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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램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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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78년 출생
- 헤이버링 출신 인물
-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 미드필더
- 중앙 미드필더
- 잉글랜드의 축구감독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스완지 시티 AFC/은퇴, 이적
- 첼시 FC/은퇴, 이적
- 맨체스터 시티 FC/은퇴, 이적
- 뉴욕 시티 FC/은퇴, 이적
- 더비 카운티 FC/역대 감독
- 첼시 FC/역대 감독
- 에버튼 FC/역대 감독
- 잉글랜드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UEFA 챔피언스 리그 100클럽 가입 선수
- 대영제국 훈장 4등급
- 멘사 회원
- 축구 선수 자녀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995년 데뷔
- 2017년 은퇴
- 감독 대행/축구
1. 개요[편집]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으며, 첼시 역사상 최다 득점자로 현역 시절 첼시에서 UCL 1회, PL 3회 등 총 13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는 164경기 연속 선발 출장 기록[5] 에 빛나는 강철 같은 체력과 10년 연속 두 자릿 수 득점을 기록한 꾸준함[6] , 뛰어난 내구성, 순간적인 페널티 박스 침투에 이은 뛰어난 슈팅과 창조적인 패싱 능력[7] , 강력한 중거리 슛, 막강한 피지컬[8] , 대포알 프리킥, 최상위권의 PK 성공률 등을 갖춘 만능 미드필더였다.
미드필더로서 유일무이한 그의 득점력에 기인하여, 국내에서는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를 섞은 미들라이커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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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플레이 스타일[편집]
지금까지도 골키퍼 제외 최다 연속 선발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강철 같은 체력, 간결하고 창조적인 킬러 패스 능력, 피지컬을 이용한 안정적인 볼 키핑과 같은 장점이 많은 선수이지만 램파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미들라이커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답게 역사상 최고 수준의 득점력을 가진 미드필더 중 한 명이라는 점이다.[9] 이에 비견할 수준의 중앙 미드필더로는 스티븐 제라드(커리어 통산 863경기 212골), 미하엘 발락(커리어 통산 702경기 193골) 정도가 가능하고, 램파드(커리어 통산 995경기 294골)와 이들을 비교해보면 누적 및 평균에서 램파드의 수치가 가장 앞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골을 넣은 비결은 바로 뛰어난 축구 지능에서 비롯한 오프더볼과 위치 선정 능력과 많은 PK다.
대다수의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들은 피치를 스캔하는 능력이 뛰어난데, 램파드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자신이 공을 갖고 있지 않을때 계속적으로 앞뒤양옆을 돌아보며 피치의 실시간 정보를 얻어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선수였다. 그렇게 얻어낸 정보를 십분 활용하여 볼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공이 파이널 서드에 도달하면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적절한 타이밍에 침투하여 결정 짓는 능력이 탁월하다. 중거리 슛도 훌륭하여 상당히 많은 골을 넣었다. 주로 쓰는 발은 오른발인데 왼발으로도 그에 준하는 위력의 슈팅을 했다. 즉, 득점 패턴이 다양하다. 디디에 드록바의 존재도 램파드에게 있어 큰 어드밴티지였다. 박스 안에서 드록바가 피지컬로 어그로를 끌어 수비를 집중시키고, 그로 인해 생긴 빈틈을 램파드가 공략하는 형식. 이렇게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한 램파드와 드록바 조합은 수많은 득점을 만들었다.
또한 램파드는 굉장히 꾸준한 선수이다. 자기관리도 열심히 하고 특별한 슬럼프 없이 매년 기복없는 플레이를 펼친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전례가 없는 10년 연속 두 자릿 수 득점은 매 경기 기복 없는 플레이 덕분이다.
기본적으로는 중앙 미드필더의 움직임을 가져간다. 램파드는 기본적인 중앙 미드필더보다도 조금 더 공격적인 롤을 부여받아 공격전개 및 득점까지 직접 가담한다. 쉽게 말하자면 프리롤 중미.[10] 활동폭이 상당히 넓은데, 팀이 내려앉아 있는 수비 혹은 빌드업 상황에는 3선 위치까지 내려와서 플레이하다가도 공이 공격 진영까지 전진하면 거의 세컨드 스트라이커 위치까지 올라가서 공격의 마무리 작업까지 가담한다. 두뇌회전이 매우 빨라서 원터치 내지 투터치 안에 공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며 첼시 팀 컬러에 맞게 빠른 속도로 다이나믹하게 공격을 전개하는것에 능하다.
수비 면에서의 평가를 해 보자면, 램파드의 수비력은 공격에 무게를 싣는 선수 치고 매우 훌륭하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몇몇 공격적인 성향을 지니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수비가담이 좋지 않아 팀에게 민폐가 되는걸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굉장히 큰 장점이다. 일단 태클 능력이 상당히 좋다. 램파드의 최전성기였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팀 내에서 마켈렐레 다음으로 태클 수가 많은 선수가 바로 램파드였다. 공수 양면으로 위치선정이 아주 좋아서 인터셉트를 잘 한다. 공격 지향적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에 열심히 참여하고 팀의 위치가 내려와 있을 때는 기본적으로 내려와서 플레이하기에 팀의 수비에도 도움을 준다. 때문에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도 분류되지만, 파트릭 비에이라같은 유형과는 많이 다르다. 램파드는 4-3-3 포메이션의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 같은, 제한적으로만 공격에 참여해야 하는 위치에서 뛸 때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11] 기본적인 축구지능과 인터셉트 능력이 좋아 그 위치에서도 잘 할 수는 있겠지만, 중거리 슛도 잘 차고 위치선정은 웬만한 공격수를 훨씬 능가하는 슈퍼 공격 옵션을, 그저 수비형 미드필더로 사용한다면 그 감독은 바보다. 다행히도 주제 무리뉴 감독은 바보가 아니었고, 전성기의 램파드는 마켈렐레, 에시앙, 미켈 등 보다 수비지향적인 미드필더들과 같은 라인에서 뛰며 보다 자유롭게 공격적인 롤을 수행했다.
램파드의 드리블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꽤나 예리한 스타일이다. 램파드의 드리블은 분명 빠르고 폭발적인 드리블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페이크 슛 동작은 틀림없는 월드클래스였다. 한국 축구팬들이 보편적으로 "접는다"라고 표현하는 그 동작을, 마치 아르연 로번처럼 잘 활용한다. 터치도 굉장히 깔끔하고 의외의 순간 발놀림을 사용한 볼 키핑력과 탈압박도 상당하다. 거기에 더해 양발 드리블이나 알까기도 사용한다. 투박하다는 인상이 있지만[12] 어디까지나 잘못된 인상일 뿐, 면밀히 보면 플레이가 굉장히 부드럽고 기술적으로도 모자람이 전혀 없다.[13] 애초에 램파드가 기술적으로 부족한 선수였으면 프리미어 리그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라리가에서 영입 제의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킥이 매우 우수하여 첼시에서 코너킥을 주로 전담하여 찼고 프리킥도 돌아가면서 찼다.[14] 또, 페널티 킥을 굉장히 잘 처리한다. 개인 통산 60회의 페널티 킥 득점을 기록했으며, 프리미어리그에서만 페널티 킥으로 43개의 득점을 기록해 역대 페널티 득점 2위이고[15] 성공률 또한 86%로 90%에 육박한다. 페널티를 차는 스타일은 미리 찰곳 정해두고 박스 밖에서 조깅하듯이 달려와 막을테면 막아보라는 식으로 목표지점에 강력하게 꽂아버리는 스타일이다. 이런 어마무시한 킥력을 바탕으로 중거리 슛팅 능력도 당대 최고 순위에 올라갈 정도이다. 램파드의 절정이던 00년대 중후반~10년도 초반까지 프리미어리그 중거리슈터를 떠올리면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항사 손꼽히던 정도. 실제로 램파드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페널티 박스 밖 최다 득점자이다.[16]
단점을 굳이 꼽자면 평범한 주력이 아쉽다는 점이다. 183cm의 다부진 체형[17] 을 가진 램파드는 신체조건이 우수한 선수였고 이를 활용한 안정적인 패싱은 완벽했지만 주력과 드리블이 주무기인 선수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동력 자체는 준수해서 수비 가담이나 볼 운반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순간 폭발력이 부족하여 공을 달고 뛸때 앞에 있는 수비를 스피드로 따돌리는 플레이는 잘 하지 못했다.[18] 다만, 세스크 파브레가스처럼 기동력이 심각하게 부족하여 탈압박이 의미없는 수준[19] 까지는 아니고 전성기 시절에는 공을 직접 치고 올라가서 빠르게 역습을 전개하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사실 주력이 단점이라는 것도 부상과 노쇠화로 전성기가 지난 커리어 후반부에서의 얘기지 램파드의 신체 컨디션이 한참 좋았을 20대 시절에는 공간으로 쇄도할때 밀고 들어가는 능력이 돋보이는 선수였을 정도로 주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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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전술 스타일[편집]
기본적으로 상당히 공격적인 축구를 지향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라인을 상당히 많이 올리며, 공격 전개시 박스 안에 많은 숫자를 두는 것을 지향해 공격시에도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가담한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상대의 역습 상황 발생 시에 적은 수의 수비수로 인해 수비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항상 보여왔으며 지나치게 높게 올라간 라인으로 인해 사이드백과 미드필더의 과부하가 늘 발생한다.
박스 안에 늘 많은 선수를 둔다는 것은 역습 당시 공격진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고 세부 전술로 중앙에서 공격이 전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사이드에서 크로스를 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에서 빼앗겨도 그렇지만 램파드의 전술 특성상 많은 숫자가 박스 안에 있기 때문에 크로스가 차단될 시 상대 수비수가 걷어낸 세컨드 볼을 따는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중앙에 사람이 없으니 상대의 한두 명의 선수로 역습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며 실점을 하는 것은 물론 수비수의 체력적 부담도 엄청 크다. 달리 말하면 상대가 크로스에 대한 대처가 되어있다면 상당히 답답한 경기를 펼치며, 역습에도 취약하기 때문에 조금씩 내려가려는 수비와 박스 안으로 들어가려는 미드필더 간의 간격이 벌어지게 된다. 이는 중앙 지역 미드필더의 숫자 싸움에서 열세를 가져오게 되고, 중앙에서 시작하는 빌드업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며 측면으로 빌드업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램파드가 두 번이나 극복하지 못하고 경질당하게 만든 U자 빌드업이 생기는 과정이다.
요약하자면 높은 수비라인 ➝ 미드필더의 박스 가담 및 측면 크로스 ➝ 상대의 크로스 차단 및 세컨드볼 상대 획득 ➝ 역습으로 인한 수비진 과부하 및 수비라인과 미드진 간의 간격 발생 ➝ U자 빌드업으로 인한 답답한 경기력 ➝ 상대의 중앙 강화 및 크로스 대비 ➝ 반복되는 U자 빌드업 ➝ 경질
위 과정을 감독 1부 리그에 들어서는 계속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램파드가 과연 첼시 2기에 들어서 이겨내고 감독으로 한 발 더 내딛느냐에 따라 램파드의 감독 커리어나 전술 성향의 확립에 대단히 중요할 것으로 보였지만 첼시 2기에서도 극복은 커녕 퇴보만 거듭하면서 1부 리그는 커녕 앞으로 감독 커리어도 이어나갈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운 모습만 보이면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 사례에 이름을 올리기 일보 직전이다.
반면 높은 수비라인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가 잘풀리는 날에는 시원시원한 공격축구를 볼 수 있다. 주로 좋아하는 선수는 활동량이 많으며 킥력과 같은 공격적인 재능이 있는 선수를 공격 전술의 핵심으로 많이 사용한다.
첼시 FC에서는 메이슨 마운트 같은 경우가 램파드의 전술적 수혜를 많이 받은 선수이며, 에버튼 FC에서는 앤서니 고든 같은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3.1.1. 첼시 시절[편집]
기본적으로 어리고 빠른 선수들을 앞세워 위르겐 클롭의 게겐 프레싱을 기반으로 한 듯한 빠른 템포의 매우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시즌 전 지구력 훈련을 엄청나게 시켰다는 뉴스가 나오더니[20] , 그에 걸맞게 선수들의 왕성한 활동량을 요구한다. 전방압박을 매우 활발하게 하라고 주문하는 듯 미드필더들이 1선까지 올라와 압박을 하는 장면이 자주 보이며, 이를 통해서 꽤나 쏠쏠하게 재미를 보기도 하였다. 공격 전술 역시 상당히 빠른 템포로 전개하여 순식간에 공을 연결해 결정짓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기존 감독들이 공격전술을 전적으로 에덴 아자르에 의존하던 것과 달리, 꽤나 유연하게 전술을 짜서 득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꿈도 희망도 없다는 평가를 받던 첼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였다.
후술하겠지만 램파드 이전에 첼시의 감독들에[21] 비해 폭넓은 선수 기용을 하고 있다.[22] 첼시 감독 부임 때부터 유스 출신 선수들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적극 기용하는 편이며[23] 이에 따라 캘럼 허드슨오도이[24] , 타미 에이브러햄, 피카요 토모리, 메이슨 마운트, 리스 제임스 등이 시즌 전반기에 이미 1군에 자리잡았다. 또한 시즌 초반에 부진한 편이던 퀴르 주마와 크리스천 풀리식 등이 시즌이 지날 수록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결국 확실하게 주전 경쟁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등, 이른바 선수 기용에 대한 밀당도 확실한 편이다. 아직 한 시즌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섣부른 판단으로 볼 수는 있으나 무리뉴, 콘테, 사리를 거치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 리그에서 혹사당하다시피한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가[25] 램파드 체제에서 드디어 리그 경기에서 리스 제임스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었다는 것을 보면 램파드의 선수 기용 폭이 꽤 넓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전술의 특성으로 인한 체력 고갈에서 오는 경기 후반 수비의 상당한 불안정성이 꽤 눈에 띄는 편이다. 램파드 부임 이후의 첼시 경기를 보면 초반에 엄청나게 템포를 올려서 골을 넣어대다 막판에 꽤나 많은 골을 실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까지 핵심 중앙 수비수들이 부상으로 빠져있는 실정이라지만, 선수단의 전체적인 집중력 저하가 상당히 두드러진다. 꽤나 확실히 드러난 문제인데다가, 체력저하가 심해지는 시즌 중반을 통째로 말아먹을 수도 있기에 개선의 여부가 앞으로의 성공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시즌 중반까지 대부분의 실점이 세트피스 실점일 정도로 많았다. 시즌 초반엔 지역방어 형식의 세트피스를 사용했지만, 너무 실점이 많아지자 맨마킹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세트피스 실점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26] 20-21 시즌 이후에는 치아구 시우바의 영입과 퀴르트 주마가 각성을 했고,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상당히 크게 해결한 모습을 보이긴 했다.
다만 더비 카운티 시절부터 램파드의 전술을 본 축구 팬들에 의하면 첼시 부임 후에 어느 정도 피드백을 수용하고 있다고 한다. 첼시 부임하고 나서는 4-2-3-1, 4-3-3, 3-4-3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포메이션을 기용하고 있으며 압박 강도도 선수들의 체력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절하는 모습도 나오고 있지만, 강한 압박 강도에 따른 부상인지 잦은 부상으로 선수 기용에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명확한 베스트 11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은 뒤인 20-21 시즌에는 시즌 초반과는 다르게 경기를 거듭하면 할수록 승패에 상관없이 베스트 11과 교체 명단을 어느 정도 구축에 성공한 모습이긴 하다. 여기에 보드진과의 커넥션을 확실하게 정립하며, 전 구단을 다 통틀어도 부상자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덕분에 베스트 11을 짜는 데에 더욱 수월해진 것도 달라진 모습.
전술 스타일과는 별개로 선수 시절에 수많은 명장들과 함께 했던 경험 덕분인지 감독으로서 갖고 있어야할 요소들을 많이 배운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도 주제 무리뉴, 카를로 안첼로티 등등의 명장들 아래에 있으면서 선수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경기 도중에 전술적으로 어떻게 변화를 줘야 할지 옆에서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여러번 말했다.[27]
그리고 용병술이 굉장히 좋고 판단이 아주 빠르다. 지고 있거나 밀리던 경기를 용병술로 뒤집는 경우가 많으며, 선수 영입이나 리그 스쿼드 명단을 짤 때도 워크에식이라는 요소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수단 규율을 잘 지키지 않거나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사고를 치는 등 구설수에 오른 선수는 가차없이 명단 제외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여주며, 아예 리저브로 강등을 시키거나 임대를 보내서라도 팀 분위기를 저해를 하는 선수를 내쫓는 모습도 보일 정도.[28]
하지만 20-21시즌에는 이러한 장점들은 다 잃어버렸다. 체계가 없는 무식한 압박전술과 새로운 영입생들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이후 역대급으로 나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술적인 측면에선 무식하게 압박만 할 뿐[29] , 정확한 체계가 없어서 공격 방식이 U자 빌드업 후 무한크로스로 단조롭게만 이뤄지고 있다. 또한 첼시의 중원이 나쁜 편이 아님에도 중원을 삭제하고 측면만 집착하는 축구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선수 영입도 목적보다는 네임드에 치중한 느낌이 드는게, 새로운 빅 사이닝인 베르너와 하베르츠를 제대로 기용하질 못하고 있다.[30] 이 때문에 첼시는 20-21 시즌 우승 후보로 예상된 것과는 달리 전반기 승점 29점, 8위에 쳐박히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첼시에서 채 2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당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징 중 하나가 혹사를 자주 시킨다는 것이다. 전술 스타일만 봐도 많은 활동량이 기본적으로 충족되는만큼 많은 체력 소모가 들 수밖에 없는데다 뭔가 대체자나 로테이션 자원이 부족하다 싶으면 그 선수만 계속 쓰는 모습을 보이는데 조르지뉴와 베르너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르지뉴는 정말로 대체 자원이 부족했다고도 할 수 있으나 결국 나중에 폼이 확 떨어졌고 베르너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계속 출장시키고 거의 풀타임을 소화하게 해서 폼 저하에 큰 몫을 차지했다.
에버튼 감독을 마치고 임시감독으로 돌아온 22-23 시즌엔 기어코 1기 시절이 더 나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끔찍한 전술만 보여주는 중이다.
3.1.2. 에버튼 시절[편집]
감독 부임 인터뷰에서 램파드가 아탈란타의 3백 전술을 연마했다고 밝혔다. 다만 부임하고서는 팀의 상황이 리그 잔류에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최대한 실리를 취하는 전술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델리 알리와 도니 판더베이크를 겨울 이적 시장에 영입했으나 둘 다 실패로 끝난 픽이었다. 알리를 윙으로 기용한다든지 토트넘전에서는 라인을 올려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을 선보였다. 부적절한 교체 타이밍은 덤. 다행히도 파비안 델프의 적절한 기용으로 그가 출전한 경기에선 무패를 기록하고 리그 마지막 경기 이전에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22-23 시즌에는 기존의 무지성 중원삭제 축구 고집을 버리고 수비를 단단하게 가져간 뒤 역습을 전개하는 형태의 전술로 바꿨다. 2022-23 시즌 제임스 타코우스키를 영입하고 코너 코디를 임대해오며 안정적인 수비 라인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개막전에서 예리 미나와 벤 고드프리가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실점은 경기당 1점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알렉스 이워비의 엄청난 활약상이 눈보였다. 다만 공격전개는 효율적이지 못해서 슈팅 숫자 자체가 적고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이 부분은 히샬리송이 떠나고 도미닉 칼버트르윈도 부상으로 이탈하여 공격 전개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전술도 잠시, 초반에 안정적이던 수비라인도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원래대로 회귀하면서 다시 한 번 첼시 시절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10월 22일 크리스탈 팰리스전 승리 이후에는 전혀 승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월드컵 시작 이전에 본머스에게 2연패를 당하고 월드컵 종료 이후 재개된 리그 경기인 울버햄튼전에서는 후반 막판에 전혀 의미를 알 수가 없는 볼돌리기를 선보이며 온갖 야유를 받으며 역전골을 허용하며 패했다.
부임 초기에는 팬들과의 좋은 소통 능력과 리그 잔류 성공으로 슈퍼 프랭크라는 별명이 에버튼 팬들에게까지도 불리기도 했지만 다음 시즌에서 결국 성적이 베니테즈 보다도 못한 성적을 내버리자 팬들의 신뢰를 잃고 선수단 불화까지 발생하며 1부 리그에서 통할 감독이 아니라는 것만 보여주고 말았다.[31]
4. 기록[편집]
4.1. 선수[편집]
4.1.1. 대회 기록[편집]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5~2001)
- UEFA 인터토토컵: 1999
- 첼시 FC (2001~2014)
- 프리미어 리그: 2004-05, 2005-06, 2009-10
- FA컵: 2006-07, 2008-09, 2009-10, 2011-12
- 풋볼 리그컵: 2004-05, 2006-07
- FA 커뮤니티 실드: 2005, 2009
- UEFA 챔피언스 리그: 2011-12
- UEFA 유로파 리그: 2012-13
4.1.2. 개인 수상[편집]
- 발롱도르 2위: 2005
- FIFA 올해의 선수 2위: 2005
- FIFPro 월드 XI: 2005
- UEFA 올해의 미드필더: 2007-08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토너먼트의 팀: 2004
-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13
-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2004-05
- PFA 올해의 팀: 2003-04, 2004-05, 2005-06
- FWA 올해의 선수: 2004-05
-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2004-05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3년 9월, 2005년 4월ㆍ10월, 2008년 10월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골: 2010년 4월
- 프리미어 리그 도움왕: 2004-05, 2009-10
- MLS 올스타: 2015
- MLS 이달의 선수: 2016년 7월
- FA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7
- 풋볼 리그컵 최우수 선수: 2004-05, 2006-07
- PFA 메리트 어워드: 2005, 2015
- FWA 공로상: 2010
- 잉글랜드 올해의 선수: 2004, 2005
- 첼시 올해의 선수: 2003-04, 2004-05, 2008-09
- 뉴욕 시티 이달의 선수: 2015년 9월
- ESM 올해의 팀: 2004-05, 2005-06, 2009-10
- 옹즈 드 옹즈: 2005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플레이어 커리어 어워드: 2015
- 프리미어 리그 명예의 전당: 2021
4.1.3. 개인 기록[편집]
- 2005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2위[32]
- PL 통산 출전: 3위 (609경기)[33]
- PL 통산 최다 출전 시간: 2위[34]
- PL 통산 득점 5위: 177골[35]
- PL 역대 최초 10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36]
- PL 통산 도움 4위: 102개[37]
- PL 164경기 연속 선발 출장 기록[38]
- PL 통산 역대 최다 중거리슛 득점: 41개
- PL 통산 39개 팀을 상대로 득점 기록[39]
- 첼시 통산 최다 득점: 211골
4.1.4. 출전 기록[편집]
4.2. 감독[편집]
4.2.1. 개인 수상[편집]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19년 10월
4.2.2. 통산 기록[편집]
4.3. 수훈[편집]
- 대영제국 훈장 4등급 (OBE): 2015
5. 램파드에 대한 헌사[편집]
애 면전에서 직접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친구는 나중에 대성할 거예요.[43]
나는 수많은 축구 선수를 보았지만 프랭크 램파드만큼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는 그의 아버지 말고는 없었다.
램파드는 전율을 일으키는 선수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귀신처럼 파고들어 골을 창출해 낸다.
램파드는 골을 넣는 능력을 가진 미드필더이며 그를 대신할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램파드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며 스트라이커의 정신을 가진 미드필더이다. 그는 매우 특별한 선수다.
램파드는 환상적인 선수다.
첼시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그와 함께한 시간이 그리울 것이다.
그는 나의 우상이며 그의 후계자 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영광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당신같은 캡틴과 대결한 것은 내 업적이다.
같이 플레이한 선수중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 그는 미드필더로서 부족한 부분없이 완벽했던 선수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득점력이 뛰어난 미드필더. 어릴적 우러러본 나의 우상과 같은 레전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레전드. 그는 폴 스콜스보다 더 위대한 선수다.
정말 위대한 선수. 그의 꾸준한 퍼포먼스는 믿을수 없을 정도다.
뛰는 기간 동안 자신의 공로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일부 있다. 하지만 램파드는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완성된 미드필더였을 뿐 아니라, 공격수와 같은 득점 기록도 보유했다. 우리는 미드필더에게 그런 득점 능력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같이 뛰어본 미드필더 중 단연 최고였다. 가장 지능적이었고, 가장 효율적인 선수였다.
그는 클럽과 국가를 위해 환상적인 선수였다. 그는 탑 플레이어다.
모두들 스트라이커에게 득점을 기대하지만, 항상 램파드가 득점한다. 그 어떤 미드필더도 램파드처럼 득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램파드와 제라드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이다. 이 둘은 정말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램파드와 비에라의 파트너십으로 중원을 구성하면 정말 최고일 것이다. 공격적인 면에서 역대 최고는 램파드, 수비적인 면에서는 비에라이기 때문이다.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고의 미드필더는? 이라는 질문에) 최고의 선수라? 음, 램파드가 아니면 누가 최고겠는가, 여태껏 본 선수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선수였다. 실력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엄청난 선수였으며, 프로페셔널 그 자체였다. 요즈음 레전드라고 하는 칭호가 자주 사용되고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데 램파드와 같은 선수가 진정한 레전드 칭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램파드의 팬이었다.그가 첼시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잘 안다.
주제 무리뉴가 그를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만들었다.
6. 기타[편집]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200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3위에 이름을 올렸다.
- 선수시절에 골을 넣을 때마다 하늘을 가리키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위한 세레머니를 한다고 한다.
- 굉장한 노력파 선수로 유명하다. 세계 최고 레벨의 선수들 중에서 노력을 안한 선수가 어디있겠냐만 램파드는 그중에서도 성실한 태도와 강도 높은 훈련으로 유명하다.선수를 은퇴하고도 운동 열심히하는건 여전한지, 첼시의 일본 프리시즌 기간에 코칭 스태프들을 데리고 경기장에서 호텔까지 9km를 러닝해서 돌아갔다고 한다.
- 오랜 시간 함께 살며 두 아이를 낳은 동거인이 있었으나 헤어지고[44] 다른 여자를 만났다. 얼마 전엔 휴가지에서 다수의 여성들과 나체파티를 즐겼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여자친구와 다시 만나는 등 가족과 잘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 축구인 가족으로 유명한데, 아버지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는 아들과 마찬가지로 웨스트햄 유스 출신이지만 이쪽은 성장하고 나서도 웨스트햄에 충성한 웨스트햄의 레전드이며, 이모부는 감독 해리 레드냅, 이종 사촌은 그의 아들 제이미 레드냅이다.
- 아이큐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첼시 자체 팀 내 지능검사에서 150이 넘는 아이큐로 해당 조사기관 기록 중 역대 1위를 찍어주셨다. 첼시 팀닥터인 브라이언 잉글리시는 아이큐가 '자신보다 높다'고 강조하기도. 사실, 램파드가 명문 사립학교를 나왔고 국가시험에서 12개 과목 패스하고 라틴어 A를 받았다는 걸 고려하면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 결과이다. 첼시 내에선 가디언을 읽는 선수로 유명했으며, 실제로 청소년들에게 권한 책들도 수준이 꽤 높다. 또한 멘사 회원이기도 하다.
- 인테르로 부임한 무리뉴 감독의 강력한 오퍼를 받았으나 첼시 팬들을 떠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당시 첼시를 떠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후 일주일 뒤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리버풀과 만나서 연장전에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감동을 선사했다. 어머니의 사후 언제나 골을 넣은 뒤에는 하늘을 가리켰다.
- 커리어 동안 총 39개의 EPL 구단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여 EPL 최다 클럽 상대 득점 부문 1위에 올라 2016 기네스북에 이름을 등재했다.
- 2015년 6월자 서훈명단(2015 Birthday Honours)에서 '4등급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 해리 레드냅 전 QPR 감독이 바로 램파드의 이모부이다. 레드냅 감독이 웨스트햄의 선수로 활약했던 당시 아내의 쌍둥이 여동생을 팀 동료인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에게 소개를 해줬고, 둘이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바로 프랭크 램파드 주니어. 한편 레드냅 감독의 아들인 제이미 레드냅과 프랭크 램파드는 이종사촌 지간이다.
- 선수 시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47] (특히 데뷔 초창기에 팬들로부터 뚱뚱하다고 많은 놀림을 받았다) 나름 축구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온 선수이다. 일단 집안이 유명 축구 집안이고 잠재력을 인정받아 유스 명문에 입단, 그 후 당시 중상위권이던 팀으로 이적을 해서 부흥을 이끌며[48] 팀의 역사를 새로 썼다. 클럽의 최고 레전드가 된 것은 당연지사. 그의 출전 기록이 말해주듯, 데뷔부터 은퇴까지 굉장히 꾸준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국대 또한 21세 이하 대표팀부터 소집되었고 성인 대표팀에서는 센츄리 클럽을 가입할 정도로 오랫동안 자국 축구의 슈퍼스타였다.
- 존 테리의 지목을 받아 슛포러브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 2014-15 시즌을 앞두고 이적을 결심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으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를 대체하러 온 선수가 세스크 파브레가스였다는 점에서 이전의 앙금을 풀지 못해서라고 한다. 첼시의 2015-16 시즌이 폭망한 원인 중 하나가 앞선 2014-15 시즌, 로테이션 부재로 인한 과다한 노예출장이었던 것[49] 을 감안하면 시티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램파드의 부재가 다소 아쉽다.
- 정치적으로는 보수당 지지자이며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재임 중에 그를 지지하기도 했다. 대다수 영국 국적의 축구선수들이 노동 계급 출신이며 그런 탓에 축구계에 노동당 지지자가 많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충분히 예외적이라고 할 만하다.[50]
- 커리어에 비해 각종 게임에서의 취급은 폴 스콜스, 스티븐 제라드에 비해서 처참한 수준이다. 포지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대급 골을 집어넣은 램파드였지만 피파온라인3에서는 월드베스트 팩에서 나오면 욕부터 하는 선수가 되어버렸고, FIFA 19에서도 아이콘으로써 게임에 다시 나왔지만 비주류 선수다. 가장 큰 원인은 램파드의 스탯 배분이 상당히 애매하게 되있는 탓이 큰데,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기엔 느리고 둔한 편이라 쓰기 애매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자니 선수시절의 공격력에 매몰된 탓에 수비관련 스탯이 상당히 짠 편이다. 떡대라도 컸으면 둔하더라도 수요가 있는데 180 초중반인 램파드의 키는 피파 유저들에게는 성에 안찬다. 즉 비교적 골고루 갖추긴 했는데 기동력을 비롯해 한두군데 나사빠진 스탯이 되어버려서 써먹기 심히 애매한 스탯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여러 스페셜 카드가 추가되면 원래 속도가 느린 선수들의 속도를 올려주는 등의 개선을 해서 출시하기도 하는데, 램파드와 제라드는 이상하리만치 속도가 80이상으로 올라가질 않는다.
- 램파드는 선수생활 동안 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와 꽤 많이 만났는데, 당시의 세계 최강 바르셀로나에서도 가장 중심축이었던 차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리오넬 메시 모두를 상대로 슬라이딩 태클을 파울 없이 성공시킨 바 있다.
- 전술한 바와 같이 첼시 커리어에서 FC 바르셀로나와 유독 자주 만나서 경기했는데, 당대 최고의 중원을 소유했던 이들을 상대로 만날 때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바르셀로나는 램파드가 은퇴를 발표했을 때, 그를 위한 특별한 헌정 트윗을 보내면서 램파드의 활약을 추억하였다.
- 2019년 10월 프리미어 리그 이 달의 감독상을 수상 함으로써 감독상과 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 탈모인이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적절한 손질로 잘 가리고 다녀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수리쪽의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 2019-20 시즌 31R 리그 2위인 맨시티를 첼시가 잡으면서 리버풀 FC의 EPL 우승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37R에 첼시가 안필드 원정을 치렀을 때, 5:3으로 졌지만 리버풀 라커룸을 방문해 우승을 축하해주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사디오 마네의 인스타그램 라이브에 등장하게 되었다.
- 눈과 눈썹이 굉장히 가까운 편이다.
6.1. VS 스티븐 제라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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