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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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悤言
(858~938)
1. 개요[편집]
후삼국시대, 고려초기의 호족. 벽진 이씨의 시조.
본거지는 벽진군으로 오늘날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벽진 지역의 호족으로서 신라 말 혼란기에 도적들이 성주 주변 지역을 장악하자 사병을 거느리고 성을 굳게 지켰다.
벽진이씨 어르신 중에서 성산이씨와 벽진이씨가 과거 남매 간에 갈라진 집안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성주육이씨(星州六李氏)가 동성동본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것을 보면 같은 성주의 호족인 이능일의 성산이씨 집안과도 가까웠던 것으로 유추된다.
이러한 이총언의 벽진이씨는 성주에 난 두 이씨가 있으니 하나는 벽진장군 이총언(李悤言)의 후예며, 다른 하나는 사공 이능일(李能一)의 후예라는 기록이 있어[1] 조선시대까지도 이능일 세가와 함께 성주 지방을 양분했던 유력 가문이었음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2. 생애[편집]
후삼국시대 영남지역 호족들이 그렇듯 친신라 성향으로 작은 독립세력을 형성하고 수성하고 있었으나 도적과 후백제의 위협 앞에서 작은 세력으로서 전망이 나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막 궁예를 쫓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왕조의 기틀을 다질 필요가 있었는데, 이에 이총언은 아들 이영(李永)을 보내 왕건 아래에서 일하게 하였다.
또한 이총언은 벽진군에 도적들이 기승하자 이를 평정하고, 치안을 유지하며 성주 일대를 온존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으로써 왕건이 벽진장군(碧珍將軍)으로 이총언을 제수하며 고려 개국공신에 올랐다.
벽진군은 후백제군이 고려의 동맹인 신라와 다툴 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 근처에 있었으므로, 이능일과 이총언이 친고려 세력이 되면서 고려의 통일전쟁 내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사후 그의 후손들은 벽진을 본관으로 삼는 벽진 이씨가 되어 조선시대 까지 사대부가로서 명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태조 왕건에서는 김영인(1940)이 연기하였다. 이총언이 도적들을 평정한 일화를 각색한 대야성 침공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후백제군은 벽진군을 점령하기 위해 대야성을 3번째로 침공하며 따로 신검과 박영규, 능환 등을 포함한 병사들 5천 명을 보냈는데, 이총언은 1천 명도 안되는 군사로 신검의 군사들을 말 그대로 개박살내며 제대로 굴욕을 주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벽진군으로 쳐들어온 백제군 총사 신검 역의 배우 이광기가 하필 본관이 벽진 이씨로 이총언의 33대손이라, 비록 드라마이긴 해도 까마득한 후손과 가문의 시조가 맞서싸우는 실로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 이 사실이 알려져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벽진 이씨 문중의 일부 어르신들은 이광기에게 어떻게 조상님께 무례를 범하냐고 호되게 꾸짖었던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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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동운부군옥 권 9 상성지장리자조(上聲紙章俚字條) 기사. 원문은 星州李有二派一則碧珍將軍李悤言之後又有司空李能一之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