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엄민영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15년 경상북도 경산군에서 태어나 대구고등보통학교[2] 와 규슈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으며 1940년에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경성지방 전매국 청주출장소에서 근무했으며 1943년에는 승진하여 임실군수와 무주군수를 지냈다. 군수 시절 엄민영은 비록 일제의 녹을 먹는 총독부 관리였으나 나름대로의 민족의식은 있었던지 총독부의 공출지시를 의도적으로 태만히 하여 좌천당하거나 독립운동가 박기수의 도피를 도운 적이 있다고 한다.
2.1. 해방 이후[편집]
해방 이후에는 전라북도 농상부장과 전라남도 농림국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고려대학교 법정대학 강사로 근무하다가 서울대학교와 경희대에서 교수로 근무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서울대 교무과장직에 재직 중이었으나 9.28 서울 수복 중 가족과 함께 북한군에게 납북되어 올라가는 과정에서 중간에 가족의 종용으로 탈출하여 남하하던 중 미군을 만났고, 이후 대구로 내려가 대구대학[3] 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2.2. 정계 활동[편집]
1960년 초대 참의원 선거에서 전북 제1부 선거구에서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국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3년 12월에 국무총리 최두선을 필두로 한 일명 '방탄내각'의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으나 6.3 항쟁으로 인해 재임한 지 6개월만에 물러났으며 1966년까지 한국정경연구소를 세우고 동료로 지냈던 전직 장관 및 교수와 함께 월간지인 정경연구를 발간하는 등 제야에서 활동하였다.관련 기사
그러다가 1966년에 내각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다시 내무부 장관에 재임명되었다.#
2.3. 주일대사 시절[편집]
1967년 11월에 주 일본 대사로 임명됐으나 주일 대사로 재직 중이던 1969년 12월 6일부터 간경변이 악화되자 자혜병원에 입원하였으며 나흘 뒤인 12월 10일에 별세하였다.[4]
유해는 사후 12월 12일에 일본항공 전세기 편으로 귀국하였으며 나흘 뒤인 16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