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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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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권교체는 전임 국가수반의 임기가 종료되고 후임 국가수반이 취임하면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뜻한다. 다만 제6공화국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흔히 집권당이 교체되는 정권교체만을 "정권교체"라 일컫는다.
특정 세력이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기 어려운 편향된 환경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른다.
4.19 혁명과 같은 민중혁명에 의한 정권교체와 5.16 군사정변과 같은 쿠데타에 의한 정권교체 같이 비헌법적인 정권교체도 있다.
2. 민주주의의 척도[편집]
불과 20세기 후반 정도만 해도 민주주의와 의회 정치가 확립된 국가들을 제외하면 정권교체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흔하게 일어났다. 한국의 5.16 군사정변, 12.12 군사반란 역시 이러한 역사적 그림자이다. 무력을 통한 인명희생을 동반하지 않는 정권교체가 가능한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정치체계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적들의 피로 권력을 쟁취했던 시기와 달리 국민들의 투표를 통한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선진적인 정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어떤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정세가 안정되어 있고, 표면적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체적 집권세력이 바뀌는 '수평적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작동에 뭔가 문제가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민주주의의 공고화(consolidation)에 대해 "두 번의 정권 교체 테스트"(two turnover test)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민주주의적 정부가 두 번 정권교체 될 때 그 민주주의가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 같이 정권교체의 빈도가 상당히 드문 국가에 대해서도 이런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존재하나,[1]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 미국, 영국 등 영미권은 일찌감치 이러한 기준을 통과하였고, 20세기 후반 민주화가 이행된 대한민국이나 대만, 스페인, 칠레 같은 일부 중남미 국가 역시 통과하였다는 점에서 헌팅턴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정치 선진국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이명박의 당선에 따른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이다. 또한 한국은 2017년, 문재인 후보의 당선 및 2022년,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네 번째까지 함으로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편에 속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3. 유형[편집]
3.1. 동일 왕조 내의 정권교체[편집]
- 쿠데타가 발생하여 국왕이 폐위된 후 다른 왕족(주로 왕자)으로의 승계하는 정권교체. 대표적으로 조선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서 김종서 세력을 없애고 단종을 대신해 섭정을 하다가 세조로 즉위하고 관학파가 훈구파로 바뀌어서 집권하는 경우, 조선 연산군이 중종반정 세력의 의해 폐위되어 조선 중종이 즉위하는 등, 조선 광해군이 서인세력에 의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서인 세력이 집권하며 대북세력이 멸망하는 경우가 있다.
- 예송논쟁이나 환국이나 옥사로 집권당파가 바뀌는 경우 대표적으로 현종 때 갑인예송으로 남인 집권 → 서인 실각하나 야당으로 영향력 행사함 → 숙종 때 경신환국으로 서인 재집권, 남인 실각 → 기사환국으로 남인 재집권, 서인 재실각 → 갑술환국으로 서인 재집권, 남인 몰락 → 신사의 옥으로 노론 반쯤 집권, 소론 반쯤 실각 → 이잠의 옥사와 임부의 옥사로 노론 영향력 확대, 소론 영향력 축소 → 병신처분으로 노론 완전 집권 성공, 소론 완전 실각 → 신임환국으로 소론 재집권, 노론 실각 → 을사처분으로 노론 재집권, 소론 재실각 → 정미환국으로 소론 재집권, 노론 재실각 → 기유처분으로 노소론 공동 집권 → 경신처분으로 노론 반쯤 집권, 소론 반쯤 실각 → 신유대훈으로 노론 영향력 확대, 소론 영향력 축소 → 나주 괘서 사건으로 노론 단독 집권, 소론과 남인 몰락을 들 수 있다.
3.2. 왕조교체[편집]
같은 문화권 내에서 어느 세습왕조가 쿠데타에 의하여 멸망 후 다른 세습왕조가 들어서는 정권교체. 대표적으로 태봉이 멸망하여 궁예가 폐위된후 고려가 건국되어 고려 태조가 즉위한 경우와 고려가 멸망하여 고려 공양왕이 폐위된 후 조선이 건국되어 조선 태조가 즉위한 경우가 있다.
이렇게 왕족의 가문 즉 혈통(성)이 바뀐것을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3.3. 민주주의 국가[편집]
대선 혹은 총선에서 집권 정당이 패배 이후 당선된 정당의 후보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정권교체.
한국의 경우 4.19 혁명 이후 실시된 제5대 총선 결과, 상하원 모두 민주당(1955년)이 다수석을 차지해 자유당에서 민주당(1955년)으로 정권이 교체되어 장면 내각이 집권한 사례가 최초이고, 87년 민주화로 인한 87년 체제 이후에는 제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후보 이회창이 낙선하고 새정치국민회의의 후보 김대중이 당선되어 취임한 사례가 최초이다.
정당의 이합집산 등의 이유로 전임 대통령 시기와 비교하여 당선자와 정당이 모두 달라졌다 하더라도 실체적인 집권세력이 그대로라면 정권교체로 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2]
실체적인 집권세력이 바뀌었을 경우 혁명과 구분하여 수평적 정권교체라고 한다.
3.3.1. 당내 세력 교체[편집]
당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2022년 기준 4번의 정권교체[3] , 같은 정당에서 주류 계파와 거리를 두거나 아예 대립각을 세우던 다른 계파 출신 다른 인물이 정권을 잡는 것도[4] 정권교체로 여기는 여론도 상당하다. 때문에 여당을 그대로 투표한다고 해서 변화를 바라지 않다고만은 해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친이와 친박의 관계에서(17대 대선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서로의 비리를 가지고 팩트폭행을 벌이고(...)[5] 공천 학살을 한 차례씩 주고받기도 했다.) 지지율이 떨어지던 이명박과 친이를 손절하고 여당 안의 야당 포지션을 잡은 박근혜와 친박의 집권을 보수정당 재집권이 아닌 정권교체로 여긴 이들도 많았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주장한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문재인과 친노를 이길 수 있었다. 실제로 박근혜 측에서도 본인이 당선되어도 정권교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이명박근혜' 문서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때문에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 해도 당이 바뀌는 정권교체로 이어지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양당 체제 하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이 고착화 되고, 여론에 잘 잡히지 않는 샤이 지지층도 있거니와 양당 후보 다 싫어서 사표론 무시하고 기권이나 제3당 후보나 군소 후보, 또는 아예 무효표로 소신 투표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대 대선 시즌만 봐도 국민의힘으로의 정권교체 여론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못해도 10%p, 많으면 20%p 이상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이재명과 고작 0.73%p에 불과한 표차로 정권교체를 하게된다. 정권교체론이 늘 과반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 득표율(48.56%)은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으며[6] , 이재명 후보는 대선날까지 여조에 집계된 어떤 정권재창출 여론보다도 훨씬 높은 득표율(47.83%)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심지어 18대 대선 때는 민주통합당으로의 정권교체 여론이 새누리당으로의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컸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가 패배했다.
실질적으로 당이 바뀌는 정권교체는 해당 대통령의 임기 말 최저 지지율이 한자릿수대를 찍을 정도의 극심한 레임덕을 앓아야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역대 정권교체당한 대통령들의 최저 지지율은 김영삼의 6%, 노무현의 12%, 박근혜의 4% 등 심각하게 낮았으며, 문재인은 예외적으로 임기 말까지 40%대 초반 선까지 사수했음에도 정권교체당했다. 반대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대통령들은 김대중 24%, 이명박 23% 등 처참한 수준의 레임덕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노태우는 12%였지만 이후 김영삼으로의 정권 재창출은 군사정부를 완전히 끝내는 정권 교체로 볼 여지가 있다.
3.4. 독재 국가[편집]
이 경우에는 독재자가 갑자기 사망하거나, 혁명, 쿠데타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 나세르의 사망으로 사다트가 집권했던 이집트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10.26 사건으로 박정희의 사망 이후 12.12 사건으로 쿠데타를 시도해 집권한 전두환의 경우가 있다.
4. 사례[편집]
4.1. 아시아[편집]
4.1.1. 대한민국[편집]
대한민국 정부수립 시점인 대한민국 제1공화국부터 계산.
4.1.2. 중화민국(대만)[편집]
중화민국의 경우는 과거에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이렇게 양당체제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무찌르고 승리한 중국이 나중에 사상 문제로 인한 국공내전을 벌였고 거기서 승리한 공산당이 국민당을 타이완 섬으로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차지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양당 체제를 강력히 거부하고 오직 일당 체제만을 고집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권교체가 없다. 하지만 대만은 양당 체제로 인한 정권교체가 빈번하다.[10]
4.1.3. 일본[편집]
연합군 점령하 일본 시기를 제외하고 이후 주권을 회복하고 국가승계를 거친 현대 일본부터 계산.[11]
4.1.4. 몽골[편집]
민주화 이후부터 서술
4.1.5. 이란[편집]
이란의 국가원수이자 최고지도자는 종신직 성직자인 라흐바르이고, 이란 대통령은 정부수반에 해당한다.[19] 또한 이란은 고정된 정당이 존재하지 않으며, 두 정치 파벌 개혁파와 원칙파가 정계를 주도한디.
4.1.6. 인도[편집]
4.2. 유럽[편집]
4.2.1. 독일[편집]
나치 독일 붕괴 이후 서독부터 계산.
독일은 양대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의 대연정이 빈번해서, 대연정을 하다가 총리직이 대연정을 구성하던 다른 당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정권교체로 간주한다.
4.2.2. 프랑스[편집]
프랑스 제5공화국은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대통령 소속당과 총리직을 차지한 의회 다수당이 다른 동거정부가 형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상태에서 총리 소속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경우도 정권교체로 간주한다.
4.2.3. 스웨덴[편집]
현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프 즉위 이후부터 계산
4.2.4. 오스트리아[편집]
오스트리아에서는 간간히 사민당과 인민당의 좌우 대연정이 수립되기도 했는데 대연정 중 총리의 소속 정당이 바뀐 경우에도 기입한다.
4.2.5. 우크라이나[편집]
4.2.6. 헝가리[편집]
4.3. 아메리카[편집]
4.3.1. 미국[편집]
4.3.2. 캐나다[편집]
- 1874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존 맥도널드 경 (자유보수당) → 윌리엄 매켄지 (캐나다 자유당)
- 1878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윌리엄 매켄지 (캐나다 자유당) → 존 맥도널드 경 (자유보수당)
- 1896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찰스 퍼터 경 (캐나다 보수당) → 윌프리드 로리에 경 (캐나다 자유당)
- 1911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윌프리드 로리에 경 (캐나다 자유당) → 로버트 보든 경 (캐나다 보수당)
- 1921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아서 미언 (자유보수당)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캐나다 자유당)
- 1926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캐나다 자유당) → 아서 미언 (캐나다 보수당)
- 1926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아서 미언 (캐나다 보수당)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캐나다 자유당)
- 1930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캐나다 자유당) → 리처드 B. 베넷 자작 (캐나다 보수당)
- 1935년 캐나다 연방 선거 : 리처드 B. 베넷 자작 (캐나다 보수당)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캐나다 자유당)
- 1957년 캐나다 연방 선거 : 루이 생로랑 (캐나다 자유당) → 존 디펜베이커 (캐나다 진보보수당)
- 1963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존 디펜베이커 (캐나다 진보보수당) → 레스터 피어슨 (캐나다 자유당)
- 1979년 캐나다 연방 선거 :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자유당) → 조 클라크 (캐나다 진보보수당)
- 1980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조 클라크 (캐나다 진보보수당) →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자유당)
- 1984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존 터너 (캐나다 자유당) → 브라이언 멀로니 (캐나다 진보보수당)
- 1993년 캐나다 연방 선거 : 킴 캠벨 (캐나다 진보보수당) → 장 크레티앵 (캐나다 자유당)
- 2006년 캐나다 연방 선거 : 폴 마틴 (캐나다 자유당) → 스티븐 하퍼 (캐나다 보수당)
- 2015년 캐나다 연방 선거 : 스티븐 하퍼 (캐나다 보수당) →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자유당)
4.3.3. 콜롬비아[편집]
콜롬비아는 우파 성향의 정부가 집권한 역사가 길다. 그러나 2022년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좌익 게릴라 출신의 구스타보 페트로가 당선되어, 콜롬비아에서는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4.3.4. 브라질[편집]
- 브라질 제6공화국
4.4. 아프리카[편집]
4.4.1.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1994년 총선 결과, 46년 동안 집권해온 국민당 정권에서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 국민회의로 정권교체된 이후 현재까지 아프리카 국민회의가 집권하고 있다.
4.5. 오세아니아[편집]
4.5.1. 호주[편집]
1986년 완전 독립 이후부터 서술.
호주는 노동당과 자유당(국민당과 연정)의 양당제 국가로 여러번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왔다.
5. 여담[편집]
일본에서는 이 개념을 '정권교대'(政権交代)라고 한다. 교체(交替)의 체(替)가 상용한자 외인 것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그렇게 됐다. 한국에서 쓰는 '교체'와 딱히 의미상의 차이를 두려고 '교대'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니며 일본어 발음은 동일하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것으로 유명한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흔히 '정권교대 선거'(政権交代選挙)이라고 불리곤 한다.
러시아 제1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있다.
[1] 일본은 이 기준에 미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일본을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반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자료를 보아도 일본은 선거의 공정성, 정부 기능, 정치적 권리, 시민자유 등 그 어느 분야에서도 나머지 G7, EU 평균, 한국, 대만, 호주 등에 밀리지 않는다. 일본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진행된 정치적 양극화(반드시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전에는 다를 게 없었다. 일본은 1945년 이래 정치적, 사회적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국가이며, 그중 반 이상의 기간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정치와 사회를 가진 선진국이었다. 비록 일당 우위 정당제이기는 하나 자민당 정권들은 평가에 관계없이 그 아래서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정권이다. 북유럽, 캐나다 등에서 보듯 일당 우위 정당제라고 해서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본 기준 외에도 아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서구의 정치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가는 70년대 전후로 지속적인 반론과 재반론이 이루어지곤 했다.[2]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는 이후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도 바뀌었으나 거기서 배출된 노무현을 정권교체로 보는 시각은 적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는 한 세트로 묶여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재창출로 보는 편.[3] 1998년 한나라당 → 새정치국민회의,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 한나라당, 2017년 자유한국당 → 더불어민주당, 2022년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이 있다.[4] 그래서 20대 대선 때에는 설령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이 당선되었더라도 정권재창출보다는 정권교체에 가깝게 되었을 거라는 시각이 많다. 이재명은 진보 성향 비문재인의 수장이기 때문인데다, 문재인과 이재명은 19대 대선 시기 서로 셀 수 없이 많은 마타도어를 주고 받았고, 문 집권 이후에도 이 의원이 당시 국내 최다인구 지자체 수장으로서 재난지원금이나 지역사랑상품권 문제를 놓고 거리낌 없이 청와대를 들이박는 등 같은 당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열성 지지자들인 극문, 찢빠 또한 철천지 원수 사이다. 다만 문재인의 고정 지지층 자체는 임기 종료까지 온존했기 때문에 20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이재명은 문재인과의 대립을 자제하고, 문재인도 이재명과 뜻을 함께 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다.[5]
이후 서로의 비리로 팩폭을 벌인 이 두명은 둘 다 감옥에 가게 된다...[6] 하지만 민주화 이후 당선자가 50% 이상을 득표한 경우는 현재까지도 18대 대선의 박근혜가 유일하다. 열린우리당의 연이은 실정과 레임덕, 그리고 높은 정권교체 열망 속에서 한나라당은 누가 나와도 당선이 확정인 17대 대선에서도 이명박은 과반 득표에 실패한다. 그만큼 과반 득표는 쉬운 일이 아니다.[7]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총선으로 인한 정권교체이자 첫번째 정권교체. 이때는 한국 역사상 유일하게 집권당을 견제할 정당이 없었다. 당시 결과를 보면 정원 233명 중에서 민주당 175석, 사회대중당 4석, 자유당 2석, 한국사회당•통일당•헌정동지회 1석, 무소속 49석으로 민주당 1당 독주 체제가 완성되었다. 4.19 혁명을 바탕으로 이뤄졌으므로 좁은 의미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아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부터 총선이 실시되기까지의 과정 자체는 당시의 법과 제도가 정하는 바에 따라 이뤄졌기에 대놓고 총구를 들이댄 이후 두 차례의 쿠데타와는 달랐다. 그러나 민주당은 윤보선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파와 장면 총리를 지지하는 신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구파가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면서 갈라졌고, 이로써 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민주당계 정당 간의 양당제가 형성되었다. 다만 의원내각제라서 정부수반은 윤보선 대통령이 아닌 장면 총리였기에, 5.16 쿠데타 직전까지 민주당이 여당 지위를 유지했다.[8] 최규하 본인은 문민 관료였으나, 군부정권의 총리였기에 사실상 군부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9] 제6공화국에서 정권교체는 모두 네 번 일어났는데, 첫 세 번은 전임 대통령이 소속 정당을 탈당하거나 혹은 탄핵된 상태로서 명목상의 여당은 없는 상황이었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여당이 있는 상황, 즉 대통령이 여당에 당적을 두고서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던 상황의 대통령 선거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처음이다.[실질적] A B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미 탈당하여 무소속 신분이었으나 편의상 이렇게 표현함.[10] 다만 대만도 정권교체가 빈번하게 된 것은 마치 한국처럼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만도 국부천대 이후로 장기간 독재를 경험했다. 2000년에 민주진보당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되면서 정권교체 했다.[11] 연합군 점령하 일본 시기도 포함한다면 자유당과 민주당의 제1차 요시다 내각에서 사회당, 민주당, 국민협동당의 가타야마 내각으로, 사회당, 민주당, 국민협동당의 아시다 내각에서 다시 제2차 요시다 내각 교체된 바 있다.[12] 연립여당: 일본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민사당, 신당 사키가케, 사회민주연합[13] 연립여당: 공명당, 일본신당, 민사당, 사회민주연합[14] 연립여당: 자유민주당, 신당 사키가케[15] 연립여당: 공명당[16] 연립여당: 사회민주당, 국민신당[17] 연립여당: 국민신당[18] 연립여당: 공명당[19] 라흐바르가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행정 등, 일정 부분 라흐바르의 개입을 받을 수 있다.[20] 사실 에마뉘엘 마크롱도 사회당 출신이긴 하나, 그가 세운 앙 마르슈는 중도에 가깝다.[21] 연립여당: 온건당, 국민당, 기독교민주주의자[22] 연립여당: 국민당[23]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4]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5]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6]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7] 연립여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8] 총선은 1999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 문제로 인하여 인민당 내각은 2000년 2월에 들어섬[29] 총선은 2006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문제로인하여 사회민주당 내각은 2007년 1월에 들어섬[30]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31]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32] 헝가리 사회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되어 총리직에 올랐으나 무소속을 유지했다.
이후 서로의 비리로 팩폭을 벌인 이 두명은 둘 다 감옥에 가게 된다...[6] 하지만 민주화 이후 당선자가 50% 이상을 득표한 경우는 현재까지도 18대 대선의 박근혜가 유일하다. 열린우리당의 연이은 실정과 레임덕, 그리고 높은 정권교체 열망 속에서 한나라당은 누가 나와도 당선이 확정인 17대 대선에서도 이명박은 과반 득표에 실패한다. 그만큼 과반 득표는 쉬운 일이 아니다.[7]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총선으로 인한 정권교체이자 첫번째 정권교체. 이때는 한국 역사상 유일하게 집권당을 견제할 정당이 없었다. 당시 결과를 보면 정원 233명 중에서 민주당 175석, 사회대중당 4석, 자유당 2석, 한국사회당•통일당•헌정동지회 1석, 무소속 49석으로 민주당 1당 독주 체제가 완성되었다. 4.19 혁명을 바탕으로 이뤄졌으므로 좁은 의미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아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부터 총선이 실시되기까지의 과정 자체는 당시의 법과 제도가 정하는 바에 따라 이뤄졌기에 대놓고 총구를 들이댄 이후 두 차례의 쿠데타와는 달랐다. 그러나 민주당은 윤보선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파와 장면 총리를 지지하는 신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구파가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면서 갈라졌고, 이로써 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민주당계 정당 간의 양당제가 형성되었다. 다만 의원내각제라서 정부수반은 윤보선 대통령이 아닌 장면 총리였기에, 5.16 쿠데타 직전까지 민주당이 여당 지위를 유지했다.[8] 최규하 본인은 문민 관료였으나, 군부정권의 총리였기에 사실상 군부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9] 제6공화국에서 정권교체는 모두 네 번 일어났는데, 첫 세 번은 전임 대통령이 소속 정당을 탈당하거나 혹은 탄핵된 상태로서 명목상의 여당은 없는 상황이었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여당이 있는 상황, 즉 대통령이 여당에 당적을 두고서 정상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던 상황의 대통령 선거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처음이다.[실질적] A B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미 탈당하여 무소속 신분이었으나 편의상 이렇게 표현함.[10] 다만 대만도 정권교체가 빈번하게 된 것은 마치 한국처럼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만도 국부천대 이후로 장기간 독재를 경험했다. 2000년에 민주진보당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되면서 정권교체 했다.[11] 연합군 점령하 일본 시기도 포함한다면 자유당과 민주당의 제1차 요시다 내각에서 사회당, 민주당, 국민협동당의 가타야마 내각으로, 사회당, 민주당, 국민협동당의 아시다 내각에서 다시 제2차 요시다 내각 교체된 바 있다.[12] 연립여당: 일본사회당, 신생당, 공명당, 민사당, 신당 사키가케, 사회민주연합[13] 연립여당: 공명당, 일본신당, 민사당, 사회민주연합[14] 연립여당: 자유민주당, 신당 사키가케[15] 연립여당: 공명당[16] 연립여당: 사회민주당, 국민신당[17] 연립여당: 국민신당[18] 연립여당: 공명당[19] 라흐바르가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행정 등, 일정 부분 라흐바르의 개입을 받을 수 있다.[20] 사실 에마뉘엘 마크롱도 사회당 출신이긴 하나, 그가 세운 앙 마르슈는 중도에 가깝다.[21] 연립여당: 온건당, 국민당, 기독교민주주의자[22] 연립여당: 국민당[23]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4]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5]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6]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7] 연립여당: 자유당, 기독교민주주의자[28] 총선은 1999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 문제로 인하여 인민당 내각은 2000년 2월에 들어섬[29] 총선은 2006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문제로인하여 사회민주당 내각은 2007년 1월에 들어섬[30]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31]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32] 헝가리 사회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되어 총리직에 올랐으나 무소속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