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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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4년에 창단된 전라남도를 연고로 하는 K리그2 소속의 프로 축구단이다. 체계적인 유소년 체계를 구축한 구단 중 하나로 같은 모기업을 가진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선진 축구를 일찌감치 도입한 구단이다.
2. 시즌별 일람[편집]
3.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남 드래곤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 AFC 챔피언스 리그[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남 드래곤즈/AFC 챔피언스 리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06, 2007 FA컵 사상 최초의 연패에 대한 보상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2년 연속 출전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J리그 구단에게 패하고 동남아 구단과 원정에서 비기고 홈에서 1골 차 신승하는 등 성적이 좋지 않았다. 애당초 전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선수층이 두터운 것도 아니었던 데다가, 2007 FA컵 우승 직후 허정무 감독을 갑자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으로 내정하면서 감독을 박항서로 바꾸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2008 AFC 챔피언스 리그를 준비했으니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후 1부 리그 중위권을 맴돌면서 호시탐탐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번번히 실패했고, 설상가상으로 2018년 2부 리그로 강등 당하면서 더더욱 챔피언스 리그 진출의 길은 멀어져 갔다. 하지만 2021 FA컵에서 14년만의 우승을 거두면서, K리그 사상 최초로 2부 리그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는 클럽이 되었다.[5] 그리고 전남의 사상 3번째 ACL 도전이기도 하다.
4. 코칭 스태프 명단[편집]
5. 선수단[편집]
6. 역대 인물[편집]
6.1. 역대 감독[편집]
6.2. 역대 주장[편집]
6.3. 주요 선수, 인물[편집]
- '청암' 박태준 - 전남 드래곤즈와 한국 축구의 전설적 공헌자. 1992년 광양축구전용구장 건립과 1994년 전남 드래곤즈 창단, 프로축구 첫 클럽하우스 건립, 유소년 시스템 구축 등 질적, 양적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K리그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 공헌자 부문 선정
- '타이거 마스크' 김태영 (1995~2005) - 구단 역사상 최다 출전 경기인 250경기. 1998, 2002 월드컵 출전으로 구단 최초의 월드컵 2회 참가. 2002-2003 리그 베스트 11 수비수 부문 2연패. 구단 7번의 상징. 2013년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11에도 전남 구단 소속으로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 DF
- '캐논 슈터' 노상래 (1995~2002) -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인 71득점, 최다 도움인 39도움, 최다 출장 3위에 해당하는 219경기 출전. 구단 최초의 리그 신인상, 득점왕, 베스트 11.[15] 구단 8번의 상징. - FW
- '브라질 철벽' 마시엘 (1997~2003) - 2002 월드컵을 앞두고 귀화를 추진할 정도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인 수비수. 1997-2000 4회 연속으로 리그 베스트 11. 이 기록은 신태용에 이어 신의손과 함께 이 부문 역대 공동 2위에 해당. - DF
- '게임 메이커' 김도근 (1995~2000, 2001~2005) - 전남 역대 출전 4위에 해당하는 206경기. 전남에서 창단 멤버로 합류해 11시즌을 보냈다. 울산 현대 호랑이의 유상철과 비교될 정도로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 모두 가능한 선수였다. 1998 월드컵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 MF
- '진공 청소기' 김남일 (2000~2005) - 이회택 시절, 2000 시즌에 전남에서 데뷔했다. 전남에서 활약을 통해 월드컵 대표와 에레디비시 진출의 발판을 삼았다. 특히, 2002 월드컵 이후 광양에 구름 관중을 다시금 모이게 한 장본인. 2003 리그 베스트 11 수상. 2004시즌까지 103경기 출전하였고, 이후 트레이드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유니폼을 입게 된다. - MF
- 김봉길 (1995~1998) - 전남에서 초대 주장으로 선임돼 노상래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다. 특히, 팀 창단 3년 만인 1997년에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컵을 주장으로서 가장 먼저 들어올리는 등,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 FW
- 김인완 (1995~1999) - 전남의 창단 멤버로서 프로 선수가 됐다. 특히, 1997 시즌 21경기 무패 행진에 앞장서며 팀의 전구단 상대 승리와 FA컵, 리그 준우승을 이끌며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7시즌과 1998시즌엔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전남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전남에서만 프로 통산 125경기에 출장해 20골 14도움을 기록하는 활약을 했다. - FW
- 김현수 (1995~2002) - 1995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하였다. 전남에서 8시즌 동안 87경기에 출장하며 1997년 전남의 FA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 DF
- '총알' 김정혁 (1996~2002) - 6대 주장을 역임하며 1997년 팀의 FA컵 우승을 이끌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 FW
- 강철 (2001~2004) - 2001년부터 김태영, 마시엘과 함께 철벽 수비 라인 구축. 7대 주장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 DF
- 김영광 (2002~2006) - 2002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데뷔한 이후 리그에서 베테랑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 GK
- 이따마르 (2003~2004) - 2003년 K리그 34경기 23골 5도움을 기록하며 브라질 특급의 계보를 이어갔다. - FW
- 김진규 (2003~2004, 2007) - 2004년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표팀 주장으로 선발 - DF
- 지동원 (2006~2009) - 전남 소속 유럽 진출 2호. 전남의 최고 이적료 방출 선수로 EPL, 분데스리가 등 유럽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 FW
- 김치우 (2007~2008) - 전남의 최고 이적료 영입 선수로 전남의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2007년 팀의 FA컵 2연패에 큰 역할을 했고, 대회 MVP를 차지했다. - DF
- 곽태휘 (2007~2009) - '골 넣는 수비수',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불리며 전남에서의 활약을 터닝포인트로 삼으며 대표팀에 꾸준히 승선했다. - DF
- 슈바 (2008~2010) - 전남 소속으로 5경기 연속 골로 전남 클럽 레코드를 기록하였다. - FW
- 이종호 (2011~2015, 2020~2021) - '광양루니'. 전남 유스 시스템을 성골로 거친 선수. 구단 유스 출신으로서 주장 완장을 단 건 김영욱 이후로 3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이다. - FW
- 김영욱 (2010~2019) - 전남 역대 최다 2위 출전 238경기. 전남의 탄탄한 유스 시스템이 육성해 낸 여러 유망주 중 한 명. 팀을 고교 클럽 챌린지 리그 준우승,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왕중왕전 우승으로 이끈 주역으로 대회 최우수 선수에도 선정. 프랜차이즈 스타의 행보를 걸었던 선수 - MF
- 현영민 (2014~2017) - 팀의 수비를 잘 이끌었고, 리그 도움 순위 6위에 오르는 등, 팀의 하위 스플릿 1위에 기여했다. 2014 시즌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레프트백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 DF
- 오르샤 (2015(임대), 2016) - 전남 드래곤즈 최대 아웃풋. 전남에서의 활약 후 울산을 거쳐 자국팀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 후,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 FW
- 자일 (2016~2017) - 무서운 득점력으로 전남을 창단 최초로 상위 스플릿에 올린 일등 공신 - FW
- 베드란 유고비치 (2016(임대), 2017~2019) - 수비 능력이 준수하고, 활발한 활동량과 전방 압박, 볼배급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외국인 선수 - MF
- 최효진 (2015~2021) - '마징가'. 18대, 20대 주장을 역임하고 은퇴 후 공로상을 받으며 플레잉 코치로 구단에 헌신하였다. - DF
7. 특징[편집]
7.1. 색깔[편집]
김태영, 김도근, 마시엘, 김남일 등 예로부터 명품 수비수를 배출해 낸 구단인 만큼 공격보다는 수비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으며, 여기에 한 때 무재배의 달인 허정무가 전남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9연속 무승부라는 전무후무한 리그 기록을 창출해내기도 했다.[16]
1990년대 개최됐으나 AFC 챔피언스 리그에 통합되며 폐지된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1997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1998-99 아시안 컵 위너스컵에 참가하였다. 4강 일본 홈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4:1로 박살내며 결승까지 진출으나, 알 이티하드에게 연장 접전 끝에 아쉽게 2-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또한 컵 대회의 전통적인 강자이다. K리그 최고 성적은 2위로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FA컵 4회 우승과 아시안 컵 위너스컵 준우승 등 역사적으로 토너먼트 대회에서 전력 이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심지어 2021년에는 K리그2 소속팀 최초로 FA컵 우승을 하였다. 통산 FA컵 우승 횟수가 2등일 정도로 FA컵의 강자이다.
7.2. 선수 육성[편집]
S급의 스타 플레이어는 적긴 해도 나름 알토란 같은 선수들도 많고 선수도 잘 키우지만, 선수 장사를 못 하기로 악명높은 구단이라 별다른 유산도 남기지 못한 채 뿔뿔히 흩어지거나 은퇴하는 게 연례행사인 구단이다.
포항, 울산과 함께 가장 먼저 체계적인 유스 시스템을 정비해 지방 구단 중에서는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팀으로 꽤 많은 유망주를 키워냈다. 하지만 제대로 크지 못하고 한 해만에 방출시킨 선수들도 은근히 많고, 어느 정도 자리잡은 유망한 선수들은 몇 해 뛰다 수도권 부자 구단으로[17] 가버리기 일쑤라 성적은 매년 6강 이상의 성적을 내진 못하고 있다.
유스 숫자로도 한계가 있는데, 키우기는 엄청 잘 키우지만 연고지인 광양시 자체가 그렇게 큰 동네가 아니다. 2023년 기준으로 광양시 인구는 15만여 명으로 옆동네인 순천시의 인구(27.8만)보다 크게 적으며, K리그 연고가 있는 도시 중 가장 인구가 적다.[18] 이렇다 보니 다른 구단들에 비해서 유스풀이 작을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냐면 유스 선수 누구는 '옆집 김 부장님댁 아들'이고, 또 누구는 '뒷동네 박 과장님댁 아들' 이런 식일 정도다. 그나마 순천과 생활 권역이 묶여 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열악했을 것이다.[19]
고교 이후 선수 육성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영남대학교를 통해 23세 이하의 즉시 전력감이 아닌 선수들을 진학시켜 육성하는 포항 스틸러스와 달리, 전남은 여러 대학에 선수들을 뿌린 후 나중을 기약한다. 2군을 편성해 R리그에도 참가하지 않기에 주전이 아닌 자원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2017년, 한찬희, 이슬찬, 허용준, 이유현이 이 해에 길러낸 젊은 선수들이다. 얇은 선수층으로 인해 23세 이하 출전 규정을 지키면서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치까지 주고 있다.
7.3. FA컵의 강호[편집]
1995년 K리그에 참가했지만 1부 리그는 물론이고 2부 리그에서도 우승한 적이 없다. 구단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7년에 K리그 준우승을 한번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이고 이후 중위권을 전전했다. 2부 리그로 강등 당한 후에는 2021년에 기록한 4위가 2부 리그 최고 성적이다. 그리고 리그는 아니지만 2011년까지 개최한 리그컵에서도 3번의 준우승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한 대회에서는 우승 복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하는 FA컵에서만큼은 강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남은 FA컵에서 4회 우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FA컵 통산 최다 우승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통산 우승 횟수 1위 포항, 전북, 수원과 우승 횟수 차이가 1회밖에 나지 않는다. 이는 성남, 서울, 울산 등 다른 K리그의 전통 강호들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다.
전남은 1997년에 FA컵 첫 우승을 차지했고 2006년과 2007년에 2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2007 FA컵에서는 K리그 챔피언 포항을 꺾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2부 리그로 강등 당하던 2018년에도 FA컵에서는 4강까지 오르는 저력을 과시했으며 2021년에는 2부 리그 소속인데도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보여 줬다. 비록 K리그에서는 뚜렷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FA컵에서만큼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통 강호다.
8. 상징[편집]
8.1. 엠블럼[편집]
8.2. 색상 일람[편집]
8.3. 마스코트[편집]
- 2023년 시즌에 기존의 마스코트였던 철룡이를 개편하고 주주라는 새 마스코트도 추가했다.
9. 유니폼[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남 드래곤즈/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시설[편집]
10.1. 홈구장[편집]
10.2. 클럽 하우스[편집]
자세한 내용은 백운생활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응원단[편집]
2020년 한 시즌 동안 치어리더를 투입했다.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안양 KGC인삼공사 등을 응원하는 트윙클 소속 치어리더가 활약했다. 이 중 인기 치어리더로 전직인 박한솔은 야구는 다를지 몰라도 전남 드래곤즈의 치어리더로 다시 하나가 되었다. 상주 상무와 같이 응원하게 된 팀장인 김지민 치어리더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트윙클 소속 치어팀은 2021년부터 FC 안양을 담당하면서 현재 치어리더는 운영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이적하게 된 간판 치어리더는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김해리, 박소영 치어리더다. 이적 이후 FC 안양의 경기전 프리뷰와 하프타임 랜선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외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된 변하율 치어리더도 응원을 하기도 했다.
12. 타 구단과의 관계[편집]
언론에서는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를 제철가 더비라고 밀고 있지만 정작 양 구단의 팬들은 서로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철가 형제라고 서로를 응원하고 선전을 기원해준다. 전남 팬들이 생각하는 최대 라이벌은 오히려 같은 지역에 위치한 전북 현대 모터스다. (포항은 울산 현대)[20]
[21]
2007 FA컵 결승 2차전에서 포항과 맞붙었을 때 포항과 전남의 모기업인 포스코는 대놓고 2차전 장소인 포항 스틸야드에 "우리는 모두 같은 포스코입니다."라는 대형 걸개를 내걸기도 했다. 걸개 중앙 포스코 로고는 그대로 두고 반쪽은 포항의 검빨 유니폼, 반쪽은 전남의 노란 유니폼으로 만들어졌다. 경기 결과는 전남의 우승이었지만 경기 전부터 이미 누가 이기든 포스코 본사 회관에서는 우승 축하연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결국 당일의 진정한 최종 승자는 모기업 포스코. 애초부터 K리그는 야구와 달리 영호남 대결로 불태우는 구도 자체를 찾기 힘들고 그나마 있는 더비 역시 해외 다른 프로 스포츠처럼 인근 지역 간에 붙는 경우가 더 많다. 전남과 전북, 포항과 울산, 수원과 서울 등.
전북과 라이벌 의식이 있어 호남 더비라 불리우기도 하는데 이 악연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2002년에는 전남 공격수 신병호가 전북전에서 손으로 결승골을 넣는 이른바 '손병호 사건'이 터져서 타 구단 팬들에게까지 논란이 됐고 2003년에 브라질 공격수 마그노를 전남이 영입하기로 얘기가 다 된 상황에서, 계약서를 쓰러 광양을 방문한 마그노 왈 '이런 시골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잠적하고서는 며칠 후 전북과 계약해 버렸다. 참고로 전주가 광양보다 꽤 크다.[22]
같은 전남권의 광주 FC와도 노란색 상징색으로 인해 옐로 더비로 엮는 기사들도 있지만 그렇게 주목도가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남 드래곤즈와 광주 FC의 라이벌리는 남기일 감독이 고향 팬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린 일화 때문에 활활 불타는 상황이 되었다가 리그 위치가 뒤집히면서 만나기 힘들어졌다.
최근 언론에서 경남 FC와의 경기를 섬진강 더비로 밀고 있고 경남의 SNS에서도 전남과의 경기를 섬진강 더비라고 칭하고 있다.
13.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남 드래곤즈/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여담[편집]
- 대표 서포터즈는 '위너 드래곤즈'였고 현재는 '미르'다. 제1 경기장의 별칭은 드래곤 던전이다. 용가리는 친근한 별명인 동시에 까는 용도로도 사용한다.
용가리의 아가리에 여의주를...
- 특이점은 현재 홈구장인 광양축구전용구장은 포항 스틸러스의 홈인 포항스틸야드에 이어 두 번째로 국내에 건설된 축구전용구장이라는 것인데(1992년 준공) 당시에는 광양시에 프로 축구단이 없었기 때문에 모기업인 포스코가 광양제철소 직원 및 광양 시민들을 위해 포항의 몇몇 경기를 광양에서 열기도 했다. 이후 1995년 신생 구단 전남 드래곤즈가 정식 홈구장으로 정했다. 이외에는 옆 동네의 순천팔마종합운동장을 제2 홈구장으로 이용 중이다.
- 포항스틸야드처럼 경기 필드와 관중석 거리가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라 홈 구단 전남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은 언제나 원정 구단에게 부담스럽다. 보통 포스코 직원들이 심심해서 오는거지 굳이 전남을 응원 오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K리그의 인기가 절정에 달할 때에는 계단까지 꽉 찬 관중들과 압도적인 응원으로 유명했다. 거기다가 이 시절 전남 드래곤즈는 2021 시즌까지 K리그2로 강등 당한 모습과 달리 리그 성적도 꽤 쏠쏠했던 터라 축구 자체를 보는 맛으로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느 정도냐면 경기장에 안 가도 관중 소리만으로 스코어 예측이 가능하단 말도 있었을 정도. 경기 날이면 전남과 경남 서부권에서 오는 차들로[23] 광양 포스코 주택 단지의 모든 주차장과 길이 대로는 2차선까지 주차로 가득차고 경기 끝나고 빠져나가는데 2시간씩 걸리곤 해서 자녀를 데려온 부모가 아이를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을 정도였다.
- 비엔나라는 카페에서 선수들이 자주 모인다. 이 카페가 선수 부인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 죽치고 앉아 있다보면 사인을 10장은 받을 수 있다. 시즌 시작 전에 가보면 이적 소식을 들을 수도 있다.
- 우스갯소리로 리그에서 꼴지하면 박항서 감독이 이천수의 봉인을 해제할 거라고 하지만... 꼴지해도 봉인해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감독이 정해성으로 바뀐 이후에는 조심스레 이천수의 복귀가 점쳐지고 있었고 이후 2013 시즌 개막 직전 인천 유나이티드로부터 이천수 때문에 수원에 준 돈 소송하는데 쓴 돈 등 5억여 원을 이적료로 받고 이적시켰다.[25]
- K리그 연고지 인구 수 대비 관중 수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했다. 인구 14만 도시에서 평균 관중이 1만~1만 2천이었다.[26] 그러나 지동원이 떠난 후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평균 관중이 확 줄었다.
실제로 포항 스틸러스와 전남 드래곤즈 두 개 구단을 운영 중인 포스코는 주주 총회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 외국인 대주주들로부터 투자 철회를 요구 받고 있다. 축구단 창단을 주도했고 그 뒤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여 온 박태준 명예 회장 생전에는 그런 의견들을 최대한 무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 사후 포스코 내에서도 축구단에 대한 투자는 회의적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두 구단에 대한 포스코의 재정 지원은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언젠가는 두 구단이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과거 통일교 문선명 총재 사후 성남이 해체될 수 있다는 얘기처럼 축구계에서 도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기사
- 포스코의 구단 지원도 상당히 축소되어서 서호정 기자의 말에 따르면 축구계에 포항과 전남의 합병설이 돌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포항을 없애진 않을 테니 사실상 전남을 없애겠다는 이야기인데... 카더라이니 100%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문선명 사후 지원금을 줄여나가다 구단을 놔 버린 성남 일화 천마의 사례도 있기 때문에 저 말이 거짓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전남 역시 창단 20년이 넘었을 정도로 역사를 쌓은 데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노동자들이 팬층의 대다수인 것을 생각하면 지원은 줄일지언정 해체까지는 쉽지 않다. 실제로 2014년엔 그동안 안 썼던 돈으로 스쿼드를 꽤 늘리기도 했다. 포항이랑 비교하면 선수들의 평균 연봉 스케일이 아예 다르니까 이적료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기도 하고 또한 진정으로 포스코가 전남 드래곤즈에 손을 때려고 한다면 시에서 인수하는 방안도 있다. 현재의 성남 FC처럼 말이다. 다만 성남시와 광양시의 인구 규모나 그에 따른 세수의 차이를 생각하면 현실성은 떨어진다. 광양-순천이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전라남도가 인수하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겠지만 기초자체단체끼리 연합해 구단을 운영하는 건 유례가 없던 일이고 전남도는 홈구장이 도내에서 가장 큰 도시인 목포와의 거리가 먼 편인 광양에 있는 구단을 인수할 만한 당위가 떨어진다. 일단 2018년 강등으로 예산 자체는 줄었지만 순천만국가정원 등 포스코 계열이 아닌 타 스폰서가 종료된 것이 컸다. 행보 자체는 외국인 감독 영입과 유니폼, 홈구장 벽면, 홈페이지 등의 디자인 대폭 개선, 피파 온라인 프로 게임단 창단 등 조청명 대표이사 체제 하에서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 해체 이야기가 쏙 들어가는 모양새다. 최효진, 김영욱, 한찬희와 같은 핵심 자원도 다 잔류시켰고 K리그2에서 활약이 좋았던 정재희와 정희웅, 박준혁은 물론 호주 청소년 대표를 맡았던 안셀까지 영입하는 등 이곳의 비시즌 준비를 보면 아쉬운 현 성적과는 별개로 해체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전경준 감독 체제 이후 포스코에서도 재승격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병크가 나오지 않는 한 전남 드래곤즈 해체 합병설은 한동안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서포터즈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구단이다. 광양 자체가 인구가 적고 놀거리가 거의 없는 도시인 데다가 관중 대부분이 포스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라 서포터즈고 뭐고 생길 환경 자체가 안 된다. 그래서 원정 가는 서포터의 수가 극히 미미하다.
- 2011년부터 K리그에 참여하는 광주 FC의 창단으로 '전남'을 대표하기에 애매하게 됐다. 광주에 생기기 전까지는 그래도 광주 전남의 유일한 프로 축구단이고 본인 혹은 부모가 전남 출신인 광주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광주 상무 불사조가 생기고부터는 그런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전남 서부권은 목포를 기준으로 말하면 광주까지 늦어도 1시간이지만 전남 동부권인 광양에서 광주는 두세 시간이다. 목포시를 비롯한 전남 서부권은 전남 드래곤즈가 아닌 야구 KIA 타이거즈나 축구 광주 FC를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목포축구센터나 영광스포티움 등의 경기장은 행정 구역상으로도 전남이지만 광주 FC 홈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원칙적으론 전남 드래곤즈를 불러 경기를 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전남의 전통 구단이고 한때는 강호였던 곳인데...
- 전남 동부권에서도 위상이 떨어진 것이 느껴지는 게, 축구장이 가까운 순천시나 여수시 주민들도 광양으로 축구 직관을 가는 일이 예전보다 뜸해졌다. 순천시 조례사거리에서 전남 드래곤즈 홈경기 정보를 걸어주는걸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인기가 떨어졌다. 아무튼 이런 현상은 전남 드래곤즈가 연고를 두는 광양이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그런 듯하다. 실제로 광양시는 전라남도의 최동단이면서 경상남도와의 접경 지역이다. 전남 드래곤즈의 홈구장은 광양이지만 가끔 동부권인 순천에서 경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남경기 중 가장 흥행 카드로 꼽히는 호남 더비 경기를 순천 경기로 배정하는 등 구단에선 순천 시민들 역시 어느 정도 신경쓰는 듯하다. 참고로 광양과 순천은 이웃이긴 하지만 묘하게 사이가 안 좋기도 하다. 그 내용은 각 지역 문서 참고.
- 2013년까지 전남 드래곤즈의 로마자 표기를 보면 전북 현대 모터스와 비교했을 때 '전' 부분이 달랐다. 이쪽은 Chunnam Dragons, 전북 현대 모터스는 Jeonbuk Hyundai Motors. 구단 창단 당시에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이 표준이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해서 로마자 표기를 정한 게(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정확히 딱 맞춰 표기하려면 Chŏnnam Dragons로 되어야 하지만. 이는 당시 존재했던 부산이나 부천, 전북도 마찬가지였다. 이 구단들은 영문명을 로마자 표기법 개정에 따라 그 시기에 바로 교체한 것 뿐이다. 보통 기업이나 대학교 등을 보면 로마자 표기법 개정전에 지어진 영문명을 계속 사용했다. 왜나면 하나의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로마자 표기법 개정에 따라 영문명을 바꾸면 다른 브랜드로 인식해버린다.) 2013년까지도 구단명 변경 없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4년 구단 창단 20주년을 맞아 유니폼과 엠블럼을 변경하면서 영문 명칭을 전북과 같이 Jeonnam Dragons로 개정했으며 이에 맞게 약칭도 CFC(Chunnam Football Club)에서 JDFC(Jeonnam Dragons Football Club)으로 변경했다.
- 2020년대 들어서 잊혀졌지만 2004년에 대규모 스카우트 비리 파동과 유소년 구단 성추행 사건으로 엄청난 내홍을 겪었다. 기사
- 2부 리그 구단으로 FA컵에 우승한 대한민국 최초의 구단이자 2부 리그 구단으로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한 아시아 최초의 구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