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1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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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퀴즈 온 더 블럭의 115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
1. 개요[편집]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115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
2. 첫 번째 참가자: 한재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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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가 주목하는 첼리스트 한재민 자기는 '최연소' 수식어가 따라다닌다.16살의 나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첼로를 전공하여 최연소 입학하고, 2020 재오르네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1] 에서 최연소 우승까지 거머줘 세계적으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 입장하자마자 악기를 셋팅하였고 이를 본 두 자기는 감탄했다.
- 최연소 수식어의 대한 부담은 전혀없다고 한다.
-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에 최연소의 나이로 우승했으며, 간단하게 소개했다.
- 주니어 콩그루가 아닌 성인 콩쿠르에 참가한 이유는 큰 욕심없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당시 결승전 참가자들은 나이가 최소 10살 이상이였다.
- 한재민 자기는 1차 비디오 예선을 전혀 기대 안 하고 접수비 100유로를 냈다고 한다. 이 때 자기의 아버지가 될 것 같냐고 물어봤는데, 그는 '이거 안될 거야' 했더니 아빠가 '아 10만원 날렸네' 하시더라"라고 전해 웃음을 안겼다.
- 결선 당시 마지막 순서였다는 한재민은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목표를 이뤘다 생각했었고 세 명이 결선에 올라갔으니까 '못해도 3등이다' 했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고 한다.
- 한재민 자기는 연주를 마치고 어땠냐는 질문에 운 좋으면 우승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 심사위원 중 한명이 챌리스트 정명화 자기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5~6학년때 첼로를 배웠다고 한다. 현재 정명화 자기가 미국에 있어 오랫동안 못보다가 콩쿠르에서 오랫만에 봤는데 전화로 잘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 우승상금은 15,000유로[2] 인데, 어디에 썼는지에 대해 물아봤다. 그는 "첼로 활을 바꾸고 싶어서 통장에 모아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두 자기는 "대체 이 활이 얼마길래"라며 그가 가져온 악기를 바라봤다. 이에 한재민 자기는 악기도 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비싼 건 활도 억대가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 경연 당시 사용한 악기는 1700년대에 만든 악기로 무려 3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악기사에서 제공해줬다고 한다. 현재 자기가 사용하는 악기 역시 억대지만 무상 대여를 받았다고 한다.
- 큰 자기는 악기가 오래될수록 다른 게 뭐냐고 질문했다. 이에 한재민 자기는 악기가 오래될 수록 소리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한다.[3]
- 이후 한재민 자기는 두 자기를 위해 두 곡을 연주했다.
- 하루 연습량에 대해 물어봤다. 보통 5~6 시간, 최대 10시간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하루라도 쉬게 되면 감각이 무너지고 음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 입학 후 일주일 쉬니까 연주가 달라진다고 하였다. 2세가 생긴다면 웬만하면 시키지 말라고 조언했다.
- 목표에 대해 묻자 그는 사람들이 음악을 진심으로 하는 첼리스트란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게 궁극적인 최종목표라고 전했다.
3. 두 번째 참가자: 송미라&이찬민[편집]
- 미국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태권도로 세상을 들썩이게 한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 송미라자기와, 이찬민 자기는 2009년 창단 이후 100여 개 나라를 방문해 태권도 공연을 선보였다.
- 둘 다 97년생이다.
- 방문하자마자 태권도 시범단의 화려하고 파워풀한 공연을 펼쳤다. 두 자기는 진행을 놓고 감탄하였다.
- 참여는 두 자기만 참여했지만 다른 시범단 선수들도 같이 구경하였다.
- 이찬민 자기는 아카페에서 출연하였다.
- WT(세계 태권도연맹 시범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출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탈리아 아갓텔에서 그냥 태권도를 세계에 알리고자 나간 것이었는데 골든버저를 받아 바로 결승전에 진출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 19호 인해 무산되었으나, 이 영상을 본 미국 아갓텔 제작진들에게 제의가 와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 출연 연락을 받을 당시 모두 "꿈의 무대였다면서 미국이란 곳에 태권도를 홍보하려는 마음가짐, 예상외로 그런게 터지니 벅찬 감동이었다고 당시의 감정을 전했다.
- 기억에 남는 심사평은 송미라 자기는 여자들도 남자들만큼 멋있다고 평을 내렸다. 이찬민 자기의 경우, 깐깐하고 독설로 유명한 사이먼이 우리 무대를 보고 굉장한 무대라고 극찬의 심사평을 내렸다고 한다.
- 대회 심사는 2개월간 준비했으며, 충분히 연습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상의 위험이 있다보니 항상 초조하고 잘 못보게 된다고 한다.
- 우승상금이 한화로 12억이라고 하며, 체제비와 소정의 용돈을 받았다고 한다. 그 돈들은 식비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찬민 자기는 식비와 개인 소지품을 샀다고 한다.
- 송미라 자기는 9살 때부터 방화동에 강익필 관장님에게 배웠다고 한다. 이에 반해 이찬민 자기는 6살 때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는 도장에서 배웠다고 한다.
- 시범단에 가게 된 계기에 이야기했다. 송미라 자기는 품세 전공이었으나 지인의 제의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이찬민 자기는 겨루기를 했지만 안 어울린다는 이유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이후 두 자기의 시범을 직접 보여줬다.
- 작은 자기도 무엇보다 비공인 2단을 땃는데, 지금 기록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가양동 체육관에 다닌 사진이 있다면서 양발을 날아서 격파를 두번이나 성공했다.[4] 이후 박수갈채를 쏟아졌고 구구단 2단이라면서 못믿은 큰 자기도 "조셉, 2단 맞네"라며 그제서야 믿었다.
- 기억에 남는 공연은 두 자기들의 공통적으로 2018년 평양 공연한 무대라고 한다. 송미라 자기는 북한 선수와 함께 공연한게 인상 깊은 반면, 이찬민 자기는 옥류관이라고 한다.
- 태권도를 알리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중국이 최근에 김치, 태권도 등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려고 하고 있는게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때문에세계 수 많은 나라들을 직접 방문해 태권도를 선보이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 아쉽게도 유퀴즈 문제는 풀지 않고 마무리를 지었다.
4. 세 번째 참가자: 강형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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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강형원 자기는 지난 1975년 고향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여 미국에서 자랐다고 한다. 33년간 LA 타임즈, AP 통신, 로이터 통신 등 세계적인 언론사와 백악관 사진기자로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LA 폭동, 6월 민주항쟁, 9·11 테러 같은 역사적 현장을 취재하였다고 한다.
- 유퀴즈에 대해 무슨 프로인줄 몰랐고 큰 자기는 오빠 강남스타일을 보고 처음 봤다고 한다. 작은 자기는 당연히 모른다.
- 퓰리처상을 만든 풀리처가 누군지 간단하게 설명했다.
- LA 폭동을 회상했다. 그 당시 LA 폭동으로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 당시에 백인 위주의 주류 언론들이 자신의 국민들만을 보호하려고 했고 언론사에도 한국말이 되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었다고 한다. 이에 LA 폭동으로 피해를 입은 한인들을 대변하고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사진으로 제대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 피해를 입은 한인들을 위해 한인청년단들이 직접 나서 지켜줬는데, 어느 18살의 청년이 안타깝게 사망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다.
- 두번째로 플리처상을 받게 된 사연에 대해 공개했다.
-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기록하기 위해 한국에 잠시 갔다고 한다. 당시 강형원 지기는 막 대학 졸업하고 LA타임스에서 인턴을 하던 중 한국소식을 들었고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갔다고 한다. 이후 사진을 공개하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 그는 언론의 역할은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완성되려면 국민들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봐야 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 백악관 사진 기자로도 활동했는데, 클리턴 행정부에 막바지에 근무했고 그 다음 대통령이었던 부시 대통령의 첫번째 공식 사진을 자신이 촬영했다고 한다.
-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만큼 그는 이름도 한국 이름을 고수한다고 했다. 대통령들에게 '형원'이라 설명했다는 그는 이름이 좀 길고 어려워서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클린턴 대통령도 내게 형이라 불렀다고 한다.
- 백악관식 식사에 대해 개인적인 궁금증을 묻자 그는 미국이 부자나라지만 인색하다며,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해결했다고 한다. 김치도 테이크아웃해서 먹었는데, 백악관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먹었다고 한다.
- 백악관에서 일했던 자기의 시선에서의 미국 문화는 평등주의 사회라고 하며, 특권은 역할에 맞출 뿐 개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도 여러번 타봤다고 한다. 또 대부분 군인, 보안이 엄격하다고 한다. 기내식은 비지니스 클래식에 버금가는 식단을 준비했다고 한다.
- 작년 6월에 한국에 왔다고 한다. 현재 그는 우리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취재한다고 한다. 이후 사진을 몇 개 가져와 우리문화를 소개했다.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사진이 인터넷에 만국 언어로, 언어 장벽을 넘어 사진으로 첫 인상이 남기 때문에, 내 사진을 통해 수천년이 지나도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려 작업 중이다고 말했다.
5. 마지막 참가자: 김은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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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자기는 구글에서 수석으로 입사한 디자이너라고 한다. 그녀는 음성인식디자인을 맡고 있다고 한다.
- 미국 실리콘 벨리에서 일하고 현재는 잠시 한국에 휴가로 머물고 있다고 한다.
- 실리콘 벨리에서는 페이스북, 애플, 테슬라, 구글, 우저, 에어비앤비 등 흔히 알고 있는 사이트들의 본사에 있다고 한다.
- 수석 디자이너의 할일을 묻자 김은주 자기는 여러 디자인 요소들을 조합해 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 구글 어시스턴트 팀에서 수백명의 디자이너를 통솔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 김은주 자기는 25명과 일하고 있다고 한다.
- 입사한지 3년 일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다시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다시 한국에 왔다고 한다.
- 또한 미국에 일하던 중 삼성에 제의가 왔었다고 한다. 당시 큰 자기가 차고 있는 스마트워치를 디자인 했다고 밝혔다.
- 회사의 근무 환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퇴근 시간 따로 없어 내 마음대로지만 자율엔 더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고 한다.
- 큰 자기는 회사라면 목표를 이뤄야 그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이에 김은주 자기는 많은 분들이 자유롭고 자율적인 것만 부각해서 보신다. 자율이 주어진다는 말은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평가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구글에선 객관적인 수치가 말해주는 평가는 물론 동료들에게 평가도 받는다고 한다.[5] 또한 승진 역시도 자발적으로 지원을 받은 후 10~12명의 동료들로부터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 김은주 자기는 구글에 입사한 후 1년동안 엄청 힘들었다고 한다. 회사 내 상담프로그램을 이용해 심리 상담을 받았다고... 이후 그는 그 때 '나를 괴롭히는 건 오늘 여기까지, 그만하자. 그리고 나를 좀 돌아보자'라 생각했다고 한다.
- 평가를 앞두고 회사 모든 직원에게 메일을 보낸 사연에 대해 공개했다.
- 큰 자기는 “구글 직원들은 다 천재일 것 같다”라고 말했고 김은주 자기는 천재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구글에서 다른 데로 이직한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천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재 일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중요한 것 같다며 직업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하였다.
- 성과를 제외한 구글의 복지 환경에 대해 물었다. 김은주 자기는 한국음식은 물론 바리스타도 있거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 외에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거 미용실[6] 도 있다고 한다.
- 김은주 자기의 얘기를 듣던 중. 큰 자기는 과거 매너저가 다른 동료들을 비교하며 카리스마를 가져라는 충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엔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카리스마란 걸 갖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 상품은 작은 자기가 그려진 우산을 받았지만 정작 캘리포니아에선 비가 안온다고 말했다.
사실 상 장식
6. 기타[편집]
- 지구촌 능력자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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