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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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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선장(李善長)은 명나라의 관료, 재상으로 명나라의 개국공신이다.
서달, 유기와 함께 명나라의 3대 개국공신으로 꼽힌다.
2. 생애[편집]
주원장이 곽자흥의 휘하에서 활약하던 시절 처음 만났으며, 그의 식견을 높이 산 주원장의 첫 번째 참모로 임명된다. 이선장은 모략가라기보다는 행정가에 가까웠다. 초한지로 치자면 소하 포지션에 있는 인물.
1354년(지정 14) 주원장을 처음 만났고, 1355년(지정 15) 주원장 원수부(元帥府)의 도사(都事)가 되었다. 1356년(지정 16) 참의(參議), 1361년(지정 21)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1364년(지정 24) 우상국(右上國)이 되었다. 1367년(지정 27) 선국공(宣國公)으로 봉해졌다. 같은 해 우상국의 명칭이 좌상국(左相國)으로 바뀌자 그대로 좌상국을 맡았다.
1368년(홍무 1) 명나라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정1품 좌승상(左丞相)으로서 중서성(中書省)을 맡아 내정 조직 개편과 행정 업무를 담당하여 갓 세워진 명나라의 안정에 공로를 세웠다.[3] 1370년(홍무 3) 개국공신 논공행상에서 공신 가운데 으뜸이 되었고 한국공(韓國公)으로 진봉(進封)되었다. 1371년(홍무 4) 중서성에서 물러나 명예직인 태사로 남았다. 초대 좌승상에서 명예직이지만 황제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태사까지 지내면서 최고의 개국공신으로 예우받았다.
다만 주원장은 이선장을 계속 기용하면서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곽자흥의 유혹에 잠시 주원장을 버리고 곽자흥을 따랐는데 주원장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자 박쥐처럼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곽자흥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주원장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았다고도 한다. 농민 반란군으로 출발한 명나라 개국 인사들의 초기 기록이 부실해서 설로만 알려져 있다. 2006년작 드라마《주원장》에서는 전자를 채택하여, 박쥐 같은 면모가 있고 진작부터 지식인으로서 회서(회남) 일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근본이 없는 무부들을 깔보는 태도가 숨기려고 해도 아무래도 조금씩 드러나는 게 있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아직 손님 및 선생 포지션이지 완전한 신하 포지션을 취하기를 주저하는 이선장을 8화에서 주원장이 밀고 당기기를 통해 확실히 신하로 만들었다.
주원장이 이선장을 경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원장 본인의 고향 동료이자 개국공신들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던 회서[4] 파의 거두로써 상당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행정 관료로써 유능하고 공직에 있는 동안 특별히 흠잡을만한 실책이나 비리를 저지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이가 연로하여 정계에서 퇴직할 때까지 승상 자리를 지켰다. 이후 이선장이 전면에 나선 적은 없지만 정계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자신의 직계 제자나 다름없는 좌승상 호유용과 다른 관료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380년(홍무 13) 호유용의 옥으로 호유용 파벌이 대역죄 혐의로 투옥되어 처형 당할 때 이선장 역시 호유용 관련 인물로 대역죄인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지만 홍무제는 이선장이 연로한 인물이고 최고 개국공신이라는 이유로 연좌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1385년(홍무 18) 동생 이존의(李存義)가 호유용의 옥에 얽힌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1390년(홍무 23) 숙청되어 자살하였다. 서달과 달리 왕호는 추봉되지 않았고 시호도 내내 없었으나 남명 건국 후 홍광제가 양민(襄愍)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명망 높은 개국공신이고 상당히 연로한 인물이라는 이유에서 자결의 기회가 주어졌다. 일설에는 바로 처형했다고도 한다.
3. 대중매체[편집]
2006년 드라마《주원장》에 등장한다. 드라마 후반부인 45화에는 자살을 한 원역사와는 달리 남옥 등 28인 등과 함께 처형당한다. 처형장에 끌려가면서 "목숨 바쳐 싸웠는데, 이런 식으로 대하냐?"며 항의하는 남옥에게 "상위[5] 는 1,000년에 1번 나올까 말까한 영웅"이라며 욕하지 말고 당당히 죽으라는 일갈을 한다.[6] 이 드라마에서 이선장을 연기한 배우 첸창하이(진장해: 陳長海)는 필모그래피에 따르면 1999년작《봉양소자주원장》에서는 이선장의 동료이자 라이벌인 유기를 맡았다.
2015년 드라마《주원장과 유백온》에 등장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관리로 표현된다. 처자식을 버리고 총각 행세하며 새 장가를 들었다. 궁궐 건설에 쓸 기와가 부족하자 민가의 기와를 수탈하기도 했다. 어린 처녀 수백명을 주원장에게 바쳤다. 여러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해했고 청렴한 유백온과는 당연히 적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면사철권을 하사받고 권력을 남용해서 홍무제가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작중 공처가, 애처가, 개그캐 포지션도 겸하고 있어서 개그 에피도 따로 있다. 그리고 능력에 대해서도 다만 마냥 무능한 것으로만 묘사되는 것은 또 아닌게 유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부하들이나 다른 악당들과 달리 이선장은 대충 들은 것만으로도 "유백온이 관여 되었구나.", "술수구나."하고 간파하고는 파훼하는 법을 알리는 등 능력도 보인다. 여러 사람과도 교제가 많아 작중 명나라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라 유백온의 일행이 문제를 해결한 뒤 이선장이 관련 된 것을 보고 함께 처리하려 할 때, 유백온은 "이선장이 유능하고 필요한 인재니 죽이게 둘 수 없다."며 활로를 남겨두거나 한다.
유백온에 대한 취급도 종종 마찰이 있긴 하지만 대개 이선장의 부패나 뇌물에 엮인 사건에 유백온이 발견해서 그거 해결할 때 줄어드는 자기 수입이거나 자기한테 문제가 될지 몰라 그거 은폐하고자 유백온을 처리하거나 사건을 못 풀게 하려는 거지. 개인적으로는 딱히 "반드시 죽이겠다."까지는 아닌지, 해당 사건이 자기 목숨이나 자리가 위태롭지 않게 끝나면 그러니 저러니 놔둔다. 쉽게 말해 인싸 개그캐. 다만 작중 중 ~ 후반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유백온도 대놓고 이선장에게 화를 내고 이선장까지 처벌하라고 주원장에게 대놓고 말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이때는 주원장이 이선장을 파직시키고 처벌하라는 요청을 무시했다. 그 후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거나 정답게 나누는 장면은 감소했다.
2022년 중국 드라마《산하월명》에 등장한다. 간신이며 개국공신 파벌의 수장이다. 개국공신 일파의 비리를 조사하는 홍무제를 면전에서 폭군이라 욕했다가 자진당했고 부마의 가족 정도만 살아남고 모두 처형당했다.
게임 《징기스칸 4》시나리오 4에서 등장하며 정치 64, 전투 35, 지모 57, 특기 농업, 건설, 병과 적성 보병 C, 궁병 D, 기병 D, 수군 E로 내정형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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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원장의 고향 펑양현과는 같은 추저우시에 속한 이웃동네이다.[2] 율리우스력 7월 6일.[3] 명실록에서는 1368년에 좌승상이 되었다고 하고 명사 이선장전에서는 1370년에 좌승상이 되었다고 한다.[4] 간단하게 얘기하면 삼국지 지명으로 따지면 회남이며, 현대 지명으로 따지면 안후이성의 회하 이남 ~ 장강 이북이다.[5] '상위'는 약간 비공식적인 칭호로서 삼국지 등에서 나오는 '주군'에 대응된다고 보면 된다.[6] "욕을 하면 안 되냐?"는 남옥의 질문에 황제는 하늘의 뜻을 얻어 황제가 되었으며 만약 자신이 황제였어도 이선장과 남옥을 죽였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처형장으로 끌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