난다. 입학을 동년배보다 일찍 했을 뿐 나이는 변함없지만 상황에 따라 자신의 나이를 취사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이를 취사선택하는 이유는 상기한 이유와 같다. 또한 "친구의 친구는 친구"(친구는 동갑이니 친구의 친구는 동갑내기다)라는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 '족보 꼬임'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친구관계는 1:1이다.
현대에는 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1~3살 차이는 반말은 물론 호칭도 야, 너, 새끼 등으로 통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는 많이 친하거나, 나이 개념에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경우다.
아주 어렸을 때, 대략 초등/저학년 정도에 만났다면 서너살까지도 반말로 커버가 가능하지만, 대부분 호칭 자체는 언니/오빠/누나/형이며 친구라고는 잘 안 한다.
5. 인간관계에서 친구와 지인의 차이[편집]
이쪽은 인간관계 문서로.
6. 동물의 친구[편집]
무리 생활을 하는 지능이 높은 동물의 경우 대부분 교우관계가 성립된다고 한다.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의 경우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침팬지끼리 노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령 힘이 비슷한 최강자들끼리 친구를 맺어 권력을 번갈아서 오랫동안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다만 대화로 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보니 조금만 균형이 흔들려도 관계가 파탄나고 어느 한쪽이 축출당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돌고래는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최소 4~5마리씩 뭉쳐다닌다. 개와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다.
7. 관련 어록[편집]
친구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많은 친구를 갖게 되면 한 사람의 친구도 갖지 못한다.
돈 빌려 달라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친구를 잃는 일은 적지만, 반대로 돈을 빌려줌으로써 도리어 친구를 잃기 쉽다.
진실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친구는 근심과 슬픔을 서로 나눠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13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나의 친구다.
T.풀러(영국의 경구가)
세상에는 세 종류의 벗이 있다. 그대를 사랑하는 벗, 그대를 잊어버리는 벗, 그대를 미워하는 벗이 그것이다.
샹포르(프랑스의 모럴리스트)
빈곤이 문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가짜 우정은 창으로 통해 나가버린다.
뮐러(독일의 시인)
10명의 칭찬하는 적보다 한 명의 사랑하는 친구를 갖는 것이 낫다.
G.맥도널드(영국의 저술가)
가짜 친구보다도 공공연한 적이 낫다.
서양의 속담
친구와 식사는 함께 하라. 하지만, 거래는 하지 말라.
아르메니아의 속담
아무에게나 웃음을 던지는 친구는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
네덜란드의 속담
우정 - 함께 잘 수 없는 두 인간의 결혼이다.
쥘 르나르(프랑스의 작가)
남녀 사이의 우정에 있어 그것이 본원적인 감정이란 불가능하다.
번영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
시루스(로마의 시인)
먹고 마시는 일에는 많은 친구가 있다. 그러나 위급한 일에 있어서는 친구가 몹시 드물다.
테오그리스(그리스의 시인)
사귀고 있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친구에게 충실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충실하다.
결혼한 친구는 반쪽 친구.
스페인의 속담
새로운 친구와 오랜 적은 믿지 말라.
스코틀랜드의 속담
모든 사람의 친구는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
그리스의 속담
나이가 자기의 배가 되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열살이 위이면 형님처럼 섬기고, 다섯 살이 위면 친구로 사귀어도 된다.
<예기(禮記)>
사랑에는 신뢰받을 필요가 있고, 우정에는 이해받을 필요가 있다.
A.르나르(프랑스의 모럴리스트)
필요하지 않을 때 우정을 맺어라.
미국의 속담
유익한 벗이 셋 잇고 해로운 벗이 셋 있느니라. 곧은 사람과 신용 있는 사람과 견문이 많은 사람을 벗으로 사귀면 유익하며, 편벽한 사람과 아첨하는 사람과 말이 간사한 사람을 사귀면 해로우니라.
증오로부터 우정까지의 거리는 반감으로부터 우정까지의 거리만큼 멀지 않다.
라 브뤼에르(프랑스의 모럴리스트)
친구라는 이름은 흔하지만 우정 있는 신뢰는 드물다.
파에드무스(로마의 우화 작가)
한 친구를 만족시키지 못한 자는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우정은 영혼의 결합이다.
변함없는 친구는 드물고 찾기 어렵다.
친구와 재회하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먼 길도 멀지 않다.
러시아의 속담
우정 관계는 동등 관계이다.
우리가 친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에 대한 찬성이 아니라 이해이다.
우정은 날개 없는 큐핏이다.
주머니 속의 돈보다 친구가 더 고맙다.
자메이카의 속담
오래 사귄 친구보다 좋은 거울은 없다.
이탈리아의 속담
좋은 친구를 지닌 자는 거울이 필요치 않다.
<잠언>
그대를 이해하는 벗은 그대를 창조한다.
로망 롤랑(프랑스의 작가)
8. 기타[편집]
아르바이트를 같이 할 알친(아르바이트 친구)란 말도 생겼다.
인칭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그 친구가 말이지...", "정신차려 이 친구야", "이거 참 곤란한 친구일세" 등으로.
다만 "친구야! 반갑다!" 이런 식으로 외화영화를 변역한 것처럼 2인칭 대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마치 교과서 예문에나 나올법하기에 구어체로는 매우 어색하다. 그래선지 주로 중장년층 남성들이 많이 쓰는 편이다. "제 친구가 그랬어요" 이런 식으로 3인칭으로 이야기할 때는 자연스럽다.
한국인의 경우 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로 인해 서구에 비해 신체적으로 접촉이 많은 편이다. 특히 여성들끼리 손을 잡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는 행위를 보고 경악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창작물에서 모두 친구가 되면 싸움 없는 세상이 될 거라는 식의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의외로 친구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적용시킨 클리셰가 많다.
인터넷 상에서는 실제 친구의 준말인 '실친'이 쓰이기도 한다. 보통 온라인 관계를 넘어서 오프라인 상에서도 친분이 있거나 아예 온라인 이전부터 친구 관계인 경우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