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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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2. 생애[편집]
1917년 10월5일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어났다.1946년 3월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하였다. 한국전쟁에 3사단 18연대장, 3군단 참모장, 제9보병사단장, 제3보병사단장 등의 고급장교로서 참전하였다. 현리 전투에서의 패전 때문에 무능한 장군이라는 악평을 받기도 한다. 휴전 후 육본 작전교육국장과 제21보병사단장직을 수행했다. 중장 진급 후 1군단장과 3군단장을 역임하였다.
1961년 육군 중장 재임시 발생한 5.16 군사정변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같은 해 8월 쿠데타 주도 세력에게 체포되어 결국 전역하였다.
1982년 7월 29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3. 여담[편집]
- 1959년 8월에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에 한국군 수석대표로 참석하였다.
- 9사단장 시절 헌병대장 김시진을 불러 싱싱한 생선회를 준비해오라고 지시를 하여 김시진은 정말로 생선회를 마련해왔는데 정작 최석은 노발대발하였다고 한다. 알고보니 최석은 여자를 데려오라는 뜻이었는데(...) 고지식한 김시진은 진짜 생선회를 마련해온 것. 이를 속칭 생선사건이라고 하며 꽤나 유명했던지 박태준도 주위에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1] 불쌍한 김시진은 훗날 박정희가 순진하다며 청와대로 데리고가 경호실 차장, 정보비서관, 민정수석등을 지냈다.
- 5.16 쿠데타 후 반혁명분자로 숙청되었으나 곧 구제되었다. 중장까지 진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직책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1970년대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후 국가안보회의 상임고문, 이북5도회 함경남도 자문위원 등의 직책을 맡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성우회 행사에 참여해 유신헌법에 찬성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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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태준은 김시진과 군수기지사령부에서 함께 근무한적 있다.