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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석(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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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장성으로 현 계급은 중장, 현 보직은 육군참모차장이다.
2. 생애[편집]
1987년 대학입학 학력고사[2] 에 합격하여 동아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하였다. 학부 재학 당시 학군사관후보생(29기)[3] 과정을 지원하였으며, 1991년 2월 학부 졸업과 함께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3. 주요 직위[편집]
4. 여담[편집]
- 동아대학교-학군사관 직속 선배로는 6기수 선배인 남영신 前 육군참모총장이 있다.
- 좌우명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 투철한 애국심이 있으며, 부하 장병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다. 다만 부사관의 책임을 강조한 사례가 있었는데, 모 부대 지휘관 시절 예하 포대장이 소속 요원을 직접 영창(혹은 군기교육대) 인솔을 한 사례가 있었다. 이걸 보고 포대장이 상황 발생 시 현장에 위치해야 하는데 행정보급관은 뭐 하는 거냐고 일갈한 적이 있다. 2014년 윤 일병, 임 병장 사건이 터지면서 장교, 특히 지휘관들이 병력 관리에 더욱 책임을 몰빵하면서 수년 후에는 부사관들이 병력관리에 대해 잘 몰라 되려 소대장에게 물어볼 정도가 되기도 했다. 병의 대표도 겸하는 부사관의 역할을 고려하면 좀 씁쓸한 대목.
-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의 첫 군단장 인사에서 학군 및 포병 T/O로 중장 1차로 진급하여 제7기동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2023년 4월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10] 하였다.
- 부대원들을 항상 생각하며 여건 보장이 확실하였다.
- 황유성 중장과 함께 육군 내 대표적인 전력통 장군이다. 비육사 출신임에도 전력 분야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 제7기동군단장 당시 임관 동기인 표창수(육사 47기) 소장이 7군단 예하의 2사단장을 맡았다.
- 자기 관리에 매우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비육사인 데다가 포병임에도 중장까지 진급한 것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11] 사단장 시절 3km 뜀걸음을 12분대로 주파했다. 예비역들은 알겠지만 20대도 12분대가 잘 안나온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보병도 아닌데 이 정도 기록이 나오는 건 정말 소름돋는 부분.
- 포병 출신임을 증명하듯이 장군이 된 후에도 병과 관련 전술적 식견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제25보병사단 사단장 재임 당시, 예하 GP 방문간 포병 관측장교 임무수행상태 점검을 하던 와중, 당시 상황실 근무를 서던 관측장교를 따로 부르지 않고 초소의 화력계획만 읽어보고는, [12] 별도 훈시 없이 상황실로 내려와 관측장교를 격려하며 "(화력)계획 보니까 더 볼 거 없겠다, 더 괴롭히면 너네 대대장이 나보고 뭐라 하겠지?"라는 발언과 함께 추가 확인 없이 30분만에 향발한 바 있다.
- 진급 동기로는 고창준 現 제2작전사령관이 있다. 고 장군과 함께 대장 진급에서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고 장군이 먼저 대장에 진급했다. 보통 육사와 비육사를 가리지 않고 대장 진급이 1기수당 1~2명 꼴이므로 현재로서 대장 진급이 낙관적이지는 않다.
[1] 석사 학위 논문: 육군의 인력구조 혁신 방향 및 과제 (2007. 08.)[2] 현재는 대학수학능력시험[3] 학군 29기 임관동기로 정덕성 지상작전사령부 부사령관(직무대리)이 있다.[4] 전임은 천은찬, 후임은 박진희[5] 전임은 고태남, 후임은 최성진[6] 전임은 허강수, 후임은 김호복(군인)[7] 육군참모차장은 제1군단장, 제5군단장과 더불어 육사 출신만 부임하던 중장 보직이었으나 포병 간부 18기로 임관하여 육군참모차장에 보임되고 1988년에 물러났던 박명철 예비역 육군중장 이후, 35년 만에 비육사 출신 육군참모차장에 보임되는 기록을 남겼다.[8] 전임은 여운태.[9] 대령 2차, 준장 3차, 소장 4차 진급자이지만 중장 진급은 1차로 했다. 전전임 군단장이었던 윤의철, 전임 군단장이었던 허강수 중장도 포병 출신이었다. 윤석열 정부 첫 중장급 인사에서 포병의 약진이 드러났는데, 수도방위사령관이 된 육사 출신 임관동기 김규하 또한 포병 출신이다.[10] 이 자리는 제1군단장, 제5군단장 보직 등과 함께 육사 출신 중장만이 맡은 지 오래 된 보직이다. 1983년 갑종 3기 출신의 오자복 예비역 육군대장이 맡았고 1988년 포병간부 18기로 임관했던 박명철 예비역 육군중장이 맡았다. 그 이후로는 육사 출신 중장이 맡다가, 35년 만에 비육사 출신으로 참모차장에 오른 것이다.[11] 육사 포병도 중장 이상 진급은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들다.[12] 포병의 경우 "포병은 지도로 전쟁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 작전 수행만큼이나 화력계획 작성이 중요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