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리오넬 메시
덤프버전 :
분류
해당 인물의 최근 이적과 활약상에 대한 내용은 리오넬 메시/2023 시즌 문서
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 국적의 인터 마이애미 CF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공격수. 현재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
축구 역사상 최다 공격 포인트[7] , 최다 도움[8] 및 최다 우승[9] 기록자이자,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유러피언 골든슈, FIFA 월드컵 골든볼 최다 수상자[10] 이며 FC 바르셀로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자이다.
또한, FIFA 월드컵[11] , 대륙컵[12] , 올림픽 축구[13] , UCL[14] , 유럽 최상위 2개 리그[15] 를 우승하고, 2회의 트레블을 달성했으며 월드컵 골든볼[16] , 대륙컵 MVP[17] , 리그 MVP[18] ,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UEFA 올해의 선수를 모두 수상한 선수다.
2. 유년기[편집]
1987년 6월 24일,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19] 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이탈리아계 후손이 가장 많은 아르헨티나[20] 에서 리오넬 메시 역시 혈통적으로 주로 이탈리아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이탈리아인이었던 고조할아버지 안젤로 메시(1866년생)가 189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면서 집안이 아르헨티나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 호르헤 오라시오 메시는 철강 노동자였다. 어머니 셀리아 마리아 쿠치티니도 이탈리아계 후손이며 파트타임 청소부로 일했다. 아버지가 지역의 클럽인 글란돌리의 코치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구와 가까워졌고 글란돌리의 클럽에 가입해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시기는 네 살 때라고 한다. 처음으로 축구 경기에 뛰어본 것은 할머니의 권유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지역 유소년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가 우연히 결원인원이 발생하게 되자 이 할머니가 감독에게 대타로 자신의 손자를 써보라고 강권했고 그렇게 투입된 경기에서 메시가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21]
2000년 7월,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FC 바르셀로나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였다. 앞서 아르헨티나의 명문 구단 CA 리버 플레이트에서도 그를 초청해 입단 테스트를 치른 바 있었다. 테스트를 진행한 리버 플레이트의 코치는 메시를 '반드시 영입해야 할 선수'로 구단에 보고했고, 입단 테스트를 함께 지켜본 기자는 그를 '새로운 마라도나'로 칭할 정도로 재능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를 영입하기 위해 뉴웰스 올드 보이스를 설득해야 한다는 점, 숙식 외에 치료 비용이 고정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 때문에 리버 플레이트에서는 끝내 확답을 주지 않았다. 결국 메시와 아버지는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 제의에 응해 바르셀로나로 건너갔다. 바르셀로나 측과 리오넬 메시의 아버지 사이에서 몇 차례 협상이 오간 끝에 메시의 치료비를 모두 부담해 주겠다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덧붙었다.
당시 리오넬 메시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찾아온 카를레스 렉사흐(Carles Rexach) 바르셀로나 기술 이사[23] 는 메시의 플레이를 보자마자 매료되어 계약 의사를 타진했지만, 바르셀로나에서 13세의 외국 유소년 선수와 계약해 본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메시 측에 계약과 관련한 확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두 달이 흐르자 참다 못한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 라며 최후통첩을 보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렉사흐가 냅킨에다가 즉석으로 계약서를 만들었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 계약서이다.[24]
바르셀로나와 계약한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팀인 '라 마시아'에 입단했으며, 가족들도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한다.FC 바르셀로나, 2000년 12월 14일
구단 내 일부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리오넬 메시를 라 마시아로 데려오기로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 본인이 지겠다.[25]
- 바르셀로나 기술 이사 렉사흐
3. 선수 경력[편집]
3.1. 클럽 경력[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3.2. 국가대표 경력[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4. 플레이 스타일[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5. 기록[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6. 평가[편집]
메시는 06-07 시즌, 만 19세의 나이에 2007 발롱도르 3위, 2007 FIFA 올해의 선수상 2위에 들었다. 그로부터 2년 뒤 09-10 시즌에는 만 22세의 나이로 2009 발롱도르와 2009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히며 세계 최고로 올라섰다. 메시는 이때부터 22-23 시즌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상에서 군림, 총 8번의 발롱도르[37] 와 7번의 FIFA 올해의 선수상[38] , 2번의 라우레우스 상[39] 을 들어올리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지금까지 롱런하고 있다.[40][41]
이에 더해 역대 최다 우승[42][43] , 역대 최다 개인수상, 메이저 국가대표 대회 최다 MVP[44] , 트레블 2회[45] , 유럽 5대 리그 최다 MVP[46][47] , 유럽리그 클럽 통산 최다골/최다도움[48] , 역대 최다 MOM 선정[49] , UEFA 챔피언스 리그 4회 우승[50] , UEFA 챔피언스 리그 4년 연속 득점왕,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득점왕 6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MOM[51] , 역대 최다 공격 포인트[52] , 21세기 단일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53] , 단일 시즌 최다 골[54] , 한 해 역대 최다 골[55] , 라리가 통산 최다골/최다도움[56] , 단일 클럽 최다골[57] , 월드컵 통산 최다 MVP[58] , 월드컵 통산 최다 MOM[59] , 월드컵 토너먼트 4경기 연속 MOM[60] , 월드컵 통산 최다 공격 포인트[61] , 코파 아메리카 통산 최다 MVP[62] , 코파 아메리카 통산 최다 MOM[63] , 코파 아메리카 통산 최다 공격 포인트[64] 등의 기록에 이어 드리블 성공률, 찬스 메이킹 횟수, 평점[65] 및 기타 세부 지표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또한 그의 위상을 증명한다.[66]
메시는 데뷔 직후부터 2008-09 시즌까지 파괴적인 드리블과 준수한 득점력을 지닌 윙어였으며, 2008-09 시즌 펩 과르디올라의 지도 하에 득점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2011-12 시즌과 2012-13 시즌에 정점을 찍었다. 사비 에르난데스가 주전에서 물러난 2014-15 시즌부터는 팀의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경기를 조율하고 찬스를 만드는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량이 만개하였다. 실제로 메시는 축구 역사상 최다 어시스트(도움)[67]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IFFHS가 수여하는 올해의 플레이메이커상을 5회나 수상하였는데 이는 사비의 4회 수상을 뛰어넘은 역대 최다 기록이다.[68] 또 2010년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상까지 받으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프리킥과 같은 무기도 역시 발전시켜 완성형 공격수로 거듭날 수 있었는데, 메시는 본인의 커리어에서 다소 늦은 시기인 2014-15 시즌부터 프리킥 전담키커가 되었음에도 역대 프리킥 최다 득점자 부문에서 65골로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공동 5위를 기록하고 있다.[69]
2008-09 시즌,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뒤를 이어 부임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 시즌의 부진과 해이해진 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팀 전체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기존 팀의 주축이었던 호나우지뉴와 데쿠를 내보내고 이미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하던 메시와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미드필더 라인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했다. 그리고 이것은 좋은 결과로 이어져, 이 시즌 바르셀로나는 라리가, 코파 델 레이,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트레블을 기록했고 더 나아가 2009년에 축구 역사상 최초의 6관왕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물론 메시 개인으로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는데, 이 시즌 챔피언스 리그 12경기 9골로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라리가에선 31경기 23골 11도움을 기록하였다.
커리어 전체에서 최고의 시즌으로 평가받으며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2010-11 시즌에는 역사상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거론되는 2010-11 시즌 FC 바르셀로나를 이끌며 축구 역사상 한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압도적인 시즌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2010년 초반 바르셀로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완성시킨 티키타카 전술로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미드필더진 차비-이니에스타-부스케츠의 패싱 능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이러한 전략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유율 축구에서도 강한 공격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메시의 개인 기량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수많은 팀이 2010년 초중반의 바르셀로나를 따라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리오넬 메시라는 독보적인 존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70]
2011-12 시즌에는 무려 73골 29어시스트라는 경악스러운 스탯을 기록하여 유럽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공격 포인트 100개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2012년 5월 6일, 라리가 37라운드 에스파뇰전에서 4골을 터뜨리며 라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시즌 50골을 기록하였다. 또한 게르트 뮐러가 세운 한해 최다 골 기록인 85골을 뛰어넘어 2012년 한 해 동안 무려 91골을 터트리며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인 FIFA 월드컵에 출전하여 2014년 조국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며 골든볼을 수상하였음에도 메시의 이름값에 걸맞는 국가대표 활약상이 좋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2021년 남미 최대의 국제 대회인 CONMEBOL 코파 아메리카에서 34세의 나이에 축구 역사상 최초로 국대 메이저 대회 득점왕, 도움왕, MVP를 싹쓸이 하고 조국을 우승시키면서 이런 평가는 없어졌다.
2014-15 시즌에는 루이스 수아레스, 네이마르와 MSN이라는 역사에 남을 트리오를 이루고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우승하여 2008-09 시즌에 이어 다시 한 번 트레블을 달성했고, 한 팀에서 두 번의 트레블을 달성한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과 도움왕, 라리가 도움왕을 차지하였고, 2014-15 시즌 57경기 58골 2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해 메시는 라리가 최우수 선수상, UEFA 올해의 선수상 등 각종 상들을 휩쓸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15년 본인의 5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2017-18 시즌과 2018-19 시즌에는 네이마르의 빈자리까지 메꾸며 2년 연속 라리가 우승, 라리가 득점왕, 라리가 MVP를 달성하며 라리가에서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메시가 팀에 끼치는 영향력이 가장 막대했던 시즌이자, 그만큼 팀이 메시에게 많이 의존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기간 메시와 팀은 계속되는 챔피언스 리그 부진으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71] 그러나 한 팀을 상징하는 선수이자 에이스인 위치에서 클럽의 챔피언스 리그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팀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메시라는 한명의 선수에게만 이러한 책임을 과도하게 돌리는 것은 부당한 평가이다.[72] 2016-17 시즌 이후 바르셀로나는 주전들의 노쇠화로 인한 팀 기동력 하락, 중원 장악력 하락, 수비 불안 등의 문제로 선수단과 구단의 이름값에 비해서 실제 전력은 크게 약해져 있었다.[73] 이러한 상황에서도 메시는 거의 매경기를 캐리하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유러피언 골든슈, 발롱도르 등 수많은 개인상을 휩쓸 만큼의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것.
2020-21 시즌에는 앙투안 그리즈만, 프렝키 더용 등 새로 이적해 온 선수들이 팀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이전보다 메시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많이 줄어든 상태지만, 바르셀로나의 경기력에서 메시가 차지하는 지분은 엄청났다. 그리고 메시가 바르셀로나의 재정적인 문제로 2020-21 시즌이 끝나고 fa로 이적하자마자 바르셀로나는 챔스 16강은 커녕 2년 연속 유로파리그에 머물고 말았다. 메시가 바르셀로나의 모든 문제점을 가려주고 있었다는 쿠만의 인터뷰가 사실임이 드러나는 부분.
현재 삼십대 중반이 된 나이에도 경기 내 영향력이 줄어들기는커녕 득점, 전반적인 플레이메이킹 등 많은 역할을 담당하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기량을 계속해서 유지한 덕분에 34세의 나이에 오랜 한이었던 국가대표 우승과 8번째 발롱도르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클럽, 국가대표, 개인 수상을 통틀어 이룰 수 있는 거의 전부의 업적을 달성한 메시에게 조국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만이 유일하게 남은 과제였으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대단한 활약[74] 을 보여주며 마침내 조국의 3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라는 평가마저 받게 되었다.[75]
스포츠 내외적으로도 잡음이 많지 않은 선수인데다가 워낙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인 탓에 나이를 먹고서는 팀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이런 단점도 조금씩 개선되며 2022년 월드컵에서는 동료선수들이 '메시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그에게 월드컵을 안겨주기 위해 뛰겠다'고 선언할만큼 강한 리더십을 선보이며[76]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메시는 전무후무할 8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되었다.
2023년 여름, 파리 생제르맹 생활을 마무리하고 축구 불모지인 미국의 메이저 리그 사커 소속 인터 마이애미 CF로 이적하며 커리어를 마무리짓는 듯 했으나 매 경기 경악스러운 활약으로 다 죽어가던 리그 꼴찌팀을 살려놓는 것을 넘어 북중미 클럽대항전인 리그스 컵에서 우승시키며 북중미 최강의 팀 중 하나로 재건하고 있다. 훈련 첫날 가장 먼저 출근해 연습하고 있는 메시를 본 팀 동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전부 메시가 도착하는 아침 7시에 자발적으로 나와 연습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77]
6.1. 매체[편집]
메시에 대한 매체들의 평가
[ 펼치기 · 접기 ] - 2023 미국 ESPN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1]
- 2023 영국 포포투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2]
- 2023 스페인 마르카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2 스페인 마르카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2 영국 타임스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2 폭스 스포츠(멕시코)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2 이탈리아 가제타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5인(무순위)[3]
- 2022 독일 스포르트1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4]
- 2022 독일 빌트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5]
- 2020 영국 스카이스포츠 패널 4인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종합 1위[6]
- 2020 미국 야후스포츠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2인(무순위) 축구 부문 선정[7]
- 2017 네덜란드 부트발 인터내셔널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17 스페인 스포르트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16 유로스포츠 기자단 10인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종합 2위[8]
- 2013 영국 월드사커 역대 베스트 11(XI) 선정[9]
- 2012 미국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10]
- 2020 Football Paradise 발표 역대 최고의 선수 1위[11]
- 2022 영국 90MIN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영국 Sport Bible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3 영국 기브미스포츠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인도 Sportskeeda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12]
- 2023 스페인 Futbol Moderno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365Score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2 스위스 Blick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22 프랑스 Le Quotidien Du Sport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1 스웨덴 Metro International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2 영국 The Sportsman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2 영국 Radio Time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영국 데일리 메일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3 토탈스포텍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우루과이 MercoPres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ICEF 선정 역대 최고의 운동선수 Top 10 축구 부문 1위
- 2023 미국 WTSP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프랑스 TV3 Monde 선정 역대 최고의 운동선수 Top 20 축구 부문 1위
- 2023 SportsMonkie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23 인도 MPL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미국 Line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23 미국 Sportsnaut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SportMob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Sportshubnet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SportsAdda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인도 TechnoSport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3 Sports Brief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13]
- 2023 SportsNile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2 미국 World Sports Network 종목별 역대 최고의 선수 축구 부문 선정
- 2022 영국 Sports Mole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2 SportyTell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3위
- 2022 영국 Betway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1 미국 New Arena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21 인도 KreedOn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3위
- 2020 영국 Daily Star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4위
- 2020 프랑스 Sport.fr & Football.fr 공동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3위
- 2020 미국 ONE37pm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3위
- 2020 미국 The Delite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18 영국 Pledge Sport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18 미국 LiveAbout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17 미국 Paste Magazine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3위
- 2016 인도 MensXP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 2015 미국 TYT Sport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1위
- 2014 미국 IB Times 선정 역대 최고의 선수 2위
메시를 GOAT로 지칭하는 세계 주요 언론사들의 기사들[78]
[ 펼치기 · 접기 ] 리오넬 메시. 이견의 여지가 없는 GOAT. 기록적인 8번째 발롱도르
Lionel Messi. The undisputed GOAT. A record-breaking eighth Ballon d'Or.메시는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GOAT의 지위를 차지했다.
Messi wins World Cup to push claim to be soccer’s GOAT모든 시선은 12월에 월드컵을 들어올린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 리오넬 메시에게 쏠렸다.
All eyes were on Lionel Messi, arguably the greatest footballer of all time, who lifted the World Cup for the Albiceleste in December.역대 최고의 축구선수가 성적이 저조한 인터 마이애미로의 이적을 발표한 7월 이후, 도시는 한없는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Since July, when the football player, arguably the “Goat” — greatest of all time — announced his move to underachieving Inter Miami, the city has been gripped by a state of suspended euphoria.그는 인터 마이애미의 팀 색깔과 "역대 최고"라는 그의 지위를 나타내는 핑크 염소로 등장한다.
He appears as a pink goat, a reference to Inter Miami’s team colors and his status as the “greatest of all time”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의 차기 행선지는 어디?
What next for arguably the greatest player in history?메시는 소개가 필요 없으며 2022년 월드컵 우승으로 GOAT의 지위를 굳혔다.
Mr Messi needs no introduction and winning the World Cup in 2022 sealed his GOAT (greatest of all time) status.역대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인 리오넬 메시는 경기장 한가운데 런웨이에 서서 그의 새 홈구장을 둘러보았다.
Lionel Messi — arguably the greatest soccer player ever — stood on a runway in the middle of the field looking out at his new home.메시가 GOAT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Messi's GOAT status confirmed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인 메시가 MLS 데뷔전에서 연장전에 결승골을 터뜨려 인터 마이애미가 리그컵에서 크루즈 아줄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게 됐다.
In his Major League Soccer debut, Messi, arguably the greatest soccer player of all time, scored the game-winning goal in extra time to give Inter Miami a 2-1 victory over Cruz Azul in the League's Cup.GOAT는 월드컵 예선 에콰도르전에서 78분에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다.
The GOAT scored on a free kick in the 78th minute of Argentina’s World Cup qualifying win against Ecuador.결국 베컴은 현재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인 메시를 자랑하는 리그의 성장을 위한 촉매제였다.
Beckham was, after all, the catalyst for the growth of a league that now boasts arguably the greatest player of all time. Messi리오넬 메시가 MLS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지만 리그가 성장하려면 'the GOAT'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Lionel Messi lifts MLS to new heights, but the league needs more than 'the GOAT' to growGOAT는 인터 마이애미 CF에서 뛸 것이고, 미국 MLS는 오랜 기간 동안의 가장 큰 성취를 이루었다.
The GOAT is going to wear pink and America's Major League Soccer has its biggest coup in years.스타들이 GOAT를 보기 위해 모였다.
The stars come out to see the GOAT리오넬 메시가 인터 마이애미와 함께 GOAT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It didn't take long for Lionel Messi to reassert his GOAT status with Inter Miami리오넬 메시는 달성하기 힘든 타이틀로 그가 GOAT임을 입증했다.
Lionel Messi makes his GOAT case with elusive title리오넬 메시가 인터 마이애미 CF에서 뛰기 위해 MLS에 왔다. 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가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월드컵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MLS에 왔다는 것은 리그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다.
Lionel Messi has come to MLS to play for Inter Miami CF. It is a seminal moment for the league in that arguably the greatest player in the history of the game has arrived on these shores less than a year after winning the World Cup, where he was named the tournament's best player.메시의 월드컵 우승은 그가 GOAT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리오넬 메시가 아르헨티나와 함께 월드컵을 우승하고 역대 최고의 선수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인가
Messi's World Cup win confirms his status as the greatest. How Lionel Messi won the World Cup with Argentina to ensure he goes down in history as the greatest player of all time역대 가장 위대한 선수인 리오넬 메시가 MLS의 인터 마이애미 CF에 합류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미국으로 왔다.
Lionel Messi, arguably the greatest soccer player of all time, has officially made the move to the United States to join Inter Miami CF of the MLS.리오넬 메시: GOAT의 진화
Lionel Messi: The evolution of the greatest footballer of all time메시의 인터 마이애미 계약 공개, GOAT는 MLS에서 얼마를 벌 것인가?
Messi's Inter Miami contract revealed, how much will the GOAT make in MLS?
7.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8. 별명[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9.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10. 악성 팬덤[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11. 관련 언사[편집]
"display: none; display: 문단=inline"를
12. 여담[편집]
12.1. 개인사 및 사생활[편집]
아내는 안토넬라 로쿠소(Antonela Roccuzzo)이며, 자식은 티아고(Thiago, 2012년 11월 2일생), 마테오(Mateo, 2015년 9월 11일생), 치로(Ciro, 2018년 3월 10일생)가 있다.
메시의 성격은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다.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을 때 메시는 가브리엘 에인세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메시의 이런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에인세가 메시를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건방진 후배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인세가 메시의 성격을 알고 난 이후에는 메시와 화해하고 오히려 메시와 친분이 생겼다. 또한 메시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메시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도 메시의 코멘트는 대부분 짧으며, 가능한 책잡힐 만한 발언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인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제라르 피케 역시 유스 시절부터 넘사벽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벙어리인 줄 오해할 정도로 말이 없었고 이탈리아의 한 대회에서 우승한 후부터 친밀한 사이가 됐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다만 아르다 투란이나 제라르 피케 등 가까운 동료들 말로는 영리해서 꽤나 재미있는 농담을 구사한다고 한다. 거기다 어린 시절 일화 등을 보면 매우 신중하고 침착한 성품이지만 축구 실력으로 도발당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승부욕과 근성은 강한 선수다. 경기장에서도 이런 성격은 자주 드러나는 편이다.
실제로 라리가 2016-17 시즌 발렌시아 CF와의 원정 경기에서 메시가 페널티 킥을 넣고 극적인 역전을 하고, 분노한 발렌시아 팬이 물병을 투척해 네이마르 주니오르가 맞자, 그들에게 욕설을 한다던가 2018 러시아 월드컵 A매치에서 브라질에게 3 : 0으로 진 뒤, 인터뷰에서 X 같은 상황, 변해야 한다라며 감정을 숨기지 않는 등 축구와 관련된 일이라면 한 성깔 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지의 일부 안티팬들에게는 별의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이 없다고 까일 때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오히려 애국심이 강한 선수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말렸는데도 끝까지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여 우승을 차지했고[80]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MVP를 차지했음에도 우승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MVP 자리까지 거절해버렸다. 인터뷰에서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대해 유난히 감정적이다. 평소 감정 표현을 드러내는 선수가 아님에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성공으로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며 뛰어가는 모습이나 결승전을 앞두고 트로피를 간절히 쳐다보는 모습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이 축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 그저 축구가 즐겁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자주 한다. 특히 "축구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은퇴하겠다"는 말은 메시가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하고 있는 발언으로 일종의 신조라고 봐도 될 듯하다. 한준 기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시상식 뒷풀이에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축구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팀의 승리를 위해서도 있지만 축구가 가장 즐겁기 때문이며 훈련부터 경기까지 모든 순간이 가장 재미있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어시스트를 많이 하는 것은 물론 PK 양보까지 곧잘 해주는 모습 덕에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다르게 공격수임에도 개인적인 골 욕심은 많지 않은 이타적인 선수로 여겨지는 편이지만[81] 경기 욕심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82] 메시는 이에 대해 “선발 출전해서 교체되는 것을 싫어한다. 차라리 벤치에 있다가 투입되는 것이 낫다."며, 마지막 순간에 경기의 판도가 뒤바뀔 때가 많고 그런 즐거운 순간을 놓치기 싫다고 얘기한 바 있다.
메시 자신이 존경한다고 밝힌 우상은 파블로 아이마르다. 실제로 둘이 경기에서 만났을 때 아이마르를 바라보는 메시의 눈빛을 보면 그야말로 덕심이 뚝뚝 떨어진다.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당시 월드컵의 여파로 지쳐 있었고 호날두에게 수상을 내주었던 2014 발롱도르 시상식 당시 주최측에서, 메시의 아이돌인 아이마르가 메시 본인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여기서 아이마르는 메시에게 "아직도 어린시절에 축구를 즐겼던 것처럼 축구를 하는게 즐겁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상술했다시피 메시는 "어린 시절처럼 축구가 즐겁지 않은 순간이 온다면 바로 은퇴할 것이다"라는 말을 신조처럼 삼아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해왔기 때문에 메시 입장에선 굉장히 의미있는 질문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메시의 상황이 슬럼프가 온다해도 이상할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좋지 못했는데[83] 우연의 일치인진 몰라도 이 영상편지를 본 이후 메시는 불화설과 갈등을 봉합하고 활약하며 트레블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팬들 사이에선 우상인 아이마르의 편지가 메시의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이마르는 국가대표팀 코치로[84] , 메시는 마지막 월드컵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서로 힘을 합해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업을 함께 이루어냈다. 아이마르 이외에도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존경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아르헨티나 매체 'TyC스포츠' 를 통해 다른 선수에게 유니폼 교환을 요청하지 않지만 딱 한 번, 막 데뷔했던 선수생활 초기에 적극적으로 교환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밝혔는데, 그 선수가 바로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상대팀의 아르헨티나 선수가 있을 때만 요청하고 그 외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워낙 교환 요청을 많이 받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엄청난 유니폼 컬렉션을 보유하게 되었다. 수집당한 유니폼 컬렉션
영어권 리그에선 뛰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영어를 하지 못한다.[85][86] 카탈루냐어는 알아들을 수는 있다고 하는데 말하는 모습은 거의 보여진 적이 없다. 현지인들 앞이라 그런지 부끄러워서 웬만하면 말할 땐 사용하진 않는다고 한다.[87]
메시가 축구 외에 흥미있어 하는 것은 게임으로, 평상시엔 축구 게임을 많이 좋아한다고 하는데, 파브레가스는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관련지어, 어린 시절 플레이스테이션이 없었으면 친해질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케의 말에 따르면 매일 게임을 할 정도의 게임 덕후에다 실제로 바르사 선수들 중에서도 게임을 제일 잘한다고 한다. 평소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때도 물론 바르사나 아르헨티나 선수들로 플레이하며 경기에서 지면 굉장히 화가 나고 그럴 때면 그냥 조용히 로그아웃을 한다고 한다. 아들 티아고와 게임을 같이 하는 모습이 SNS에 올라오기도 한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걸 볼 바에 자신이 그냥 축구 경기를 뛰겠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한데, 아내인 안토넬라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하며 그 시간에 아들 티아고와 같이 만화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이 없을 때 틈타 보고 싶은 축구 경기를 몰아서 본다고 한다. 여기서도 메시가 얼마나 가정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
보유한 자동차는 20대가 넘지만 상당수는 협찬받은 것이며, 정작 자동차에는 별 흥미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차량에서 가장 아끼는 게 아우디 차량이라고 인터뷰했다. 그중에는 중국의 체리 모터스[88] 로부터 여러 대를 협찬받았으나 그 역시 죄다 차고에 두고 안 탄다고 한다. 이를 두고 체리 측이 섭섭해했지만 다른 업체에게 받은 차량도 마찬가지이고 메시 본인이 차량은 별 흥미가 없어 뭐라고 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메시의 팀 공헌도를 생각해보면 스포츠카를 몰고 나와서 할 일이 팀 훈련을 하러 가는 것과 경기 끝나고 집에 갈 때만 모는 것 뿐이라 불쌍하다는 팬들도 있다.
의외로 미신을 상당히 믿는 것 같다. 한창 국대에서의 불운이 계속되던 2017년 쯤부터 선수 생활 최초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나오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전체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메시의 수염을 일종의 행운의 부적으로 믿고 있어서 우승 트로피를 들기 위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고 한다. 만약 턱수염을 밀면 동료들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정작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메시가 면도를 했을 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2021년 들어서는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지 않고 적당히 남기거나 예전처럼 아예 깔끔하게 면도한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89] 그러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메시가 수염을 기른 상태로 우승하면서 이러한 징크스도 깨졌다.
중요한 행사나 시상식에 참여할 때는 면도를 말끔히 한다. 그러나 수염이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른지 면도하고 며칠 안되었음도 금새 수염이 얼굴을 뒤덮고 있다.
다음 나이지리아전에서 메시가 골도 넣고 아르헨티나도 승리를 챙기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는데, 그 기자가 다시 메시에게 인터뷰를 하러 와서 별 기대하지 않고 우리 엄마가 준 행운의 부적을 버리진 않았느냐고 물어보자 메시가 말없이 양말을 걷어보였다. 기자의 어머니인 팬이 선물한 행운의 부적을 발목에 찬 채로 경기했던 것.
이 리본이 소중했는지 월드컵이 끝난 이후로도 계속해서 발목에 차고 다니는 모습을 보였고, 이적생인 필리페 쿠티뉴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홈팬들에게 온갖 욕을 먹고 주전 경쟁에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을 때 행운을 불러오는 물건이라며 이 리본을 빌려주고 그날 경기에서 PK를 양보해주기도 했다. 대표팀 후배인 디발라에게도 이 리본을 착용할 것을 권유했다. 2022 월드컵에선 대표팀 골키퍼인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에게 이 리본을 빌려주었으며, 마르티네스는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해내며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메시가 사귄 여자는 본인이 밝힌 바로는 안토넬라를 포함해 세 명이다. 마카레나 레모스라는 모델 여친이 있었는데 2006년부터 2년 정도 교제했으나 메시의 어머니는 그녀를 싫어해서 프라이팬으로 때리려고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다. 참고로 마카레나가 메시와 사귀기 시작한 시절의 나이는 14세다. 그 다음에 사귀게 된 것은 루시아나 살라사르[90] 라는 7살 연상의 아르헨티나 연예인이며, 길게 교제하지는 못했다.
메시 어머니는 메시가 소꿉친구 안토넬라와 사귀게 되자 기뻐했다고 한다. 로쿠소는 뛰어난 외모로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대학교에서 영양학을 전공한 일반인 여성이다. 메시보다 1살 연하인 1988년생으로 메시 친구의 사촌이다. 6살 무렵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알게된 사이라고 한다. 메시가 아르헨티나를 떠나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며 잠시 관계가 서먹해지면서[91] 각자 다른 이성과 교제했었다. 그런데 2007년에 안토넬라의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92] 학교도 가지 않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메시가 안토넬라를 위로하려고 아르헨티나로 찾아오면서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메시는 외도를 시도해 본 적조차 없을 정도로 아내와 금슬이 좋고 가정적인 남편으로 유명하며, 최근 레시덴떼라는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아내 안토넬라와 딥키스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평소 이미지가 워낙 범생이 느낌이라 그런지 팬들 사이에선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 한 번은, 한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메시 가족이 참석했는데 프랑스 축구 관계자가 안토넬라에게 '메시가 아들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비키라'고 했다. 안토넬라도 별 생각 없이 자리를 비켜주려 했는데 메시가 그 관계자를 즉각 제지하고 안토넬라가 자신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안토넬라의 미소가 압권이다.#
2021년 메시의 첫 국대 우승 이후 아내와 영상통화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참고로 남편이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22년 12월 기준으로 무려 2,156만 명이다.
2020년 11월 사이클형 운동기구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아내 로쿠소와 슬하에 3남을 두었다.
아들바보 메시답게 옆집 소음으로 티아고가 계속 울음을 터트리자 옆집을 통째로 사 버리기도 했다. 또한 2014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저널리스트가 쓴 글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패했을 때, 메시는 상대팀에게 축하를 전하고 카메라와 팀 동료들 앞에서 의연한 척했지만 아들 티아고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2014년 본인과 클럽의 난조로 힘들었을 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최고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아들 티아고가 유치원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시의 왼발 종아리엔 티아고의 손 모양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안티팬들이 메시의 집 앞에 찾아와서 "메시는 어디있나? 우리는 메시를 비웃으러 왔다"고 조롱하자 "그럼 난 당신들 부모를 비웃어 주겠다" 라고 응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아버지인 메시의 평가에 따르면 티아고는 축구에 재능이 있지만 정작 아들은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다만 이후 언급에 따르면 축구에 관심이 생겨 골키퍼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메시가 국가대표팀에서 준우승을 거듭할 당시 티아고가 아버지인 메시를 비판하는 평론가들의 동영상을 보고 슬퍼했던 것이 메시에게 다시금 국가대표 우승에 도전할 동기 부여가 되어줬다는 일화가 있다. 아버지가 마침내 꿈에 그리던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뒤 세레머니 현장에서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차남 마테오 메시는 리오넬 메시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장난꾸러기라고 한다. 한 일화로, 바르셀로나의 안필드 대참사 이후부터 자기가 콥이라고 메시를 놀려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임을 할때마다 "하하 내가 너네를 이긴 리버풀의 팬이다" 라고 하거나, 메시가 벌을 주려고 벽에 가서 서 있으라고 했을 때는 "코너킥 빠르게 처리합니다, 오리기!"라고 말하며 뛰어갔다고 한다. 그 외에도 형인 티아고를 화나게 만들려고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발렌시아 편을 들고, 레알 마드리드가 골을 넣을때마다 일부러 좋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가 부상을 당해서 함께 관중석에서 레알 베티스 전을 관람하는데, 베티스가 골을 넣자 대환호했다. 옆 자리에서 수아레스가 당황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에는 많이 성숙해졌는지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에 눈물의 기자회견을 끝내고 기립박수를 받을 때 치로 혼자 휴대폰을 만지다가 마테오를 보면서 싱글벙글한 채로 방방 뛰자 이를 말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축구 재능에 있어서는 메시가 "티아고는 축구에 재능을 보이는데 마테오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고 증언했다. 루사일의 기적 당시 아르헨티나가 바로 탈락한 줄 알고 울면서 뛰쳐나갔다가 형인 티아고가 경우의 수에 대해 가르쳐줘서 진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2017년 10월 15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내가 셋째를 임신함을 밝혔다. 그리고 한국 시각 3월 10일 오후 11시경 셋째가 태어났다. 성별은 남자아이이고, 이름은 치로(Ciro)다. 치로는 셋 중에서 가장 메시와 닮고[93] 잘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메시 팬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맏형인 티아고도 치로를 굉장히 귀여워한다. 아버지인 메시의 언급에 따르면 치로는 형들에 비해 아직 어려서 축구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월드컵 우승이 확정된 후 메시의 일가 친척들이 기쁨에 오열하며, 서로 부둥켜 안자 "다들 왜 우는 거야?"라고 묻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형제들끼리 사이가 좋은데, 티아고가 치로를 안고 놀아주는 모습이나 마테오가 형인 티아고에게 업히려고 뒤에서 안는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찾아볼 수 있다. #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
20/21 시즌 바르토메우의 패악질에 지쳐 확고하게 이적을 결심한 메시가 포기하고 1년 잔류를 선택한 것 역시 20년 간 몸담은 팀과 법정 싸움까지 갈 수는 없다는 팀 사랑,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하면서 부성애를 보여줬다. 메시가 이적 결심을 통보했을 때 온 가족이 눈물 바다가 되었는 데 특히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사가 뭔지 확실히 모르는 차남 마테오는 그렇다치고 장남인 티아고는 TV 매체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참이라 바르셀로나에 살고 싶고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기 싫다며 "가지 말고 남아요. 아빠."라고 울어서 메시를 무너지게 했다고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메시는 어릴 때 라 마시아에 발탁되면서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는 데 이당시 고향에 대한 향수병과 가족, 친구들을 두고 온 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자기 자식들만큼은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알려진 일화이다. 그러나 보드진의 삽질이 너무 심해지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서라도 이적을 시도하려 했으나 차마 자식들의 눈물을 보니 결심이 서지 않았던 모양. 어쨌거나 메시 이적 사가를 잠재운 것은 바르토메우 회장이 아니라 메시의 아들들이 된 셈이다.[94]
2021/22 시즌을 앞두고 메시의 재계약이 무산되어 고별식을 겸한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이때 티아고와 마테오는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치로와는 달리[95] 시무룩한 모습을 보여 많은 바르샤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12.2. 대인관계[편집]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과는 대개 돈독한 사이다. 2020-21시즌 챔스 16강 2차전에서도 경기 종료후 바르셀로나의 탈락이 확정되었음에도 앙헬 디 마리아, 마우로 이카르디 등 PSG 소속의 아르헨티나 국대 동료선수들과 친목질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을 정도.
특히 같이 청소년 대표팀부터 오래토록 대표팀 생활을 함께 한 동년배 선수들과는 매우 친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헬 디 마리아, 곤살로 이과인. 이과인의 경우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국적 불문하고 서로 한창 으르렁거리던 시절에도 눈치 보지 않고 경기 전후로 포옹과 뽀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다질 정도로 가깝다.
세르히오 아구에로와는 청대 시절부터 인연이 이어져 온 절친으로 유명하며, 국대에서도 항상 방을 함께 쓰는 사이이며 최근 아구에로가 운영하는 개인 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아궤로의 생일 날마다 메시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96] 아구에로와 첫 만남 당시 아구에로가 당시에도 유명인사였던 메시를 못 알아보고 "야, 너 누구냐?"라고 이름을 물어봤다는 일화는 본인들도 방송에서 수시로 언급할 정도로 유명하다. 둘이 놀거나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무슨 만담하는 부부 느낌이 날 정도다.[97] 심지어 메시가 자신이 없을 때의 아르헨티나 10번은 '쿤'이라고 못 박으면서 압박감 견딜 수 있겠냐고 아구에로와 함께 농담을 할 정도다. 아구에로가 맨시티와의 계약이 끝나고 바르셀로나로 간 것 역시 메시와 매일 함께 있고 메시를 더 알아가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정작 메시가 바르사와의 재계약이 불발되는 초유의 사태로 아구에로 혼자 바르셀로나에 남겨졌지만, 대신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메시가 개인 유튜브 컨텐츠 촬영차 카타르에 와 있던 아구에로를 코치로 초빙해달라고 대표팀에 요청해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을 함께 하며 코치 자격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됐다. 8강전 당시 아구에로가 PK를 차는 메시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머리를 묻은 채 기도하는 모습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크로아티아 전이 끝나고 나서는 POTM 트로피를 전달하는 역할을 아구에로가 맡기도 했다. 메시 스스로 아구에로 빼고는 아무하고도 룸메이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지[98] 이 월드컵에선 메시 혼자 독방을 썼는데, 결승전 전날 밤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 코치로 온 아구에로와 한 방을 썼다고 한다. 마침내 우승이 확정된 직후 아구에로 역시 관중석에서 뛰쳐나와 선수들과 합류해 기쁨을 나누었고, 메시를 무등 태우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자축했다.
앙헬 디 마리아와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시절부터 친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이 둘은 2008년에 국가대표에서 처음 만나 국가대표에서 끝까지 함께 한 16년 지기 친구이다. 이 당시 디 마리아는 결승전 나이지리아전에서 칩샷을 날려 골을 넣었고 이 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되어 아르헨티나가 금메달을 가져갔다.[99] 리그 팀에서는 PSG에서 잠깐 같이 있기도 했는데 메시는 디 마리아의 존재로 국대에서 절대 외롭지 않았다. 국대에서의 메시에게는 늘 디 마리아와 함께였다. 곤살로 이과인이 지쳐서 은퇴해도,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지병으로 더 이상 축구를 못해서 떠났을 때도 디 마리아는 언제나 메시와 함께 했다. 2010년 월드컵[100] 과 2018년 월드컵[101] 의 실망스러웠던 시절도, 2014년에 월드컵 우승 직전까지 갔었던 그 순간[102] 에도 디 마리아는 늘 메시와 함께 웃고 울었던 그런 사이였다. 그리고 202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만났는데 여기에서도 디 마리아가 간지작살나는 터닝슛을 넣어 1:0 으로 리드하고 그걸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골키퍼가 지켜내 끝내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했다.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 대 유로 우승팀의 대결인 피날리시마에서도 역시 디 마리아가 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했다. 202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디마리아가 페널티 킥을 얻어내고 이를 메시가 넣었으며, 얼마 후 디 마리아가 완벽한 역습 상황에서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의 패스를 받아 직접 골까지 넣으며 메시의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렇듯 메시의 국제대회 우승에는 항상 디 마리아가 있었고 늘 디 마리아가 결승전에서 골을 넣어 메시에게 우승컵을 안겨줬다.'신의 한 수'가 된 디 마리아 깜짝 선발 카드.메시와 디 마리아의 14년 인연[103] 그리고 메시와 디 마리아 단 둘만 있는 기록이 생겼는데, U-20 우승[104] + 올림픽 금메달 + 대륙컵(코파 아메리카) 우승 + 피날리시마(코파 아메리카 우승 대 유로컵 우승) 우승 + 월드컵 우승을 모두 달성한, 세계 축구 역사상 단 둘뿐인 선수로 기록에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메시를 보고 자란 세대 입장에서 메시는 동료이기 이전에 자국 출신의 레전드이기 때문에 친목을 넘어 메시를 추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수단 대부분이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자신들의 우승보다는 메시의 우승을 위해 뛰었다고 할 정도. 특히 데폴,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레안드로 파레데스 같은 경우는 메시가 대장이면 전쟁에도 나갈 수도 있고 메시를 위해 전쟁터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발언할 정도로 맹목적인 팬심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직후 모든 선수들과 감독까지 울면서 메시에게 달려가 헹가래를 해주는 명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국대 경기에서도 메시가 과격한 태클을 당하면 벌떼처럼 몰려들어 상대에게 달려들거나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등 선수단 전체가 메시를 중심으로 단합력을 보여주고 있다.[108] 메시 역시 바르셀로나 시절 스페인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국가대표 스케줄이 있으면 자기 자가용 비행기로 픽업해주거나 생일파티에 국가대표 선수단 전원을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후배들을 잘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리오넬 스칼로니와의 친분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둘은 2006년 월드컵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 때는 스칼로니도 호세 페케르만 감독 아래에서 현역 선수로 뛰었으나 스칼로니는 에르난 크레스포보다 약간 아래에 후안 로만 리켈메와 동갑내기인 팀의 고참인 반면, 메시는 이 팀의 막내였다. 그럼에도 메시와 스칼로니는 동향 출신(로사리오), 같은 이름(리오넬) 등 여러 동질감을 갖고 있어서 빠르게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회 이후 스칼로니는 급격히 내리막을 타며 국대에 더 이상 차출되지 않아 둘이 만날 일이 없었는데, 2017년 스칼로니가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합류하면서 다시 만났다. 스칼로니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이후 삼파올리가 경질되며 감독 대행직을 맡다가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당시 메시는 월드컵에서의 이어지는 부침 속에 너무 힘든 나머지 국가대표 은퇴까지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스칼로니는 메시를 잘 달래서 은퇴를 말렸고 국가대표 내에서 메시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 실제로도 메시는 스칼로니에게 많이 의지했다. 반대로 스칼로니 역시 대표팀을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선수단을 장악하는데 메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는 결실을 맺어 코파 아메리카 2021에서 우승하면서 스칼로니는 메시에게 성인 국제대회 첫 챔피언 자리를 선물했다. 그리고 2022년 월드컵에서 둘은 월드컵 우승을 합작했다. 스칼로니 자신이 직접 밝힌 일화에 따르면 월드컵 남미 예선 브라질전에서 에이스인 네이마르가 빠진 브라질을 상대로 시원찮게 무승부를 거두어 아르헨티나 자국민들에게 비난당할까봐 불안감에 빠진 스칼로니가 메시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메시의 위로를 받아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한다.# 젊은 초짜 감독인 스칼로니와 베테랑 선수인 메시는 둘 다 국대 우승에 목이 말라 있었고 둘다 자국에서 의심과 비판의 시선을 받았던 만큼 사제지간의 신분을 넘어 서로 의지할 정도로 동질감과 유대감이 컸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를 이끌었다. 당분간 헤어져 있었긴 했으나 동일한 선수 신분으로 뛰면서 처음 만났는데다 특히나 메시에게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스칼로니이기에, 메시에게 있어서 스칼로니는 펩 과르디올라를 뛰어넘는, 생애 최고의 은사이자 평생의 동반자로 남게 되었다.
라 마시아에서도 역대급 세대로 불리우는 87년생 황금라인의 제라르 피케와 세스크 파브레가스와도 유소년 팀부터 이어진 죽마고우이다. 피케와는 거의 20년 가까이 함께 뛰고 있는 동료이고 이적한 파브레가스와도 휴가 때마다 가족끼리 틈만나면 함께 여행다닐 정도로 친하다.[109] 처음 라 마시아에 들어왔을 당시 혼자만 외국인에다 성격까지 내성적이었던 메시가 적응하지 못할 때 피케와 세스크가 신경써줘서 친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친하지 않았던 초창기에 피케가 메시를 벙어리인 줄 알고 있었던 것과 유소년 시절 이탈리아로 원정경기를 갔을 때 비디오 게임을 계기로 메시의 말문이 트이면서 친해지게 되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 이 친해지게 된 계기도 코믹한데# 그 때도 장난끼가 많았던 피케가 메시에게 일종의 신고식을 치뤄주겠답시고 몰카를 기획했다고 한다. 당시 룸메이트였던 세스크가 메시를 데리고 나간 틈에 피케가 메시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을(심지어 침대까지) 다 끌어내서 숨겨버렸고 방에 돌아온 메시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카메라로 찍었다고 한다. 이후에 몰카라고 공개하고 메시도 슬슬 피케와 세스크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서 친해졌다. 다만 현재는 피케와 사이가 틀어진걸로 보이는데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자유계약으로 나가는데 있어서 피케가 보드진에게 메시의 방출을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러한 점 때문에 메시의 측근이 그를 비난한적이 있다. 또한 피케의 은퇴식때 메시는 아무 말도 없었으며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때도 피케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바르셀로나 최전성기를 이끈 감독이자 스승인 펩 과르디올라와도 돈독한 인연을 자랑한다. 메시는 데뷔 초기에 근육에 무리가 심해서 부상 이력이 많았는데 펩의 부임이후 관리를 받기 시작하면서 부상을 줄이고 메시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면서 최고의 순간을 누렸고 메시 역시 기술은 최고지만 유리몸이었던 시절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지금의 메시가 될수 있었다. 세월이 지났지만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지도한 최고의 선수로 여전히 메시를 언급하며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세우고 메시 역시 펩을 자신이 만난 최고의 감독이라며 서로 존중하고 있다.
메시에게 과르디올라 만큼 많은 영향을 끼친 감독이 바로 펩의 수석코치이자 후임 감독인 티토 빌라노바이다. 유스 시절부터 메시를 오랫동안 지도했던 감독인 빌라노바는 메시가 처음 1군에 올라왔을때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빌라노바 코치 부임 이후 그의 적극적인 지지로 많은 경기에 뛰면서 일이 잘풀릴 수 있었다. 특히 메시가 힘들때 그를 잡아준 사람도 빌라노바인데 13-14시즌 종료 이후 팀에 여러 구설수에 지쳐 팀을 떠나려는 메시는 당시 암투병 중이던 빌라노바에 병문안을 갔는데 빌라노바는 메시에게 절대로 바르사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1주일후 사망하게 된다. 이에 충격받은 메시는 빌라노바와에 약속 때문에 팀에 남았고 이는 14-15 시즌 두번째 트레블을 달성하게 된다.
카를레스 푸욜과는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분이 깊으며 푸욜 본인이 메시의 빽을 자처할 정도였다. 엘 클라시코에서 세르히오 라모스가 메시에게 린치를 가하자 푸욜이 화가나서 라모스를 꾸짖다가 라모스에게 펀치를 맞기까지 한 사건은 큰 화제였었다. 게다가 발롱도르 투표 기간이 다가올 때면 푸욜은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의 다른 축구 선수들을 다 제치고 메시에게 발롱도르를 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인이고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이 강한 선수임에도 호나우지뉴 등 아르헨티나와 라이벌 구도에 있는 브라질 선수들과의 친분이 두텁다는 점은 특이한 점이다. 처음 1군으로 올라왔을 때 원래 성격도 내성적인 데다 나이까지 17살로 가장 어린 바람에 어색해 하던 메시를 호나우지뉴와 다른 브라질 선수들이 많이 챙겨주었다고 한다. 다른 브라질 선수들도 막내였던 메시를 귀여워해서 많이 챙겨주었고 식사를 할 때 동석을 권유하며 '메시는 이 테이블에 앉아도 되는 유일한 아르헨티나인'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호나우지뉴와의 친분으로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시우비뉴나 데쿠, 사무엘 에투 등 당시 대부분의 이적생 선수들과 굉장히 친했었다. 시우비뉴는 FA 신분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까지도 락커룸의 다른 선수들에게 메시를 잘 부탁한다고 했을 정도로 메시를 챙겨줬으며 알베스와 메시가 친해진 계기도 시우비뉴 덕분이었다고 한다. 사무엘 에투 역시 메시의 대표 절친 중 한 명인데 메시가 16살이었던 시절부터 보고 지낸 사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메시를 '내 아들(Hijo)'이라고 부른다. 메시가 어렸을 때 에투가 결정적인 조언을 해줘서 도움이 되었다고 하고 지금도 인터뷰에서 친아들만큼 사랑한다는 발언을 수시로 할 정도로 거의 친자식처럼 생각한다.
호나우지뉴와는 서로를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세우고 거의 가족이나 다를 바 없는 사이였다고 하며 호나우지뉴가 팀을 나가게 된 뒤 올림픽에서 재회하자 경기가 끝난 후 포옹을 하고 라커룸까지 찾아가는 등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음이 보여졌다. 호나우지뉴의 경우 자신의 축구 커리어에서 유일한 후회는 메시와 좀 더 오래 뛰어보지 못한 것이라고 하며 메시와 어린 시절밖에 함께 할 수 없어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할 정도로 우정이 여전하다. 문제는 바르셀로나에서 메시한테 호나우지뉴의 못된 물이 들까 봐 호나우지뉴를 이적시켰다는 점이다. 메시는 호나우지뉴를 자신의 대부로 생각하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더 뛰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발언했다. 메시 - "호나우지뉴는 내 대부, 함께 더 뛰지 못한 것이 아쉬워"
현재 브라질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팀 동료인 네이마르 역시 메시에게 무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어서 마치 소싯적 지뉴와 메시의 관계를 보는 듯하다는 의견이 많다. MSN 라인이 메인이었던 시절, 수아레즈까지 셋이서 뭉쳐 다니면서 굉장히 친하게 지냈고 세 선수가 사적으로도 친한 것이 플레이 상의 장점으로 나타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공격수로서 케미도 좋은 편이었다. 네이마르와 메시가 마찰을 빚을수 있다는 예상과 반대로 실제로는 네이마르의 적응을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 메시였다고 한다. 네이마르가 이적 초기 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하프타임 때 혼자 울고 있었는데 메시가 다가와서 위로도 해주고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어줬다고 한다. 네이마르가 후일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며 울기까지 했을 정도다. 득점왕 경쟁으로 불이 붙은 시점에서도 네이마르에게 PK를 많이 양보해주기도 하고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소송이 걸려 팀과 마찰을 빚을 당시에도 대놓고 네이마르의 아들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이를 SNS에 올리는 등 네이마르와의 관계는 끝까지 돈독했다. 지금까지도 MSN 3인방만의 왓츠앱 단톡방이 있어 셋이서 대화를 많이 하고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떠날 당시에도 끝까지 네이마르를 잡으려 했고, 떠난 직후에는 수아레즈와 자신이 네이마르를 그리워하고 있고 어디에서나 행복하길 바란다고 영상 편지를 보내서 네이마르가 감동받기도 했다.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선 마침내 결승전 상대로 만났고 결국 메시가 승리를 거뒀지만 패배한 네이마르가 먼저 메시에게 다가와 부둥켜안고 울거나 세리머니 뒤에도 친목질을 하는 훈훈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두 선수의 진한 우정을 실감하게 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10일자로 메시가 파리 생제르맹 FC로 FA로 이적하면서 다시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는데 메시의 파리 이적 배경에는 네이마르가 파리에 있는 점도 한몫했다.
돈독한 관계를 보이는 또 다른 브라질 선수는 다니 알베스다. 그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래 과르디올라 시절부터 사비와 함께 팀의 오른쪽 조합을 만들어냈으며 메시에게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제공한 선수이기도 하다. 전성기에서 내려오면서 기량에 많은 비판을 받고 2014-15 시즌 이후 바르셀로나를 떠날 계획도 갖고 있었으나, 트레블 이후 메시의 남아달라는 말에 클럽과 재계약을 체결할 정도. 네이마르와 알베스 모두 팀을 떠났지만 여전히 메시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이렇듯 브라질 선수들과 세대 불문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브라질에서 가장 인기있는 유럽 축구 클럽인 바르셀로나 최고의 레전드인 덕분에[110] 브라질에서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111] 마라도나와의 라이벌리 떡밥 때문에 종종 메시를 까던 펠레도 네이마르가 메시의 팀 동료가 된 이후로는 덕담도 하고 좋은 평가도 내려 주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싫지만 메시는 좋아한다"는 의견도 많고 심지어 메시가 펠레, 마라도나를 뛰어넘을 거 같냐는 브라질 내 설문조사에서 둘 다 뛰어넘을 거다라는 응답이 50%에 가깝게 나온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아예 둘을 넘어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응답이 60%를 넘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마라도나에 대해서는 그렇다 쳐도[112] 펠레가 브라질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면 파격적인 일.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당시엔 일명 아디오스 아저씨가 결승전에서 "메시를 믿는다"는 어구를 써들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 컷이 잡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브라질 여권에 메시를 합성한 사진을 게시하거나 브라질에서 전지훈련을 했을 때 여러 명의 팬들이 훈련장에 난입하여 격한 환영 인사를 해 준 적도 있다. 이때 메시의 구두를 닦아주는 퍼포먼스를 펼친 팬도 있는가 하면 메시의 절친이자 자국의 영웅인 호나우지뉴 코스프레를 하고 들어온 팬도 있는데 이를 본 메시는 빵 터지며 좋아했다. 2021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에서도 메시의 국대 우승을 기원하는 일부 브라질 유명인들과 팬들이 결승전에 앞서 아르헨티나 공개 지지를 선언하면서 네이마르가 대놓고 자국팬들에게 분노를 토로하기도 했을 정도로 브라질에서 메시의 인기는 의외로 정말 높다. 호나우두 역시 많은 브라질 사람들이 메시의 월드컵 우승을 응원했다고 인증하기도 했다.
한편 전성기 때의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비교가 정말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 마라도나 본인도 메시를 아주 아꼈다.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 "1986년(자신의 최전성 시절)의 나보다 메시가 더 뛰어나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메시를 극찬하며 싸고돌았다. 물론 메시 또한 마라도나를 아주 존경하고 찬양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17년 이후로는 두 사람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메시가 뭘 한 건 아니고 마라도나가 방송에 나와서 펠레와 함께 메시가 사람은 참 착한데 소극적인 성격이라 리더의 미덕에 맞지 않다고 뒷담화를 까거나 이후로도 "경기 전에 화장실을 20번이나 가는 선수, 동료와 얘기하는 것보다 비디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선수가 어떻게 좋은 리더인가"라며 메시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깠기 때문이다. 레전드 선배가 안그래도 국대 부진에 대해 독박으로 욕먹어서 힘들 상황에 비난 여론에 편승해 자국 후배를 조롱하는 그림이 졸렬해 보이기도 하고 메시의 성격에 기반한 주관이 섞인 인신 공격을 했다는 점에서 마라도나의 발언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메시의 사촌이 크게 분개하기도 했고 아르헨티나의 전설 마리오 켐페스 역시 "마라도나 본인도 완벽한 롤모델은 아닌 주제에 누굴 욕하냐"고 꼬집었으며 바르셀로나 동료인 사비 역시 "함께 생활한 동료를 욕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메시는 조용하지만 완벽하고 거친 리더"라고 이를 저격했다. 하여간 이후로도 마라도나가 메시의 소심한 성격을 일방적으로 저격하며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에서 열린 메시의 결혼식에도 마라도나는 초대되지 않았다. 메시 본인이 이에 대해 대응한 적은 없지만 아르헨티나 코치진인 로베르토 아얄라 등 국가대표 관계자들이 메시가 방에 틀어박혀서 혼자 논다거나 하는 건 어릴 때 얘기고 요즘은 어린 선수들한테도 먼저 다가가고 사교적인 리더가 되었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라도나는 이후 메시가 은퇴 선언을 하자 메시를 설득하는 데 앞장섰고 우리가 메시를 외로운 곳으로 몰아넣었다고 후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메시의 은퇴에서 주요한 원인이었던 부패한 아르헨티나 축협을 비판하는 데 힘을 싣어주었다. 이와 별개로 메시도 마라도나를 추모하는 골 세레모니를 보여주었으며 월드컵 기간에도 마라도나가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인터뷰하며 그를 그리워 하고 반드시 마라도나의 영전에 트로피를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메시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우승하며 이루어졌다. 참고로 마라도나와 메시는 서로의 국가대표 우승의 순간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는 기묘한 인연도 가지고 있다. 마라도나가 월드컵을 우승한 1986년은 메시가 출생하기 1년 전이었으며, 메시의 코파 우승과 월드컵 우승은 마라도나 사후에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펠레와 호나우두 등 생전에 마라도나를 알았던 지인들은 마라도나도 천국에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라고 메시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2.3. 대중문화 속의 메시[편집]
메시가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이전 시대의 축구 스타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라면 바로 유튜브 시대의 축구 스타라는 점이다. 그가 경기를 뛰고 나면 수 시간 안에 해당 경기에서 메시가 볼터치를 한 장면만 모은 영상들이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유명 축구 유튜버들이라면 한 번쯤은 메시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플레이 장면을 모은 컴필레이션 영상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유명 축구 해설자인 '레이 허드슨(Ray Hudson)'이 메시의 플레이에 경악하는 반응을 모은 컴필레이션 영상들도 있을 정도다. 축구 선수들을 평가할 때 이른바 '현역 버프'라는 것이 있어서, 평가 대상이 되는 선수가 은퇴를 하면 버프가 사라지고 현역 때에 비해 평가가 떨어지게 된다는 시각이 있는데,[113] 메시의 경우 남아있는 영상 자체가 너무 많아서 은퇴 후에도 현역 때 받는 찬사를 그대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반박도 있다.
여느 스포츠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상품들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나이키의 스폰서십을 받았지만, 현재는 아디다스의 스폰서십을 받고 있다. 원래 축구 분야 메인 모델이었던 히카르두 카카가 기량 하락으로 슈퍼스타의 지위를 잃자, 메인 모델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착용하는 축구화는 원래 '아디제로 F50'이었으나, 현재는 아디다스에서 '메시 15.1'이라는 이름의 시그니처 모델을 출시한 상태다. 아디다스 모델로서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반영한 Impossible Is Nothing 광고와 There Will Be Haters 광고가 유명한 편이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꼬마팬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개인기 대결을 펼치는 항공사 CF가 재치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 외에 호날두와 문자로 키배를 뜨는 CF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웃기는 CF는 일본 '앙파' 사의 스칼프D 세안제 광고. 임팩트 있는 대사[114] 덕에 빵터졌다는 평가가 많다. 메시 기모찌~ 한국에서는 몬데그린 자막 버전이 유행하기도 했고 웹툰 작가 와싯에 의해 패러디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해당 CF는 정확히 메시가 25세였던 2012년에 찍은 CM으로, 공교롭게도 이 세안제 회사도 1987년에 설립되어 25주년이 되었던 상황이라, 메시와는 동갑내기인 회사이다. 이 회사는 샴푸 모델로는 네이마르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메시는 이 회사와의 인연을 깊게 생각했는지, 2018년에 다시 한 번 이 회사의 샴푸 광고를 촬영했었다. 그리고 다단계 판매 건강식품 회사 허벌라이프의 전속 모델이기도 했다. 멘트는 "오늘도 셰이크 하셨어요?" 여담으로 리오넬 메시 다음 허벌라이프 광고 모델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다.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는 바르셀로나를 플레이하지 않는 이상 주적. 물론 FM 시리즈도 뇌지컬보다 피지컬 요소를 많이 탄다고는 하나 메시는 이야기가 다르다. 선수들 중에서 제일 높은 포텐셜 199-200을 찍는다. 2011에서는 많이 하향돼서 스탯은 찍지 못하는데[115] 평균 평점이 높아 항상 발롱도르를 독점한다. FM 2012에서도 사기캐인 건 여전하다. 최신작 FM 2019에서는 현실 반영으로 타고난 체력과 지구력이 낮은 편이어서 체력 관리를 잘 해줘야 한다.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와의 콜라보로 폴 포그바. 네이마르 주니오르와 함께 한정판 오퍼레이터 번들이 발매됐는데, 덕분에 그가 스포츠 게임이 아니라 FPS에서 군장을 갖추고 총질을 하며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성우 또한 메시 본인이 맡았는데 콜라보로 출시된 오퍼레이터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목소리 연기가 힘빠진 발연기를 선보여서 작은 불만이 있었다.
메시가 앰버서더로 있는 efootball 2024는 메시가 8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한 다음 날 메시 뽑기 팩을 내놓았다. 21세의 어리고 재빠른 윙어 메시, 27세의 전성기를 맞은 트레블 당시의 메시, 35세의 황혼기에 월드컵을 들어올린 국가대표 메시, 이렇게 총 3개 버전의 메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와 클럽 및 국대에서 커리어를 함께 한 선수들이 함께 들어있다. 2024 들어서 돈미새스러운 행보로 영 평가가 좋지 않았으나 이것만큼은 메시의 팬들이 추억하는 메시의 최고의 순간들을 시간에 따른 변화가 느껴지게 내놓아서 간만에 잘 만들었다
12.4. 아르헨티나에서의 위상[편집]
리오넬 메시는 신이 아르헨티나에 보내준 선물 같은 존재다.
리오넬 메시는 항상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제 53대 대통령(上)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제 54대 대통령(下).
농구의 지노빌리, 테니스의 델 포트로, 유도의 파울라 파레토[116] , 여자 하키의 루시아나 아이마르[117] , 축구의 메시와 마라도나, 이들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선수이다. 그러나 인기에서는 아무도 마지막 2명을 능가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현지인 Mateo Meula #
아르헨티나의 축구 꿈나무들의 우상이고, 그의 활약을 보고, 축구 선수가 된 경우가 많다. 대표팀에서도 메시를 추종하는 선수들[121] 이 많고, 모두에게 존중받고 있다. 물론 메시도 대표팀 주장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고 있기에, 팀의 조직력과 선수들간의 소통과 호흡도 잘 어우러지게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고 있다. 그리고 2022년 12월 18일, 마침내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를 중심으로 뭉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에 올라온 아르헨티나의 대선 출마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메시에 대한 선호도가 약 43.7%로 높게 나올 정도니 이 정도면 거의 민족 영웅급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자료 출처
이런 메시도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고 거기서 더 좋은 활약을 보인다며 한때는 아르헨티나를 위해 모든걸 보여주지 않는 선수다, 아르헨티나인이 아닌 스페인 선수같다 라고 욕을 먹고 까인 적도 있었다. 특히 2014년~2016년의 3연 준우승 시절엔 리더쉽에 대한 지적과 함께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메시에 대한 비판이 엄청나게 일었다.[122] 메시를 자신의 후계자라며 어화둥둥 칭찬해주던 마라도나도 메시를 깠을 정도. 그러나 이후 메시가 국대 은퇴 선언을 했다가 복귀하며 아르헨티나를 위해 진정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축구의 신 같은 면모와 다르게 사적으로는 친절하면서도 때론 나약한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자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도 정말 국가를 위해 뛰는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말년에 두 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부상조차 무릅쓴 하드캐리와 트로피에 대한 간절함으로 우승하며 마침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모든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사랑하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아르헨티나와 축구 내외적으로 숙명의 라이벌인 브라질에서도 메시는 추앙받는다. 원체 축구에 미친 나라라 그런지 한일 관계 급으로 양 국민의 감정이 서로 좋지 않은 나라임에도 메시만큼은 인정받는 편. 호나우지뉴는 브라질 선수들 및 메시와 식사를 하며 '이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아르헨티나인은 너 뿐일 것이다.'라고 말했고, 네이마르 역시 메시를 매우 좋아하는 선수다.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선 자기들 홈인데도 브라질 국민들조차 메시의 한풀이 우승을 응원하는 여론이 강해서 그 네이마르가 한 소리 했을 정도.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이 탈락하자 메시의 라스트 댄스가 성공하길 기원하며 그를 응원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브라질의 축구 레전드들이 대놓고 옹호하고 칭찬하는 정말 몇 안 되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다.
심지어 리오넬 스칼로니는 메시에게 2026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너를 위해서 1자리를 비워 놓았다. 그 때 출전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만 해라라는 굉장히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 참고로 이 때 메시의 나이는 39살이다. 만약, 이게 실현된다면 메시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6개 대회 출전 선수(2006, 2010, 2014, 2018, 2022, 2026)라는 굉장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123][124] 그러나 2023년 6월 13일 중국 타이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카타르 월드컵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었으며, 다음 월드컵에서는 관중으로 경기를 지켜보겠다고 못박아 메시의 2026년 월드컵 출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우승 이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그의 이름을 따 아기의 이름을 '리오넬' 혹은 '리오넬라'[125] 로 짓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
2023년 3월 20일에는 A매치를 위해 귀국했는데, 가족과 저녁을 즐기기 위해 찾은 식당(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돈 훌리오(Don Julio)) 앞에 새벽 2시인데도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 #
2023년 3월 새로 지어서 현판식을 거행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훈련시설의 이름이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로 결정되었다. #
12.5. 광고[편집]
리오넬 메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이 시대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축구선수인 만큼 수 많은 광고를 찍었다. 언론이나 방송 출연을 꺼리는만큼 축구 이외의 것으로 대중에게 다가오는 것은 인스타그램과 광고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리오넬 메시가 홍보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 아디다스의 축구화이며 그 다음으로는 Lay's이다. 본 브랜드가 챔피언스 리그를 후원하는 만큼 경기 시작 전 오프닝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과거에 진행했던 스폰서쉽은 굉장히 오랜 기간 지속된 돌체 앤 가바나가 있는데 메시가 사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어지간해서는 이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어 작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삼성의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광고한 적도 있다.
메시는 아디다스와 성인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을 맺어 현재까지 그 관계를 돈독히 이어가고 있으며 메시는 실생활에서도 아디다스 제품을 많이 착용하고 있다.
세계적인 감자칩 Lay's와의 계약을 2023년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펩시의 전속모델을 하고 있다. 과거 메시가 펩 과르디올라에게 콜라를 많이 마신다고 혼나고 트레이닝 센터에서 자판기가 사라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계약이다.
2023년 리오넬 메시는 돌체 앤 가바나와의 오랜 관계를 뒤로하고 루이비통의 앰베서더가 되었다.
12.6. 기타[편집]
- U-20[127] + 올림픽 축구 종목 + 지역 컵 대회(코파 아메리카) + 피날리시마[128] + FIFA 월드컵을 모두 우승한 단 둘 뿐인 선수이다. 다른 하나는 다름아닌 그의 평생 친구인 앙헬 디 마리아이다. 이 둘은 국가대표에서 만큼은 시종일관 늘 함께였다.
-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에서는 메시의 그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해, 메시가 어렸을 때 한정으로 3~4살 연상의 선수와 같은 대우를 했다. 그래서 친구들인 앙헬 디 마리아나 세르히오 아구에로보다 1대회 일찍, 그것도 파블로 사발레타같은 선배 선수와 동급의 대우를 받고 FIFA U-20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는 아직 20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출전해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전에서 골까지 넣었다.
- 해외에서의 별명은 본명 Lionel의 애칭인 LEO(레오). 팬들 뿐만 아니라 지인들도 전부 메시를 부를 때는 백이면 백 이렇게 부르는데, 심지어 스페인은 그의 이름 표기도 Leo Messi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신의 인스타 계정 역시 @leomessi 이다.
- 메시의 이름인 '리오넬'은 라이오넬 리치에게서 따온 것이다. 메시의 부모가 라이오넬 리치의 팬이라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라이오넬 리치는 이 사연을 알고 행복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메시가 국가대표에서 힘든 시기를 겪을 때 메시를 응원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 축구 전문지 '월드 사커'에서 전 세계 축구 전문기자 74명의 투표를 받아 역대 베스트 11을 선정했는데, 현역 선수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 2019년 독일 여론조사 기관이 자국민 2,508명을 대상으로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인가를 조사했는데 메시가 20%의 득표율로 1위에 올랐다. 2위는 펠레(19.6%). 또 2020년에는 분데스리가 선수 270명을 상대로 현재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가를 조사했는데 메시가 54.8%의 표를 받아 1위에 랭크됐다. 2위 호날두(12.6%), 3위 레반도프스키(10.7%), 4위 반 다이크(4.4%), 5위 음바페(4.4%).
- 2020년부터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메시 vs 호날두 투표가 진행되고 있고 2023년 5월까지 기준 2억 500만개 이상의 표가 모였다. 결과는 메시 78.3%, 호날두 21.7%.
- 2019년 마르카에서 4만명이 넘는 독자들을 상대로 1950년대부터 시대별 최고의 선수는 누구인지를 조사했는데 메시는 2000년대, 2010년대 모두 1위에 꼽혔다. 이외 1950년대 디 스테파노, 1960년대 펠레, 1970년대 요한 크루이프, 1980년대 디에고 마라도나, 1990년대 호나우두가 이름을 올렸다.
- 축구잡지 포포투에 메시 할머니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는데, 어린 시절 메시가 축구를 잘 하게 된 이유는 바로 달콤한 군것질거리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는 과자를 제일 좋아했다고 하는데, 경기를 하기 전에 할머니가 넣은 골의 수만큼 그 달콤한 과자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더니 12골을 넣고 와버려서 정말 배터지게 과자를 만들어 준 적도 있다고 한다.
- 삼중국적 취득자이며[129]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국적 문제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 FIFA에서는 다중국적 선수가 일생에 1번 제1국적을 고칠 수 있는 규정이 있는데 스페인 축구 협회에서 국가 대표팀의 보강을 위해 메시에게 스페인 대표팀에 들어오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지만, 메시는 자신의 병마를 해결해 준 스페인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버릴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한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주전으로 고정적으로 뛰며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이 부임한 뒤 주장이 되었다. 다른 팀들은 어지간하면 국가대표팀에 오래있던 선수가 주장이 되는데 메시는 이 룰을 모두 무시한 채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주장이 되었다. 전직 주장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나 막시 로드리게스 등은 메시보다 한참이나 고참이다. 최근에는 다른 대표팀에서도 이런 경우들이 있다. 네이마르 주니오르에게 주장 완장을 채워 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나[130] 해리 케인에게 주장 완장을 채워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131] 그런 예다.
- 기본적으로 성격이 대단히 온순하며 훌리건들이 난입해도 구타같은 테러가 아닌 이상 어지간하면 난입한 팬들의 요구조차 들어준다. 똑같은 아르헨티나 축구의 전설이지만 온순함과는 거리가 먼 디에고 마라도나와는 대조된다.
- 외모가 많이 바뀐 편이다. 바르사 유스팀 때부터 2005/06시즌 까지는 머리를 뒤통수 정도로만 기르다가, 2006/07시즌과 2007/08시즌에는 호나우지뉴처럼 머리를 길게 기른 후 머리띠를 하고 다녔다. 그 후 2008/09시즌부터 머리를 다시 뒤통수 정도로 기르고 다니다가, 2012년부터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시기 군것질을 끊고 아이가 생기면서 살도 많이 빠졌는데, 대체로 2012년부터 2016년까지가 메시 외모의 전성기로 꼽힌다. 2015년 중반기에는 오른팔 반쪽을 문신으로 채우면서 모범생 이미지를 벗었다. 그 후 2015년 코파 아메리카와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우승을 놓친 것에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2016/17 시즌에는 수염을 길게 기르고 노란색으로 염색을 한 충격적인 비주얼로 등장했다. 완전 백발로 염색을 한 번 더 했다. 이후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2017/18시즌부터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짧게 자른 지금 메시의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2022년 월드컵 기간이 다가오자 다시 수염을 길렀다.
- 성대가 얇은 편이며 에딘손 카바니 목소리처럼 굉장히 얇은 편이다.
-
일명 '펄럭'[132]
- 챔피언스 리그에서 어지간한 강팀들(리버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C 밀란,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 유벤투스, 아스날,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모두 골을 넣었음에도 오랫동안 첼시를 상대로는 골이 없었지만 17-18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드디어 9경기만에 마수걸이 골을 넣었고, 2차전에선 2골 1어시를 기록하면서 첼시전 징크스를 완전히 깨부쉈다. 이전에도 골만 없었지 데뷔 초기 05-06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는 아주 탈탈 털었다. 오직 골만 못 넣었을뿐 이 경기 첼시의 왼쪽 수비수였던 델 오르노를 퇴장시키는 데 한 몫 하고, 로번의 협력 수비도 가뿐하게 넘어가면서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었다. 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드디어 PK로 넣나 싶더니 골대를 맞히는 등 첼시 전에서는 유독 불운했던 선수였다.[133] 한 동안 AC 밀란 상대로 필드골이 없어서 챔스에서 이탈리아 세리에 팀들을 상대로 골을 못넣는 징크스가 있다며 12/13 시즌 밀란전 1차전에서 2:0 패배 후 드세기로 소문난 이탈리아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이에 독을 품은 듯 그 징크스 반드시 깨겠다고 다짐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보란듯이 경기시작 5분만에 선제골과 추가골까지 터뜨려 4:0 대승에 일조하며 언론들을 데꿀멍시키고 세리에 징크스 이야기는 쏙 들어가게 되었다. 더구나 집계를 해 보니 밀란이 유럽 대항전에서 메시에게 가장 많은 실점을 한 클럽이다. 인테르와 리버풀에게도 득점이 없지만 인테르와는 한 번 만났을 뿐이었고, 리버풀은 메시가 발롱도르급으로 올라선 이후[134] 엔 한동안 챔스 진출도 어렵게 된 상황이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9년 5월 2일 캄 노우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챔스 4강 1차전에서 2골을 넣어서 월드 클래스가 무엇인지 보여주기는 했다. 2차전에서 안필드의 기적(2019년)이 터지고 메시 본인도 무득점으로 묶이면서 결과적으로는 새드 엔딩으로 끝났지만. 2019년까진 도르트문트한테도 골이 없었지만, 그건 스페인팀을 많이 만나는 도르트문트가[135] 이상하게 바르셀로나랑 붙는 경우가 없어서 그런 것으로 2019/20 조별 리그에서 만나서는 홈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 축구 선수들 중에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 2010년 최다 수입 축구선수 랭킹에서 3100만 유로(연봉 1000만 유로[136] + 보너스 100만 유로 + 기타 수입 2000만 유로)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통계에서도 최다 수입 축구선수 랭킹 1위를 차지하며 2위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랑 120억 가까운 차이를 벌렸다. 하지만 2017년 중국 슈퍼 리그의 상하이 선화가 카를로스 테베스를 영입하면서 이 기록이 깨졌다. # 이후 2018년에는 호날두보다 약 300만 달러를 더 받으면서 모든 스포츠 선수 중 수입 2위를, 2019년도에는 호날두보다 약 1,800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면서 모든 스포츠 선수 중 수입 1위를 차지했다. 링크 1 링크 2
- 세계적인 명성을 가졌음에도 유명 에이전트를 따로 두지 않았으며, 메시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아들의 에이전트 일 업무를 맡고 있다. 바르셀로나와의 협상 자리에는 늘 아버지가 에이전트 자격으로 동행해왔다.
- 스폰서십 받는 업체에게 충실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의상의 대부분은 돌체 앤 가바나와 아디다스의 의상이다. 본인은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메시 본인이 만든 'MESSI'라는 브랜드의 의상은 팬들조차 등을 돌렸다. 맨유 시절의 호날두처럼 패션에 신경을 쓴답시고 괴상한 차림을 하고 다니느니 그냥 얌전히 스폰 들어오는 옷을 입는 게 낫기도 하다.
-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흑인 시각장애인 소년을 초청해서 행사를 가졌다.
메시는 그 소년에게 자신과 동료 선수들의 몸을 만져서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 동영상이 퍼지자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마저 메시의 인성을 크게 극찬했다. 이외에도 메시의 선행에 대한 사례는 어마어마하게 많으며 #1 #2 #3 #4 #5 #6 팬서비스도 우수한 편이다. #1 #2#3
- 2016년 1월 16일경 SNS를 통해 비닐봉지로 만든 메시 유니폼을 입은 소년의 사진이 퍼져나갔다. 2010년부터 유니세프의 친선 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메시 본인 또한 안타까워하며 소년에게 유니폼을 선물해주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이 소년이 이라크나 터키 사람으로 추정되었으나, 네티즌 수사대의 헌신적인 수사 끝에 찾아낸 아이의 정체는 아프가니스탄[137] 에 사는 가난한 농부 집안의 '무르타자 아흐마디'라는 5살 아이였다. 축구와 메시를 좋아하는 아흐마디는 가정 형편상 유니폼을 살 돈이 없어서, 슬퍼하는 아흐마디를 위해 큰형이 비닐봉지로 메시의 유니폼을 만들어 주었다.
}}} ||
2013년 여름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교황 헌정 친선경기 전에 교황이 양팀 선수단을 접견하면서 찍은 사진.
- 국가대표 감독인 리오넬 스칼로니와는 상당히 끈끈한 친분을 자랑한다. 일단 이름이 둘 다 동일한 리오넬이고, 선수와 감독이기 이전에 둘은 2006 FIFA 월드컵 독일 당시 호세 페케르만 밑에서 똑같은 선수로서 같이 뛴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 친한 형님이 이번에는 감독으로 부임해오자 메시는 매우 반가워했다.
- 호사가들의 선수 비교에 많이 언급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해서는 "호날두는 내 라이벌 아냐…존경한다", "그는 최고의 선수다. 딱히 친해질 기회는 없었지만 그를 존중하며 라이벌로 지내고 싶지 않다"라거나 "호날두와 나는 팀을 위해 뛸 뿐, 라이벌 관계 같은 건 관심 없다."정도만 언급하는 편.
- 대한민국 한정으로 메시가 호날두를 놀리는 이미지가 생겼는데, 통칭 '좆두야'. 짤방도 그냥 평범한 사진이지만 묘하게 비웃는 것 같은 인상으로 널리 쓰인다. '메좆아'라는 제목의 호날두가 묘한 웃음을 짓는 사진도 있으며, 그 둘을 번갈아서 움짤로 만들어 쓰는 경우도 있다.
- 메시가 뜨기 전 2003년 그가 16살일 때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여 메시를 영입하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메시 측에서 한국행을 거절했다고 한다. 안종복 시절 인천이 본래 언론플레이를 굉장히 중시하는 팀이라 이전에도 티에리 앙리와 호나우두를 영입하겠다면서 과장된 인터뷰를 상당히 많이 한 적이 많아서 정말인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이미 바르셀로나가 메시를 클럽 역사상 최고의 유망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인천이 아니라 다른 유럽 빅클럽이라고 해도 내줄 일은 없었을 것이다.
- 2010년 8월 FC 바르셀로나의 방한과 관련해서 폭풍같이 까였었다. 정확히 말하면 메시만이 아니라 바르셀로나 전체가 까였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로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었던 점이 있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으로 스페인 축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팀 선수들에게 의무적인 휴가 한 달이 주어지게 되어 팀의 주축을 차지하는 스페인 선수들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팬들은 바르셀로나 2군 멤버들을 보러 간 게 아니라 메시 이외에도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비야, 카를레스 푸욜, 제라르 피케 등의 스타플레이어들을 보러 간 것이다.[140] 메시는 첫 인터뷰에서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며 믹스트존 인터뷰 거부, 출전 번복 등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첫 인터뷰는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을 거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대한민국까지 날아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상황이었고, 피곤하다는 발언도 시차 적응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피곤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뛰겠다"정도의 발언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있다. 심지어 메시가 북한, 남한도 구분 못한다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퍼졌는데 메시가 컨디션 난조로 "지금이 몇 시인지, 어딘지도 모를 정도로 피곤하다."고 농담조로 한 발언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메시 뿐만이 아니라 다니 알베스 역시 언론의 날조로 태도 논란에 휩싸였으나 실제 증언으로는 오히려 가장 친절한 선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바르셀로나의 태도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지만 당시 언론 역시 바르셀로나에게 심하게 편향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음 날 연습 경기와 그다음 인터뷰에서는 상당히 밝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산책 중에 우연히 한국 팬들이 메시를 찍으려고 할 때 메시는 오히려 이러한 팬들의 모습을 찍으며 엄지척을 날렸다. 무엇보다도 결과적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기대에 못 미치게 15분만 뛰었지만[141] 3분 만에 2골을 넣는 활약을 보이며 경기를 본 한국 팬들에게 부족하게나마 화답했다. 또한 이때 메시를 조항보다 적게 뛰게 한 것은 메시의 컨디션이 심히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당시 경기 화면을 유심히 보면 나가면서 토하는 메시를 볼 수 있다.[142] 그럼에도 여전히 사전 계약대로 하지 않았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2019년 7월 라이벌이라는 선수가 방한하여 경기 준비를 위해 인터뷰 거부, 행사 불참은 기본 정작 계약상 뛰어야하는 경기마저 벤치에만 앉고 불참한데다 분노한 관중이 메시를 외치자 적반하장 태도, 귀국 후 약올리는 듯 한 영상을 올리며 큰 논란에 휩싸이면서 각종 축구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지상파 뉴스에서까지 완벽하게 메시 방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메시가 당시 방한 후 소감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사실이 뒤늦게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글에는 감독의 결정으로 경기에 아예 못 나갈 뻔했지만 결국엔 뛸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한국 팬이 많아서 기쁘고 놀랍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메시는 경기에 못 뛴 것에 정말 어쩔수 없는 건강 상의 사정이 있었는 데다, 어차피 뛰던 말던 위약금을 물 상황이었음에도 감독의 명령까지 거스르고 조금이라도 뛰게 해달라고 한 것은 오히려 대단한 프로 의식이라고 칭찬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 브라질의 언론 '글로부이스포르치'에서 2015년 FIFA 클럽 월드컵을 맞아 낸 기사다. 어디까지나 재미로 낸 기사지만, 리버 플레이트가 메시 영입을 결정했다고 가정한 후의 몇 가지 평행 세계를 제시해 본 것이다. 예를 들어서 메시가 리버 플레이트에서 활약한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든지. 메시의 평행 우주.
- 2010년 6월 26일 기사에서는 자신이 영국의 밴드 오아시스의 광팬이라고 하면서 이번에 월드컵을 우승한다면 축하파티에 오아시스를 불러오고, 다시 재결합하게 하고 싶다고 하였다.[143] 그런데 메시가 밝히길 오아시스와 관련된 내용들은 모두 영국 언론이 지어낸 구라라고 한다.
- 메시는 즐겨듣는 노래 취향이 따로 없다고 2018년 아르헨티나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주로 아이들이나 아내가 트는 것을 듣는다고 한다.
- 리오넬 메시가 막 데뷔했었을 때, 한국에서는 "리오넬 메시는 아마도 박주영보다 못할 것 같다" 같은 반응이 남아있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까지 리오넬 메시의 패스를 받아서 어시스트로 골을 기록한 아시아 출신의 축구선수는 유일하게 박주영 단 한 명뿐이다. 그런데, 이게 다름아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기록한 아르헨티나전의 자책골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박주영은 유투브 채널 슛 포 러브에 출연해서 "(역대 한국 선수 중에서) FIFA 월드컵에서 양 쪽 진영에다 골을 다 넣어본 한국 선수는 저 밖에 없는 것 같다." 라고 당시 자책골을 넣었을 때의 상황을 자조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박주영이 월드컵에서 기록한 진짜 첫번째 골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나이지리아전이다.
- 안토니오 카사노의 차남인 리오넬 카사노의 이름은 메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자 자신의 우상인 메시의 이름을 따서 아이를 '리오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아이가 메시처럼 되는 건 불가능할 테니 나만큼만 축구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카사노처럼 되는 것도 결코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144]
- 한국 선수와 뛰어본 경력은 없지만 한국인 출신으론 최초로 바르셀로나 유스에 입단했던 정인성과 라마시아 동기였다. 해당 한국 선수 인터뷰 기사 그러나 정인성이 유스에 머물렀던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그다지 친분은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정인성이 KBS 측의 부탁을 받고 단독 인터뷰를 제안하자 당시의 인연으로 흔쾌히 수락해서 거의 무상으로 인터뷰에 응해줬다고 한다.
- 유별나게 관중난입의 타깃이 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는 관중난입계의 전설 아닌 레전드 지미점프에게 습격당해 그 패기에 눌린 듯 고분고분하게 있다 모자를 선물하고 볼키스를 날린 채 도망가는 그를 보고 황당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3년 2월 6일 스웨덴과의 평가전 때는 경기 종료 일보직전에 한 팬이 난입하더니 포옹을 하고 이마키스를 날린 뒤 도망쳤다. 이마 키스 후 울상이 되어 유니폼으로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멘붕하는 표정에 사람들 반응은 "가여운 것."
2022년 9월에 있던 자메이카와의 A매치에서도 관중이 난입해서 등에 사인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145]
- 2013년 3월 27일에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볼리비아전을 치르면서 하프타임부터 고지대 특유의 산소부족에 의한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를 보이며 골골거리다가 경기 종료 후 고산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갔다. 그러나 그 다음날 걱정하는 팬들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인증샷으로 찍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 2013년 10월,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 데포르티보에 따르면 의하면 올여름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에서 메시를 데려오기 위해 제시한 이적료가 무려 2억 5000만 유로(약 3633억)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가레스 베일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기록한 역대 최고 이적료 1억유로(약 1453억)의 2.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렇게까지 거액을 불렀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메시에게 자사 제품을 입혀 홍보하려던 아디다스에서 그 돈을 부담, 정확히는 투자한다는 것이었기에 가능했지만. 바르셀로나 측이 즉시 거절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로셀 회장은 이미 베일을 두고 선수들의 이적료 관련 의문이 불거지던 때에 “바르셀로나의 모든 선수들은 떠나고 싶다면 자신의 의지대로 떠나도 된다, 단 메시만큼은 절대 안된다"라고 할 정도로 메시만큼은 절대로 이적 못 시킨다고 단단히 못 박아두었다.[146] 여기서 한술 더 떠서 만약 메시를 데려가고 싶다면 적어도 5억 8천만 유로(약 8,612억원)를 내야하는데 이 돈을 준다 해도 안 보낼거라고 아예 확인사살까지 했다. 베일이 레알 마드리드에 100M에 팔렸는데 메시를 사가려면 580M 이상 내놓지 않으면 절대 안넘기겠다는 소리다. 일단 바르셀로나와 메시의 계약에 명시된 바이아웃은 위의 2억 5000만 유로지만 56% 세금까지 몽땅 내놓아야 된다는 것이 바르사의 조건. 이정도 금액이면 웬만한 소규모 구단을 아예 사들일수 있는 거액에다가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급 이상의 중견급 국가대표팀 엔트리 멤버를 모두 구매하고도 돈이 남는 거액이다. 선수 본인도 유소년 시절부터 자신이 뛰었던 팀을 떠날 의사가 없음을 언제나 표력하고 있었다.[147]
- 2014-15 시즌 초에 바르셀로나를 떠나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당시 보드진과의 마찰 및 지난 시즌의 각종 악재 등으로 팀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 이 때 메시를 잡은 사람이 바로 티토 빌라노바였다. 빌라노바는 당시 암으로 투병 중이었는 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수척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방문을 만류했지만 메시가 팀을 떠나려 한다는 회장의 말을 듣고는 그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절친인 핀투와 함께 병문안을 왔던 메시는 은사인 빌라노바의 수척해진 모습에 놀랐으나 "감독님, 저 떠나요."라고 이적 의사를 표시했다. 이에 빌라노바는 메시에게 절대로 팀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달라고 강권했다. 메시는 가족을 제외하면 빌라노바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빌라노바는 메시가 돌아간 뒤 1주일 뒤에 작고하고 만다. 이 때 메시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장례식장에서도 슬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장례식 다음날 메시는 바로 재계약 문서에 싸인했고 그 다음 시즌 바르셀로나는 또 한 번의 트레블을 이룩했다. 이후로도 타 구단과 링크가 나고 있으나 빌라노바와의 일을 들어 망설였다고 한다.
- 2013년 7월 25일 건강 악화로 감독에서 사임한 티토 빌라노바의 뒤를 이어 차기 감독으로 헤라르도 마르티노가 선임되자 메시가 감독을 임명했다는 논란이 생겼다. 메시와 마르티노가 같은 아르헨티나인이고 메시는 스페인 국대 제의를 거절한 채 조국 아르헨티나를 택하고 팀의 만류에도 올림픽에 출전해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던 선례가 있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다[148] 바르셀로나 차기 감독 후보로 루이스 엔리케[149] 마르티노 중 마르티노에게 존경의 말을 한 것이 그 이유.[150] 그러나 본인은 마르티노를 (사적으로) 알지도 못하고[151] 만난 적도 없을 뿐더러 그가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파라과이 대표팀에서 좋은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는 국가대표팀과 메시에 관해서 무수한 음모론적 접근들(대표적으로 불화설이라거나, 메시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선수나 감독 등의 선임에도 간섭하며 막 나간다는 식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 중 에베르 바네가의 국가대표팀 탈락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반론에 해당한다.
-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2014년 3월 루마니아와의 평가전에서 프리킥 한 번 차고 나서는 곧바로 구토를 심하게 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잦은 구토로 고생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메시가 위암 같은 큰 병에 걸렸거나 기타 다른 건강 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152] 이후로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해발 3000m 에콰도르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많이 좋아졌는데 실제로 2018년에 인터뷰에서 언급하길 지난 몇 년간 초콜릿과 탄산음료를 즐겨먹다가[153][154] 지금은 그런 음식들을 끊고 생선, 고기, 샐러드 등 체계적인 식단으로 관리받으면서 몸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10년 전과 비교해서 눈에 띄게 살이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 2014년 11월 23일 라리가 12라운드 세비야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라리가 최다골을 경신했다. 두 번째 득점 후 동료들이 모여 헹가래를 쳐주었고, 메시는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세레머니를 장식했다. 경기 종료 후 동료들과 함께 바르사에서 준비한 헌정 영상을 감상했다. 그 후 파씨오는 덤.
- 2014년 11월 26일 UEFA 챔피언스 리그 5경기 아포엘전에서는 라울 곤살레스의 챔스 최다골 기록을 넘어섰다. 이경기 또한 해트트릭이었다. 같은 해 12월 8일 에스파뇰전에서 까탈루냐 더비 최다골 기록도 해트트릭으로 갈아치웠다. 축팬들은 기록은 해트트릭으로 깨는 변태라 카더라.[155][156]
- 가봉에서 그의 태도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던 적이 있다. 사건의 연유는 다음과 같다.
Lionel Messi dressed 'like he were going to a zoo' - Gabon political party
예의를 갖추지 않고 가봉 대통령을 만났다는 이유로 구설에 올랐다. 메시는 2015년 7월 아프리카의 가봉을 방문해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을 만났다. 그런데 메시는 흰색 티셔츠에 청반바지 차림의 너무나 편안한 복장이었던 것. 설상가상 메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 등 태도가 불량했다고 한다. 가봉 정당 UPG에서는 성명을 내고 “메시는 마치 동물원에 가는 차림으로 왔다. 그는 면도도 하지 않은 지저분한 얼굴로 와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었다. 마치 땅콩을 던져줄 것처럼 보였다. 메시 같은 억만장자가 대통령을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에 예의를 갖추지 않고 나타났다. 가봉은 동물원이 아니다”라고 논평했다. 위의 가봉 대통령 관련 구설수에 대한 반박글이 올라왔다. 요약하자면 원래는 가봉 대통령이 메시를 초대한 것처럼 알려졌으나 바르셀로나의 전 동료인 사무엘 에투가 자선 행사 관련으로 그를 초대한 것. 인권단체와 가봉내 야당 측으로부터는 오히려 메시의 태도보다는 독재자 알리 봉고[157] 와 함께 사진을 찍고 어울리는 것은 독재정권을 지지한다는 뜻이나 다를 바 없다면서 깠다고 한다. 누구는 무시했다고 까고 누구는 지지했다고 까고 에투의 초대로 방문한 것이 가봉 대통령에게 알려져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는 해석이다. 위 뒷짐진 사진에 대해 세계의 네티즌들은 "한 나라의 수반을 만나며 저런 태도를 보인 것이 좋지는 못한 일이다."라고 일갈하기도 했으나 이는 이 반박글이 올라오기 전 반응이다.
- 호나우지뉴와 네이마르, 그리고 메시 세 사람에 얽힌 재밌는 일화가 있다. 07-08 시즌 비야레알 CF와 코파 델 레이 8강 1차전에서 바르셀로나가 PK를 얻어냈는데, 전담 키커였던 호나우지뉴가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하던 메시에게 PK를 양보했고 메시는 아쉽게도 실축하고 말았다. 그리고 7년 후, 다시 비야레알 CF와 코파 델 레이 4강 1차전에서 메시는 자신이 얻어낸 PK를 네이마르에게 양보했고, 이번에도 똑같이 네이마르는 실축했다.
- 2011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직후 일본 개그맨들에게 습격당했다. 지들 딴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모셔왔다고 별의 별 호들갑을 떨며 방송했으나, 우승 세리머니 도중 끌려나온 메시로서는 웬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지들끼리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낄낄대니 어이가 가출할 수밖에. 메시의 표정은 말 그대로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였는데, 여기서 한술 더떠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인 메시에게 "은퇴하면 뭐 할 거임?"이라 묻는 병크까지 있었다.[159] 메시는 "아직 멀었고 생각해본 적 없다"라 짤막하게 대답하고 바로 자리를 떠버렸다. 대회 주최 측과 사전 합의도 없이 거의 납치 수준으로 끌고 와서는 막무가내 진행을 했고 페널들의 병크로 메시 팬들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 2015년 볼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A매치를 치르러 미국 휴스턴에 왔는데, 미식축구 NFL 최고의 슈퍼스타 JJ 왓이 The best football player on the planet[160] 라는 이름으로 그와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제목과 인물은 분명히 정상회담인데 아빠와 아들이 있다.[161]
- 메시가 무시무시한 전적과 개인 기록으로 역사에 다시 없을 완벽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딱 하나, 월드컵 우승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실제로 메시가 월드컵을 우승하기만 한다면 반론의 여지 없이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를 제치고 역대 최고의 선수로 기록될 것이라 확신하는 평론가들도 많이 존재한다.[162] 본인도 월드컵 우승에 대해 강한 열망을 보였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들들 볶이기도 해서인지 타국의 팬들 뿐만 아니라 타국 선수들까지도 "메시가 월드컵을 우승하는 게 보고 싶다"고 그를 응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고통을 멈출 수만 있다면 내 발롱도르와 기꺼이 바꾸겠다고 말했고 프랭크 램파드도 슛포러브에 출연해서 "메시가 월드컵을 우승하는 그 날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였다.
- 요아힘 뢰프 독일 축구 대표팀 감독은 메시에게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메시가 참가한 최근 세 번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모두 독일에게 탈락했는데, 그중 최근 두 번을 뢰프의 독일에게 패하고 탈락했다. 그나마 뢰프가 감독이 아니었던 독일 월드컵에서조차 뢰프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밑에서 수석 코치로 있었다. 브라질 대회에서는 결승에서 만나 고군분투했지만[163] 연장 승부 끝에 마리오 괴체에게 한 방을 맞아 결국 아르헨티나는 준우승에 그쳤다. 그런데 이는 뢰프의 전술이 성공한 게 아니라 곤살로 이과인의 대삽질이 뢰프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 메시를 은퇴 선언하게 만든 주범이 다름아닌 루이스 세구라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회장이다. 원래 아르헨티나의 축구협회 회장은 훌리오 그론도나(1931~2014)가 했었고 그때까지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나 훌리오 그론도나가 2014년 7월 30일 노환으로 타계하자 임시로 루이스 세구라가 담당했는데 루이스 세구라 이 인간 비리가 극에 달한 인물이다. 세구라의 비리에 치를 떤 것이 메시가 더 이상 국가대표에서 견뎌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다.
- 2017년 4월 23일 엘 클라시코에서 승리 후 레알 마드리드의 관중 앞에서 상의를 탈의해 등번호와 이름을 보여주는 '탈의 세리머니'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이날 메시는 세르히오 라모스와 마르셀루의 거친 몸싸움 때문에 피를 흘려가면서도, 클럽 통산 500호 골을 포함한 멀티골을 넣어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를 침몰시켰다. 그야말로 "내가 메시다"를 보여준 경기력과 세레머니.
- 2016년에 이어 2017년 호나우두가 뽑은 역대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현역 선수는 메시뿐이다.
- 2016년 메시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를 만류하며 거의 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메시는 2개월 만에 은퇴를 번복했다. 이후 2017년 10월, 월드컵 남미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하드캐리하며 월드컵 예선 탈락의 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를 구해내고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의 VS 놀이가 성행하던 시절부터, 호날두는 노력형이고 메시는 순수 재능이라는 식으로 굳어지면서 양측의 팬덤이 각자 정반대의 이유로 기분 나빠했던 시절이 있었다. 호날두 역시 노력가라지만 엄청난 재능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메시 역시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유스시절부터 굉장히 노력했으며 특히 피지컬 문제를 극복하려고 무던하게 노력해 지금의 성과를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두 선수 모두가 노력하는 천재라는 게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를 특정 선수에 대한 폄하나 세간의 무지라고 만은 볼 수 없는 것이 "호날두는 노력의 산물이지만 메시의 능력은 순수한 재능이다."라는 말은 두 선수의 주변인들 인터뷰에서도 백이면 백 등장하는 말이다. 호날두가 연습벌레지만 메시는 사생활도 깔끔하고 연습 때도 성실하고 모범적이라 알려져 있는데 상대 비교에서 어째서 이런 말이 나오는 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자서전에서 본인이 한 인터뷰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인터뷰에 따르면 어린 시절부터 24시간 축구공을 끼고 살기는 했지만 자신은 그때 그때 몸이 가는 대로 플레이하는 스타일이고 호나우지뉴처럼 완벽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타입은 아니라 특정 스킬을 배우거나 따로 연습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거기다 페인트 같은 동작 역시도 고안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164] 즉, 메시의 모든 동작과 스킬들은 타인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것이며 심지어 스킬을 연습하거나 고안한 적도 없는데도 이 정도라는 소리다. 이러니 주변인들이 앞다투어 저건 신이 내려준 재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기함하는 게 어느 정도 이해도 된다.
- 패션을 굉장히 신경 쓴다고 밝혔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선수와 공격수 5인을 선정했는데, 2010년대 최고의 선수와 공격수들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 자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자신과 같은 등번호를 달고 뛰는, 에스테파니아 바니니와 함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167]
- 2019년 세계 최초로 6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세계 언론들이 찬사를 쏟아냈다. 스페인의 유명 스포츠지인 <마르카>는 메시가 그간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사진들을 모아 페이지를 구성하며,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유지했는지를 시간의 흐름을 통해 돌이켰으며 또 다른 스페인 매체 <스포르트>는 “축구엔 오직 하나의 신이 있을 뿐이다”라는 헤드라인을 사용하면서 메시가 황금빛으로 가득한 여섯 개의 발롱도르 앞에 서 있는 이미지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