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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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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언론인, 기업인이다.
2. 생애[편집]
1910년 전라북도 부안군 건선방 줄래리(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에서 인촌 김성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부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서울특별시 중앙고등학교)(21회), 일본 주오대학 예과, 영국 런던 대학교 그룹 소속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1] 이후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고로 부친과는 와세다대학 동문이 된다.
1949년 동아일보 이사로 언론계에 몸담았다. 인촌이 세상을 떠난 후, 외사촌형 심강 고재욱[2] 과 상의하여 회사를 경영해 나갔다.
1963년 4월 25일에는 동아방송을 개국하였다. 1966년 동아일보 부사장 겸 발행인으로 재임 중 1968년 신동아가 보도한 "차관" 기사로 인해 정권의 압력으로 발행인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1971년 8월에는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하였다. 1975년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탄압을 받다가 결국 굴복하여 인건비 절감 명목으로 관련 기자들을 해고하였다. 1977년에는 사장직을 이동욱[3] 에게 넘기고 회장에 취임했고, 1980년 2월 인촌기념관 3김 회동 때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두환 집권 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동아방송을 신군부에 빼앗기는 아픔을 겪었다.
1981년부터 이동욱에게 회장직을 넘겨준 뒤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어 국제언론인협회 종신회원, 고려중앙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대외 활동에 나서며 문화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헌신해오다가 1994년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호를 따서 지어진 일민미술관은 구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건물이다.
3. 가족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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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상경력[편집]
- 영국 명예기사 작위 (1981) [4]
- 영국 명예 코만더 훈장(CBE) (1982)
- 국민훈장 무궁화장 (1982)
- 중화민국 문화훈장 (1982)
-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FJ) 언론자유금펜상 (1982)
- 미국 미주리 대학교 언론공로상 (1985)
- 프랑스 정부 공로훈장 (1989)
- 독일 정부 공로훈장 (1993)
- 금관문화훈장 (1994)
5. 둘러보기[편집]
[1] 수료. 졸업은 하지 않았다.[2] 1903~1976. 인촌 김성수의 처조카이다. 그의 본처 고광석의 친정 오빠인 고광준의 아들. 송진우, 장덕수 등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 혼란한 동아일보를 잘 수습했다.[3] 1917~2008.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선배인 설산 장덕수 선생의 주선으로 1947년에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동아일보 편집국 조사부장, 논설위원, 이사, 주필 등을 지냈고, 부사장과 사장을 거쳐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동아일보 회장으로 재직했다.[4] 한영관계 증진과 교육문화 창달 공로로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으로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 수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