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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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London)은 잉글랜드, 나아가 영국의 수도이다.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면서 영연방 국가들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뉴욕, 도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도시 참조.[3] 더불어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인데 몇몇 기사에서는 뉴욕시보다도 더 많은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사는, 다양성이 짙은 도시로 꼽기도 한다.
런던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상징이 많은 도시이다. 빅 벤, 런던 아이, 타워 브리지, 루트마스터[5] , 영국군 근위대가 있고 추가로 유니언 잭, Underground,[6] Mind the Gap(런던 지하철) 정도가 더해지는 듯하다. 블랙캡(검은 택시),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 등도 유명하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 그린 파크, 하이드 파크 등 공원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드 모르간이 창립한 세계적인 수학회인 런던 수학회도 있다.
과거 구 런던 의회(Greater London Council)이 있던 시절 위와 같은 깃발과 문장이 있었으나 마거릿 대처 시절 런던 의회가 폐지된 뒤에는 런던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상징물이 없다. 2000년에 신설된 현 런던 광역 행정청(Greater London Authority)[7] 은 깃발과 문장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조.
London이란 이름은 로마 주둔 시기의 Londinium에서 나온 것은 확실한데 왜 Londinium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잉글랜드에는 켈트어에서 유래한 지명이 많기 때문에 런던도 켈트어를 라틴어식으로 변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켈트어 유래설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거칠다는 의미의 londo[8] 나 '좁은 땅의 성'을 의미하는 lyndyn에서 나왔다고 본다. 켈트 신화의 신들의 왕인 누아다 아케트라이브에서 누아다의 영국식 발음인 Lud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피터 애크로이드에 의하면 도시, 요새[don]와 호수, 냇가 옆[Lynn]을 의미하는 두 단어가 결합했거나 긴 언덕, 늪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다고 한다. 애크로이드는 또 켈틱 어원에 따르면 당시 런던에 거주하던 부족인들이 너무 용맹해 난폭함을 뜻하는 형용사 '론도스(londos)'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9]
조선왕조실록에는 '난돈(蘭墩)'이라는 한자어로 음차되어 언급된다. 고종 대에는 '윤돈(倫墩)'이라는 표현도 쓰인다.[10] 또, 영국의 수도라는 뜻인 영경(英京)은 1960년대까지도 쓰였다.
로마 제국 시대 론디니움 요새에서 시작했지만 2010년 복스홀 다리 밑에서 무려 약 6천 년 전 목조건물의 잔해가 발견되면서 정착 시기는 요새 건립 이전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로 사료가 부족해 정확히 당시 런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하튼 호노리우스가 브리타니아를 포기하고 로마군을 철수시키자 색슨족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중심지 런던은 철저히 파괴되어 유린당해 인구가 1천 명도 안 되는 깡촌으로 전락했다.[11]
한편 영국에 새로이 정착한 앵글로색슨 족들은 폐허가 된 당대 중심지 런던, 즉 론디니움을 버리고 서편 강변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곳이 현재의 웨스트민스터다. 그래도 점차 인구가 증가하며 폐허였던 구 중심지도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해 도시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꾸준한 바이킹의 침입으로 로마 제국 시대의 위용을 되찾지는 못하였다.
886년에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밑에서 도시의 재건이 이루어져 수도 윈체스터에 뒤이은 잉글랜드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게 되었고, 노르만 정복 때 윌리엄 1세가 런던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한 국가의 수도로서 오늘날까지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런던 타워는 당시 로마시대 성벽 유적을 기반으로 그 자리 위에 세워졌다.
1205년에는 왕과 귀족간의 마그나 카르타를 통해 '런던 시는 모든 고전적인 자유를 향유하며 육로 및 해로를 불문하고 관세를 면제한다. 아울러 짐은 기타 모든 시·읍·면 및 항구가 자유권을 가지고, 관세를 면제할 것을 허용한다.'고 선언하여 런던의 특권을 계속 인정하는 어명을 선포했다.
런던 시에서는 1211년 이후 매년 영국 왕실에게 토지 임대료를 지불한다. 이게 무려 800년이 넘은 역사로, 이것까지는 영국의 흔해빠진(?) 전통으로 여길 수 있다. 문제는 그 토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 기록에 따르면 Shropshire에 속한 Bridgnorth 의 남쪽 어딘가의 The Moor라는 땅과 Strand 주변의 Tweezer's Alley라는 땅을 빌려주었다는데, 런던 시도 영국 왕실도 여기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계약은 계약이라며 지킨다. 게다가 임대료 지불방식도 '칼, 도끼, 편자 6개, 못 61개'라고 쓸데없이 세세하게 규정했다. 그래서 매년 런던 시는 저 칼과 도끼, 편자와 못들을 임대료라며 지불한다. 특히 도끼는 '날카롭게 날을 세운 것'이라고 따로 규정해 놔서 지불 행사 때 따로 도끼가 잘 드는지 시연까지 마친 후 납부한다. 아틀라스 옵스큐라의 내용.
이상의 내용은 엄밀하게는 '시티 오브 런던'의 역사이고 대확장 이후의 상황은 아래의 그레이터 런던에 기술하였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의 유명 도시 이름을 따와서 그대로 자신들이 개척한 마을에 붙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칭이 런던인 도시가 많다.[12] 비슷하게 파리(Paris)란 이름이 붙은 도시도 미국과 캐나다에 많다.
템스 강변에 자리잡았으며, 2020년을 기준으로 도심에만 9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있고, 문화적으로도 영국 각 지역의 문화와 세계 각국의 문화가 어우러져있다. 그레이터 런던[13] 의 면적은 1,572㎢다.[14] 지리학적으로도 런던은 매우 중요한데, 경도의 기준선인 0도선(본초 자오선)이 구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고 협정 세계시의 기준선이 되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를 남한에 비유한다면 맨체스터-리버풀은 서울-인천, 버밍엄은 대전, 런던은 대구와 위치가 유사하다. 국토에 도시가 있는 대략적인 위치가 비슷하다는 뜻으로 위도는 차이가 난다.
인구 1만 명 이상의 이주 공동체가 최소 50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카리브, 아프리카 등의 구 식민지들에서 온 이민이 늘어나고 있다. 한때 런던의 비싼 집값[15] 을 감당하지 못하는 런던 원주민들의 교외 유출이 더 많아서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상황이었으나, 인도,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등이 몰려오며 인구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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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일조 시간(sunshine hours)이 베를린보다도 짧아서 베를린에서는 매일 평균적으로 런던보다 27분 더 햇빛을 쬘 수 있다. 그런데 일조 시간은 북반구의 경우 북극에 가까울수록 겨울에는 짧아지고 여름철에는 길어지는데 베를린과 런던의 위도가 비슷하다는 점을[17] 감안하면 더 위도가 높은 도시보다도 일조량이 적다. 그래도 가끔 런던보다 일조량이 적은 곳이 나오기는 해서 아이슬란드 같은 극지방 근처의 섬들이나 적도기니의 말라보 같은 일부 열대 지방, 쓰촨성의 청두, 충칭 같은 아시아 일부 지방 등보다는 많다. 참고로 페루의 리마 같은 곳은 저위도 사막 지역이지만 일조량은 런던보다 작다.
사실 영국 내에서 런던은 일조량이 그나마 높은 편에 속하는 도시로, 당장 같은 잉글랜드 안에서 약간 북쪽인 맨체스터만 해도 연간 일조량이 1400시간 남짓이며, 한참 북쪽인 스코틀랜드는 연간 일조량이 1100~1300시간 정도로 런던보다도 훨씬 날씨가 어둡다. 애초에 유럽의 일조량은 지중해 연안을 제외하면 고만고만한 편으로, 파리도 겨우 1700시간 정도로 런던과 큰 차이가 안 나고, 밝은 날씨로 유명한 이탈리아도 북부로 올라가면 일조량은 서울보다 적거나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우중충한 날씨가 반복되기에 아침에 날씨 좋아서 피크닉 갔다가 도착해서 비 맞는 일도 흔하다. 또한 런던 날씨가 안 좋다고 런던 시민이나 외지인이나 모두 불평이 대단한 편. 하지만 실제로는 극단적인 경우가 적어서 일 년을 통틀어서 보면 꽤 지내기 좋은 기후를 가진 곳이다. 여름에 별로 덥지 않고[18] 겨울에 크게 춥지 않고 비도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적당하게 내리고 자연 재해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날씨 좋은 남유럽 출신들은 런던에서 살게 되면 날씨와 맛없는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비가 많이 온다고 하지만 로마와 샌프란시스코보다도 연평균 강수량이 적고, 평양의 2/3 수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니치의 경우 샌프란시스코보다 연평균 강수량이 좀 더 적고 히드로 공항은 샌프란시스코보다 연평균 강수량이 좀 더 많다. 서울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이다. 비가 일 년 내내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내린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구름이 많이 끼고 흐린 날이 많아서 햇빛 구경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비가 많이 오는 편은 아니다. 즉 한국의 11월과 비슷한 셈. 또 여름 내내 찜통같은 더위가 반복되는 뉴욕과 달리 런던은 여름에 훨씬 쾌적한 편이다. 뉴욕보다 겨울도 훨씬 따뜻하다.[19] 런던에서는 가장 추운 날이 한국에서 수능 보는 날 정도의 날씨다. 같은 위도(북위 51º 30')의 캐나다, 러시아의 극동 지방, 몽골, 중국 헤이룽장성, 내몽골자치구[20] 일대와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일조량이 낮아서 어둑어둑하기는 하지만 런던과 비슷한 위도의 울란우데는 최고/최저기온 기록을 보면 겨울에 -55℃까지 내려가다 여름에 41℃까지 올라간다. 사실 동 위도에서 서유럽만 벗어나도 1월 평균 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진다. 비슷한 위도의 폴란드 중부 우치의 1월 평균 기온 -1.5℃로 서울특별시와 비슷하고,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인 동부 루블린의 1월 평균 기온은 -2.5℃로 의정부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위도 대비 따뜻하긴 해도 런던에 비하면 차디찬 냉골방이 따로 없는 동네들이다.
1월 평균 기온은 5.2℃로 제주시, 도쿄, 항저우, 이스탄불, 애틀랜타와 비슷하며, 7월 평균 기온은 18.7℃로 대관령과 비슷하다. 그러나 높은 습도로 인해 가을~봄의 체감온도는 서울과 다르게 기온 대비 낮아 겨울은 서울보다 약간만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한 정도이다. 연 평균 기온은 11.8℃로 원산시, 의정부시, 원주시와 비슷하다. 1931~1960년의 서울 연평균기온과도 비슷하다.
다만 고른 강수량과 달리 석회질 토양과 석회수 때문에 실제로 쓸 수 있는 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기후를 띰에도 한국보다 수도 요금이 비싸고 민영화가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더불어 영국에서 차와 음료와 술이 크게 발달한 게 이런 석회수 때문이다.[21]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나라가 영국이기에 스모그라는 재해도 거의 처음 등장했고, 템즈강도 하수처리 시설이 미비해 오염이 매우 심각했다. 때문에 런던 시민들은 런던 스모그라고 불리는 석탄 매연 피해를 100년 이상 겪어야 했고 1951년에 정점을 이루었는데 이때는 1주일 동안 40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사망했다.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면 자동차 앞에 안내인이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조차 매우 미화된 것이고, 실제로는 그 몇 배로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공기가 돌아다닌다.
1951년 스모그는 늘상 있었던 고약한 스모그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몇 주 뒤 통계를 내 보니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란 여론이 높아져 그때부터 정화 운동에 들어갔다. 지금은 적극적으로 환경 정화 사업을 한 덕분에 템스 강 하구에 가까워서 물이 탁해보이지만 물고기가 살 정도로 나아졌다. 이런 사례 때문에 런던은 19세기부터 빅 스모크(Big Smoke)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사실 빅 스모크라는 별칭은 런던을 포함해 영국의 여러 도시(맨체스터, 글래스고, 에딘버러, 벨파스트 등)와 다른 영어권 국가들의 도시에도 붙여진 별명이지만 그 중 대표적인 도시가 런던이였다.
ULEZ(Ultra Low Emission Zone), 혼잡세 등 여러 정책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대기 오염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1. 개요[편집]
런던(London)은 잉글랜드, 나아가 영국의 수도이다.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면서 영연방 국가들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뉴욕, 도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세계도시 참조.[3] 더불어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인데 몇몇 기사에서는 뉴욕시보다도 더 많은 다양한 집단이 모여 사는, 다양성이 짙은 도시로 꼽기도 한다.
런던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상징이 많은 도시이다. 빅 벤, 런던 아이, 타워 브리지, 루트마스터[5] , 영국군 근위대가 있고 추가로 유니언 잭, Underground,[6] Mind the Gap(런던 지하철) 정도가 더해지는 듯하다. 블랙캡(검은 택시),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 등도 유명하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 그린 파크, 하이드 파크 등 공원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드 모르간이 창립한 세계적인 수학회인 런던 수학회도 있다.
과거 구 런던 의회(Greater London Council)이 있던 시절 위와 같은 깃발과 문장이 있었으나 마거릿 대처 시절 런던 의회가 폐지된 뒤에는 런던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상징물이 없다. 2000년에 신설된 현 런던 광역 행정청(Greater London Authority)[7] 은 깃발과 문장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조.
2. 명칭[편집]
London이란 이름은 로마 주둔 시기의 Londinium에서 나온 것은 확실한데 왜 Londinium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잉글랜드에는 켈트어에서 유래한 지명이 많기 때문에 런던도 켈트어를 라틴어식으로 변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켈트어 유래설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거칠다는 의미의 londo[8] 나 '좁은 땅의 성'을 의미하는 lyndyn에서 나왔다고 본다. 켈트 신화의 신들의 왕인 누아다 아케트라이브에서 누아다의 영국식 발음인 Lud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피터 애크로이드에 의하면 도시, 요새[don]와 호수, 냇가 옆[Lynn]을 의미하는 두 단어가 결합했거나 긴 언덕, 늪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다고 한다. 애크로이드는 또 켈틱 어원에 따르면 당시 런던에 거주하던 부족인들이 너무 용맹해 난폭함을 뜻하는 형용사 '론도스(londos)'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9]
조선왕조실록에는 '난돈(蘭墩)'이라는 한자어로 음차되어 언급된다. 고종 대에는 '윤돈(倫墩)'이라는 표현도 쓰인다.[10] 또, 영국의 수도라는 뜻인 영경(英京)은 1960년대까지도 쓰였다.
3. 역사[편집]
로마 제국 시대 론디니움 요새에서 시작했지만 2010년 복스홀 다리 밑에서 무려 약 6천 년 전 목조건물의 잔해가 발견되면서 정착 시기는 요새 건립 이전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로 사료가 부족해 정확히 당시 런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하튼 호노리우스가 브리타니아를 포기하고 로마군을 철수시키자 색슨족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중심지 런던은 철저히 파괴되어 유린당해 인구가 1천 명도 안 되는 깡촌으로 전락했다.[11]
한편 영국에 새로이 정착한 앵글로색슨 족들은 폐허가 된 당대 중심지 런던, 즉 론디니움을 버리고 서편 강변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그곳이 현재의 웨스트민스터다. 그래도 점차 인구가 증가하며 폐허였던 구 중심지도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해 도시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꾸준한 바이킹의 침입으로 로마 제국 시대의 위용을 되찾지는 못하였다.
886년에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 밑에서 도시의 재건이 이루어져 수도 윈체스터에 뒤이은 잉글랜드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게 되었고, 노르만 정복 때 윌리엄 1세가 런던에서 대관식을 치르며 한 국가의 수도로서 오늘날까지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런던 타워는 당시 로마시대 성벽 유적을 기반으로 그 자리 위에 세워졌다.
1205년에는 왕과 귀족간의 마그나 카르타를 통해 '런던 시는 모든 고전적인 자유를 향유하며 육로 및 해로를 불문하고 관세를 면제한다. 아울러 짐은 기타 모든 시·읍·면 및 항구가 자유권을 가지고, 관세를 면제할 것을 허용한다.'고 선언하여 런던의 특권을 계속 인정하는 어명을 선포했다.
런던 시에서는 1211년 이후 매년 영국 왕실에게 토지 임대료를 지불한다. 이게 무려 800년이 넘은 역사로, 이것까지는 영국의 흔해빠진(?) 전통으로 여길 수 있다. 문제는 그 토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 기록에 따르면 Shropshire에 속한 Bridgnorth 의 남쪽 어딘가의 The Moor라는 땅과 Strand 주변의 Tweezer's Alley라는 땅을 빌려주었다는데, 런던 시도 영국 왕실도 여기가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계약은 계약이라며 지킨다. 게다가 임대료 지불방식도 '칼, 도끼, 편자 6개, 못 61개'라고 쓸데없이 세세하게 규정했다. 그래서 매년 런던 시는 저 칼과 도끼, 편자와 못들을 임대료라며 지불한다. 특히 도끼는 '날카롭게 날을 세운 것'이라고 따로 규정해 놔서 지불 행사 때 따로 도끼가 잘 드는지 시연까지 마친 후 납부한다. 아틀라스 옵스큐라의 내용.
이상의 내용은 엄밀하게는 '시티 오브 런던'의 역사이고 대확장 이후의 상황은 아래의 그레이터 런던에 기술하였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의 유명 도시 이름을 따와서 그대로 자신들이 개척한 마을에 붙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칭이 런던인 도시가 많다.[12] 비슷하게 파리(Paris)란 이름이 붙은 도시도 미국과 캐나다에 많다.
4. 지리[편집]
템스 강변에 자리잡았으며, 2020년을 기준으로 도심에만 9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있고, 문화적으로도 영국 각 지역의 문화와 세계 각국의 문화가 어우러져있다. 그레이터 런던[13] 의 면적은 1,572㎢다.[14] 지리학적으로도 런던은 매우 중요한데, 경도의 기준선인 0도선(본초 자오선)이 구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고 협정 세계시의 기준선이 되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를 남한에 비유한다면 맨체스터-리버풀은 서울-인천, 버밍엄은 대전, 런던은 대구와 위치가 유사하다. 국토에 도시가 있는 대략적인 위치가 비슷하다는 뜻으로 위도는 차이가 난다.
인구 1만 명 이상의 이주 공동체가 최소 50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카리브, 아프리카 등의 구 식민지들에서 온 이민이 늘어나고 있다. 한때 런던의 비싼 집값[15] 을 감당하지 못하는 런던 원주민들의 교외 유출이 더 많아서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상황이었으나, 인도,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등이 몰려오며 인구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이다.
4.1. 인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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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기후[편집]
서안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도시로, 대서양 근처라는 점과 편서풍 때문에 가랑비가 자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 영국 신사의 우산은 장식품이 아니다. 툭하면 비가 내리니 귀찮아서 아예 우산 안 쓰고 그냥 맞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다. 보름 넘게 주야장천 비만 내리는 경우도 꽤 흔한 편이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아니라 해가 뜨지 않는 나라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한여름에는 지중해성 기후보다는 덜하나 한국의 봄을 연상케 하는 맑은 날씨가 흔하고 낮 자체도 꽤 길어져서[16] 흔히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가 지지 않는 런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연간 일조 시간(sunshine hours)이 베를린보다도 짧아서 베를린에서는 매일 평균적으로 런던보다 27분 더 햇빛을 쬘 수 있다. 그런데 일조 시간은 북반구의 경우 북극에 가까울수록 겨울에는 짧아지고 여름철에는 길어지는데 베를린과 런던의 위도가 비슷하다는 점을[17] 감안하면 더 위도가 높은 도시보다도 일조량이 적다. 그래도 가끔 런던보다 일조량이 적은 곳이 나오기는 해서 아이슬란드 같은 극지방 근처의 섬들이나 적도기니의 말라보 같은 일부 열대 지방, 쓰촨성의 청두, 충칭 같은 아시아 일부 지방 등보다는 많다. 참고로 페루의 리마 같은 곳은 저위도 사막 지역이지만 일조량은 런던보다 작다.
사실 영국 내에서 런던은 일조량이 그나마 높은 편에 속하는 도시로, 당장 같은 잉글랜드 안에서 약간 북쪽인 맨체스터만 해도 연간 일조량이 1400시간 남짓이며, 한참 북쪽인 스코틀랜드는 연간 일조량이 1100~1300시간 정도로 런던보다도 훨씬 날씨가 어둡다. 애초에 유럽의 일조량은 지중해 연안을 제외하면 고만고만한 편으로, 파리도 겨우 1700시간 정도로 런던과 큰 차이가 안 나고, 밝은 날씨로 유명한 이탈리아도 북부로 올라가면 일조량은 서울보다 적거나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렇게 우중충한 날씨가 반복되기에 아침에 날씨 좋아서 피크닉 갔다가 도착해서 비 맞는 일도 흔하다. 또한 런던 날씨가 안 좋다고 런던 시민이나 외지인이나 모두 불평이 대단한 편. 하지만 실제로는 극단적인 경우가 적어서 일 년을 통틀어서 보면 꽤 지내기 좋은 기후를 가진 곳이다. 여름에 별로 덥지 않고[18] 겨울에 크게 춥지 않고 비도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적당하게 내리고 자연 재해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날씨 좋은 남유럽 출신들은 런던에서 살게 되면 날씨와 맛없는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비가 많이 온다고 하지만 로마와 샌프란시스코보다도 연평균 강수량이 적고, 평양의 2/3 수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니치의 경우 샌프란시스코보다 연평균 강수량이 좀 더 적고 히드로 공항은 샌프란시스코보다 연평균 강수량이 좀 더 많다. 서울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이다. 비가 일 년 내내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내린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구름이 많이 끼고 흐린 날이 많아서 햇빛 구경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비가 많이 오는 편은 아니다. 즉 한국의 11월과 비슷한 셈. 또 여름 내내 찜통같은 더위가 반복되는 뉴욕과 달리 런던은 여름에 훨씬 쾌적한 편이다. 뉴욕보다 겨울도 훨씬 따뜻하다.[19] 런던에서는 가장 추운 날이 한국에서 수능 보는 날 정도의 날씨다. 같은 위도(북위 51º 30')의 캐나다, 러시아의 극동 지방, 몽골, 중국 헤이룽장성, 내몽골자치구[20] 일대와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일조량이 낮아서 어둑어둑하기는 하지만 런던과 비슷한 위도의 울란우데는 최고/최저기온 기록을 보면 겨울에 -55℃까지 내려가다 여름에 41℃까지 올라간다. 사실 동 위도에서 서유럽만 벗어나도 1월 평균 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진다. 비슷한 위도의 폴란드 중부 우치의 1월 평균 기온 -1.5℃로 서울특별시와 비슷하고,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인 동부 루블린의 1월 평균 기온은 -2.5℃로 의정부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위도 대비 따뜻하긴 해도 런던에 비하면 차디찬 냉골방이 따로 없는 동네들이다.
1월 평균 기온은 5.2℃로 제주시, 도쿄, 항저우, 이스탄불, 애틀랜타와 비슷하며, 7월 평균 기온은 18.7℃로 대관령과 비슷하다. 그러나 높은 습도로 인해 가을~봄의 체감온도는 서울과 다르게 기온 대비 낮아 겨울은 서울보다 약간만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한 정도이다. 연 평균 기온은 11.8℃로 원산시, 의정부시, 원주시와 비슷하다. 1931~1960년의 서울 연평균기온과도 비슷하다.
다만 고른 강수량과 달리 석회질 토양과 석회수 때문에 실제로 쓸 수 있는 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뭄이 거의 없다시피 한 기후를 띰에도 한국보다 수도 요금이 비싸고 민영화가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더불어 영국에서 차와 음료와 술이 크게 발달한 게 이런 석회수 때문이다.[21]
4.3. 공해[편집]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나라가 영국이기에 스모그라는 재해도 거의 처음 등장했고, 템즈강도 하수처리 시설이 미비해 오염이 매우 심각했다. 때문에 런던 시민들은 런던 스모그라고 불리는 석탄 매연 피해를 100년 이상 겪어야 했고 1951년에 정점을 이루었는데 이때는 1주일 동안 40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사망했다.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보면 자동차 앞에 안내인이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조차 매우 미화된 것이고, 실제로는 그 몇 배로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공기가 돌아다닌다.
1951년 스모그는 늘상 있었던 고약한 스모그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몇 주 뒤 통계를 내 보니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란 여론이 높아져 그때부터 정화 운동에 들어갔다. 지금은 적극적으로 환경 정화 사업을 한 덕분에 템스 강 하구에 가까워서 물이 탁해보이지만 물고기가 살 정도로 나아졌다. 이런 사례 때문에 런던은 19세기부터 빅 스모크(Big Smoke)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사실 빅 스모크라는 별칭은 런던을 포함해 영국의 여러 도시(맨체스터, 글래스고, 에딘버러, 벨파스트 등)와 다른 영어권 국가들의 도시에도 붙여진 별명이지만 그 중 대표적인 도시가 런던이였다.
ULEZ(Ultra Low Emission Zone), 혼잡세 등 여러 정책으로 2000년대 이후에는 대기 오염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5. 행정 구역[편집]
5.1. 그레이터 런던[편집]
그레이터 런던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이 지역에서 이름을 따온 일본의 경주마에 대한 내용은 그레이터 런던(말)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 width=100%><width=50%> ||<width=50%> ||
현재의 런던 행정 구역의 기틀이 완성된 것은 1965년으로, 이때 그레이터 런던이 만들어졌다. 그레이터 런던은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City of Westminster)를 포함한 32개의 일반 자치구(borough)와 특별 자치 구역인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로 구성되어 있다. 그레이터 런던의 지방 행정(광역 행정)은 런던광역행정청(Greater London Authority)이 담당하고 현재 런던광역시장[22] 은 노동당 소속의 사디크 칸(Sadiq Khan)[23] 이다. 원래는 런던광역행정청은 1963년에 제정된 런던 자치정부법에 의거 1965년에 이루어진 런던 대확장과 함께 Greater London Council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었으나 지방 선거에서 노동당이 압승했단 이유로 1986년 마거릿 대처 총리에 의해 폐지되어 자치구들만 남은 상태로 있다가 토니 블레어 총리에 의해 2000년에 부활했다.[24] 광역정부가 사라졌던 기간 동안에는 중앙정부 산하 기관이나 자치구 간 협의체 기관 등을 통해 상하수도, 지하철 등과 같은 광역 행정 사무 문제를 해결했었다.
다만 그레이터 런던은 한국식 기준의 특별시·광역시 같은 온전히 단일한 광역 자치 단체라고 보거나 하기에는 느슨한 도시 연합의 성격도 갖고 있다. 그레이터 런던에 관한 설치 법률로 알려진 London Government Act 1963 원문[25] 을 읽어봐도 나오는데 이렇게 구성이 된 이유는 애초에 그레이터 런던의 전신인 런던 카운티가 런던의 소규모 지역구를 통합 관리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재는 직선제 시장도 있으니 단순한 광역 행정청으로 보기엔 애매하기에, 광역 행정청(도시 연합)의 성격도 가진 광역시라 봐도 무방하다. 또한 그레이터 런던은 서구권에서 흔하지 않은, 단일의 광역지방정부의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26] 이와 같은 런던권 광역 행정기관의 설치는 런던광역경찰청 설치가 계기가 되어졌다
그레이터 런던 대확장의 총괄책임자는 에드윈 허버트 경이었으며, 조사팀이 1950년대에 런던 교외 이것저것을 돌아다니며 런던 편입 대상지를 물색했다. 일부 교외지역은 런던 편입에 반대하였기에 최종 시행안은 초안에 비해 조금 줄어들었다. 그리고 런던 대확장과 동시에 이루어진 자치구 통폐합 문제에서도 자치구 간의 기싸움(특히 통합된 자치구의 명칭 문제)이 심했다고 한다.
관련 동영상
서쪽의 미들섹스 주[27] 의 대부분, 동쪽의 켄트 주와 에식스 주, 남쪽의 서리 주,[28] 북쪽의 하트퍼드셔 주의 각각 일부가 런던으로 편입됨으로써 오늘날의 거대한 런던 광역권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대규모 확장을 감행한 이유는 확장안이 통과된 이유는 런던 외부에 살면서 런던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세수 확보 때문이다.[29] 이때 미들섹스 주와 런던 주는 폐지(해체)되었고 런던 근교의 위성 도시였던 윔블던이 이때 런던으로 편입되었다. 프랑스의 파리는 행정 구역 대확장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서 광역 도시와 괴리가 심한 반면 영국의 런던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런던 주변 위성도시들을 죄다 런던으로 편입시켜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서 광역 행정이 폭넓게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965년에 런던으로 새로이 편입된 지역들은 1996년까지 옛 행정구역의 흔적이 우편 주소에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서리주(Surrey)에서 편입된 지역은 우편 주소에 London 대신에 Surrey라고 했던 식으로.
1965년 대확장 이전의 행정 구역은 1889년에 확정된 것으로, 1965년 이전 런던에 속했던 지역을 지금은 'Inner London', 1965년에 런던에 편입된 지역을 'Outer London'이라 하고 있다.
그레이터 런던 이전에는 런던 주(County of London)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다. 1889년에 런던 주를 설정하면서 웨스트민스터를 비롯한 미들섹스 주 일부와 그리니치를 비롯한 켄트 주 등지가 런던으로 편입되었다.
런던에도 일각에서 추가 확장론이 존재한다. 그레이터 런던에 편입되지 못한 일부 위성도시를 런던으로 추가 편입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의다.
뉴 몰든(New Malden)에는 한인 집단 거주 지역도 존재해 1만여 명의 한인이 거주 중이다. 원래 서리주 소속이었으나 런던 대확장 후에는 킹스턴어폰템스 자치구에 속하게 되었다. 런던 Zone 4에 해당하고 2011년 BBC에서 'Doing business in London's Little Korea' 란 이름으로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한인의 상권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데 주로 미용실, 음식점, 여행사 등이다.
그레이터 런던은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지역 단위로 자치권이 이양된 행정구역이다. 그레이터 맨체스터 등의 행정구역은 지역단위 이양이 아닌 자발적으로 구성된 도시주 단위로 이양된 행정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