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환(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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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7대 해병대사령관
김계환
金桂煥 | Kim Kye-hwan
파일:해병 중장 김계환.jpg
출생 1968년 1월 15일 (56세)
강원도 원주시
현직해병대사령관서북도서방위사령관
재임기간제37대 해병대사령관
2022년 12월 7일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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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둔둔초등학교 (졸업 / 29회)
원주고등학교 (졸업 / 30회)
위덕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1] / 석사[2])
국방대학교 (고위정책결정자과정 / 수료)
서울대학교 (미래안보전략기술 최고위과정 / 수료)
종교개신교[3]
군사 경력
복무대한민국 해병대
1990년 ~ 현재
임관해군사관학교 (44기)
현재 계급중장 (대한민국 해병대)
현재 보직해병대사령관
주요 보직해병대사령부 부사령관
해병대 제1사단
계룡대 근무지원단
해병대 제9여단장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참모장
해병대 제1사단 제2연대


1. 개요
2. 생애
3. 주요 보직
4. 비판 및 논란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 해병대의 군인. 현재 계급은 중장이며,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첫 해병대사령관이다.


2. 생애[편집]


1968년 강원도 원주시 출생으로, 둔둔초등학교(29회), 원주고등학교(30회)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44기) 입학 후, 1990년에 소위로 임관하였다.


3. 주요 보직[편집]


  • 소위 1990년 임관
    • ()

  • 중위 년 진급
    • ()

  • 대위 년 진급
    • ()








4. 비판 및 논란[편집]



4.1.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외압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임기 중인 2023년 7월 20일 해병대 1사단 소속 해병대원 1명이 폭우 대민 지원 중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 참조.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일선 부대에 입막음을 지시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예하부대에 시달한 '지휘 및 강조말씀'에서 "우리 구성원들 가운데 유튜브, 육대전, 기타 언론사 기자들에게 제보해주는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으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임의대로 제공해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습을 방관할 수가 없다"고 강조하며 입막음을 시도했다. 사실상 언론 접촉을 하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것.# 국방부 차관과의 문자 내용이 유출되어 관련 수사에 대해 국방부의 압력을 받은 것이 밝혀졌다.

국방위에서 야당 의원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37일 만에 현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

이후 해병대 중앙수사대장(중령)과의 통화내용이 공개되었다. 내용인 즉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저쪽에서 내가 시킨 걸로 할 거 아니냐. 우리는 원리원칙대로만 했으니까 그냥 결과만 기다리자", "저쪽에서 수틀리면 정훈이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걸로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한 내용이었다. 이로써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을 진작에 알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정훈이하고 저쪽 관계자[1]와 통화한 거 말이야, 기록들 있지?" 라고 말하면서 박정훈 대령을 보호하고 싶지만 하기 힘든 현실을 보여준 통화내용도 있다.

2023년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때 국방부차관과 같이 내빈석에 앉았는데 세상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같은 해 11월 중장 인사에서 유임되었다.

이후 공수처가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2024년 2월 1일 박정훈 대령의 항명혐의 2차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령의 수사과정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고, 장관 지시가 없었다면 경찰에 정상적으로 이첩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박 대령이 사령관인 자신의 이첩보류 관련지시를 어긴 것도 사실이며 항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상술된 지난해 8월 2일에 중앙수사대장과 한 통화 내용과는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김계환 사령관은 이에 대해 당시의 통화는 수사단원들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2024년 4월 11일 2024 총선이 끝난 11일 "말 못하는 고뇌만 가득하다"라는 지휘서신을 내부전산망으로 전달했다. 5월 17일 박정훈 대령의 항명 사건 공판이 예정되어 있고, 특검 통과예측 등에 대한 심경토로라는 보도가 되었다. 지휘서신 내용은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2024년 4월 참고.

5월 2일 JTBC의 보도에 의하면 김계환 사령관은 처음에는 임성근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2]에 대해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먼저 묻는 등 임성근 사단장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종호 참모총장에게 수사 관련 보고를 할 때는 임성근의 후임으로 부임할 1사단장 후보 장성들의 명단까지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2024년 5월 4일, 공수처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특이하게도 변호인을 대동하지 않은 채 혼자 조사실에 들어갔다고 한다.

2024년 5월 7일자로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군에서는 규정상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5월 23일에는 VIP 격노설을 입증할 증거가 나온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출처가 다름아닌 김계환 사령관의 휴대전화였다. 게다가 다른 해병대 고위 간부[3]가 자기도 김 사령관에게서 VIP가 격노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을 했기 때문에 교차검증까지 끝난 상황이라 변명의 여지도 없게 되었다. 공수처에 따르면 증거가 더 나올 수도 있다고 하는데, 김계환 사령관의 휴대전화에 사건이 터진 이후 시점부터 거의 모든 통화와 대화기록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평소 습관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것인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4]

VIP 격노설이 사실상 밝혀지자 여당 의원들은 말을 바꿔 대통령이 분노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며 물타기를 시전했고, 한술 더 떠서 성일종은 ‘국방부장관이 이첩지시를 했는데 곧바로 하지 않고 참모 회의한 사령관이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며 김계환 사령관을 사실상 꼬리자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 5월 27일에는 통화 내역이 복원되어 용산 국가안보실과 최소 16회 통화한 것으로 밝혀져 과거의 '이 건과 관련해 안보실과 통화한 적은 없...한 번 있다[5]'는 2023년 8월 25일자 국회 증언이 완전한 위증으로 밝혀져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김계환은 물론이고, 이종섭 장관, 박진희 소장, 임기훈 중장, 유재은 등 모두가 위증죄에 연루될 수 있다. 사건의 키맨이었던 김계환 사령관의 폰이 모든 증거를 내뱉었으니, 공수처 수사의 다음 타겟이 국가안보실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6월 21일에 법사위 주관 채상병 특검법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6] 당당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박정훈 대령, 이용민 중령[7]과 다르게 법률, 보안을 내세우며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8]

5. 여담[편집]


  • 국군의 날 제73주년에서, 피스메이커 작전을 지휘하였다.

  • 해사 동기인 양용모 대장[9]참모총장에 부임하면서 퇴임이 머지않았음이 확실해졌다. 다만 신원식 국방부장관의 지휘관의 임기를 최소 18~24개월은 보장해준다는 정책 때문에 24년 4월까지 좀 더 근무하다 전역할 것으로 보였으나, 여러 사건사고에 휘말려 수사받는 중이라 그런지 4월 중장 인사에서도 유임되며 임기가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병대 전체의 수장인 해병대사령관을 달아봤으니, 혐의없음으로만 나온다면 공로연수를 마치고 미련없이 전역할 것으로 보인다.[10]


[1] 정확히는 국방부 법무관리관.[2] 사건 발생 장소가 해병대 1사단의 관할 밖인 경상북도 예천군이기 때문에 당시 사건 지역에 출동했던 해병 부대의 작전통제권은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제2작전사령부 제50보병사단에 넘어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임성근 1사단장이 적법한 권한 없이 작전지시를 내렸으니 김계환 사령관은 그럼 어떤 혐의가 적용될 수 있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박정훈 수사단장은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답변을 했다.[3] 최소 장성급으로 보인다. 김계환 사령관을 빼고 보면 당시 부사령관 정종범 소장이나 사령부 참모장(준장) 정도가 유력하고, 다른 장성들로 범위를 넓혀봐도 후보가 그닥 많은 편이 아니다.[4] 나중에 삭제를 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증거 인멸을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아서 복구가 빨랐다고 한다. 게다가 사건 이후 교체한 휴대전화를 제출한 다른 인물들과 달리 김 사령관은 쓰던 걸 그대로 냈다.[5] 이마저도 '없다'고 주장하려다 말을 바꾼 것이다.[6] 안보 상황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지만, 오후에는 화상으로 질의에 답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국회에서 이를 받아들인 것. 실제로 북한에서 오물 풍선을 날려대고 있었고 해병대사령관은 서북도서방위사령관을 겸하며 (경계작전통제는 수도군단이 하긴 하지만) 예하부대인 해병대 제2사단이 인천광역시와 김포시의 경계작전을 담당하는 상황. 국회에서도 납득했는지 딱히 뭐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7] 채상병이 근무한 7포병대대의 대대장이었다.[8] 다만 이종섭, 임성근과 달리 선서를 하는 등 임하는 태도는 좀 달랐다. 김계환 사령관은 포지션상 입을 열 수가 없는 쪽에 가깝다. 이미 중요하다고 꼽히는 증거들 중 대부분은 김 사령관이 제출한 휴대전화에서 나왔고, 태세를 전환하기 전까지만 해도 박 대령에 대한 징계를 뭉개버리면서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전부 예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9] 여담으로 양용모 총장은 이 사건이 정권까지 위험하게 번지자 24년 6월 현재 본인 문서에 임시조치를 걸어두는 졸렬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이 사항은 해당 사건이 관련이 있는(주 관련자 제외) 장성이 휘하이거나 신원식 장관과 연이 있는 장성들도 일괄적으로 개인정보라는 명분하에 임시조치 레이스 중이다.[10] 이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국민들의 해병대 관련 인식이 안 좋기에, 최근 대장으로 바뀐 합참차장이나 비육군도 임명이 가능한 한미연합군부사령관에 들어가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